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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목이 잘린 암탉" - <그을린 사랑>, <마가복음>, 세월호 이야기에서 부활을 성찰하다

이 글은 한백교회 4월 12일 예배(한백교회의 종려주일 예배)의 하늘뜻 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원하여 [공동선] 2015년 5+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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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잘린 암탉

그을린 사랑, 마가복음, 세월호 이야기에서 부활을 성찰하다

 

 

 

김진호_ 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그을린 사랑(incendies)은 레바논 내전의 비극을 다루는 영화다(2010년 제작. 2011년 국내 상영). 내전의 와중에서 나왈 마르완(Nawal Marwan)이 겪은 비극들, 그리고 그로 인한 그녀의 극한적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그녀는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갈등이 극한을 향해 치닫고 있을 무렵,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던 레바논 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기독교도 집안의 딸이었다. 한데 거기에서 그녀의 비극이 출발한다. 그녀가 사랑했던 팔레스타인 출신 이주민 청년이 오빠에게 살해되고, 죽임당한 연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가문의 수치로 간주되어 강제로 헤어지며, 아들을 찾아가는 길에 버스에 탄 모든 이들이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살해되는 것을 겪고, 그녀 스스로 분노의 화신이 되어 기독교 민병대 대장을 암살하고, 이후 정치범 수용소에서 15년간 온갖 학대를 당하는 중에 간수에게 강간당하여 쌍둥이를 낳게 된다. 그런데 그 강간범이 갓 나서 강제로 헤어진 아들이었다. 그녀는 비극적 역사의 사건들이 종료된 지 한참 지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내전은 끝났지만, 기억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점점 더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고 그녀를 둘러싼 관계를 온통 뒤죽박죽 헤집고 있던 시간에 그녀는 이 끔찍한 사실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한데 이 영화는 원래 연극 시나리오를 각색하여 만든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공연되었다.) 나는,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원작 시나리오에 나오는 한 어구가 눈에 꽂혔다. 나왈이 겪은 마음의 시간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없는 그런 표현이다. “시간은 ...... 목이 잘린 암탉이었어.”

나는 닭을 재료로 하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의 한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일 게다. 그날 삼촌이 시장에서 살아 있는 닭 한 마리를 사와서 마당 한 가운데서 닭의 머리를 칼로 힘껏 내리쳤다. 목이 잘린 닭은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온 마당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 죽어버렸다.

이 표현 하나로 나는 나왈의 상태를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민병대장을 살해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그 처절한 공포를, 노래를 흥얼거리며 견뎌냈던 강철 같은 여자, 하여 감옥에서 노래하는 여자로 불리며 오히려 간수들과 죄수들 사이에서 경원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던 그녀였지만, 실상 그녀 자신은 그 시간을 목이 잘린 암탉같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말년에 그녀의 고통은 필경 외상후 트라우마 증세를 나타냈던 것 같다. 하여 자녀들과도 소통의 장애가 깊었다.

그런데 그을린 사랑의 극중 문맥은 나왈이 죽은 뒤 쌍둥이 남매에게 전달된 두 편의 유서 속의 수수께끼를 그들이, 특히 딸인 잔느가 풀어나가는 과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들은 레바논의 엄마의 흔적이 새겨진 장소들을 하나하나 방문하면서 파편적 에피소드들을 해독해낸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는, 엄마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큰 이야기(네러티브)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엄마가 남긴 유서 속의 수수께끼의 풀이였다. 그것은 뒤엉키고 꼬인 인연의 실타래를 포용과 사랑으로 풀어내는 엄마의 메시지였다. 요컨대 엄마의 유서는 목이 잘린 암탉처럼 미쳐 날뛰게 했던 트라우마를 그녀 스스로 극복해낸 자아 성찰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민중신학이 주장하는 마가복음의 형성사와 매우 닮았다. 그 진원지

