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 특별위원회가 주최한 <기억과 반성 심포지엄>(2017 02 27. 오후 02~04시.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이 글을 신앙인아카데미의 [맘울림] 40호(2017.12)에 재게재하였습니다.
다른 발제는
[기독교의 흑역사]를 지은 강성호 선생의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와 제국일본>
경상대학교 백종국 교수의 <예루살렘의 바벨론화 - 한국기독교의 정교유착 사례 연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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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와 대형교회적 신앙양식 비판
사회 변화와 신앙양식
개신교는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가장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종교다. 첫째로, 근대국가 한국이 근대화되는 과정과 한국개신교의 형성은 ‘시기’적으로 겹친다. 둘째로, 근대국가 한국과 근대종교인 개신교는 그 지배적 양상에 있어서 ‘내용’상으로 겹친다. 그것은 양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제도화된 결과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한국사회에서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는 개신교만의 독특성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 한국사회를 읽는 데 있어 개신교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동시에 한국개신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근대 한국사회와 교회의 신앙제도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신교의 관점에서 이러한 영향관계를 이야기하면, 개신교는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이 특정한 방향의 경로를 따라 전개되도록 하는 하나의 강력한 운동으로 존재했다고 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개신교의 지배적인 (사회적) 신앙 유형이 노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사회적 신앙유형 | 대표적 교회(연합체) |
1945~1960년경 | 극우반공주의(A1) | 영락교회 |
1960~1990년경 | 성공지상주의(B) | 순복음교회 |
1990년대 이후 | 극우보수주의(A2) | 한기총 네트워크 |
웰빙보수주의(D) | 강남권의 후발대형교회 |
여기서 개신교의 (사회적) 신앙 유형을 해방 이후부터 살피면, 1945~1960년경까지는 극우반공주의적 신앙(A1)이, 1960~1990년경까지는 성공지상주의적 신앙(B)이, 그리고 1990년경 이후부터 극우보수주적 신앙(A2)과 웰빙보수주의적 신앙(D)이 개신교를 대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을 교회와 연관시켜 단순화하면, 각 시대별로 지배적 신앙을 대표한 교회(연합체)로 ‘A1’은 영락교회, ‘B’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그리고 ‘A2’는 한국기독교총연맹(이하 한기총)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네트워크, ‘D’는 강남-강동-분당 지역에서 급성장한 후발대형교회들이다. 1
‘A1’은 해방이후 강한 좌편향 성향이 지배적인 남한사회를 극우반공적 사회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영락교회를 필두로 하는 ‘서북주의’ 2가 개신교를 주도하게 됨으로써 형성된 신앙유형이고, ‘A2’는 권위주의적 체제와 코딩된 극우주의가 청산의 대상이 되던 민주화 시대에 사회를 극우보수주의적으로 반전시키고자 했던 한기총 네트워크 중심의 신앙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A1’와 ‘A2’는 이념적 가치와 더 많이 결합된 신앙양식이다.
반면 B와 D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더 깊게 연결되어 형성된 신앙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바로 B와 D, 즉 자본주의와 신앙이 연결된 양상에 주목한다. B-유형의 신앙을 대표하는 대형교회는 1960~1990년경의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형성 과정과 맞물리면서 형성된 신앙양식이 교회 성장에 깊게 연관되어 있고, D-유형의 대형교회는 1990년대 이후의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양상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형성된 신앙양식과 관련이 있다. 아래에서는 시대를 달리하며 형성된 두 가지 유형의 신앙양식과 대형교회를, 그 시대 자본주의와의 상관관계를 주목하면서 살펴볼 것이다.
