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개설한 신학아카데미 탈/향 2005년도 상반기 강좌인 <위기의 시대 위기의 신앙, 민중신학은 말한다>(2005.4.12~5.24. 8주동안 진행. 강사: 양권석, 이영미, 최형묵, 황용연, 김진호)에서 내가 강의한 두 강의 중의 하나로 저술된 것인데(이 강의는 2005.4.19에 있었다),
그 원고를 다듬어서 민중신학회가 주관한 2006년 민중신학자 대회(2006.9.18)에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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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아픔을 말하는 빼앗긴 목소리를 되찾기까지
민중신학과 교회 개혁
우리에게 일용할 빵을 (날마다) 주소서
주께서 가르쳐준 기도문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주소서”라는 어구에는 동시대의 예수의 대중이 일반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에 관한 기억들이 간직되어 있다. 즉 그네들에겐 궁핍이 가장 절절한 고통의 기억이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당시 사람들의 종교적 공감에 기초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런 점에서 예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중의 굶주림은 예수와 이 두 복음서 공동체 주위에 널려있었고, (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사람들의 고통을 표상하는 것으로 읽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 두 복음서는 예수의 말을 두 가지 점에서 조금 다르게 기억한다. 하나는 ‘주다’는 뜻의 동사 ‘디도미’(διδωμι)가 〈마태복음〉에서는 과거 명령형 동사 ‘도스’(δος)로 쓰인 반면, 〈누가복음〉은 현재형 ‘디두’(διδου)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늘’을 뜻하는 부사 ‘세메론’(σημερον; 〈마태복음〉)과 ‘날마다’라고 번역될 수 있는 ‘토 캇 헤메란’(το καθ´ `ημεραν; 〈누가복음〉)의 차이다. 이것은, 〈누가복음〉이 하느님이 ‘빵’을 주는 행위를 그야말로 매일매일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마태복음〉은 받는 그 시점을 강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복음〉이 지속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마태복음〉에선 ‘당장’이라는 시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는 두 텍스트가 서 있는 시공간적 맥락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우선 〈마태복음〉에는 내일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간구가 들어 있다. 이들에겐 현재의 시간은 멈춰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제처럼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에겐 시간은 지속되지만 그 흐름엔 질적인 차이가 없다. 이 현실에서의 실존의 시간은 중단되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을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기도 속에는 강렬한 종말론적 기대가 저변에 깔려 있다.
반면 〈누가복음〉은 종말의 지연을 허용할 여유가 있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을 성찰하면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자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를 것이기에, 그 ‘다름’ 가운데에서 불안정한 실존의 위협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일용할 빵’이 늘 있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을 신앙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텍스트가 각각 어떤 문맥 속에 위치하는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 일행에게로 모여든 군중을 향해 이 대안적 기도를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은 예수가 모처에서 기도하면서 제자들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예수 당대로 환산해서 읽어봄으로써, 그 의미의 가능성을 상상해보자.
우선 〈마태복음〉에서 ‘산’으로 예수를 찾아 따라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복음서는 예수가 마을 회당에서 활동할 때 촌락의 백성들이 그이의 청중이었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바리사이와 충돌하고 난 뒤, 예수 일행은 더 이상 회당에서 활동할 수 없었고, 대신 바닷가나 산등성이 등, 비경작 지역이 집회 장소로 쓰였다. 이때 예수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은 내일의 생계를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는다면 당장 죽어도 좋다고 할 만큼 절박한 자들이었다. 〈마가복음〉의 표현대로 하면 이들은 ‘오클로스’(οχλος)다. 만약 〈마태복음〉의 공동체가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면, 이 기도문은 그 자체로 절절한 오클로스 같은 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지리적 배경이 유대 전쟁(주후 66~72년) 직후의 팔레스틴 북부 변경지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후의 폐허와 패전국 백성에 대한 로마군과 인접 종족들의 테러리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테러리즘을 기억 속에서나 간직하고 있던 예수와 그것이 현실 자체인 〈마태복음〉의 기도는 같은 굶주림을 말하면서도 동일하지 않은 폭력의 뉘앙스가 깔려 있다.
