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인물과 사상]이 폐간되게 되었다. 내가 관여하던 [당대비평]도, 비록 우리들은 폐간이 아니라 휴간이라고 말했지만, 세간에선 사실상 '폐간'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 얼마 전에는 [사회비평]도 폐간되었다 한동안 비평담론계를 이끌었던 매체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중등우리교육]에서 내게 [인물과 사상]의 폐간에 대해, 먼저 폐간을 경험했던 잡지의 주간으로서 이야기를 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이 글은 [우리교육] 181(2005 3)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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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이후의 글쓰기는 가능한가
[인물과 사상] 종간호
인물과 사상이 종간됐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잡하다. ‘저널북’(잡지+단행본)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자기 규정돼 왔지만, 계간지에 관여하고 있는 내게는 언제나 잡지로서 기억되었던 책이다. 몇 안 되는 (인문적) 시사비평 저널들 가운데 또 하나가 사라졌다. 다소 주간적인 판단이더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계간지스러운’ 담론을 필요로 한다고 믿기에, 시시각각 조여 오는 시장의 압박이 안타깝고 두렵다.
총 33권이나 발간됐다고 한다. 거의 매호마다 주목을 끌면서 세간에서 벌어진 숱한 논쟁의 화두였고, 열광적인 지지자를 거느린, 그래서 다소 위압적이기까지 했던 잡지의 사멸이라는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감회를 남겼을 성싶다. 한데 생각보다 잠잠한 느낌이다. 미처 읽지 못한 것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한의 주장을 강준만과 그의 저널북의 의의를 평가하기 위해 대입하는 생뚱맞은 논평들은 차라리 ‘침묵’이라고 하는 게 낫다. 강준만이 종간호 머리말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민주당 분당 이후 전개된 일련의 논쟁에서 겪은 고립감이 그 스스로의 ‘퇴출’과 일인(一人) 저널리즘을 고수해온 저널북 인물과 사상의 자발적 퇴출의 직접적인 계기라면, 사람들은 그러한 퇴출을 미리 예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간에 화제였던 이른바 ‘강준만식 글쓰기’에 대한 성찰적 평가가 필요하다면, 바로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이런 예상외의 ‘침묵’은 안타깝다. 물론 몇몇 논평에서 나는 중요한 지적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한데 대체로 이들 논평들이 강준만이 위에서 지적한 종간의 변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강준만식 글쓰기가 한참 열기를 띠던 시절에 나왔던 여러 논평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다소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강준만식 글쓰기의 압권적 특징이 ‘성역 없는 인물비평’이라는 평가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한결 같이 그의 글쓰기의 ‘내용’ 평가에만 치우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말하는 강준만 식의 인물비평은 담론 생산자 집단,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사회 내에 팽배해 있는 주례사 식의 논평 문화 혹은 너무 우회적이어서 논지가 모호해진 ‘부드러운’ 비평 문화에 대한 그의 야유이다. 특히 이런 논/비평 문화에 대한 야유의 초점은 지식인들이 국면적 정세에 자신의 입장을 모호하게 한다는 데 있다. 그가 어떤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열불 터지게 하는 사건들이 많”다는 것(신동아 2000.11)은 정세적 실천에서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명백히 드러내지 않거나 위선적으로 드러내는 지식인들의 행태를 가리킨다. 무엇보다도 그를 분노케 하는 일은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이다. 그가 보기에 매체의 성격(이때 ‘성격’이란 맥루한이 주목하는 기술적 요소, 가령 TV냐 라디오나 신문이냐 같은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기조를 말한다)은 지식 담론이 말하고 있지 않는 부분의 의미를 규정한다. 지식인들이 그것을 모른다면 무지 내지는 무책임이요 알면서도 모른 채한다면 위선이다. 한데 ‘조・중・동’과 공중파 TV 3사 가운데 왜 하필 조선일보가 결정적인 악의 축이냐, 그들 사이의 극단적인 비균질성의 근거가 뭐냐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 나름의 정세적 판단에 의존하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안티조선 근본주의자’로 그를 보는 것은 타당해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그의 이러한 정세적 판단은 분석적 근거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운동적 요청에 따른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적어도 언표상으로는 실천적 필요성보다는 근본주의적 도그마를 근거로 내세운다.
