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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치환, 그 가학성의 근거에 대하여
2005년을 얘기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고통’이었다. 연두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경제도약’을 말하고, 몇 년째 실직의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후배는 학부모가 되는 설렘을 ‘부활’이라고 표현했는데, 신년벽두부터 나를 지배한 것은 이런 불길한 상념이었다. 아마도 지난 기억을 나름대로 반추한 결과일 것이다.
‘기억’이란 게 과거를 소재로 회상 작업을 하는 것임에도 기억하는 순간의 현재 상태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니 만큼, 연초부터 부실한 몸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던 게 상념의 불길함에 주요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지난해의 아픔을 회상의 자료를 삼을 수 있을 만큼 그것과 상대화된 거리 확보가 내게 가능했기에 생긴 현상일지도 모른다―고통의 늪에서 처절하게 허우적대지 않은 자의 지적 허영 내지는 여유 쯤 되는. 대통령은 그 공적인 직위가 사적인 기억을 압도한 결과로 그렇게 희망을 말했을 것이기에, 그 속에 감춰진 무의식적 상상작용의 틈을 헤아릴 수 없지만, 후배의 부활 기억은 상반된 기억으로 치환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불안함에서 기인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고통을 회피하려는 의도되지 않은 욕구가 그의 기억을 지배하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의 사적인 경험에 근거한 것일지라도, 나는 이 글에서 ‘고통’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도 우리 사회의 집단적인 고통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켜 독자에게 말걸기를 시도할 작정이다. 특히 ‘고통의 치환’에 주목하려 한다. 고통과 그로 인한 불안함을 다른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다르게 기억하려는 양상을 읽어보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통의 치환을 둘러싼 시장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권력 자원을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고통을 회수하고 집단적인 희망을 공여해줌으로써 잉여가치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의 진짜 관심은 이러한 치환이 다른 고통의 배후 내지는 (의도하지 않은) 공조 요인일 수도 있지 않는가를 묻는 데 있다. 즉 고통의 치환이 갖는 의도하지 않은 가학성에 관한 것이다. 그리하여 고통을 치환하는 시장의 은폐된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2005년을 시작하면서 마주친 성찰의 자료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동기다.
최근 방영됐던, 1950년대 어간 작가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명동백작>을 보면서 나는 그 시기에 청년기를 살아간 이들은 그 격동의 시절이 안겨준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증언자들의 파편적인 기억을 뚫고 다가온 한 가지 정보는 ‘술’이었다. 식민지의 상실감을 인고하게 했던 희망이 처참히 무너진 자리에서, 이유 모를 폭력의 난무 속에서 그들은 술에 취해 있었다. 전봇대를 들이받고 담벼락을 걷어차면서 비틀거렸다. 익명의 사람이 사는 집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스쳐 지나간 모르는 이를 향해 호통을 쳤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하나 쓰러졌다. 그 비루함 속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였겠다. 그러나 알코올에 찌든 채로 살아갈 수만은 없는 법. 취하지 않은 육체는 다른 무엇을 필요로 했다. 필경 1950년대 사회를 그토록 신속하게 통합시켰던 ‘반공’이라는 증오의 정치는, 알코올에 빠져 자신을 저주했던 자학의 육체이기를 부정한 이들의 심성 속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학적 공격성은 이후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맹렬하게 추진된 ‘돌진적 근대’의 심성적 자원이 되었다.
전투적 반공주의와 돌진적 근대로 특징 지워지는 한국의 산업화는 1950년대를 살아간 이들의 집단적 상흔이 자학적이기보다는 ‘생산적’으로 표출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국가 관료, 기업가, 심지어는 개신교 성직자 등, 자기 자신에 대한 성공신화를 술회하는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동시대를 살아간 사회 전체 구성원의 고통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고통이기도 한 그것을 ‘생산적’인 것으로 치환함으로써 자기가 어떻게 ‘조국 근대화’의 주역이 되었는지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러한 고통의 치환을 생산적인 것으로, 즉 생산적이라는 긍정적인 자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변환시키는 장치가 있다. 마치 어떤 물건의 사용가치를 평가하여 잉여가치를 높게 부여하는 역할을 시장이 하듯이, 사적인 고통을 공적 욕망으로 치환하는 작용에 긍정적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일종의 고통의 시장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은 전투적인 생산적 총동원체제라는 고도의 권력 집중적인 국가체제, 기업체제, 교회체제 등을 정당화시켰다. 문제는 사회 곳곳에 침투한 이들 권위주의적인 체제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증오하게 하고 ‘생산적 체제’의 일탈자 혹은 실패자를 배척하게 하는 ‘가학의 심성화’를 촉발하고 격려하고 부추여 댄다는 데 있다.