한편, 예수의 제자들은 떠돌이 예언자 집단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다니는 곳마다 사람들의 환대를 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곳에서 박대를 받았다. 게다가 세례자 요한의 잔당을 추적하는 안티파스의 군대의 추격을 피해 다녀야 했던 그들은 촌락 회당의 지도층인 바리사이와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시골 마을 ‘안’에서조차 활동이 여의치 않았다. 그런 이들에게 하루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가? 내일을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한편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제자’라는 이미지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일반 제자들과는 다른 제자, 즉 ‘사도’로서 공동체에게 음식을 배급해주는 ‘특권적’ 주체였다. 함께 굶주리는 존재가 아니라, 쌓아둔 음식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권한을 가진 존재다. 사람들에게 일용할 음식을 배급하는 일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제자들의 사회적 위치 변화를 담고 있는 〈누가복음〉 텍스트의 주기도 구절은 예수와는 다른 시선에서 ‘굶주림’을 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필경 예수가 가르쳐준 기도는 일용할 빵에 관한 종말론적 간구를 포함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끼니의 문제는 절박했다. 복음서와 거의 비슷한 시대의 기도로 볼 수 있는, 유대교의 〈18개조 기도문〉의 제9항, “올해도 우리를 축복하여 주소서. 오 주 우리의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보고(寶庫)에 있는 재물로써 이 세상을 만족하게 하여 주소서. 당신은 복되십니다. 오 주, 해마다 축복하시는 분이시여!”라는 기도와 비교해보라. 후자는 곡식이 가득 쌓인 창고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축복이 나누어질까를 고민하지만, 전자는 곡식 창고라는 말 자체가 실존과는 너무 먼 곳에 있다. 마치 어떤 민생 정책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실현되었다고 기도하는 사람과, 그런 민생 정책에도 절박한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서 기도하는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
〈누가복음〉의 기도자는 유대교의 이 기도 항목처럼 분배를 걱정하면서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그는 신의 편보다는 인간 편에서, 통치자의 편보다는 백성의 편에서 간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누가복음〉의 기도는 유대교의 기억보다는 예수와 연계되는 기억의 계열 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의 배고픔이 나의 배고픔이 되게 하소서
안병무 선생은 “오늘 먹을 빵을 주소서”라는 기도를 〈누가복음〉처럼 읽는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굶주림을 상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자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것 자체가 선생에게는 죄이며, 회개와 구원을 필요로 하는 한계적 존재 조건이다. 하여 굶주린 이들과 연대하는 것 자체가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신앙적 자세가 된다. 선생이 이 기도문을 다음과 같이 다시 고백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신학적 태도와 직결되어 있다.
나(우리)에게 배고픔을 주소서. 너의 배고픔이 나의 배고픔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만끽해서 오는 비대함에서 풀려나 그날그날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너’와 연대하여 진정한 ‘우리’로 살게 하소서.
―안병무, 〈우리에게 일용한 배고픔을!〉(《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 178쪽)
여기서 〈누가복음〉을 경유하여 예수와 안병무를 잇는 계열화된 기억에는 배고픔을 고통의 근원으로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공간 이해가 깔려 있다. 이 글이 나온 때가 1990년대 초반임에도 그의 이해의 바탕에는 1970년대 돌진적 산업화의 부정적 소산인 도시의 빈민들이 있다. 그는 그들의 실존 상황의 핵에 ‘굶주림’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선천댁》에서 볼 수 있는 간도에서의 어린 시절의 삶에 관한 기억이 1970년대와 오버랩된 결과다. 즉 그는 1970년대를 그 시대 특유의 고통을 예각화하여 기억하기보다는 한국 민초의 고통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기도문을 재해석한 글을 썼던 1990년대는 불만지수(Misery Index) 1와 고통지수(Poverty and Inequality Index) 2가 1970년대나 198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고 그러한 정도가 일관성 있게 지속되던 시기였다. 즉 고통이 경제적 차원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에 의해 체감되는 변화된 시대 상황이 되었어도 선생은 여전히 굶주림을 가장 중요한 고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즉 궁핍은 선생의 신학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수(常數)의 역할을 한다.
여기에는 굶주림의 고통은 당신 자신의 어린 시절의 주된 고통의 요소였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망각의 강물 깊은 곳으로 내던져지고 말았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사회체제는, 대중의 행복에 관한 유토피아적 메시지를 소리 높이 외쳐대고 있음에도, 그것을, 그 아픔을 대언/증언해 주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는 은폐하는 주역이었다. 또한 예수를 본받는다고 주장하는 신앙공동체인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도, 그 신앙의 체제도 궁핍은 망각되도록 조장되었다.