이렇게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와 그때그때의 정세적 개입 사이의 또는 보다 일반적인 언술과 구체적인 행태 사이의 모순적인 듯이 보이는 태도는 안이한 비평 문화로 인해 조장된 측면이 상당히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1인 저널북 인물과 사상은 그 점에서 대단한 효력을 발휘하였다. 바로 이것이 그의 글쓰기의 중요한 공로라는 일반적 평가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한데 어떤 논평도 그의 주장이 수용자에게 그렇게 강한 효력을 발휘한 이유를 타당성 있게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흔히 얘기하는 신랄한 실명비판이나 어투의 적나라함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것이 타당한 논거가 되려면, 가령 담론환경의 변화라는 문명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이 보충될 필요가 있다. 아무튼 누가 어떤 주장을 했다는 것과 그 주장이 상당한 효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단순히 직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 그의 글쓰기의 ‘형식’에 주목하고자 하는데, 이는 ‘내용’에 관한 얘기를 좀 더 이야기한 뒤로 미루고자 한다.
그의 글쓰기가 어떤 것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이 점에서 강준만식 비평이 지식이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무시 내지는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는 적어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자극하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지식은 이데올로기를 담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식을 곧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맥락 속에 배치하고 그에 따라 지식의 존재 타당성을 평가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는 우파든 너무 일상화되어 있다. 나아가 정세적 실천의 차원에서 제기된 ‘안티조선’이라는 명제가 지식의 의의를 규정하는 지배적 논리로 작동한다면 ‘비평’이라는 지적 담론의 영역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비평이란 작품(비평 대상)의 불멸성과 숭고성을 훼손하는 담론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불멸성과 숭고성은 그것이 이데올로기와 연계되어 있음으로써 발생한다. 비평은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분리시킬 때 가능한 담론적 실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지식은 매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의해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는 정세 판단에 기초한 ‘안티조선’ 류의 문제의식은 지식의 비평적 가능성 자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비평적 담론을 생산할 때 그것의 지식으로서의 위상보다는 어떻게 정세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지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경향이 현저히 강화되었다. 강준만식 글쓰기의 두드러진 성과인 ‘안티조선’ 운동은 지식인의 비평정신을 강화하기보다는 이데올로그적 성향을 강화시킨 것이다.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성역 없는’이라는 수사어에 관해 얘기해보자. 대학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들의 사적 네트워크가 우리 사회의 지식의 가장 심각한 위기 요소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의 ‘성역 없는’ 글쓰기의 내용은 그의 글을 탐독하는 많은 대중이 지식에 개입하고 감시할 근거를 제공해 준다. 이때 이른바 ‘강준만 파일’은 대중이 지식엘리트를 규제하는 일종의 정보의 ‘문서고’다. 이 표현은 강준만 자신의 ‘실제 문서고’를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대중이 ‘강준만 파일’을 보충하고 확대하여 ‘상상적 문서고’를 만들고, 강준만이 공개한 정보만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상상적 문서고’에서 어떤 지식인의 위선을 고발하며 그 지식 담론의 가치를 평가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때 ‘상상적 문서고’는 실제의 강준만 파일이 존재함으로써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지만, 강준만 개인의 파일을 넘어서 대중의 ‘공공적 파일’이다. 그리고 대중은 이 ‘상상적 문서고’가 지식을 판단하는 진리의 창고라는 종교적 신념을 갖으며. 이른바 강준만 현상은 그의 글쓰기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의 차원을 넘어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역 없는 비평의 인플레는 ‘지식의 부패’를 교정하기 위해 ‘지식의 부재’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강준만이 민주당 분당 사태를 둘러싸고 자신을 열렬히 지지했던 대중과 불화하게 되면서 정세적 개입으로서의 글쓰기를 포기한 것은, 그가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의 지식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퍽 다행이지만, 그 사실만으로는 강준만식 비평의 불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종간호 머리글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선악 이분법’이 개혁주의자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고 말한다. 