성공지상주의 신앙
‘돌진적 발전’(rush-to development)이라는 용어는,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하트-랜스버그(Hart-Landsburg, 1993) 3이후, 1960~1990년경 한국사회의 초고속 성장을 특징짓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것은 1인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사회의 가용자원에 대한 운용권을 독점하고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하여 사회의 총량적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기에 한국사회의 성장률과 비슷하게 매년 평균 10% 정도로 교세가 늘어난 한국개신교의 성장도 돌진적 성장(rush-to growth)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이 시기에 한국개신교의 성장을 주도한 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필두로 하는 대형교회들임을 주지해야 한다. 1,200~1,500개 정도로 추산되는 미국의 대형교회에 비해 한국은, 2004년으로 추산하면, 880여개 정도지만 전체 교회수 대비 대형교회의 비율이 미국교회의 0.005~0.007%에 비해 한국은 1.7%에 달한다. 4 이것을 더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1993년 《크리스찬월드》(Christian World)에 실린 교인수로 보는 세계교회 순위다. 여기서 한국교회는 1위와 2위를 포함해서 10위까지 5개, 그리고 50위까지 23개나 된다. 이것은 한국개신교의 성장에서 대형교회의 성공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대형교회가 아닌 98%에 달하는 교회들 가운데 절대다수의 교회들은 대형교회를 꿈꾸며 프로그램과 제도 및 담론을 모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극소수의 ‘작은교회’ 5들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교회들은 ‘짝퉁대형교회’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개신교의 성장을 ‘대형교회 현상’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1960~1990년대 한국 대형교회 현상을 상징하는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다. 이 교회 부설 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이던 홍영기는 대형교회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 6에서 대형교회 리더십을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해석하였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교회의 가용자원을 독점한 절대1인의 위상을 지닌 카리스마적 리더가 교회를 성장동원체제로 구축함으로써 대대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시기 한국개신교의 비약적인 성장이 같은 시기 한국사회의 성장처럼 ‘돌진적 성장’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가 주장한 ‘3박자 구원론’은 이 시기 성장 중심적 총동원 체제를 상징하는 신앙담론이다. 1960년 당시 대중은 1인당 국민소득이 79불로 필리핀의 1/3도 안 되는 극빈수준이었다. 더욱이 순복음교회의 성공의 출발점인 대조동 달동네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빈곤한 대중들의 공간이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궁핍했고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으며 만성적인 질병과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 대한 사회적이거나 의료적인 돌봄의 시스템이 거의 제로상태였던 국가는 아무런 안전망도 제공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조용기는 영적 구원에 건강과 풍요라는 세속적 구원을 ‘원+원’으로 결합한 축복론을 설파했다. 이것이 바로 3박자 구원론이다.
이것은 대중의 질병 치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그의 은사집회를 통해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그것을 간증 형식으로 널리 전파하는 전도부인 역할의 구역장들을 통해 이 축복담론은 대대적으로 인플레이션 현상을 일으켰다. 이들 간증하는 전도부인들은 시골마을의 기적적인 성공신화를 간증하는 새마을운동 지도자와 비슷한 존재였다. 이렇게 조용기의 축복론과 그것의 매체 역할을 했던 은사적 부흥집회, 그리고 전도부인들의 간증이 결합되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폭발적인 성공이 가능했다.
이러한 성장의 네러티브는 무수한 교회들에 의해 모방되었다. 조용기 같은 은사자 역할을 대행하는 순회부흥사들이 대대적으로 등장하여 담임목사와 순회부흥사가 결합한 은사집회들이 거의 모든 교회들과 신자들을 은사주의에 빠지게 했고, 각 교회마다 간증요원들이 열렬히 교회 밖 도처를 다니며 전도에 열을 올렸고, 이들보다는 훨씬 소극적이지만 거의 모든 신자들이 이러한 간증과 전도활동 요원이 되었다. 이것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열광적인 성장주의적 총동원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3박자 구원론 같은 축복신앙으로 무장한 신자대중은 교회의 성장을 위해 매진할 뿐 아니라,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을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수많은 신자대중으로 하여금 당시 국가적 총동원체제의 적극적 수행자가 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신자들의 간증 러퍼토리에 궁핍에서 풍요로의 사회적 성공스토리가 포함되게 했다. 필경 이러한 삶의 태도는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사회적 성공의 심리적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성공요인들이 담론 속에서 은폐되고 신앙적 요소가 과장되게 드러나는 이유가 되었을 수 있다.
이러한 담론 양상은 개신교를 성공한 사람들의 종교가 되게 하는 데 중요한 이유가 된다. 물론 신자대중 가운데는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 혹은 성공하지 못함을 자신의 약한 신앙심 탓으로 돌림으로써 실패에 대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식을 발전시키는 데는 훨씬 더뎠다. 반면 그러한 신앙은 국가적인 발전주의적 총동원체제에 충성하는 태도를 북돋는 종교적 장치로 기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해서 개신교회는 실패 혹은 성공하지 못함에 대한 사회구조적 문제의식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나아가 권위주의적 독재체제에 동조하게 했다.