전태일 사건에 접하고서야 비로소 선생은 그것을 다시 회상해낸다. 하여 이 사건은 선생에게서 예수의 사건과 동일한, 일종의 구원사건이었다. 민중신학은 바로 이러한 체험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말하는 개혁은 고통, 그 중에서도 굶주림의 고통을 발생시키기도 하면서 동시에 망각하게도 하는 반생명적 체제에 대한 폭로요 고발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궁핍을 재생산하는 신앙의 장치로 작동해온 것, 그 반생명적 메커니즘의 한 요소였다는 것을 죄책고백해야 한다고 선생은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체제의 순응자에서 도전자로 전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선생이 말하는 교회 개혁의 요체다.
고통을 동력화하라
그렇다면 선생이 들춰내고자 했던 체제의 반생명적 메커니즘은 도대체 무엇일까? 교회는 이러한 ‘죽임의 체제’와 어떻게 연동되어 있었을까? 개혁되어야 할 교회의 얼굴은 어떤 것일까?
선생은 민중신학자로서 박정희 체제와 5・6공 체제 그리고 문민정부를 경험했지만, 내가 보기엔 대개의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선생의 기억 속에 한국적 권력의 전형은 유신체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학자 조희연의 표현대로, 이 시대는 ‘반공규율적 총동원체제’라는 특징을 갖는다. 여기서 ‘총동원체제’라 함은 1938년 이래의 일본 제국주의 전시체제에서 유래한 것인데, 그 시기에 제국의 병사로서 청년기를 보낸 박정희가 그러한 전시체제 모델을 한국의 발전주의 체제에 적용한 것을 의미한다. 모든 가용 자원을 오직 발전만을 위해 총동원함으로써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자는, 일종의 구원론적 담론이 지배적인 사회 메커니즘이다.
이 메커니즘 하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시공간의 틀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차례, 아니 십수 차례를 이리저리 이동하며 살아야 했다. 또 얼마 가지 않아 옛 추억이 새겨져 있던 공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곳엔 새 건물, 새 도로 등이 차지해 버렸다. ‘기억을 잃어버린 공간들’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거기에 새 기억들이 침투했다. 조국 근대화의 아름다운 미래는 곧바로 모든 개인들의 아름다운 미래로 등치되었고, 그 유토피아적 미래를 향해 돌진하라는 구호들이 강력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이런 이식된 미래 감각은 과거에 대한 감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지워야할, 지우고 싶은 기억들의 시공간이다. 오직 굶주림과 고통만이 있는 곳이며, 해서 철저히 삭제해야할 기억의 영토였다. ‘지우고 싶은 과거, 전취하고 싶은 미래’, 바로 이러한 과거-미래에 관한 선형적 감각에 현재의 일상이 갇혀버렸다.
‘반공규율사회’라는 성격은 이러한 시공간 감각을 더욱 급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의 이승만 체제 역시 극도의 반공 기조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였다. 이 기조는 전쟁의 상처를 적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는 사회를 낳았다. 그것은 휴전선 너머의 적을 향할 뿐 아니라, 내부의 적을 색출하여 그들에게 온갖 잔혹한 테러를 아낌없이 퍼붓는 체제의 동학을 구조화하는 동력이었다. 한데, 반공규율사회는 그러한 동력을 산업화의 동력으로 전이시키는 체제의 메커니즘이었다. 물론 반공사회의 테러리즘은 여전했으나, 그 모든 테러조차 산업화를 위한 자원 총동원을 위해 활용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은 급격한 산업화가 초래한 이농 현상, 아무런 기반조성도 없이 도시의 공간, 산업화의 공간 속으로 농민들을 대거 흡수시켰던 그 현상이 낳은 폭력성, 그 구조적 고통을 사회가 체계적으로 망각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낡은 마을의 궁핍의 고통을 거둬내기 위해 새벽부터 일하라’는 시대의 구호 아래 새 마을을 가꾸어가는 현재의 고통은 단지 과도기일 뿐이라고 믿는 신뢰의 담론 속에서 고통이 특별히 가중된 존재들의 그 한계 체험을 사람들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국가적 차원의 발전이 급가속되던 바로 그 시기에 또한 급격한 성장을 이룩했던 교회의 성장주의 담론이 국가의 발전주의 담론과 놀랍게도 등가적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이 시기 교회의 과도한 성장을 해석하는 열쇠다. 