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1일에 행한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으로 [공동선] 112호(2013.9-10)에 게재된 것. 이것을 수정 보완하여 나의 책 [산당들을 폐하라 - 극우적 대중정치의 장소들에 대한 정치비평]에 수록
-----------------------------
‘안전’행정부
포스트민주화 시대 정부의 공포 마케팅
주님께서 이 언약을 우리 조상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입니다.
―〈신명기〉 5,3
2008년, MB 정권이 집권한 첫해 제헌절은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국민들이 너무 많이 쉰다는 게 이유였다. 이렇게 하여 한국은 ‘유엔의 날’(10.24), ‘국군의 날’(10.1), ‘한글날’(10.9), ‘식목일’(4.5), 그리고 제헌절(7.17)까지 5일이 줄어 법정공휴일 수가 총 14일이 되었는데, 이는 법정공휴일이 제일 많은 영국(28일)을 포함하여 2~10위(25~26일)에 랭크된 나라들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현재 자본주의적 경쟁 시스템이 가장 치열하게 작동하는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나라에 속한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32개국 중 2,228시간을 일하는 멕시코 다음으로 많다. 이런 간단한 지표만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과로사회’에 속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제헌절이 법정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1948년이다. 남북한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국민의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강행한 이승만 정권이 조선 건국일을 기념하는 날인 7월17일을 제헌절로 정한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제헌절은 사회통합적 가치와는 다른 취지로 시작했다. 그러니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헌법이 겪은 수모들은 이미 처음부터 노정된 것이겠다. 그런 점에서 제헌절이 법정 공휴일에서 퇴출된 것은 한국 현대사의 법의 비극적 운명을 시사하는 단적인 사건이다. 더욱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법의 정의 구현적 가치에 대한 시민적 갈망으로 탄생했던 두 번의 개혁정부(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이후, 그러니까 포스트민주화가 퇴행적 시장주의로 귀결된 MB 정부 시대에 제헌절 퇴출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은 향후 우리사회의 ‘법의 눈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시사한다. 실제로 MB 정부 5년은 탈법과 불법, 편법의 시대였다.
시도 때도 없이 “법대로”를 외쳐댔던 박근혜는 과연 법치를 복권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취임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벌써 그런 기대는 무망한 것임이 드러나 버렸다. 취임 후 첫 번째 제헌절이었던 2013년 7월17일도 초라해진 법의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예년과 다르지 않다. 그날도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개입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거리시위와 시국선언이 잇달았지만, 자칭 ‘법대로’ 대통령은 헌법수호를 재천명하는 입에 발린 성명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게다가 8월5일, 청와대 비서관들을 대폭 경질하면서,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김기춘은 법률가였음에도 헌법 유린의 최전선에 있던 자였다. 또한 이 정부의 첫 번째 내각과 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이들 중 9명이 대형 로펌출신이니, 이 정부의 정책은 편중된 법해석을 반영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이미 취임 직후부터 지적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까지 변함없는 이 정부의 법 운용방식이다. 법이 강자의 편이라는, 비관론적 법 이해가 ‘법대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 자신에 의해 공공연히 표상된 것이다.
그나마 대통령의 ‘법대로’ 구호가 나름의 적극적인 의지로 표명된 경우도 있기는 하다. 지난 2013년 4월5일 법무부와 안전행정부 업무보고를 받고 나서, 대통령이 ‘4대악 근절’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 그런 예일 것이다.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이 저 유명한 4대악의 정체다. 임기 중에 이것들을 반드시 뿌리 뽑아 국민의 ‘안전한 삶’을 지켜주겠다는 말은, 필시 집권초기의 자신감이 낳은 허언(虛言)이겠지만, 적어도 이 말을 할 당대에는 진심을 담은 것이라고 이해해볼 만도 하다. 이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이름으로 개칭된 이 정부부처(안전행정부)는 향후 5년 동안 적어도 이 ‘4대악’ 근절에는 적지 않은 힘을 쏟을 것이다.
