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지편집위원회가 펴낸 [성심] 63(2013. 12. 11)에 실린 글이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웹진 {제3시대](2013. 11. 25)에도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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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의 질병'과 한국교회
교회세습 현상을 중심으로
현상 : 교회세습방지법안 파동
지난 9월 12일, 한국 개신교 최대교단의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예장통합) 교단총회에서 교회세습방지법안(방지법안)이 통과되었다. 지난해에는 세 번째로 큰 교단인 감리교단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파(예장고신)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도 올해 교단총회에서 통과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올해 안에 개신교의 4개 주요 교단에서 교회세습을 방지하는 교단법이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7월 3일에 발표한 한국 개신교의 교회세습 현황 조사에 따르면, 62개 교회가 교회세습을 실행에 옮겼고, 22개 교회가 추진 중에 있다. 한데 위의 네 교단 모두 교회세습을 실행한/할 교회가 있다. 특히 감리교단의 경우 국내의 모든 교단들 가운데 세습이 가장 심각한 교단이며, 예장통합 교단에서도 많은 교회들이 세습을 단행했다. 그러니 4개 교단에서 방지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대형교회들의 교회세습 비율이 중소형 교회들보다 훨씬 많았다. 대형교회(mega-church)란 일요일 대예배에 참석한 성인교인의 수가 2천 명 이상인 교회를 가리킨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부설 교회성장연구소가 2008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형교회는 전체 교회의 1.7%에 이른다. 한데 세습을 단행했거나 추진 중인 84개 교회 중 대형교회의 비율은 대략 20%나 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교회세습 현상은 대형교회에서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습교회을 단행한 62개 교회의 담임목사 중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이가 4명, 교단총회장 출신이 14명, 감리교단 감독 출신이 10명이다. 물론 이들이 시무하는 교회들은 대개 대형교회다. 요컨대 교회세습을 단행한 대형교회 담임목사들은 교회의 크기를 무기로 해서 교단정치나 교단간 정치에 적극 관여했고,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임을 의미한다.
그러니 대형교회는 법안 표결에서 단지 한 표의 효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단 재정의 상당부분을 맡고 있는데다, 많은 교단행사의 주요 스폰서가 되고 있으며, 무수한 중소형 교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교회이고 실제로 많은 교회들과 교단신학교의 직접적인 후원자이기도 하다. 또 규모를 중요시해온 한국 개신교 풍토에서 대형교회는 그 교단의 자부심이자 얼굴이기도 하다. 만약 일부 대형교회가 교회세습방지법안으로 인해 그 교단을 탈퇴하고 다른 교단으로 가버린다면 이는 그 교단으로선 그야말로 대형사건이다.
하여 위의 4개 교단에서 몇몇 대형교회들이 실행에 옮기고 있는 교회세습에 반대결의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 교단들이 교단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위험스런 법안을 상정하고 통과시키게 된/될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개신교 교세는 감소세에 들어섰고 2020년에는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줄어들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절대 다수의 총회 대의원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겠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교단들은 방지법안을 상정도 못하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형교회들 때문이다. 교회세습을 단행했거나 추진 중에 있는 교회들의 수인 84개는 전체 교회의 0.1%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 대형교회는 전체의 0.02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0.025%가 4개 교단을 제외한 대다수 교단들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90% 가까운 지지를 받는 방지법안을 상정조차도 못하게 하는 현상, 이것이 오늘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이다.
