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줄이기’라는 저자 소멸의 체험 혹은 새로운 대화법

이 글은 김기석 목사님께 35명의 사람들이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 [희망 그 빛깔 있는 삶의 몸부림](꽃자리, 2016)에 수록된 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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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줄이기’라는 저자 소멸의 체험 

혹은 새로운 대화법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 중, 영화가 더 좋았던 게 두 편 기억납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엘리아 카잔이 영화로 만든 〈에덴의 동쪽〉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것이지요. 〈에덴의 동쪽〉은 구성과 스토리 전개 방식이 좋았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그랬을 법한데, 부주키로 연주하는 테오드라키스의 음악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안소니 퀸의 막춤에 압도되어, 영화 전체가 다시 보이면서 깊은 인상을 준 것이 〈그리스인 조르바〉였지요.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에 나오는, 피나 바우쉬가 안무한 몇 개의 춤과 함께, ‘조르바의 춤’은 영화 속의 최고의 춤으로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답니다. 필경 안소니 퀸이 아니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춤이었겠지요. 〈열정의 랩소디〉, 〈길〉, 〈25시〉, 〈노틀담의 꼽추〉,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막의 라이언〉, 오래된 것임에도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될 만큼 나는 그의 광팬이지만, 〈25시〉 엔딩 장면의 ‘우는 웃음’과 더불어 ‘조르바 춤’은 정말 최고였지요.

한동안 책상 한쪽에 쌓인 책더미 위에 놓고 읽기를 미뤄두었던 목사님 책을 펼쳤습니다. 목차 속에서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당연히 〈조르바의 춤〉이라는 편지글이었지요. 끝에서 두 번째 글인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거꾸로 올라가면서 열 편 쯤 읽다가 비로소 멈추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핏줄 찢어지는 통증이 눈알을 후벼 파듯 날카롭게 스쳐 지나가면, 벌겋게 충혈된 눈을 두껍게 깜빡일 때마다 무겁고 뜨거운 피곤함이 덮쳐오는데, 그때 묘한 쾌감이 따라온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느낌이지요. 도처에서 튀어나오는 비수 같은 표현들이 나를 사정없이 베고 있어요. 그런데 그 베인 곳이 아픈데 짜릿해요. 그러니 독서를 그만 두기가 쉽지 않아, 억지로 힘을 주어 멈춰야 했던 거지요.

사실 요새 저는 죽을 지경이예요. 필력은 한계에 왔는데, 매주 한 편씩의 글을 연재하려니 머릿속은 심하게 뒤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이고, 게다가 찬찬히 풀어낼 만큼의 심적 여유도 사라져버렸지요.

아무튼 처음 읽은 글에서 ‘사막의 순례자’에 관한 표현이 핏줄 터진 눈 속으로 훅 들어와 버렸네요. 사막이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그 어구요. 순간 떠오르는 에피소드, 그리고 한 문장이 있었지요.

 

1998년 혹은 1999년, “글은 짧을수록 좋은 것 같아요.” 아님 “글은 줄일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요.”

정확한 워딩도 기억나지 않고 그 시기도 불확실합니다. 다만 정황상 추정해보니 두 해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고, 두 문장은 얼핏 달라 보이지만 나의 기억 속에서 둘은 동일한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니, 의미는 명백합니다.

기억나지 않으시죠? 목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손 선생(그때는 박사도 목사도 아니었고 대학원생이었으니 당시 나는 그를 손 선생이라 불렀지요)을 바라보며 우리 둘 모두에게 넌지시 던진 말이었지만, 그건 명백히 내게 준 충고의 말이었지요.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답니다. 왜냐면 당시 학생이던 손 선생은 아직 글을 내놓지 못한 시기였고, 내 글은 길고 복잡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거든요.

실은 그때 나는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답니다. 어처구니없는 얘기지만, 내가 꽤 대단한 연구자인줄 알았거든요. 그때로부터 8,9년 전, 안병무 선생님이 대학원을 졸업하던 내게 진로에 대해 물었지요. 유학 갈 계획인지를 물은 것이었어요. 그때 내가 뭐가라고 말했을까요. 아마도 목사님 같은 겸손한 분들은 상상하실 수 없을 거예요. 안 선생님도 좀 놀래셨던 것 같아요. 기가 막힌 듯, 묘하게 미소를 지으셨지요.

“선생님, 저는 평생 민중신학을 공부할 건데, 서양의 누가 내게 민중신학을 가르치겠어요.”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당치 않은 생각이 그 후로 십년이나 계속되었다는 것이지요. 십년이나 성찰하지 않고 지낸 거예요. 아마도 그런 자의식이 내 행동거지와 말투에 암암리에 드러났나 봅니다.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좀 많이 미움을 샀지요. 당시 나는 부당한 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튼 그랬답니다.

