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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 지도층의 성범죄

2012년 9월 6일자 [한겨레신문] '야!한국사회'에 실린 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03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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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도층의 성범죄

 

 

 

(아동)성범죄율이 크게 높아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주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 전 국민의 폭발적인 분노를 일으킴으로써 (아동)성범죄가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의 축이 되었다.

별나게 이벤트를 좋아하는, 특히 임기 말에 와서는 국정수행을 이벤트에 몰두하는 듯이 보이는 대통령이 이런 일에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나주 사건 직후 대통령은 경찰청을 갑자기 방문했다. 이미 전국을 들썩였던 (아동)성범죄 사건들이 여럿 있었고 그 범죄율의 증가 속도가 예사스럽지 않았음에도 임기 내내 이렇다 할 장기적 대안을 내놓지 않았으니 별 관심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아무튼 대통령의 방문 직후 경찰은 불과 나흘 만에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그렇게 신속하게 나올 것이라면 벌써 나왔어야 할 것이 이제야 발표됐다.

한데 그 내용을 보면 이제까지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것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하여 범죄 전력자를 점검하고 음란물 단속 등을 강화할 것이며,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심지어는 거리 불신검문을 부활시키겠다고 했다. 꼭 나흘 만에 나올법한 대책이다. 그러니 종합대책이라기보다는 임시변통이며 이벤트성 대책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과 경찰은 죽이 잘 맞는다.

조두순이나 김길태 사건에서처럼 나주 사건도 피의자인 고종석 개인의 기질만을 문제 삼는 방식의 사건해석이 경찰의 대책 속에 반영되어 있다. 해서 반사회적이고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이들을 사전에 철저히 관리하고, 사후에는 그런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범죄 전담 전문인력 양성을 어떻게 하는지의 문제라든가 성범죄 사건의 자료화 및 그것의 보다 원활한 정보공유 시스템의 구축 문제라든가, 사건 직후 현장의 대응 매뉴얼이라든가, 이제까지 문제로 지적된 것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안 등이 이 대책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아동성범죄가 더 빈번히 발생하는 취약지역에 대해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대책 또한 마련되어야 했다.

경찰만 얘기할 게 아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폐쇄회로티비(CCTV) 추가 설치나 이른바 화학적 거세같은 기술 중심의 대책은 종합대책으로 보기엔 너무 국소적이다. 무엇보다도 성범죄를 조장하는 문화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정부의 대책들은 사회 부적응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반면 사회 지도층에 의해 자행되는 성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한데 일탈자들의 범죄들은 사회적으로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성범죄들에 대해 사람들은 한편에서는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선망한다. 즉 사회지도층의 범죄는 문화 형성적 요소가 된다.

최근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교인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해왔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서, 담임목사직을 사임한 사건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사건을 은폐하고자 했고, 과실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막대한 전별금을 주었다. 그리고 1년이 못되어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버젓이 새 교회를 설립했고, 그의 전력을 잘 아는 이들 수백 명이 그 교회를 찾아왔다.

구속되었어야 할 이가 구속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목사직을 계속 수행할뿐더러 많은 신자들이 그에게 계속 신뢰를 보였다. 성공한 자에 대한 사람들의 선망은 그가 저지른 범죄조차도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은 성범죄가 얼마나 나쁜 범죄인지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교란시키며, 심지어 모방욕구를 야기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성범죄 근절 대책에서는 문화 형성적 요소를 다분히 갖고 있는 사회 지도층의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응책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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