교회는 사회의 급격한 이동성(excessive mobilization)이 낳은 불안과 고통을 죄의식과 결합하여 흡수하는 데 성공했고, 그 죄의식을 선교운동으로 동력화함으로써 고도 성장을 이룩해 낸 것이다. 이로써 기독교인들은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체험이었고, 그 체험을 집합적인 것으로 전이시킨 것은 교회였다. 바로 그렇기에 교회는, 교회의 성장은 고통의 사회적 구조를 이용하였을 뿐, 그것을 극복하는 노력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때 고통은 선교적 신앙의 자원으로 전화되는 요소일 뿐, 그 자체로 주목하여 성찰하는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하여 이 시기에 국가의 발전과 교회의 성장은 서로 얽혀있는 동맹관계 속에서 가능했으며, 또한 양자는 고통의 생산자이자 은폐의 공모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적 개혁 담론은 ‘청산’의 기조를 띤다. 그것은 ‘단(斷)’해야 할 구습에 지나지 않는다. 발전주의적 총동원체제 성격의 권위주의적 국가를 민중적 기조로 민주화해야 한다는 선생의 국가 개혁의 신학은 동시에 교회의 재구조화를 향한 선생의 신학과 한 틀 속에 엮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교회는 철저한 죄책고백과 자기청산을 필요로 하며, 민중신학은 그러한 청산을 향한 강력한 내부고발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청산되어야 할, 그러나 청산되지 않은
선생이 그토록 갈구하던 것과는 다른 모양으로 민주화는 이룩되었다. 6공 정부 시절 광주청문회와 5공비리 청문회를 목도하면서 선생은 그 어정쩡한 과거청산 프로그램에 분노한다. 김지하에게서 빌어온 ‘단’의 어법은 폭력의 악순환을 ‘단’하는 평화주의적 상상력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과거에 대한 철저한 단, 복수의 레토릭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한데 그 이후의 민주화 과정도 민중신학적 문제의식에선 그다지 다르지 않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여전히 체제는 구조화된 고통을 생산하는 죽임의 체제일 뿐이었다.
한편 교회는 국가와의 밀월관계가 붕괴되고, 민주적 국가보다 더욱 완고한 죽임의 체제로서 재구축된다. 교회는 전혀 ‘단’하지 않았고, 오히려 민중신학적인 급진개혁 담론뿐 아니라, 온건개혁적인 담론조차도 수용할 수 없는 자폐적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은 단지 청산되어야 할 그들이 여전히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죽임의 체제가 또 다른 죽임의 체제로 개혁되었고, 고통은, 그 양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것들
최근의 TV의 한 다큐 프로그램. 말기암 환자인 30대 후반의 여성인 김모 씨에게 인터뷰어가 말을 건낸다.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게 뭐예요?”
나는 당연히 “병이 나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줄 알았다. 혹은 “얼른 나아서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기를 기대했다. 한데 그녀의 대답은 “오늘 아픔을 견뎌냈으면 좋겠어요”이다. 아직 마흔 살도 안 된 그녀에게 내일은 없었던 것이다. 몰핀으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이에게 오늘 닥칠 아픔을 견딘다는 것 자체가 그토록 공포스러웠던 게다.
암이라는 질병의 고통은 현대적 미디어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즉 암의 고통에 관한 은유들은 민주화된 사회의 건강과 질병에 관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일상화되는 현대적 감각을 반영한다. 그것은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 병에 관한 예감된 공포로서 다가온다.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 암이 의심된다는 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진료한 의사조차 아직 정확히 모르는 상황임에도, 마치 죽음에 임박한 사람처럼 신변을 정리하는 행동을 한다.
아마도 최근 들어 가장 고통의 형상화가 두드러진 집단은 성년 여성일 것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성 평등에 관한 법제화를 낳았고, 새로운 가족 구성 양식을 요청하는 그녀들의 사회적 목소리는 강력한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적인 확대가족적인 가부장적 가족의 미학은 김수현의 드라마 속에서나 리얼리티를 가질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박물관의 유물처럼 기억할 뿐이다.