한데 그를 좌절시켰던 “이분법 전쟁의 열혈전사”들은 민주당 분당 때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긴 이데올로기 과잉의 지형과 연계되어 있으며,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1990년 이후의 정세적 태풍 속에서도 그것을 강화하는 계기들을 통해 활성화된 것이다. 그의 글쓰기는, 많은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 인식의 재활성화를 촉진하는 부정적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
이제 두 번째 논점으로 넘어가자. 강준만식 글쓰기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왜 강준만의 글쓰기가 대중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을까? 나아가 왜 대중은 그의 글쓰기를 모방하여 강준만식 글쓰기라는 대중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강준만‘의’ 글쓰기가 강준만‘식’ 글쓰기로 되는 이러한 모방 현상은 대중이 더 이상 단순한 지적 담론의 수용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준만의 글쓰기는, 그리고 그의 1인 저널 인물과 사상은 대중의 강준만식 글쓰기가 실행되는 인터넷 공간 속에서 일종의 대중 저널인 ‘상상적 <인물과 사상>’을 탄생시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중은 이 인터넷 공간의 ‘인물과 사상’ 안에서 강준만과 ‘상상적 동일시’를 체험한다. 다시 말하면 인터넷 속의 대중 저널 ‘인물과 사상’은 수많은 강준만-대중의 지적 담론의 실천의 장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에서 포스트근대로의 매체환경상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오랫동안 문자는 지식의 저장고였고, 특히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활자책의 등장은 대중으로부터 숨겨진 마술적 지식의 사회에서 대중의 삶에 지식이 직접적으로 연계되는 사회로의 이행을 촉진시키는 계기였다. 이때 지식은 대중의 지혜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 즉 규범의 구성소다. 이른바 지식-권력의 근대사회는 활자책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한다. 한데 디지털테크널리지의 급속한 발전은 지식의 영역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를 동반했다. 아직 이에 관한 연구들이 많지 않아서 정식화된 논의를 소개할 수는 없지만, 지식의 생산자와 수용자의 철저한 역할 분화라는 근대적 현상이 상당히 빠르게 와해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인터넷 공간의 멀티미디어의 등장은 활자책의 독보적 위상을 상당히 무력화시켰고,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활자책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엘리트는 자신의 장인의식(아후라)을 후퇴시킨 형식의 책을 생산하려 애쓰게 되었다. 이른바 지식엘리트의 글쓰기의 변화가 활자책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활자책이라는 매체와 월드와이드웹이라는 매체 사이의 상호소통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강준만의 글쓰기는 한국사회에서의 포스트근대적 지식의 담론 형식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앞서 말했듯이 수많은 대중은 그의 글쓰기 형식을 모방했고, 활자책을 통해서만 글쓰기를 실천한 강준만과 인터넷을 통한 글쓰기를 실천한 대중 사이의 상호소통이 발생한 것이다. 강준만식 글쓰기는 강준만의 글쓰기의 내용보다는 형식에서 매체간의 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발생한 의미의 잉여현상이다.
나의 마지막 얘기는 이러한 형식적 성공이 남긴 우울함과 앞으로의 숙제에 관한 것이다. 종간호 머리글에서 강준만은 종간의 또 다른 이유로 인터넷의 부정적 가능성의 확대를 언급했다. 새로운 ‘규범 테크널리지화’된 인터넷, 즉 새로운 지식-권력의 장이 된 인터넷에 대한 문제제기다. 지식이 이데올로기화되는, 그리하여 비평이 무력화되는 곳에는 지식-권력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한데 앞서 말했듯이 강준만식 글쓰기는 강준만식 비평이 살기 위하여 지식의 비평적 자율성을 훼손하였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또 강준만식 글쓰기는 활자책과 인테넷 사이의 소통의 성공적 실례였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은 이미 그의 글쓰기가 규범 테크널리지로서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저널북 인물과 사상의 퇴출은 강준만식 글쓰기에 의해 강준만의 비평이 퇴출된 것을 뜻한다.
결국 활자책과 인터넷 사이의 소통이 성공적이면서도 비평, 즉 지식의 이데올로기화에 저항하는 담론의 가능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남겨진 숙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는 이미 그 가능성들이 도처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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