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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생떼의 위험한 종교성

[한겨레신문]의 2012년 10월 25일자 '야!한국사회'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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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떼의 위험한 종교성

 

 

짜증을 감출 수 없다. 또 다시 북풍이다. 그나마 지난 총선엔 천안함 사건 같은 어마어마한 이야기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 과학도 동원했다. 한데 이번엔 아무것도 없다. 그냥 생떼다.

모든 북풍 담론이 그렇지만 이번 것은 지나치게 저질이다. 이것은 곧 저질공방으로 이어졌다. 연일 문재인 캠프와 안철수 캠프 일각에선 무수한 정책들이 제시되고 그중에는 꽤 주목할 것들이 있음에도 그것은 저질 정치공방 속에 들리지도 않는다.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등에 대한 얘기가 간간히 나왔던 새누리당은 요즘엔 아예 휴업중이다.

한데 최근 격화된 양당의 정치적 논점들에서 눈에 띄는 현상의 하나는, 새누리당의 논점들이 이른바 묻지마 논점의 형식을 띠고 있는 데 반해, 민주통합당은 매우 강한 논거들을 들이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여러 선거들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서로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논점들이 충돌했다.

얼핏 보면 새누리당이 정치공방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편에서 보면 분명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 합리적 보수주의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중 일부는 이번에는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의 지지율은 변함없다. 여론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논점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지지율의 전반적 추세는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이런 현상은 새누리당 대 민주통합당, 아니 박근혜 대 문재인의 정치공방의 이면에 박정희와 노무현이 있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 둘은 모두 자연사가 아닌 방식으로 죽은, 비운의 대통령이지만, 그럼에도 대중적 지지도가 여느 대통령보다 훨씬 높은, 이른바 국민대통령이다. 한데 이 두 존재는 최근 선거국면에 개입하고 있다. 대중은 박정희와 노무현을 통해 자기의 욕망을 투사하고 있고, 그것이 박근혜와 문재인 현상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긴 얘기가 필요하지만 간략히 요약하자면, 최근 선거국면은 매우 종교적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박정희 메시아 신앙과 노무현 메시아 신앙이 선거국면에 있는 많은 대중의 생각 속에 끼어들어 있다는 얘기다. 한데 종교성은 종종 매우 독성 강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박정희 메시아 신앙은 심각한 병리성을 드러내고 있다. 생떼 담론이 바로 그렇다.

박정희 메시아 신앙 속에는 강한 통치자가 사회를 단번에 통합하고 효과적으로 제도를 통제 운영하는 것, 그럼으로써 미래의 유토피아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성서의 메시아 이미지와 연결하여 단순화시키면 다윗 메시아 신앙과 유사하다. 이것은 그 신앙의 독점적 대리인으로 부상한 박근혜, 그녀적 리더십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하면 박정희 메시아 신앙은 초월적 메시아에 대한 열망을 내포한다.

한데 초월적 메시아 신앙은 항상 대중의 수동성을 수반한다. 대중은 메시아 신앙의 매개자들이 어떻게 말하든 개의치 않고 수용한다. 해서 그들은 잘 통합되어 있지만 비판이 부재하다. 즉 이 신앙 양식은 대리인의 실패를 성찰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메시아 담론의 대리인들은 손쉽게 대중을 사로잡지만 이런 정치가 성공적이려면 대리인들 자신이 충분히 성숙해야 한다. 한데 최근 생떼 담론에서 보듯 그들은 우리의 미래를 맡기기엔 너무나 미성숙하다. 지금이라도 생떼를 포기하고 다시 정치개혁과 경제민주화의 담론 지형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그들에게 기대할 것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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