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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엽기목사’와 성장주의

[한겨레신문]의 <야!한국사회>(2012.9.27)에 게재된 칼럼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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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목사와 성장주의

 

 

 

820일 대구 동화사에 한 남자가 난입해서 불경을 찢고 탱화에 낙서를 하며 정화수그릇에 소변을 보았다. 그 사흘 전인 17일에는 울산야음성당에 난입해서 성모상을 쓰러뜨려 소변을 보았고, 23일에는 다시 그 성당에 들어가서 성모상에 대변을 발라놓기까지 했다. 한데 놀랍게도 그 남자는 40대 초의 개신교 목사였다.

충격적인 이야기인데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을 SBS<궁금한 이야기 Y>에서 다루면서 개신교의 배타주의가 얼마나 무례하며 엽기적인지가 또 다시 널리 회자되었다. 나도 이 방송에서 배타주의에 대해 말을 보탰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선 또 다른 논점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나의 판단으로는 이 논점이 배타주의보다도 개신교의 문제점을 더 포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선 그 목사의 행동이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그는 용의주도했고, 체포된 이후 자신이 소신범임을 강력히 피력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증언하고 있듯이 올해 5월경부터 그의 이상행동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그가 5년간이나 재직했던 교회에서 사직서를 쓴 때다.

그는 한국개신교의 초고속 성장을 상징하는 교단에서 목회의 길에 들어섰고, 7년간 보조목회자로서 사역하는 중, 2005년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5년 전 울산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초빙되었다.

얼핏 이해되지 않는 대목은 담임목사로 초빙된 이가 부목사직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설교가 문제가 많았다는 게 이유인데, 그렇다면 왜 5년간이나 부목사직을 수행하게 한 것일까? 조금 더 알려진 내막은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새 목사를 초빙했는데, 건강이 호전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담임목사직을 넘겨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5년이 흐르면서 그는 결국 사역을 포기했다. 그게 올해 5월이고, 그 무렵 그의 이상행동이 시작되었다.

이 상식 밖의 5년은 그를 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게 했을 것이다. 말했듯이 그는 한국 개신교의 성장주의를 상징하는 교단에 속했다. 성장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가득한 교단에서 그는 남들 못지않게 7년간 열정을 다해 사역했다.

그러던 차에 울산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 제안이 들어왔다.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그 사람에 대해 이런 저런 탐문을 안 했을 리는 없다. 분명 그는 적절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5년간이나 부목사로 일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지위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크다. 40대초의 연령이고 사역의 길에 들어선 지 12년이 되었다면 동료들 가운데 상당수가 담임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담임목사로 청빙되었음에도 5년간이나 부목사로 일했고, 결국 가능성이 없다는 절망스런 상황에서 목회를 포기했다.

하여 나는 그의 이상행동 배후에 심한 직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장애 증상이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 성장에만 몰입해온 사회다. 그 속에서 사람들 개개인도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자가 된다. 실패자는 생계도 막막해지고 자존성도 사정없이 추락한다. 또한 실패자의 낙인을 갖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사실 이 엽기적 목사처럼 실패는 뜬금없는 이유로 찾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실패자는 절망에 빠지고 무력해진다. 그리고 종종 직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장애를 일으킨다.

만일 그렇다면 이 엽기적 행각의 목사는 한국교회의 성장주의의 폐해가 남긴 부조리의 희생자다. 또한 이 현상은 한국의 교회와 사회의 미친 성장주의가 낳은 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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