그런데 특정 대상이 ‘4대악’, ‘근절’ 등과 같이 강한 뉘앙스의 용어로 표현되면, 다른 위법적 요소들이 간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바로 이것이 걱정스러운 일인데, 가령 4대악에 빠져 있는 권력형 범죄 문제는 좀 설설 다뤄도 된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더 나아가 권력형 범죄가 4대악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과 대형 로펌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두루 임명되었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을까 하는 의혹이 생기기도 한다. 심지어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나 전직 국정원장의 뇌물수수 사건 같은 데서 보듯 국가가 권력형 범죄의 중심에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 현안의 문제로 부각되었음에도 이것은 법대로 대통령의 관심거리가 전혀 아니었다. 실제로 2015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공직부패의 건수와 비율이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와서 크게 늘었고, 특히 박근혜 정부의 공직부패 정도는 이전 정부의 수준을 크게 압도한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의 공직자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통제력이 크게 이완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심지어는 대통령이 나서서 권력형 비리를 감수하는 국가의 도구적 법 운영의 의지가 엿보이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의 부당한 정치개입의 지존격 되는 이가 다름 아닌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안전행정부 얘기를 해보자. 지난 1998년 ‘국민의정부’ 때에 정부조직개편의 일환으로 총무처와 내무부를 통합해서 ‘행정자치부’가 탄생했다. 이후 MB 정부는 그것을 ‘행정안전부’로 명칭을 바꾸었고, 박근혜 정부는 다시 ‘안전행정부’로 개칭했다.
이 정부기관이 주로 담당하는 것은 사회통합이다. 한데 위와 같은 일련의 명칭 변화에서 추정되는 사실은 두 번의 개혁정부들(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이 이 부처를 통해 ‘지방자치’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통합을 중요시했다면, 이후 두 번의 보수정부들은 ‘안전’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통합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행정’보다 ‘안전’을 앞에 배치한 명칭에서 보듯, ‘안전’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인다.
여기서 ‘안전’이 과거 독재정부들이 중요시했던 ‘공안’이라는 개념과 쌍을 이루는 용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 두 용어는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를 가정하면서 사회통합의 논리를 부여하는 개념이다. 즉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핵심적인 악을 전제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안전 혹은 공안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물론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공안이 이념적 위험을 제거하는 데 방점이 있다면, 안전은 일상적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사회에서 전자에 해당하는 이념적 위험의 실체가 이른바 ‘빨갱이’였다면, 현 정부에 따르면 일상적 위험의 실체는 위의 4대악으로 규정된 요소들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공안 개념을 권력유지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NLL 논쟁 같은 ‘종북 담론’이 그런 예다. 하지만 조작된 간첩단 사건으로 공안 담론을 가동시켰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의 종북 담론은 보수-진보의 분할을 통한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그것은 오늘날 결코 사회통합의 장치가 아니라 사회분할의 장치다.
반면 안전 개념은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통치의 수단이다.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성폭력 범죄자인 김길태나, 강간 후 시신을 잔인하게 유기한 오원춘, 그리고 용인 여고생 토막살인사건의 심모씨 등은 전 국민을 ‘증오 연대’의 일원이 되게 했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안전의 항목은 이런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
아무튼 몇몇 치명적인 엽기적인 살인사건들을 정부가 활용하는 데 있어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했음은 의문의 여지없다. 무한경쟁 중인 매스미디어들에게 ‘공포’는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더 없이 괜찮은 요소다. 그런 점에서 범죄 보도는 공포 마케팅에서 가장 쓸 만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기사들은 그 범죄가 얼마나 잔혹한지, 그리고 그 범죄자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죄의식이 없는 자인지를 강조하게 된다. 또한 그런 범죄들을 열거함으로써, 누구나 범죄의 잠재적 희생자임을 체감하게 한다. 하여 사람들은 증오와 공포심으로 그 사건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매스미디어의 속성이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국민을 그 범죄의 적으로 만들고, 그 범죄자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적대하는 사회적 연대를 구축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적개심을 행동화할 수 없다. 복수는 정부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정부가 이 연대의 행위자가 되어 복수를 대행한다.
복수는 가혹할수록 더 큰 쾌감을 준다. 하여 정부는 그 범죄자에게 법률상 가능한 한 최대의 중형을 내리도록 한다. 심지어 법이 국민의 감정에 못 미친다면 법을 개정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는 국민을 공포의 연대, 증오의 연대의 일원으로 포섭한다.