어쩌면 1998 혹은 1999년이라는 시간이 내겐 좀 의미심장한 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1996년 말경 한 출판사로부터 꽤 큰 프로젝트의 참여제의를 받았는데, 그 작업이 끝날 때까지 매달 고정급의 수당을 지급받기로 했었지요. 보통의 대기업 직원 월급보단 훨씬 모자랐지만, 살아갈만한 액수였어요. 그 일이 끝나려면 빨라도 10년은 걸릴 일이고, 추정컨대 그것으로 그리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었으니, 꽤 괜찮은 조건이었거든요. 당시 교회의 전임 사역자이기도 했지만 사례비조로 받기로 한 액수도 많이 적은 데다, 실제로 띄엄띄엄 받은 탓에 턱없이 적은 수입으로 살아가야 했었지요. 해서 뭐든 하려 했는데, 마침 그런 제안을 받았던 거예요.

제안을 받자마자 얼른 후배를 연대보증인 삼아 대출을 받았는데, 빚에 시달리던 교회에 헌금하려고요, 그런데 얼마 후 외환위기가 터졌지요. 그 출판사는 프로젝트를 취소해야 했고, 은행금리는 거의 고리대금 수준으로 올라갔답니다. 그때 내가 경험한 것은,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 살면서 겪을 무시무시한 경험 중 제일 중한 것에 속하리라는 거지요. 물론 어디까지나 경험이 일천한 나 같은 백면서생에게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

그때 신학 연구자의 길을 포기하려 했답니다. 무엇보다도 돈벌이가 필요했거든요. 계속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기고할 데도 없었고 그것으로 절대 필요한 재원을 충당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죠. 하긴 지금 생각하면 그 판단은 적합하지 않군요. 글을 기고할 데가 없었던 게 아니라, 기고할 만한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이죠. 독자를 위한 배려가 없는 자의 글을 원하는 매체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때 내가 하려 했던 것은 비디오대여점이었어요. 나름 시장조사도 하고 필요한 재정을 계산도 했었답니다. 영화를 좋아했고, 동네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 모임을 가지면서 새로운 의미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당시 그 업종은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니었지요. 한데 얼마 안 돼서 그 업종은 빠르게 사라져갔으니 시작 안 하길 정말 다행이었어요.

암튼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목사님을 처음 만났던 무렵 내 심사는, 높은 콧대가 꺾이면서,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어요. 그때 들은 말이 위와 같은 글에 대한 코멘트였지요. 그 순간 이 말이 망치처럼 충격을 준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글을 쓸 때마다, 한 자 한 자 키보드 자판을 찍기 위해 꿈틀거릴 때마다 손목을 죄어오는 수갑 같았지요.

아, 한 가지 더 얘기해야겠네요. 왜 비디어대여점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는지 말예요. 장소 물색하는 중에 한 잡지 기획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신학 동네 언저리에서만 놀던 나를 인문사회 비평지로 막 떠오르고 있던 한 잡지에서 컨택한 것이지요.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나를 불러준 데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더랍니다.

당시는, 대학도 안 다녔던 이가 대통령이 된 직후였는데,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그이는 대단한 독서광이고 놀라운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지요. 게다가 정통적인 지식인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하늘을 찌르던 때였어요. 권력에 아첨하는 자, 혹은 무릉도원처럼 진공포장된 세상에서 삶과 결코 얽히지 않을 법한 글을 흥얼거리는 자, 또 외환위기가 오기까지 예측도 그 이후의 대책에도 무능하기 짝이 없던 자, 대략 그런 식으로 대중은 정통의 지식인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정통적 지식인에 대비되는 새로운 지식인을 사람들은 ‘신지식인’이라고 불렀지요. 특히 많은 사람들은 신지식인을 떠올릴 때, 학위나 학벌, 그리고 대학이라는 일터로부터 벗어나 있는, 아웃사이더 지식인을 막연히 생각했던 때였어요.

그때 그 잡지 기획자는, 그런 세간의 생각을 잡지 기획에 연계시키기 위해 묘안을 찾아냈고, 그것을 표상하는 그럴싸한 카피를 만들어냈어요. 10인의 지식게릴라 찾기 프로젝트. 분야별로 게릴라들을 찾았고, 그이가 개신교 신자인 덕에 얼떨결에 나도 그 10인의 하나로 선정되었어요. 그이는 이 열 명을 지식사회의 스타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에 우리를 동원했지요. 덕분에 잡지는 위상이 급상승했고, 덩달아 우리도 주목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저도 밤 12시 5분 전쯤의 신데렐라처럼 마지막 잠깐, 조금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죠.