또한 사회, 국가, 교회, 개인 등의 총량적 성공, 성장, 발전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삶의 질, 인권, 쾌락, 여가, 환경 같은 총량적 성공지상주의와 종종 대립적일 수 있는 요소들을 간과하게 했다. 그것은 신앙제도나 신자됨의 요건 속에 이런 다른 요소들이 깊게 스며들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것은 돌진적 성장으로 특성화할 수 있는 산업화시대 한국자본주의가 이 시대 개신교 신앙과 긴밀하게 어우러짐으로써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돌진적 성장의 문제를 비평할 능력도 대안적 삶을 구성할 능력도 결핍된 종교라는 한계적 요소를 노정했다고 할 수 있다. 돌진적 성장 시대 한국개신교는 이러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내포하는 방향으로 경로화된 것이다.
웰빙보수주의 신앙
1990년 어간 한국사회의 경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요소는 민주화와 소비사회화다. 이것은 과거 돌진적 성장 시대의 한국사회를 이끌었던 제1요소인 절대적 주권을 가진 카리스마적 리더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다른 요소들이 대두하는 사회적 맥락이 된다.
여기서 다른 요소란 주권(을 가진)대중으로서의 시민 혹은 소비자를 뜻한다. 돌진적 성장 시대에 ‘국민’이 있었다면 민주화 시대엔 ‘시민’이 대두한다. 국민이, 국가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을 동일시하면서 후자를 전자에 의해 좌우되는 종속변수로 인식하는 대중을 뜻한다면, 시민은 자신의 성공과 사회/국가의 성공이 동일시될 수 없음을 직시하면서 사회/국가와 교섭하는 대중을 의미한다. 7 또 소비자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자신의 선택을 기획하는 주체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시민이나 소비자는 주권대중인 셈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한국사회는 저성장 혹은 성장지체 상황에 놓였다. 동시에 돌진적 성장의 질서에 전 국민이 총동원되던 시대가 종식되었다. 시민/소비자는 각자 사회/국가가 망각하게 했던 요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서 시민/소비자가 체제에 의한 망각의 장치를 돌파하는 사건을 ‘성찰’(reflexibility)이라고 부른다면, 돌진적 성장 체계에 의해 은폐되었던 요소들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첩첩이 싸이면서 임계점(critical point)에 도달한 위험의 양상이 드러났다. 게다가 자본의 운동을 경계 짓게 하던 산업화시대의 국경들이 대대적으로 뚫리기 시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바 자본의 ‘지구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험 또한 국경을 월장했다. 이른바 위험사회가 대두한 것이다.
시민/소비자의 성찰은 돌진적 성장 체제가 망각하게 했던 위험 요소들을 관리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전략적 행동은, 하버마스 식의 범주로 나누면, 체제의 차원(정치, 경제의 범주)과 생활세계(사회, 문화의 범주)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이중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성찰에 기반을 둔 전략적 행동을 나타내는 표현이 ‘웰빙’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웰빙’이라는 삶의 태도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먹거리 문제를 중심으로 처음 등장한 이래 생활세계의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한편 한국개신교도 1990년대 이후 저성장 혹은 성장지체 상황에 놓였다. 또한 이 시기에 한국개신교는, 한국사회와 비슷하게, 돌진적 성장에 기반을 둔 성장동원체제가 붕괴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 한국개신교는 새신자의 유입이 현저히 감소한 반면 수평이동 신자들은 여전히 많았다. 여러 연구들을 보면 수평이동 신자들의 비중은 전체 교인수의 45~75%에 달한다. 8 한데 수평이동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1990년대 이전 시대의 수평이동은 새신자들이 은사자나 담임목사의 동선을 따라가며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후의 수평이동은 교회의 주요직분을 경험했던 신자들이 교회나 목사에 실망하여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9 전자에서 이동의 동기가 신뢰였다면 후자는 불신인 것이다. 