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원고입니다.(2017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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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선동가
부러뜨린 것은 부러뜨린 것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레위기〉 24,20
3.1절 기념식, 대립하는 두 편의 시위대는 각기 기념집회를 열었습니다. 한 편은 남산공원, 다른 한 편은 서울운동장. 기념식이 먼저 끝난 서울운동장의 군중은 거리행진을 시작합니다. 그들이 남대문을 지날 때, 남산공원의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일부와 마주칩니다. 누가 먼저였을까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양 편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투석전을 벌이고 일부는 육탄전에 돌입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경찰이 발포합니다. 허공을 향해서가 아니라 시위대를 향한 지향사격입니다.
서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전국의 여러 도시들에서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마치 계획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날 전국에서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22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상자는 경찰의 발포로 인한 것이었고, 대부분의 피해자는 남산공원 집회 참가자, 그리고 그이들과 같은 편의 시위대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직후 경찰은 폭력시위대에 대한 일제 검거에 나섭니다. 이때 체포 구금된 이들도 남산공원 집회 혹은 같은 편의 참가자들이었습니다.
1947년에 일어난, ‘남대문 3.1 사건’으로 알려진 사태의 간략한 스캐치입니다. 여기서 남대문의 3.1집회는 좌익성향의 집회였고, 서울운동장의 집회는 우익세력의 집회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전국은 그야말로 폭력의 난무한 상황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그해 12월은, 미군정청의 기록에 의하면 ‘테러의 시기’였습니다. 무수한 테러, 그리고 암살이 난무했습니다. 이렇게 폭력으로 점철된 한 해가 지나면서 1946년 당시 전 국민의 좌편향 77%가 죄편향이던 남한사회는 1948년 극우적인 이승만 정권 아래 국가가 창건됩니다. 1947년은 그런 전환기였습니다.
바로 그 해, 1947년엔 수없이 많은 암살모의들이 시도되었습니다. 미군정청 산하의 정보부원들은 이런 암살모의들을 캐내는 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지요. 그때 미군정청 정보부 일일보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암살모의집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북청년단입니다.
1946년 11월30일에 결성된 극우청년단체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서 벌어진 좌익이라는 이름으로 학살된 사람의 수가 무려 20~4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때 가장 잔인하고 가장 폭력적인 학살자들이 바로 이들이었지요.
이들 서북청년단은 북한지역에서 남한으로 월남한 35세 이하의 청년들로 구성된 사람들입니다. 월남자들 중 학생 극우주의자들은 서북청년학생단으로 모였고, 나머지는 서북청년단원이 되었지요.
한데 이들 중 주축이 된 이들은 대개 영락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즉 개신교 성향의 월남한 청년들이 중심이 된 극우주의 청년단체였고, 그 핵심은 평안도 계열의 교회인 영락교회 교인들이었던 것이지요. 한경직 목사는 바로 그들의 영적인 지주였지요. 또한 그는 수없이 많은 자리에서 서북청년단원들을 자랑해 마지않았습니다.
한경직은 미군정의 통역관을 역임하면서 군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기에, 일본이 남겨두고 간 적산(敵産)을 불하받아 영락교회를 세웠고, 노숙하던 월남자 청년들을 대거 남산 해방촌에 거주하도록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영락교회와 해방촌 거류자들이 서북청년단의 주축이 되었지요. 하여 서북청년단은 기식할 곳 하나 없는 굶주린 월남자들의 정착을 위한 자활단체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한데 그들은 북한지역에서 공산주의체제를 피해 월남한 이들입니다. 특히 평안도와 황해도의 개신교 출신 월남자들은 지주나 상공인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교육수준도 높은 이들이 적지 않았지요.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모욕당하고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바로 그런 이들이 월남해서 서북청년단의 주축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여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랐지요. 또 평안도 개신교도 하면 정평이 날 정도로 열렬한 개신교 신자들이었지요. 그들이 남한에서 청년단을 만들었는데, 그들이 근대한국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학살자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미움이 있다고 테러와 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움을 가지고 월남한 이들이 남한에서 잔혹한 살인마로 돌변하는 데는 특별한 중간단계가 필요합니다.