미디어의 발전은 복합적이고 가속화된 도시 사회의 고통을 담는 근대적 양식들(가령, 계급)을 해체하고, 수없이 많은 고통의 양상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특히 2천 년대 한국은 수많은 고통의 양상 가운데서 ‘세대적 고통’의 형상화를 더 치열하게 접하고 있다. 감추어진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억제된 갈등의 요소들이 더욱 문제적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한 사회학자는 2002년 대선을 세대갈등이 결정적인 화두로 떠오른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면서, 세대 갈등에 관한 보고서를 쓴 바 있다. 3 그는 세대 갈등을 세대간 갈등으로 한정해서 이해하고 있는데,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면서 그가 도출해낸 결론은 세대 갈등에 관한 숱한 담론은 허구이며, 실체는 ‘공적인 것’에 의해 식민화된 ‘생활세계’가 화두로 등장하게 되면서 생긴 혼란을 사회가 세대갈등으로 오인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대 한국의 변화 및 갈등과 고통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적이다. 아무튼 청년・청소년 세대는 오늘날 매우 심각한 고통에 휩싸여 있다.
암이라는 질병의 은유와 고통에 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 무능력에 관해서는 이미 다른 글 4에서 길게 다룬 적이 있으므로 여기서 더 논하지는 않겠다. 아래에서는 세대의 고통, 특히 10・20대 청년・청소년의 고통을 주목해서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고통은 이제 문화적으로 체험된다
과거 유신 체제하의 돌진적 근대화(rush-to modernization)는 오늘날 급격한 재구조화 과정에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주로 두 가지 요인에 따른 변동으로 파악된다. 1987년 이후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고 있는 ‘민주화’ 과정과 1990년대 이후의 ‘지구화’ 과정이 그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이 두 요소는 서로 갈등하면서도 동시에 서로 얽히면서 사회 변동의 특성을 형성하고 있다. 나는 ‘일상의 대두’와 ‘개인의 탄생’에서 오늘의 재구조화 과정의 국면성 특성을 발견한다.
사회학자 송호근은 “‘혁명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 억압의 진원지로서의 부패한 ‘공적인 것’에 대한 순수한 ‘사적인 것’의 도전”이라고 해석한다. 하버마스 식으로 말하면, 국가주의에 의해 식민화된 일상의 대두를 의미한다. 일상을, 더 이상 국가주의에 규율되지 않고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넘쳐나는 생생한 삶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공간의 주체는 물론 국가주의에 의해 호명된 ‘국민’이 아닌 개체적 자아로 호명된 ‘개인’이다. 한편 1990년대 이후 지구화한 자본의 유통 공간에서 비주얼한 소비자본주의적 요소가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덮친 이후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 또한 ‘욕망의 주체로 부상한 개인’과, ‘그 현장인 일상의 대두’인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에 대하여, 송호근은, 흔히 주장되는 이데올로기적 해석과는 달리, 문화적 설명을 내놓는다. 이데올로기 세대인 3040세대에서 노무현의 지지율보다 문화적 세대인 2030세대에서 훨씬 높은 지지를 얻어낸 것이 그 집권의 핵심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돌진적 산업화 시대의 감각 코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는 이들 새로운 세대, 공적인 것에 식민화되지 않은 일상을 누리고 싶은 이 세대는 공적인 가치의 수호자처럼 코드화된 이회창보다 그 가치의 교란을 상징하는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주장이다.