는 안병무 선생이다. 그는 이제까지 전혀 제시된 바 없던, 마가복음의 형성에 관한 매우 새롭고도 참신한 가설을 제시하였다. 우선 이 복음서는 이야기’, 즉 구술문학(oral literature)으로 된 문서라는 것이다. 복음서 연구에서 구술로 예수 이야기가 전승되었다는 점을 방법론적으로 주목한 것은 양식비평(form criticism)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구술 전승(oral tradition)이 문서 전승과 어떻게 다른 특성을 갖는지에 대한 고려에 있어서 실패한 문제제기였다. 최근에 와서야 구술연구가 성서학계 일각에서 다시 논의되고 있다. 한데 최근의 이러한 구술연구와 유사한 논점이, 비록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 선생의 마가복음논의에서 이미 드러났다. 즉 예수 전승이 일단의 사람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그것이 좀더 큰 이야기 덩이의 예수 설화로 발전하고, 그 과정에서 예수 이야기가 아비가 자식에게, 지도자가 추종자에게, 그리고 마치 우리나라의 판소리처럼 대중 사이에서 연행(퍼포먼스)되기도 하면서 한 편의 구술문학으로서의 예수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형성 과정에서 하나의 종지부가 찍힌 것은 누군가가 이를 채록한 문헌인 마가복음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선 주지할 것은 이 복음서는 창작문서가 아니라 채록문서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술문학에 관한 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복음서의 전승을 단순한 이야기 전승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언비어(루머) 전승으로 본다는 데 있다.

선생이 유언비어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1980년 광주사건이었다. 당국에 의해 철저히 언론이 통제되어 광주에서 무장공비에 사주된 폭도들이 내란을 일으켰다는 일방적 보도만이 알려졌지만, 유언비어는 그 철통같은 통제망을 뚫고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국가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라고, 유언비어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전달하고 있다고 위압적으로 떠벌렸지만, 실상 유언비어 속에는 중대한 진실이 담겨 있음을 사람들은 점차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선생은 예수에 관한 유언비어를 상상해 낸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하던 때에 공권력의 폭력성은 미친 칼춤을 추고 있었다. 어찌나 공포스러웠는지 예수의 가장 측근들이 지하로 숨어버렸고 베드로조차 그이를 모른다고 부인할 정도였다. 며칠 전만 해도 겉옷을 땅바닥에 깔고 만세(호산나)를 연신 외쳐댔던 이들이, 심지어는 성전 대상(大商)들의 상점을 뒤엎으며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전락시켰다고 일갈하던 이들이 온데간데없이 어디론가 숨어버렸고, “죽여라는 대중의 함성 속에 그이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바로 이 장면을 예수의 일부 추종자들이 통렬한 마음으로 목격해야 했다. 얼마나 원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만큼 그 미안함과 죄스런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그들은 절망감과 죄의식에 너덜해진 마음으로 갈릴리로 되돌아가야 했다. 낙망이 너무 깊어 어떤 이들은 병이 들었고 어떤 이들은 포악해졌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예수의 비수 같은 말과 파워 넘치는 행적에 관한 일화들 몇 개씩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고, 곧 그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비록 선생은 말하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두 번의 중요한 단계가 있다. 첫째는 침묵이 극복되는 단계다.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진 이들은 대개 할 말을 잃어버린다. 여기에는 실어증뿐 아니라, 한숨소리, 탄식소리, 중얼거림, 고함, 괴기한 행동, 난폭한 행동 등이 포함된다. 어느 경우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거나 행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아니 그뿐이 아니라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런 침묵이나 소리 혹은 행위들은 주변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괴롭게 하는 것이기에 듣기도 보기도 싫은 것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그런 이의 언행에 대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냥 그런 그이들이 싫어진다. 하여 이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되고, 그런 시선 때문에 그이들은 더욱 말할 수 없는 자가 된다. 마치 거라사의 광인처럼 말이다.

한데 각고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침묵이 극복되면 사람들은 더듬거리며 말하기를 시작한다. 마가복음을 만들어냈던 이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한을 품고 갈릴리로 돌아왔던 사람들은 아마도 처음엔 아무것도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가슴에 품고 있던 예수를, 그이에 관한 기억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여 예수 이야기들, 그 단편적 이야기들이 유언비어 형식으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이 바로 안병무가 말한 예수 유언비어다.