지난 해 12월 첫 번째 주 하늘뜻나누기에서 저는 미움의 감정을 공격적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존재를 ‘예언자’와 ‘메시아’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여기서 ‘메시아’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은 분노의 기억을 소환하는 자/사건을 의미하고, ‘예언자’는 그것을 해석하는 자/사건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면에서 입은 깊은 상처를 기억하지 않고 싶어 합니다. 이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망각’의 기재가 작동합니다. 그래야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데 누군가 혹은 어떤 사건이 그 상처를 상기하게 합니다. 해서 가슴 저미게 아팠던 기억이 도져 나옵니다. 바로 이렇게 상처를 도져 나오게 하는 존재 혹은 사건이 바로 메시아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것이 메시아인 것은, 억눌려 있던 미움의 기억을 소환하여 그것을 자양분 삼아 공격적 행동을 벌이하는 이는 자기의 그러한 행동이 자신과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신앙을 가진 자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한편 예언자는 기억을 해석하는 자입니다. 깊은 상처를 입은 자가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도 자신과 같은 상처에 고통스러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해석해 주는 존재입니다. 즉 그 존재/사건은 그 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무엇인지 지목해 줍니다.
그렇다면 서북청년단에 참여한 이들에게 메시아와 예언자는 무엇일까요?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이 그 역할을 했겠지요. 인물과 기관은 이승만, 조병욱, 장택상, 미군정청 등등이 떠오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런 존재들, 기관들, 그리고 그들의 사주로 혹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로 그들은 빠르게 살인마로 변화해 갔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나 예언자라는 말에서 연상되듯이, 이런 매개장치는 종교, 특히 기독교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종교성, 특히 기독교신앙은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존재 전체를 바칠 만큼 강한 열정의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무시무시한 폭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헤쳐나기기 쉽지 않은 고통의 흔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각자는 망각을 통해 견뎌내곤 하지요. 그런 점에서 망각은 삶을 견뎌내게 하는 자기 조절능력입니다. 한데 문제는 그런 망각의 흔적들이 기억으로 도져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도지게 합니다.
그리고 종종 그것, 기억의 소환자는 바로 나의 신앙을 통해 그 일을 합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견딜 수 없어 하는 자, 그이에게 예언자가 속삭입니다. 악마를 보라고, 악마가 지금 바로 네 앞에 있다고. 그것을 말살하지 않으면 너와 네 가족과 네 이웃과 네 동족을 재앙에 빠뜨릴 것이라고.
서북청년단은 그런 기억의 소환과 해석이 되풀이되면서 첫 번째, 두 번째, ...... 수십, 수백 번째 폭력의 가해자가 됩니다. 그것은 그런 폭력의 역사가 청산될 때까지 무한반복 됩니다.
폭력의 역사가 청산되지 않은 사회, 그런 이들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지 않고, 자신이 가한 폭력으로 괴로워하지 않은 이들이 이어온 사회, 오늘 한국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입니다. 올해 3.1절의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는 역사의 나쁜 피가 슬금슬금 밖으로 삐쳐 나와 구역질나는 비린내를 풍겨댔습니다. 누군가 무엇인가가 메시아가 되어 혹은 예언자가 되어 그 역겨운 피를 분출시키는 사건을 고대하는 악령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개신교가 그것을 부르는 주술가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는 가장 좋아하는 성서구절을 〈레위기〉 24장 21절, ‘눈에는 눈’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누군가를 응징하겠다고 벼르는 대중을 대변하고 있고, 성서는 그런 그를 대중의 메시아이자 예언자로 만들어주는 신의 신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 라고 되뇌면서 말입니다. 한국에선 개신교가 절망하면서 분노로 그것을 되갚으려 하는 이들에게 바로 그런 신탁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눈에는 눈’과 같은 그것을 말입니다.
개신교 신앙은, 다른 무수한 종교들과 신념들 가운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체험의 전통을 갖고 있는 종교성에 속합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더욱 그러한 역사의 집단기억들을 갖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한국근대 역사를 추동하는 가장 강렬한 체험의 장치, 그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 신자가 된다는 것, 한국에서 개신교 신자로 산다는 것은 신앙적 행동들이 섣부른 과잉 행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안의 메시아가, 우리 안의 예언자가 파시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 타인과 타자에게 무례하고 폭력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신앙을 되돌아보고, 그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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