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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들의 전쟁'을 끝내라 - 증오의 시대를 향한 호세아의 예언

이 글은 [공동선] 113(2013. 11-12)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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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전쟁을 끝내라

증오의 시대를 향한 호세아의 예언

 

 


 

 

 

강도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숨었다가 사람들을 살해하니, 차마 못할 죄를 지었다.”(호세아서6,9) 이 구절은 이스라엘국이 멸망하기 직전의 혼란 상황을 묘사하는 텍스트다. 하지만 그 내용은 수수께끼 같다. 세겜 길목에서 제사장들이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

세겜, 과거 블레셋 군과 사울 군이 싸울 때 양군의 진영이 있었던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의 기슭에 위치한 성읍이다. 유다국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갈 때 거쳐 가는 곳이고, 이집트에서 시리아로 갈 때 거쳐 가는 가나안 내륙 교통의 요지다. 하여 세겜 기슭이란 남쪽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으로 혹은 북쪽 사마리아 성에서 유다국으로 가는 길목인 셈이다.



[그림] 아시리아 비문들에는 등장하는 정복 장면 중에서 저항하다 체포된 도시의 지도자들을 창이나 말뚝에 꿰에 매달아 놓는 묘사들을 볼 수 있다.

 


한데 위의 구절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을 제사장들이 살해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누가 제사장들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일까? 제사에 전념해야할 제사장들이 매복해서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그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람들에 관한 사연도 궁금하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이들일까 아니면 북에서 남으로 가는 이들일까?

이것을 알아내는 일은, 역사적 맥락을 살피며 유추하면, 생각보다 간단하다. 당시 이스라엘국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었다. 분노한 제국의 군대는 끈질기게 저항했던 성읍들을 불 질러 잿더미로 만들었고 지도자들의 몸둥이를 기둥에 꿰어 성벽에 내걸어 놓았으며, 그곳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해댔다. 뿐만 아니라 인근 농지를 불살랐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또 노예로 끌고 갔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당시 이스라엘국의 피해 정도는 전 국토의 30%가 파괴되었다고 한다.

한때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으로 많은 족속들과 나라들을 병합하고 속국이나 봉신국으로 두었던 제국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거의 모든 영토를 상실했고 단지 사마리아 성과 그 인근지역만 남은 상태였다.

호세아서는 내용상 1~3장과 4장 이후로 나뉘는데, 1~3장이 이스라엘 국이 아직 번성하고 있던 때(대 이스라엘국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면, 4장 이후는 아시리아 군의 침공으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멸망하게 되기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하여 1~3장의 맥락이 이스라엘국의 영토가 방대했던 때와 연관이 있다면, 그 이후 부분은 사마리아 지방으로 쪼그라든 때를 반영한다.

그런 관점에서 1~3장에서는 에브라임이라는 용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반면, 4장 이후에서는 무려 36번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그것은 () 이스라엘이던 시절이 지나고, 왕국 말기에 사마리아 인근의 에브라임 지역만을 통제하고 있던 상황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의 호세아서69절의 제사장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세겜의 길목이란 줄줄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백성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길목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북쪽에서 아시리아 군이 밀고 내려오니 사람들은 세겜을 통해 남으로 피란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군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파괴의 잔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데 그곳을 제사장들이 지키고 있다. 왕의 군대가 아니라 제사장들이 말이다. 몰락해 가는 나라의 군대가, 필경 무수한 탈영자들 때문에 병력이 거의 미미해진 상황에서, 전쟁이 없는 남쪽 국경지역까지 배치되어 있을 사정은 아닐 터이다. 반면 커다란 왕실 성소가 있던 세겜에는 왕궁의 녹을 먹던 사제들이 많았다. 국가가 한창 번영하던 때 연일 정복지에서 온 전리품이 이곳을 거쳐 왕실로 들어갔고, 봉신국이던 유다국 등의 공납물도 여기를 거쳐 지나갔다. 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서 시리아로 가는 대상(隊商)도 이곳을 지나갔다. 그때마다 막대한 기부금이 왕실의 이름으로 제사장들에게 하사되었다. 하여 그들은 이곳의 강력한 종교귀족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왕실이 급속도로 몰락하고 있던 때다. 그럼에도 이곳 제사장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은 왕실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대개 그렇듯이 제사장들이나 예언자들은 이익을 따라 처신하는 데 느리다. 그렇게 느리게 반응해도 그들이 누려왔던 권세와 부는 변함없었고, 단지 왕실과 나라의 성공을 위해 축복의 메시지만 앵무새처럼 날리면 되었다. 그들의 신이 왕실과 나라를 지켜줄 것이라고 늘 외쳐댔고 그런 믿음을 신념으로 갖고 사는 자들이다. 해서 왕국 몰락기에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은 종교권력과 그들을 따르는 사제들(과 예언자들)이다. 그때 세겜에서도 그랬다. 그들은 왕에 대한 충성이 곧 신에 대한 충성이라고 믿는 자들이었고, 그렇게 충성을 다하면 야훼께서 축복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다시 번성케 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다.