그리고 전자가 신앙적 자의식이 낮은 이들의 이동이라면 후자는 자의식이 높은 이들의 이동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더욱이 앞 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개신교회의 축복론은 개신교 신자의 사회적, 경제적 신분상승 혹은 계층이동을 야기시켰는데, 특히 주요 직분을 경험한 이들은 대체로 일반 신자들보다 사회경제적, 상징적 자본을 더 많이 가진 이들, 곧 사회적 엘리트 계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이들이 더 많이 수평이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 곧 교세 정체 시기에 급성장한 교회들, 그리하여 대형교회로 발돋음한 교회들은 강남, 강동, 분당 지역에 집중되었는데, 그들은 다른 지역의 신자들보다 사회경제적, 상징적 자본을 더 많이 가졌다. 그런데 수평이동 신자 현상이 가장 왕성한 곳이 바로 이 지역들이었다. 요컨대 이 시기 수평이동 신자들은 사회적 자존성과 신앙적 자존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들이었다는 얘기다. 10
한편 이 시기는 정보화사회로의 변화가 급속하게 일어나던 시절이다. 하여 수평이동 신자들은 열렬히 교회를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공부하였는데, 정보화사회는 그들에게 교회와 목사들을 비교・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하여 수평이동 신자들에게서 순응적 신자로부터 비평적 신자로의 변화가 더 많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소비자가 상품을 심사숙고하면서 비교검토하는 것과 유비적이다. 즉 ‘팬덤적 신자’에서 ‘컨슈머적 신자’로의 전환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수평이동 신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대중의 주체성 강화 현상을 지시하기 위해 ‘신자의 주권화’와 ‘주권신자의 탄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11
그런데 주권신자들은 과거 돌진적 성장의 신앙이 망각하게 했던 요소들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즉 주권신자들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신앙제도나 신자됨에 대한 전략적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일단의 교회들이 그런 행동들을 조직화하여 주권신자화된 이들을 교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해서 대형화에 성공한 교회들은 주권신자들의 취향과 관심을 담아내는 다양한 신앙적 개혁을 도모하는데, 그런 개혁이 캐릭터로 정착하여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이들을 교인으로 유입하는 데 성공한 교회들을 ‘캐릭터대형교회’라고 부르고자 한다. 12 가령, 시민/소비자의 현대적 욕구와 성령운동을 결합시킨 경배와 찬양이라는 캐릭터의 교회, 사회적 주권의식과 신앙적 주권의식을 프로그래밍한 제자훈련 캐릭터의 교회, 성장지상주의 해체를 캐릭터화한 교회, 재정투명성을 캐릭터화한 교회 등등이 그렇다.
나는 이러한 요소들을 통칭해서 ‘웰빙의 신앙화’ 현상이라고 본다. 돌진적 성장의 체제가 망각하게 했던 요소들에 대한 성찰, 그것이 전략적 행동으로 표출하여 교회의 캐릭터화를 가능하게 했던 신앙의 양상을 말하는 것이다.
한데 교회들의 이러한 웰빙의 신앙화는 소비사회의 자본 운동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가령 김동호의 ‘청부론’ 신앙은 조용기의 ‘3박자 구원론’과 대조적이다. 양자가 공통된 것은 한국개신교의 중심기조였던 근본주의 신앙을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이분법이 근본주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용기와 김동호에게서 이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이 밀접히 연루되어 있다. 전자가 ‘축복의 관점’에서 둘을 연결시킨다면, 후자는 ‘윤리의 관점’에서 통합한다. 즉 조용기는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 서로 결합된 ‘신의 선물’을 강조하고 있고, 김동호는 두 영역 어느 것도 소홀하지 않는 ‘선물의 관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문제는, 조용기의 3박자 구원론이 절대결핍의 대중에게 자존성과 임파워먼트를 부여하고 있지만 욕구 과잉의 대중에겐 배금주의적 권력욕망을 부추기는 신앙담론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김동호의 청부론은 욕구과잉의 대중에게 욕구를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만 박탈당한 대중이나 그러한 박탈체계 자체를 신앙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게 하는 ‘개인 윤리’로 환원되어 버렸다는 점에 있다. 가령 그는 ‘은퇴는 반납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권력과 그 흔적들을 반납하는 행위를 신앙의 요목 속에 담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을 반납하고도 생존할만한 잉여자산이 있어야 가능한 행위다.