‘386세대’는 바로 이 세대가 낳은 ‘사생아’의 이름이었다. 어미인 국가(모국), 모기업, 모교회 등을 둘러싸고 아비와 반목 갈등해야 하는 것이 이들의 외디푸스적 운명이었다. 아비가 뿌려 놓은 증오와 발전 욕구의 산물은 규제와 체벌로 가득한 사회였다. 세상은 입을 수 있는 옷과 입어서는 안 되는 옷, 들을 수 있는 노래와 들어서는 안 되는 노래,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안 되는 시간, 할 수 있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 ... 등등, 수없이 많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다. 아비의 부정(不定)은 이들 금지된 것을 향한 게걸스런 욕구로 나타났다.
권력 집중에 대한 지난한 도전은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기억 속에서 지난날의 권위는 삭제됐고 부친 살해 욕구는 실행되었다. 이러한 성공은 일탈자 세대를 새로운 주역으로 탈바꿈했다. 실은 ‘386’이라는 이름은 일탈자 일반을 향한 이름이라기보다는 그 가운데서 부친 살해에 성공하고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한 이들에게 부여된 ‘영예스런’ 이름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아무튼 ‘저항’은 일탈자의 고통스런 체험을, 그 사적인 좌절을 회수하여 권력의 집중화에 대한 증오로 공공화함으로써, 세대적인 공동운명체적 체험으로 언어화함으로써 실행된 것이다. 사적인 것의 이러한 공적인 치환은 전체주의적인 권력 집중적 체제를 낳게 한 ‘고통의 시장’을 공격함으로써 그 논리적 근원을 반추하고 뒤흔들어 놓는 효과가 있다. 민주화라는 권력에 대한 탈집중적 지향의 제도화는 바로 이 과정의 직접적 산물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점에서 위기의 요소를 담고 있다. 첫째, 새로운 권력 주체인 386세대는 규제와 처벌의 체계, 그 권위주의적인 ‘아비의 법’을 철폐하려는 의제를 물신화시켰다. 그 아비의 법이 철폐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 각자의 사적인 고통을 전체주의적으로 동원함으로써 타자를 향한 가학의 질서로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사적인 고통이 사회적 생산의 동력이 되기 위해 타자를 향한 증오를 공격적으로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한데 새로운 주체가 된 이 세대는 그것이 ‘악’이기 때문에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아비의 법’을 철폐하기만 하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믿었다. 여기서 ‘어떻게’라는 질문은 불필요하다. 결국 아비의 법 내부의 진리의 인식틀, 그 이분법적인 가치 판단의 준거틀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아비를 증오했고 극복하려 했으나 너무나 아비를 닮아 있었다.
둘째, 개체적인 경험을 회수했던 권력 집중적인 질서, 그 아비의 법이 교란되면서 사적인 것이 대두하는 계기가 마련된다. 공적 가치에 의해 식민화되지 않은 사적인 것의 대두는 곧 ‘개인의 등장’과 ‘일상의 발견’을 의미한다. 이제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차이를 드러내는 감수성이 주체의 조건이 된 것이다.
한편 거기에 소비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각 사람들의 자기 취향에 대한 감수성이 맹렬히 개발된다. 과거 ‘권위주의 제도+자본주의적 산업화’의 체제가 가족공동체, 교회공동체, 국가공동체 등의 범주적 결속을 토대로 하는 근대성을 형성하였다면, ‘민주화+소비자본주의’ 체제는 이러한 전통적 범주들의 위상을 급속히 격하시키고 개인들의 주체화를 강화시켰다. 가부장, 성직자, 국가관료 등의 하위주체로 엮여있었던 가족, 성도, 국민 등이 이제 더 이상 전통적 권위에 순응하지 않는 녹록치 않은 존재로 주체화되었다. 이제 전통적인 권위들은 새롭게 주체화된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끊임없는 갈등과 협상을 통해 전통적 결속의 범주가 변형 존속되거나 해체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민주화+소비자본주의’적 사회로의 이행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고도성장이 중단되었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폭력적으로 삶의 일상 속으로 엄습해 들어왔다. 가족, 교회, 국가 등 전통적 범주들은 돌진적 발전의 폭력적 상황으로부터 개개인을 일정하게 보호 후견하는 틀이기도 했는데, 신자유주의 시대의 무한 경쟁의 상황에서 그 범주들의 보호 장치는 이미 무장해제되었다. 게다가 게임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 각자는 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기 위한 사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일에 광적으로 몰입한다. 이러한 상황은 사적 욕구의 천민화를 급속도로 촉진시켰다.