민주화와 지구화로 대표되는 1987년 체제의 형성은 과거 일방향적 국가주의의 이분법적 인식의 틀, 외적이든 내적이든 국가주의적인 경계들로 양분되어 우리의 사유를 획일적으로 강제해왔던 인식의 틀에 대한 수많은 모반들의 결과로 성립하였다. 지난 시대의 국가주의적 이분법은 사적인 영역까지 구석구석 감시의 눈, 그 기계적 센서들을 확산시킴으로써 사적인 공간을 들춰내고 공적 가치에 의해 규율된 통제사회를 구축해 왔다. 1970년대의 이른바 잡곡밥과 분식 장려 운동이 그 한 실례를 보여준다. 권지예의 단편소설 〈풋고추〉에서 ‘풋고추’라는 요리의 재료가 등장인물에 따라 결코 동일하지 않은 사유의 소재가 되고 있는 것처럼, 쌀에 대한 기억 또한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재현되었을 법 한데, 그 모든 일상공간에서의 사유의 가능성은 억제되고 대신 ‘애국’이라는 단 하나의 공적 기준에 따라 그 가치가 평가되도록 하는 규율 장치가 작동되었다. 반면 2003년 출간된 송기원의 단편집 《사람의 향기》는 일상화된 굶주림의 시선에서 먹거리로서의 대상물을 접한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자신의 어린 시절인 50년 전의 기억과 현재를 중첩시킨 결과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송호근의 표현처럼 그것은 이제 ‘부패한 공적인 것’에 불과했다. 지난 시대의 획일주의적 강제가 그토록 광적으로 발현되었던 만큼, 이제 대두한 1987년 체제의 형성은 공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불신으로 가득찼고, 반면 새로이 탄생한 사적인 것, 일상의 대두는 무조건적으로 지지받았다. 특히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자본의 천민화는 개인을 소비적 욕구로 불타오르는 탐식가로 탈바꿈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아니 어쩌면 이러한 일상에 침투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조절할만한 ‘공공성의 제도’가 부재한 탓에 개인의 일상이 그토록 쉽게 변질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현재의 개인들은 모두 일상의 영역에서 사적인 욕망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욕구에 굶주린 존재가 되어 버렸다. 너무나 급속한 변모다. 존재의 안식처였던 ‘집’과 그 터인 ‘땅’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행복을 향한 욕망 자체이며, 이 물신화된 대상은 욕구의 시장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재규정하였다. 우리 각자는 더 이상 땅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외모, 대학, 언어 습관, 친분 관계, 거주지역, 주요 행동반경 등, 일상적 삶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의 물신화는 가치 있는 삶과 무가치한 삶을 양분하는 ‘지혜의 체계’를 몸의 기억으로 저장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들은 전반적으로 성장이 둔화되었고, 급기야 지난해 인구센서스 결과가 말해주듯, 개신교회는 마이너스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 그것은 교회 개혁론자들이 흔히 해석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의 교회의 반개혁적 태도가 낳은 결과라고 단정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부상하는 신흥대형교회나, 특히 청년층을 흡수하는 데 상대적인 성공을 거둔 교회들은 이데올로기 면에서는 구대형교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의 차이는 그보다는 오늘의 문화적 코드에 맞춘 개혁에서 성공한 탓으로 보인다. 즉 전반적인 교인수의 감소는 문화적 감수성의 차원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처럼 교회가 이미지화된 결과이고, 이런 교회들이 양적으로 성장한 것은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빠르게 읽어낸 기민한 선교전략의 소산인 것이다.
아무튼 교회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감수성에의 적응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사회의 병증에 치유적으로 다가서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집합적으로 구현되었던 고통은 이제 개체적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교회는 이러한 개인들의 몸에 새겨진 다양한 고통을 대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문화 이벤트적 경영전략에 휩쓸린 선교운동의 효과에만 몰두하고 있다. 교회들의 성장전략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교회는 여전히 고통을 생산하는 체제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몸에 새겨진 청소년의 고통
사회의 문화적 메커니즘을 읽어내고 비평하는 데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해온 발군의 사회학자 서동진은 사석에서 한국사회에서 최근 가장 불안감을 극심하게 체감하는 존재는 ‘여중생’→‘여고생’→‘초등학교 여학생’→‘남고생’ 순으로 서열화된다는 주장을 편적인 있다. 대화하면서 들은 얘기여서 어떤 조사에 근거한 것인지 혹은 그의 감으로 발견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의 논거는 꽤나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급속한 시각문화의 발전으로 존재의 시각적 표상인 ‘육체’가 고도로 중시된 사회에서 육체의 존재론적 불안을 가장 극심하게 체감하는 존재가 바로 위의 서열화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여중생은 가장 격렬하게 육체의 변화를 체감하는 존재로서, 사회 속에서 코드화된 육체의 의미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유혹을 가장 격렬하게 맞이한다는 주장이다.
정신과 의사들의 경험적 증언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 가운데 여중생 숫자가 대단히 많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비록 책임 있는 통계적 결과가 아니지만, 진료 현장의 생생함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식증은 17세 이후에 주로 나타난다는 게 지금까지의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식인데 최근 10대 초반의 거식증 환자에 관한 보도가 적지 않다.