그런데 그런 잉여자신을 가진 이들이 선택한 웰빙적 자기관리는 단순히 반납으로 그치지 않고 초과이윤을 발생시키는 자본으로 환치된다. 그는 과잉성장하여 대형화된 교회를 독립적인 네 개의 교회로 분절시켰지만 그 교회들은 또 다시 과잉성장하여 네 개의 대형교회들이 되었다. 즉 성장의 해체와 권력의 반납이라는 행위가 상징자본으로 변환되어 교회성장이라는 초과이윤을 발생시킨 것이다. 요컨대 청부론은 상징권력이 자본축적에 유용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잉여자산이 결핍된 자는 소비사회의 웰빙적 신앙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전제하고 있다. 즉 웰빙적 신앙은 중상위 계층의 성찰과 잘 연결되는 반면, 중하위계층의 성찰이 되기는 여의치 않다.
이렇게 청부론적 신앙과 같은 ‘웰빙적 성찰의 신앙’으로 유형화할 수 있는 신앙양식은 사회적 자산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체계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지 않고도 웰빙적 성찰의 삶의 가능성에 천착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상윤지의 신앙’이다. 또한 그 속에서 웰빙적 성찰의 미학을 추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웰빙보수주의 신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여 웰빙보수주의 신앙양식을 추구하는 대형교회들은 현실의 사회를 그와 같은 중상위계층 중심의 성찰의 미학화라는 가치로 경로화하려는 사회적 운동체로 존재한다.
작은교회의 정치경제학
돌진적 성장의 시대 한국개신교가 ‘빈민의 중상위계층화’라는 신앙적이고 사회적인 변혁의 종교성을 추구했다면, 신자유주의 시대 웰빙보수주의적 개신교는 ‘중상위계층의 자기 미학화’라는 신앙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유지의 종교성을 발명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 속에 내포된 두 유형의 자본주의적 성찰의 신앙은 ‘성장하지 못함’ 혹은 ‘자산 박탈’의 메커니즘을 성찰의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한데 그리스도교는 ‘신이 사람이 되었다’는 원초적 신앙고백에서 유래한 종교다. 이것은 절대적 충족의 상태에서 절대적 결핍의 상태로의 하방, 그러한 신의 실천이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 된다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성이다. 반대로 한국개신교는,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하는 성장의 신앙을 추구했고 ‘위’의 범주에서 현상유지의 신앙을 발명했다. 즉 대형교회로 표상되는 한국개신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초적 성찰이 부재한 부분을 발전시킨 반면, 그 원초적 성찰 자체를 신앙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성장하지 못함, 혹은 박탈당함이 신앙적이고 사회적 성찰의 중심적 요소임을 주장하고 있는 작은교회의 정치경제학적 신앙은 오늘 한국개신교의 공백을 매우는 유용한 실천이 될 수 있다. 작은교회는 1인의 카리스마적 권력이 잘 실행되기에는 효과적이지 않은 요소가 많지만 공동체 안에서 수평적 네트워크가 강화될 수 있는 요소가 훨씬 많다. 하여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제도와 담론을 발전시키기에 용이한 신앙적 단위다. 또한 작은교회는 홀로 할 수 있는 게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이웃과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 용이한 신앙적 단위다. 그런 점에서 이질적인 대상과의 수평적 연대에 더 열린 공동체다. 그런 점에서 낯선 존재와의 마주침이 일상화된 오늘의 사회성과 작은교회는 친화적이다.