공적이고 전체적인 네러티브의 그물망 속에 포박되어 있던 개인이 거기에서 탈출하여 ‘자기 욕구를 언어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심화시킨다. 그러나 사적 욕구의 천민화는 일상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야만화’를 초래한다. ‘잘 개발된’ 자기 욕구를 표출하는 데 여념이 없는 나머지, 자기의 아픔을 특화시키는 언어화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반면 자신이 타자화시킨 대상의 언어 박탈 현상에 대한 감수성이 현저히 퇴화되는 현상이다. 이때 그 타자적 대상은 자기 내부에도 있다. 예컨대 외모에 대한 천민적 욕구가 다이어트에 실패한 자기 자신을 학대하여 자기 증오에 이르는 경우에서 이러한 내적 타자화의 한 예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고통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언어화가 정지된 고통’인 것이다. 즉 사적 욕구의 천민화는 언어화가 허용된 고통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자기애의 병증을 야기한다.
침묵을 강요당한 고통, 언어를 박탈당한 고통은 무의식의 층위에서 표출된다. 이때 무의식적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다른 방식으로 ‘재언어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고통의 치환이 바로 그것인데, 기억과 망각의 무의식적 편집 작용을 통해 언어화가 허용된 어떤 것으로 기억을 전이시키는 것이다. 이때 종종 허용된 언어임이 공증된 공적 가치로 사적 체험을 이전함으로써 재언어화가 실행되곤 한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민주화의 물신화를 얘기했는데, 나는 이것이 사적 욕구의 천민화로 인해 넘쳐나는 상처를 민주화의 의제로 변환시킴으로써 사회적인 동력을 얻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그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 속의 구체적인 고통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적 제도들의 효과에 대한 과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주화의 물신화, 바로 이것이 치환된 고통들의 새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386세대에 의해 의제화되고 있는 민주화의 물신화는 고통을 치환하게 하는 시장인 셈이다.
한편 실어증 걸린 고통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의 다른 차원은, 언어 박탈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억죄어올 때, 그 반복적 억누름에 대해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는 현상이다. 이것은 고통에 ‘중독’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은 특정 경험에 한정된 언어 박탈 경험이 존재 전체의 언어 박탈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능력’은 이렇게 그(녀)를 지배하게 된다.
전자가 자기 외부를 향한 병증적 요소라면, 후자는 자기 내적 병증이다. 외적 병증은 자기 외부의 타자를 공격하는 반면, 내적 병증은 자기 자신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고통은 이렇게 치환됨으로써 자기를 파괴하고 타인을 파괴한다. 그러면서도 이 파괴가 무의식적 대응이기 때문에, 내․외부의 타자들의 고통에 대한 그들의 감각은 마비되어 있다. 우리가 수행자인 우리의 폭력은 우리 자신에게 은폐되어 있다.
레온 카스(Leon Kass)는 ‘장기 매매’로 이어지는 생명의학의 발전을 ‘비극에로의 진보’라고 말했다. 생명을 지속시키려는 인류의 노력은 신체를 상품화하고 도구화함으로써 유지되는 ‘인간학의 숭고성’을 낳았다. 고통의 치환을 낳는 민주화의 물신화 경향은, 그 의전화된 숭고함은 사람들 각자의 경험을 억눌러 온 온갖 고통틀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해왔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서 그것이 ‘비극에로의 해방’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방 60주년’, 이 말 속에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의 역사였다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 주장 이면에 고통의 치환으로 인한 무수한 파괴로 점철된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려져 있지 않은가. 왜냐면 이 표현은 은연중 자기 내․외부의 희생자의 언어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60주년의 해인 2005년. 우리는 이 해가 우리 각자의 내․외부의 타자들에게서 빼앗은 기억들을, 그 학습된 무력감의 상황을 ‘대언’하는, 그리하여 그 잃어버린 언어의 복원을 향한 도정의 첫발을 내딛는 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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