여기서 거식증은 굶주림만으로 고통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사회를 상징하는 질환임을 주지하자. 이 질환은 육제에 관한 사회의 폭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 수치로 환원된 육체의 미학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준거가 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준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존재 내외적 감시는 한편으로는 실패자에 대한 처벌의 공포를 예감함으로써 실행되지만, 동시에 성공의 실례들인 상징들(스타 연예인 등)을 욕망함으로써 실행된다. 스타를 욕망하는 것은 스타가 누리는 상징자본을 욕망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스타와의 동일시 욕망은 그의 상징자본을 자기의 상징자본으로 동일시하는 욕망인 것이다. 즉 육체의 미학은 사람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유혹한다. 그리고 고통이 발생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이러한 사회, 시각적인 동일시 욕망을 통해서 사회적 가치가 구성되고 통합이 실현되는 사회를 ‘육체성의 사회’라고 한다. 내가 다른 글 5에서 언급한 바 있는 ‘빠름의 문화’는 이해되거나 해석되는 가치들로 의미가 구성되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에서 감각적으로 스쳐지나가면서 의미가 발생한다. 속도에서 자본주의의 동학을 발견해온 폴 비릴리오가 말한 ‘시선의 우생학’은 보여짐에 성공하는 것들은 시각적인 것들이고, 그 중에서도 성적이며 폭력적인 것들, 가벼운 아이러니적 이미지들이 특히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런 과정으로 조직화된 사회를 육체성의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온갖 경험을 육체적 이미지로 변형시키는 경향을 띤다. 그리하여 다른 경험들은 점차 언어로 형상화되지 않고 무의식의 질곡 속으로 추락한다. 예컨대 영화 〈301 302〉에서 301호 여인은 가정폭력에 대한 그녀의 증오가 자기 육체에 대한 폭력으로 전이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식증은 현대적 고통의 은유다. 그렇다면 거식증 걸린 여중생들에게는 어떤 박탈된 언어가 있을까?
여중생들이 만든 8mm 영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에 나오는 한 여학생의 폭력조직 입회식 장면. 그녀의 술잔 속에 선임자들이 가래침을 뱉고 담뱃재를 넣은 뒤 그것을 원샷하게 한다. 또 그들의 말은 욕설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그들이 선호하는 욕설은 성적 비하의 함의를 지닌 것들이다. 딱히 그 의미를 물으면서 하는 것은 아님에도, 욕설의 우생학은 육체성에 대한 폭력을 그득 담고 있다.
얼핏 보아도 성인 남자들의 하위문화가 모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주류 (성인 남성) 문화에 대한 거부이다. 그리고 가족 내에서 그 문화의 충실한 실행자인 ‘어머니’에 대한 거부이다. 어머니 담론은 주류 남성 성인 문화의 가족주의적 미학의 핵심을 구성한다. 한데 남성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그들이 남성 성인 문화의 내부에서 발생한 하위문화의 양식을 모방하여 그것에 테러를 가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모든 불안 증세를 ‘배부른 탓’으로 폄하하는 담론에 대한 적대행위를, 그 담론의 서식처 한 가운데서 발생한 모순적 양상을 통해 되갚는 모습이다. 이러한 비정치화된 저항에는 주류문화에 대한 소외의 고통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상 증상은 이른바 자신의 골방에서 몇 년씩 나오지 않고 고독한 자기만의 세계를 쌓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를 나타낸다. 일본에선 이들을 ‘히키코모리’라고 부르며, 그 수가 대략 12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들 중 20,30대가 대부분이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는 주로 10대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통계는 없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이러한 자기 폐쇄를 실행에 옮긴다.
한데 이들 가운데 다수가 컴퓨터에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으며, ‘넷’공간 속에서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사회와 접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류 문화에 비판적인 열광적 네티즌의 일원이곤 하다. 요컨대 이들은 사회와 소통하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음에도, 주류 문화의 폭력에 너무나 민감한 이들이며, 자신들의 생존 공간이 박탈당했음을 통렬하게 체감하는 사람들이다.
이 두 사례는 오늘 우리 사회의 10대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 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 고통의 구체적인 근원을 각자 다르게 읽어낼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10대의 고통은 주류 문화의 폭력과 관계된다.