이 예수 유언비어의 유포자들을 선생은 오클로스라고 주장한다. 물론 마가복음속의 예수 전승에 한해서 말이다. 여기서 오클로스는 병자였고 창녀였으며 세리였고 거렁뱅이였다. 한마디로 오클로스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되던 자들로, 그 사회문화적 자원을 거의 보유하지 못한, 그 자원들이 저장된 장소 밖으로 내몰린 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예수에게 희망을 품었다가 낙망한 채 예수 유언비어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가, 침묵의 질곡을 넘어서서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점차 에피소드들이 모여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예수전이 만들어지는 두 번째 단계다. 이렇게 에피소드가 큰 이야기로 되고 그것이 채록되어 마가복음이 탄생하였다는 얘기다.

트라우마에 몸과 정신이 포박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 증상은 기억의 파편화와 실어증이다. 그리고 흥분 상태가 지속되고 때로 마치 목이 잘린 암탉처럼 과도한 분노를 폭발하곤 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실어증에 빠져 거의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서, 때로 한 가지 얘기를 반복적으로 말한다. 이 반복되는 얘기는 그이가 겪었던 그 사건이다. 혹은 그 사건을 상징하는 환유적 기억이다. 가령 세월호 사건에서 많은 사람을 구한 화물차 운전사였던 한 남자는 구출되지 못한 채 배 안에서 울부짓는 아이들의 소리가 벌레가 되어 자신의 팔위에서 꿈틀거리는 환상을 보면서 팔에 자해를 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파편화된 그 기억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 끔찍한 기억을 표상하는 어떤 대상을 향해, 가끔은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도 한데, 분노를 폭발시킨다.

바로 이런 증상에 매여 있는 이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그때가 비로소 그의 치유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그는 조금씩 파편화된 기억을 넘어서서 말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자기 전체의 삶을 돌아보는 말로 발전한다. 이런 치유의 과정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진일보한다. 자신의 전 생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사건은 자기의 전 생애를 해석하는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로 해석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트라우마 치유의 전문가들은 특정 기억을 넘어서서 자신의 전 생애를 서사화하는 일은, 즉 자서전 쓰기는 트라우마 치유에 매우 유의미한 계기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한데 이러한 트라우마 치유의 과정에 관한 논의는 집단적 트라우마 연구에도 유사하게 활용되는데, 민중신학의 마가복음의 형성사에 관한 해석도 바로 이런 집단적 자기 치유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기억연구의 중요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부활절이 있었다. 나는 이번 부활절을 보내면서 이와 같은 마가복음에 관한 안병무 선생의 생각을 다시 돌아보았다. 왜냐면 마가복음의 큰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부활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갈릴리에서 기적을 베풀고 메시아 도래의 메시지를 설파하고, 예루살렘에서 처형당하며, 빈 무덤에서 부활소식으로 끝나는 이 문서는 전체가 그이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하여 어떤 학자는 이 복음서를 확대된 부활설화라고 불렀다. 한데 흥미롭게도 이 확대된 부활 설화 속에 예수의 부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다른 복음서들이 예수의 부활을 몸의 부활이라는 관점과 연결시키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에는 예수의 몸의 부활을 확인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다.(몸의 부활을 언급하는 16,9 이하의 내용은 원래의 마가복음에는 없던, 후대의 첨가 부분이다.) 다만 이 복음서에 언급된 부활은 그분은 여기(빈 무덤, 나아가 예루살렘)에는 없고 갈릴리에 먼저 가 있다는 것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수의 죽음을 목격한 대중은 천근의 무거운 발걸음으로 갈릴리로 되돌아왔던 이들이다. 그 순간 그들에게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듯이 그들은 입이 닫혔고 몸이 굳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 둘씩 일어났고 예수를 말했으며 점차 예수의 동료가 되었고 예수운동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그들은 이때 예수가 자신들과 함께 부활했음을 믿었다. 그 과정에서 마가복음이 탄생했다. 요컨대 이 복음서는 그들의 부활 얘기다. 즉 그들은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 대신 예수의 전기를 썼다. 그것은 자신들을 예수와 동일시한 결과다. 그런 점에서 마가복음은 확대된 예수의 부활설화인 동시에 그들 자신들의 부활설화인 것이다. 트라우마에 매립된 존재가 그 집단적 절망의 병증을 헤치고 성찰적 공동체로 부상하는 과정의 자기 치유의 기록이 바로 이 복음서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 복음서가 담고 있는 부활의 메시지다.