문제는 작은교회는 부족한 자원 상황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은 작은교회의 가능성의 지표이기도 하다. 작은교회가 이질적인 대상과의 수평적 연대가 용이한 공동체가 되기 위한 담론적이고 제도적인 성찰에 힘을 기울인다면, 홀로 성장하여 부유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결핍의 존재들의 자원 부족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연대활동에 더 적합한 종교적 단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공적 장들(fields)의 확대와 복지의 확대를 향한 사회적 연대를 신앙화하려는 운동이다. 이것은 위기를 성찰하는 신앙, 즉 웰빙의 신앙이 현상유지의 미학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와 결합하는 것이 아닌, 양극화에 대한 구조적 변화의 미학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와 결합하는 신앙이다. 즉 웰빙진보의 신앙의 단위로서의 작은교회가 요청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여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연합체로서 한국기독교교회연합의 주요한 과제의 하나는 작은교회운동을 신학적이고 신앙적으로 지원하는 종교적 장치를 구축하는 데 있을 것이다. □
- 한국개신교의 대형교회는 대략 880여개로 추산되는데, 이중 1940년대 후반에 대형교회로 부상한 영락교회와 일부 대형교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두 번의 웨이브를 이루며 등장한다. 첫 번째 웨이브는 1980년대, 그리고 두 번째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나타난다. 모든 대형교회들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두 웨이브와 관련해서 선발대형교회와 후발대형교회라는 두 유형의 아이디얼 타입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전자가 한국사회의 초고속 성장과 개신교 교세의 초고속 성장이 서로 조응하는 가운데 대형화에 성공한 교회들과 상관이 있다면, 사회의 저성장-교세의 저/역성장의 상황에서 대형화에 성공한 교회들을 후자와 연관시켜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서 선발대형교회가 새신자의 대대적인 유입에 의해 급부상한 교회들과 관련이 있고, 후발대형교회는 교회를 옮겨 다니는 수평이동 신자의 유입에 의해 급부상한 교회들과 연관된다. 1990년대 이후 수평이동 신자들의 비율은 전체 개신교 신자의 45~75%에 달하였는데, 사회경제적, 상징적 자본을 더 많이 가진 이들일수록, 그리고 교회에서 주요직분을 경험한 중년의 신자들일수록 교회간 수평이동에 더 적극적인 경향이 있다. 더욱이 이들 수평이동 신자들은 교회를 찾아다니는 중에 신학과 교회에 대한 비평적 지식을 더 많이 습득함으로써 신앙적 주권의식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까다로운 비평가적 신자들을 나는 ‘주권신자’라고 명명했는데, 이들 떠돌이 주권신자들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주권신자들의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된 교회들이 바로, 내가 주장하는, ‘후발대형교회’다. [본문으로]
- ‘서북주의’는 평안도-황해도 지역을 가리키는 서북지역에서 과잉발달한 근본주의 신앙이 1945년 이후 이 지역 출신 월남자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공주의와 결합되어 나타난 신앙유형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 Martin Hart-Landsburg, The Rush-to Development: Economic Change and Political Struggle in the South Korea (NY: Monthly Review Press, 1993) [본문으로]
- 교회성장연구소 교회경쟁력연구센터 엮음, 《한국교회 경쟁력 보고서》(교회성장연구소, 2006), 37쪽. [본문으로]
- 최근 한국개신교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교회 운동의 용례에 따르면, ‘작은교회’는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작음 자체의 의미를 추구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다. [본문으로]
- 홍영기, 《한국 초대형 교회 와 카리스마 리더십》 (교회성장연구소, 2001). [본문으로]
- 김진호, 〈민주화 시대의 ‘미학화된 기독교’와 한국 보수주의〉,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민주화는 실패한 기획인가, 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웅진지식하우스, 2007) 참조 [본문으로]
- 2002년에 수행된 조사를 분석한 교회성장연구소의 〈2003년 한국교회 교인 수평이동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76.5%의 신자들이 수평이동을 했다. 교회성장연구소, 〈한국교회 교인의 수평이동 및 교회 선택 요인에 관한 연구〉, 《한국교회 교인들이 말하는 교회 선택의 조건―한국교회 교인 수평이동에 대한 연구》 (교회성장연구소, 2004). 한편 최현종 교수(서울신학대학)가 2011~2012년에 수행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43.5%가 수평이동을 했다. 최현종, 〈한국 개신교의 새 신자 구성과 수평이동에 관한 연구〉, 《한국기독교신학논총》 91/1 (2014.01). 한국갤럽이 1997년에 수행한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 신자의 수평이동률은 59.7%이다. 이원규, 〈21세기 한국교회의 변화와 수평이동 현상〉, 《신학과 세계》 52(2005 봄), 151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한국목회자협의회, 《한국기독교 분석 리포트》(도서출판 URD. 2013) 참조. [본문으로]
- 김진호, 〈탈종교시대 새로운 종교성―교회 국경을 넘는 신자들, 종교국경도 넘다〉, 《전법학연구》 11(2017) 참조. [본문으로]
- 김진호, 〈주권교인의 탄생〉, 《웰빙보수주의와 그리스도교》(가제. 근간) 참조. [본문으로]
- 김진호, 〈주권교인과 교회의 캐릭터〉 I & II 웰빙보수주의와 그리스도교》(가제. 근간)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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