진단 : 포스트 근대화를 둘러싼 갈등
그렇다면 우리는 대형교회 자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한 가지 주지할 것은 목사들이 자식이나 사위에게 교회세습을 할 의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생각을 관철시킬 능력이 받쳐주어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성서의 뒷받침을 받을 수도 없고 외국의 사례들도 없는 세습을 실행에 옮길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럴 권력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반면 대형교회들은 사정이 다르다. 대형교회 현상은 최근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1960년대 이후 미국과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미국에는 현재 1,200~1,500개 정도가 있고, 한국에도 1,000개에 육박하는 대형교회들이 있다. 한데 한국과 미국에서, 그리고 최근 여러 나라들에서 출현한 대형교회들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카리스마적 목회자의 존재다. 그이는 교회의 모든 권력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일종의 독재자형 지도자다. 한데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지속시간은 대개 짧은 편인데, 예외적으로 이들 목회자들은 20년 이상 한 교회에서 카리스마적 권력을 지속시켰다. 하여 그이들이 자신의 카리스마적 능력으로 교인들 전체를 교회 성장에 몰두하도로 장기간 이끈 결과 대형교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한데 한국만의 특기할 현상은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왔던 독재자형 목회자들이 은퇴 시기가 되었을 때 권력의 세습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 은퇴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해서 요즘 교회세습이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권력세습 양상은 한국 근대화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한국 근대화의 독특한 점은 성장이 빠르게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성장이 불꽃을 일으켰던 중심 영역들에는 강력한 카리스마적 통치자가 존재했다. 그이가 모든 권력 자원을 자신에게 집중시킴으로써, 그이는 모든 구성원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장에 매진하도록 이끈 장본인이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박정희다. 그는 세계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초고속 상승하는 국가성장의 상징이다. 또한 기업도 같은 시기에 같은 양식으로 압축적 성장을 이룩했다. 한데 재벌이라는 독특한 기업구조가 기업 성장의 중심에 있으며, 그것은 1인의 전제적 독재자에 의해 통제되는 기업군을 의미한다. 물론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상징적 존재들은 장기간 권력의 독점자들로 군림했다. 그들은, 설득의 리더십이 아닌, 일방 선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보였다. 한데 그들이 도모했던 장기간 계속된 권력집중의 욕구는 정치영역에서는 민주화로 해체되는 듯했다. 하지만 1997년을 계기로 박정희는 담론의 장으로 재림했다. 그리고 재림한 박정희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권력을 세습했다. 이것은 매우 기독교적 신화를 닮았다. 정통주의적 기독교 신학에서 신격화된, 하여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예수가 ‘영’의 형식, 곧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권력의 화신(化神)으로 존속하다가 오늘의 독재자형 목사들의 머리 위에 덧입혀짐으로써 독재자형 권력이 물리적 세계의 공간으로 육화(肉化)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 정치 영역에서 한국 근대 특유의 권력 독점화, 전제적 독재체제의 양식은 해체되지 않고 다시 재현되었다. 그 사이에 권력세습 현상이 있다. 한편 재벌의 경우는 권력세습이 거의 안정화된 듯이 보인다. TV 드라마 같은 데서조차 자본세습은 당연한 것처럼 다뤄지기까지 한다. 이미 사람들은 일상에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재벌들의 권력세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데 한국 근대화의 대표적 승자들 가운데 교회, 특히 대형교회는 세습이 난관에 봉착하였다. 왜 유독 교회가 그런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가 교회 외부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 탓이다. 즉 배타성으로 인해 이웃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의 적대적 언행을 좌시하지 않게 되었고, 그런 참에 교회세습이라는 권력세습에 비난의 화살을 퍼붓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압축 성장과 동일시되어 인식되던 근대화가 성장이 거의 멈추게 되면서 새로운 제도를 추구하려는 일련의 갈등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곧 근대화 이후, 포스트근대를 어떻게 제도화할지를 두고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는 가운데, 국가는 권력독점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재권위주의화하고 있고, 재벌기업은 그런 권위주의의 영속화 과정에 있다면, 교회는 권위주의의 부정적 요소가 폭발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중에, 교회세습방지법안을 둘러싼 갈등 정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안 : 작은교회를 꿈꾸다
그렇다면 교회세습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교회가 한국 근대화의 권위주의를 둘러싼 청산 논쟁의 한 단면이다. 한데 대형교회가 더 권력 집중적 신앙제도이며, 그런 점에서 교회세습의 욕망에 더 쉽게 사로잡힐 수 있고 그렇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성의 문제점, 그 근대성이 낳은 질병들의 청산을 상상하는 지금 대형교회는 그 자체가 반동적 역사의 실체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대형교회가 대안을 상상하는 데 장애물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무수한 중소형교회들이 그런 대형교회를 꿈꾸는 한, 그런 교회들도 근대의 질병을 극복하는 포스트근대의 가능성을 열어주지 못한다.
한데 최근 ‘작은교회’ 담론이 개신교 일각에서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때 ‘작은교회’는 성장지상주의를 청산하는 교회를 말한다. 거기에는 대형교회가 출현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수반되었던 카리스마적이고 전제적인 목사의 권력중심주의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고, 그러한 마초적 남성중심주의를 지양하는, 대화적이고 공감 지향적인 교회에 대한 비전도 담겨 있다. 이런 작은교회 담론에 기반을 두고, 오는 10월 19일 ‘작은교회의 박람회’가 개최될 예정에 있다. 이 행사의 다음 모토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비전을 잘 담아내고 있다. 즉 ‘탈성장, 탈성직, 탈성별’, 이것이 작은교회가 꿈꾸는 교회상이다. 아마도 한국 근대화의 과정에서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내포했던 근대성의 질병인 ‘독재적 권력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교회에 아직 남아 있다면, 그 주역은 대형교회가 아니라 ‘작은교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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