한데 백성들이 도성을 피해 남으로 피란을 떠나고 있다. 사제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하여 세겜 길목을 지키며 그곳을 지나는 백성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해댄다. 왕실과 성전의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불신실한 이들을 신의 이름으로, 거룩한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살육한다.

호세아 예언자는 바로 그들, 살육하는 제사장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그런데 ...... 길르앗은 폭력배들의 성읍이다. 발자국마다 핏자국이 뚜렷하다.”(6~8)

제사가 신실함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국란 상황에서 제사에 몰두하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무참히 죽였던 것이다. 신정국가 사회에서 제사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이자 미래의 청사진이었다. 그 이데올로기와 청사진이 추구하는 것은 풍요였다. 신은 풍요를 주는 분이었고, 제의는 그러한 풍요를 표상하는 방식으로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제의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은 우월한 계급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호세아는 바로 이러한 제사종교의 폐단을 비판한다. 그가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헤세드)하느님을 아는 지식(다아트 엘로힘)이다. 그것은 풍요나 계급의 신, 그것을 보증하는 격식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구원과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한 출애굽의 신이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전쟁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을 학살하고 있다. 죽음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행동을 저주하고 그 몸을 죽음의 계곡으로 내동댕이치고 있다.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노력을 가상히 여기고 그들에게 구원과 해방을 선사하는 신을 주장하는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몰락하고 있다. 한동안 구가했던 성장의 기조가 거칠게 꺾여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너지고 무력감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사회가 되었기에 그렇다. 하여 지금은 아닐지라도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생각, 더 나은 가치의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이 무너졌다.

이렇게 서민에겐 내일이 없는데, 여전히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며 축복을 떠벌리는 이들이 있다. 많은 교회들, 특히 중상위계층으로 가득한 교회들도 그들의 하나다.

이렇게 계층 분화가 급격하게 심화되고 분화된 계층 간의 이질성이 극적으로 나뉘어 가는 사회, 그리고 소수의 지배층과 중상위계층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감이 사라지고 그들만의 향락의 문화가 여과 없이 노출된 사회, 이런 사회에서 사회통합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여 이런 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일탈들이 있다. 과거 사회를 통합했던 이데올로기의 장소들을 일탈한 무수한 이들이 가치의 국경을 넘는다. 하여 반공의 국시(國是)에 모반하는 자, 가정을 탈출한 자, 성별(젠더) 체계 밖임을 공표한 자 등등, 그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전통을 존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통의 국경을 넘는 삶의 모험에 뛰어들기까지 한다. 그들의 무수한 행렬들이 끊임없다. 게다가 영화, 음악, 미술, 그리고 지식 등, 각 영역의 문화적 담론들은 이런 일탈의 텍스트들에 주목하고 있고, 심지어 자기 스스로부터의 일탈을 실험하기까지 한다. 이제 영화나 음악, 미술, 기타 여러 예술 영역뿐 아니라 학문들도, 많은 부분에서 일종의 일탈학이 되고 있다.

개신교 교회는 한국의 초고속 성장주의적 근대화의 최전선에 있었고, 그렇게 형성된 가치를 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로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탈성장사회에 돌입해 버린 오늘날 교회는 시대에 뒤쳐진 장소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낡은 가치의 장소, 구태의 상징이 된 것이다. 하여 교회를 보는 외부의 시선이 따갑고, 종종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나아가 교회를 이탈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개신교 교회는 최근 갑자기 더 노골화된 공격적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다. 물론 오랫동안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공격적 행동주의의 화신이었다. 해방 이후 군정기와 이승만 정권 시대에 교회는 그야말로 반공주의적 극우 테러집단처럼 행동했었다. 그리고 한국의 전근대적 경험들을 무시하고 배타주의적 팽창주의를 추구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이후 교회는 마치 본래부터 정교분리, 세속과의 분리를 추구했던 자들처럼 탈정치, 탈세속을 강조하며 교회 안에 머물렀다. 한데 최근 들어 교회는 갑자기 정치세력화를 주장하고 각종 문화에 개입하며 지식체계를 종교화하고자 압력을 가하고 있다. 거기에 많은 신자들은 문화적 테러, 이념적 테러의 전선에서 십자군처럼 나서고 있다.

그리고 이런 행동주의는 증오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을 지목하고, 그 적을 향해 집중적인 포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에 무수한 이들이 종북으로 규정되었고 이단이 되었으며, ‘뉴에이지(우상숭배자)가 되었다. 이와 함께 성소수자, 이방인, 타종교인 등이 타자화되었고 공격의 대상으로 지목되었으며 공격을 당하고 있다.

가치들 국경들’, 그 길목에 도사리고 있는 오늘의 교회, 그 지도자들, 그들을 향해 오늘의 호세아는 외친다. 하느님이 원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다, 제사가 아니라 꿈이 꺾인 이들의 희망이다, 적이 아니라 이웃이다라고.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