요컨대 육체의 사회는 사람들 각자를 주체로서 호명하지만, 그들의 주체화는 결국 주류 문화의 일원으로서 호명되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적 의미의 정치적 시민이라기보다는 포스트근대적 의미의 문화적 시민에 가깝다. 육체의 사회에서 전자는 후자에 내포된 가치다. 하지만 후자의 중심적 가치가 아니라 주변화된 하나의 가치에 불과하다. 문화적 시민은 주류 사회가 내적으로 등급화하는 준거인 상징자본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지위가 결정된다. 그리고 이 등급화된 지위는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통의 준거가 된다. 여기서 육체의 사회가 갖는 야만성이 있다. 그런데 그 야만성은 숨겨져 있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더불어 서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계를 습득해가는 10대 청소년은 그 지배 문화의 가장 불안정한 지점에 존재한다. 육체는 급격히 성년화되지만, 상징자본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존재다. 주체가 되라는 자본의 호명을 가장 민감하게 수용하면서도 주체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존재인 것이다. 이들에게 제공된 기회는 순응이다. 그러나 저항을 선택하는 이들은 한번도 배운 적인 없는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언어가 박탈된 것에서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 타자에 대해 폭력적인 조직에 가담하거나 자신에 대해 폭력적인 자폐적 공간으로 숨어들거나 하는 것은 언어 박탈 상황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대안언어다. 그 대안언어를 배우는 장소는 주류문화를 전도시킨 폭력 집단의 언어이거나 아직 주류언어가 파고들지 못한 넷 공간의 언어이다.
그러나 그 대안언어들은 그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형상화하고, 주류 문화의 고통의 메커니즘을 비판하는 언어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대안적 삶을 조직할 기회도 얻을 수 없다. 주류 문화에 투항하거나 폐인이 되거나...
오늘 우리가 교회 개혁을 이야기하는 자리
개인의 등장과 일상의 대두로 특징지어진 시대에 몸은 고통이 지각되는 중심적 장소다. 몸을 억압하는 사회문화적 요소들은 오늘 우리 시대의 고통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읽어내고 그것에 개입하는 민중신학의 자리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몸 자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민중신학자로서 교회가 우리 시대의 몸에 관한 수많은 규율들에 대해 보수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교회는 주류문화, 그것도 가장 보수적인 문화에 투항・순응하는 존재를 신앙의 이름으로 격려한다.
“우리에게 일용한 빵을 (날마다) 주소서”라는 예수의 말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언어로 번안되어야 하며, 수없이 많은 언어로 다르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르게 말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고통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을 뜻한다. 앞의 암 환자의 “오늘 아픔을 견뎌냈으면 좋겠어요”처럼. 교회가 수많은 규율목록들에 의해 박탈해버린 개개인의 고통의 감수성을 되살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성서를 다르게 읽는 것만이 아니라 ‘다르게 쓰는’ 것을 포함한다. 다르게 읽고 쓴다는 것은 고통을 활용하는 사회의 은폐된 메커니즘을 들춰내는 작업을 수반한다. 민중신학의 개혁 담론은 바로 이 은폐된 것을 발견하는 비판적 연구여야 할 것이다. □
-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에 따른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가중평균한 지수로, ‘2×실업률+물가상승률’로 계산한다. [본문으로]
-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국민의 생활수준을 측정하는 것으로, 빈곤비율과 소득분배의 평등도로 측정하는 지수로, ‘도시근로자가구 상위 3계층의 소득÷하위 3계층의 소득’으로 계산한다. [본문으로]
- 송호근,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세대, 그 갈등과 조화의 미학》(삼성경제연구소, 2003). 그 외에 박재홍, 《한국의 세대 문제》(나남출판, 2005); 이명진, 《한국 2030 신세대의 의식과 사회정체성》(삼성경제연구소, 2005) 등 참조. [본문으로]
- 나의 글 〈카인 콤플렉스‘와 무능력자 담론〉을 포함해서 《당대비평》 23호(2003 가을)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우리 사회의 무능력에 관한 나의 기획에 따른 것이다. [본문으로]
- 〈게임 같은 전쟁의 시대, 소비되는 타인의 고통―폭력의 일상화에 대한 민중신학적 고찰〉(임태수 교수 퇴임기념논문집, 2006)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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