한데 이러한 공포와 증오의 연대를 통한 사회적 통합은 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 첫째, 특정 범죄를 왜곡 과장함으로써 그 범죄자의 인권을 유린할 수 있고, 둘째, 그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낙인찍힌’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때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힌 이들은 대개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즉 소수자에 대한 시민사회의 증오범죄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사회복지나 경제민주화 정책 같은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정치를 정부가 후퇴시킬 때 시민사회의 저항을 희석시키는 효과가 있을까 우려된다.
그런 통치 수단을 활용하는 정부는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가혹한 법치를 수행한다. 반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이 불러일으키는 불법과 탈법에 대해서는 법은 솜방망이다. 연이어 집권한 한국의 보수정부들은 행정안전부 혹은 안전행정부를 통해 그런 식의 사회적 통합이 실현되는 사회를 구축할 것이라는 것이, 지난 경험들을 통해 우리가 얻은 지혜다. 그것이 제헌절이 실종되고 있는 오늘 한국의 법적 현실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 유다국에서 처음 반포된 법의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유다국의 요시야 정부는 증조부인 아하스 왕이 이룩한 발전의 토대를 재구축하고자 법의 반포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조부인 히스기야 왕의 정치를 계승하는 것이다.
아하스 왕은 약소국 유다를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통치자다. 하지만 이때는 유다국의 보수기득권 세력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여 소농은 몰락하고 있었고, 기득권층은 크게 강화된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그런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통치자였다.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부당한 권력의 횡포를 제약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고, 그의 아들 므낫세의 55년에 이르는 기나긴 통치 아래서 개혁의 기반은 철저히 무너졌다. 한데 므낫세를 이어 왕이 된 요시야는 다시 히스기야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그의 통치는 법의 반포를 통해 시행된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 법전’이다. 하지만 그 법은 글을 읽지 못하는 대중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그런 법은 왕실과 귀족 사이에서나 작동하는 법이다. 그런데 왕은 백성들을 법의 질서 속으로 끌어들인다. 즉 법전의 길고 복잡한 내용을 간소하게 하여, 백성에게 법을 선사한 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백성이 법의 수혜자인 동시에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 바로 십계명이라는 것이다. 하여 그것은 백성을 하느님이 제정한 법의 주체가 되도록 이끈다. 요시야는 그런 식으로 사회를 통합하고자 했다.
요컨대 요시야가 제정한 고대 유다국의 법은 안전을 강조하면서 특정 범죄자를 증오하게 하는 법이 아니다. 그 법은 백성과 소통하는 법이고, 백성을 법 밖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못하도록, 그들이 법의 백성이 되고 법이 부여하는 혜택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그런 법이었다. 그 법은 권력층의 힘이 남용되는 것을 억제하고 그것이 백성을 몰락하게 하여 법의 밖으로 내몰게 하는 것을 막아내고자 하는 법이었던 것이다.
반면 오늘 우리의 법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정부는 공공연히 안전을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공포 마케팅을 주도하고 있다. 공포를 통한 사회적 통합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증오로 구축되는 병든 시민의 사회다. 또한 그것은 사회복지나 경제민주화를 향한 느릿느릿하고 비틀거리는 시도나마 폐기해도 시민적 저항이 없는 무능력한 사회가 되게 할 수 있다.
다행히 지금 많은 시민은 저항 중이다. 부당한 권력을 직시하고 있고, 안전 욕구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므낫세의 오랫동안 지속된 반개혁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굴복하지 않았던 요시야가 등극하고 개혁을 추진하도록 압력을 넣었던 민중적 농민연합, 곧 ‘암하하레츠’처럼 말이다. 이런 법의 정의를 위해 행동한 암하아레츠의 열망에 따라 요시야가 실행한 법 정신처럼, 이웃과 공공적인 것을 나누고, 배제된 소수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간직한 시민성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된다면 제헌절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도가 성찰하라 - 후기자본주의 사회 한국의 권력과 일상에 관하여 (0) | 2013.11.04 |
---|---|
'그들의 전쟁'을 끝내라 - 증오의 시대를 향한 호세아의 예언 (0) | 2013.11.04 |
평양 대부흥운동, 새로운 기억의 계보를 찾아서 - 실패한 2007년의 ‘에게인 1907’, 비판과 대안 (0) | 2013.08.01 |
서바이벌의 종언 -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사회적 타살로서의 자살에 관한 신학적 문제제기 (1) | 2013.07.13 |
‘역사의 예수’와 더불어 경계를 휘청거리며 걷기 (0) | 2013.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