이후 비슷한 기획들이 일간지, 계간지 등 지식 풍경을 다루는 매체들 여기저기에서 이어졌고, 그때마다 희소성이 있던 신학계의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 뽑히는 행운을 얻었지요. 학위도 안 받고, 학교 근처도 쳐다보지 않으며 산다는 게 도리어 상징 권력을 선물해주는 역설적 기회가 된 거예요.

아무튼 그 덕에 내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게 가능해졌고, 지식사회 내의 학제간 논쟁의 자리 빈 구석 하나에 앉아있을 수 있었지요. 신학계 안에서 얻지 못했던 기회가 밖에서 태풍처럼 몰아쳤어요. 그 덕에 꽤 비중 있는 잡지의 기획자가 되었고, 얼마 후에 유급의 기획 책임자의 자리에도 앉을 수 있었지요.

첫 출근 때 나의 사무실 벽에는 마르셀 뒤샹이 청년시절 악보에 드로잉한 ‘Avoir l'apprenti dans le soleil’(“뙤악볕 속에 달리는 견습생”)이 붙어 있었지요. 직무는 잡지 총 기획자이지만 능력은 아직 견습생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에게 각인하려는 것이었지요. 초보자에게 주어진 기회의 시장은 이렇게 그때 이후로 탄탄대로처럼 열리게 되었답니다.

바로 그런 일들의 출발점에 얼떨결에 ‘지식게릴라’로 호명됨으로써 글 쓸 곳, 말할 곳, 일할 곳이 생겼고, 그 덕에 비디오대여점 계획을 일단 미루게 된 거지요. 아직 꺾인 콧대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혼신을 다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그 어간에 목사님의 코멘트가 비수처럼 나를 덮쳤던 거지요.

글을 줄이라는 지적은 그 때까지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때마다 얼마나 불쾌했는지 몰라요.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줄이라는 것일까,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구성한 글인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마음대로 줄이라 말라 하는 것에 비위가 상하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절대‘을’의 위치에 있는 무명의 글쟁이는 그 제안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문한 분량에 맞추어 줄이곤 했었답니다. 그때까진 잡지 기획자들이, 쓰기 전문가는 아닐지언정, 읽기의 전문가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글이 지면에 실리는 순간 쓰기 영역은 사라지고 읽기 영역이 날개짓을 시작한다는 것을, 저자는 사라지고 독자의 주권이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당시의 나로선 생각도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목사님의 말은 항변할 수 없는 무게로 느껴졌고, 그때부터 글을 쓰면 항상 후반 작업을 스스로 했답니다. 글 줄이기 말이죠. 그런데 어느 때쯤, 아마도 목사님의 말을 들은 지 1,2년쯤 지나서야 깨닫기 시작했어요. 글을 줄인다는 것은, 글 속 도처에 끼워 넣은 지식 가오질의 흔적들을 색출해내는 작업이라는 것을요. 자기 자신조차 속여 버린 그 자랑질 덩어리들을 찾아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요. 그런데 모든 글 쓰기를 끝낸 뒤, 남의 글 읽듯 그 흐름에 낯선 자처럼 읽고, 두 번, 세 번, 네 번, 덜어내기 위해 거듭 읽어내려 가면 점점 가감한 색출작업이 용이해졌지요. 그리고 그 일이 제법 재밌더군요.

그것은 덜어내기 위해 읽어 내려가는 중에 내가 저자라는 자의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어느덧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가상) 독자의 시각이 나의 ‘저자성’(authorship)과 뒤얽히면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싸움은 글쓰기만큼이나 재밌는 성찰의 과정이예요.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하고, 대화적이게 하는 계기가 바로 글 줄이기에서 비롯된다는 거예요. 저자라는 강박적 자의식에서 탈출해서, 독자가 되는 체험이 글 줄이기 과정에서 일어난다는 것, 그것을 깨달은 것이죠.

오십대 중반 나이가 되었어요. 공적으로 글을 발표한 지 25년이 훌쩍 넘었군요. 쓴 글이 전부 몇 편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법 많이 썼지요. 하지만 여전히 얼치기 글쟁이고, 최근 들어 나름 심각한 존재 위기에 빠져 있어요. 일종의 진정성의 위기랄까요? 보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예요.

글은 줄일수록 좋아진다는 말은 초짜 글쟁이가 성장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한 보약이었는데, 중년의 얼치기 글쟁이에겐 좀 다른 보약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목사님을 또 한 번 찾아가 너지시 던지는 또 다른 말에 귀를 기울여봐야겠어요.

 

 

김진호 올림

2016. 0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