1년 전 우리는 수백 명 죽검들의 비명이 아직 귓가를 생생이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부활절 예배가 얼마나 무력하고 빈 말들뿐인지를 절감해야 했다. 부활절은 죽음에서 살아난 이의 기록인 동시에, 죽음에서 살아난 집단의 자기 기록이다. 그럼에도 그날을 2천 년간 간직하며 기려왔던 우리는 직면한 죽임의 사건 앞에 너무나 무력한 부활의 예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고 우리는 다시 부활절 예배에 참여했다. 그 사이 우리에게 어떤 성찰이 있었을까? 어쩌면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부활예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중요한 성찰에 이른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 이가 되어 보고자 애썼고 이 글은 그러한 성찰에 관한 하나의 고백문이다.

나의 고백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마가복음공동체도 예수의 부활을 매년 고백하면서 어쩌면 우리처럼 무너진 존재가 생기를 얻고 자기 치유에 이르는 생생한 체험에서 점점 멀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는 와중에서 66년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 참혹한 죽임의 현장을 처절하게 체험하면서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매너리즘이 되어버린 예수의 부활 얘기가 전쟁의 주검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절감했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부활에 관한 새로운 생각의 사투에 돌입했다. 마가복음13장은 그렇게 이 복음서에 첨부되었다

알다시피 13장은 처참한 재난의 이야기다. 끝날듯하면 새로 이어지는 재앙이 이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어느 한 편만이 가하는 폭력이 아닌 상호간에 무차별 폭력이 이어지고, 서로를 배신하며 서로를 증오하는 일이 되풀이 된다. 그래서 전쟁은 더욱 처절하다. 모든 가치가, 모든 정의가, 모든 아름다움이 모조리 앙상한 겨울 가치처럼 되어 버린다. 13장의 재앙 묘사는 이런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참혹함 가운데 가장 참혹한 표현은 7절 마지막에 덧붙여진 다음과 같은 한 어구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가장 악마적인 사태가 벌어진 뒤에 사람들은 이제 역사의 악마성은 바닥을 쳤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데 마가복음공동체는, 아니 아직 끝은 아니야, 악마는 아직도 더 날뛸 것이야, 라고 실토한다. 너무나 신랄한 전쟁의 리얼리즘이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서 이 공동체는 끝에 관한 다른 말을 이 말에 포개놓는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전쟁은 끝이 없다. 하나의 전쟁 안에 악마의 칼날은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다고 그것이 끝이 아님을 이 공동체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전후에는 그 전쟁이 마음 안에서 이어진다. 그것은 전쟁 자체만큼 치열하고 처참하다. 그런데 마음의 전쟁을 가까스로 겪어내면, 아니 아직 충분히 극복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전쟁이 덮쳐온다. 이게 마가복음공동체가 알고 있는 전쟁의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극복되는 것임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그들은 말한다. 침묵의 수렁에서 이야기하기, 나아가 전기적인 극복의 서사 만들기 과정은 자기 자신의 서사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모든 민족의 서사로의 확대가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이들이 말한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다. ‘복음이란 말은, 이 공동체가 자신들의 부활의 설화, 곧 예수전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다. 이 문서의 1,1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 복음은 예수의 빈 문덤 이야기에서 일단락되었다. 그 여운이 남는 맺음글은 필경 이 공동체의 부활이야기로 이어짐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들은 말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그것은 타인의 부활 이야기로 이어져야만 완성되는 것이라고.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