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

안식일과 일요일

이 글은 2012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자리에서 출간된 [교회에서 알려주지 않는 기독교 이야기]에 실린 나의 글입니다. 나름 괜찮은 글들이 많은데, 주목받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입니다.  



안식일과 일요일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Bar Kochba uprising

서기 132년 바르 코흐바(Bar Kochva)가 이끄는 20만 명의 이스라엘 저항군의 반로마 항쟁은 3년간이나 지속되었고, 그 치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계 최강의 군대인 로마군의 피해도 막심했다. 로마군은 반란을 진압하면서 잔혹한 보복을 가했다. 이때 학살당한 이스라엘 사람의 수가 60만 명이 넘었다.(이 숫자는 많이 과장된 것이겠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는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킨 이스라엘인들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세 가지 극단적 금지조치가 취해졌다. (1)토라(오경)의 사용 금지, (2)할례 금지, (3)안식일 예배 금지. 한마디로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겠다는 것이겠다. 이 조치와 함께 제국 전역에서 유대인을 포함한 이스라엘계 이민자에 대한 혹독한 탄압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숱한 종족 테러가 벌어졌다.

사마리아인들도, 비록 유대인들과는 심한 갈등관계에 있었지만, 정작 로마인들의 눈에는 유대인으로 보였기에 그들도 이러한 인종 탄압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들도, 이미 반세기 전인 서기 80,90년대부터 강경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수많은 회당에서 속속 축출되었지만, 로마인들의 눈에는 유대인의 일파에 다름 아니었다.

이에 일부 그리스도교계 지식인들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는 다르다는 것을 강변하였다. 그들을 일컬어 교회사가들은 변증가(apologists)라고 부른다. 한데 이들 변증가들의 논리 속에는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이 아닌 태양의 날에 예배를 드린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여기서 태양의 날일요일(日曜日)을 뜻하며, 이 날에 예배드리는 것은 제국에 널리 퍼져 있던 태양숭배신앙의 한 관행이었다.

사실 이때까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다. 요한계시록110, 밧모섬에서 묵시가가 계시를 받은 날은 주의 날이었다. 그리고 이 문서의 저술시기인 서기 90년대에 주의 날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안식일이었다. 서기 135년 이후에야, 안식일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많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들은 대안으로 일요일에 예배 모임을 갖게 되었다. 특히 로마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제국 동쪽 지역까지 황제의 금지령이 촘촘하게 작동하지는 않았다. 해서 소아시아와 북부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지역에서는 여전히 안식일에 예배모임을 갖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많았다. 이러한 사정은 2세기 중반 이후부터 지중해 동서 지역의 그리스도 공동체들 간의 안식일 논쟁을 야기시켰다.

정리하면, 서기 135년 이후 제국 서부 지역의 그리스도 공동체들 사이에서 일요일 예배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변증가를 중심으로 그것을 신학화하려는 시도들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사마리아 출신의 플라톤주의 철학자로 순교자가 된 유스티노스(Justine Martyr, 100년경~165년경)는 태양의 날이 새로운 예배 요일로 선택된 것은 예수가 안식 후 첫날 부활했다는 점때문임을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태음력 요일인 안식일을 태양력의 토성의 날(토요일)로 규정하면서, 한 주의 마지막 날인 안식일을 지나 그 다음 날 주가 부활했다는 점에서 일요일이 바로 주일이라고 해석한다. 이렇게 하여 주일=일요일신학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한편 서기 324년 니케아 교회회의(The Council of Nicaea)의 결의사항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칙령으로 반포할 때에 일요일 휴일령이 함께 포고된다. 비록 황제의 칙령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다수를 이루는 태양의 날 숭배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황제 자신도 그리스도인으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고 여전히 태양의 날 숭배자였다. 하지만 그가 서기 313년 그리스도의 교회를 제국의 공인 종교로 승격시켜 준 장본인인데다, 니케아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비용 일체를 제공하였고 또 갈등을 조정하여 합의를 이끌어낸 장본인이었기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황제의 일요일 휴일령이 곧 주일 휴일령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것은 그때까지도 안식일을 주일로 고수했던 제국 동부의 교회들을 압박했고, 지중해 전 지역에 대한 로마교회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 343, 이탈리아 반도의 주교들이 모인 사르디카 교회회의(The Council of Sardica)에서 일요일을 주의 날로 규정하고, 그 날의 준수를 의무화했다. 물론 여전히 제국 서부에서만 통용되는 규칙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363, 성서의 정전화(canonization)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라오디게아 교회회의(The Council of Laodicea)에서는 이를 제국 전 영역의 교회를 향해 재확인함으로써 일요일은 그리스도교의 예배일로 제도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하여 주의 날로서의 일요일(주일=일요일)은 서기 135년 이후 2세기 넘는 기간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인의 안식일을 대체하는 그리스도교의 대안적 예배일로 점차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의 날로서의 일요일(‘주일=일요일’)은 성서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그것은 안식일에 예배모임을 가질 수 없었던 2세기의 독특한 역사 때문이다. 안식일의 대안으로 일요일이 선택된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성행하던 태양숭배종교들의 예배일이 바로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에게 위험하지 않은 종교임을 과시하기에 그날만큼 안성맞춤의 날은 없었다. 게다가 유스티노스의 변증처럼, 그 날이 주가 부활한 날로 해석하기에 적절하다는 점에서 주일=일요일은 마치 성서가 예비한 날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

이후 교회들은 주일=일요일의 전통을 새로운 안식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여 하느님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한 십계명의 제4계명(출애굽기20,8~11; 신명기5,12~15)은 이제 일요일에 관한 얘기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새로운 안식일인 일요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해석하는 데 있었다.

 

새로운 안식일교회의 가르침 속의 주일=일요일

 

교인의 다수가 하급노동자이거나 노예 혹은 직업군인이었던 그리스도교의 사정에서 예배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 가까스로 수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이 공휴일로 확정됨으로써 일상의 과제로부터 벗어난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어떻게 보낼지의 문제에 직면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의 안식일 전통은 하나의 선례가 되었다.

2세기 말, 리용 지역의 교회 지도자였던 이레니우스(Irenius, 130년경~202)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쾌락을 쫓는 일에 몰두하고 있음을 비난했다. 이것은 많은 유대인들에게서 이 날이 종교적 경건보다는 잔치가 벌어지고 음주가무를 벌이는 축제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당시 하급노동자나 노예가 많았던 교회로서는 주일=일요일에 풍족한 음식이 베풀어지는 잔치가 벌어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레니우스와 3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교회 지도자로서 엄격한 금욕주의자인 오리게네스(Origenes, 185년경~254년경) 등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그날을 잔치가 벌어지는 축일로 보내는 것은 그리스도 공동체들의 일반화된 현상이었다.

하지만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종교로 공인해준 이후, 그리스도의 교회는 다른 비공인 종교들에게서 몰수한 막대한 재산을 당국으로부터 기부받았고, 많은 자산가들을 개종자로 흡수하였다.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는 풍족해졌고, 복잡한 관리 운영체계를 갖추어갔다. 이는 주일=일요일의 준수가 단지 축제로만 채워질 수 없는, 다양한 방식의 활동을 필요로 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주일=일요일을 보내는 데 있어 교회활동의 영역이 확연히 늘어난 것이다.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 오늘날의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의 대주교이자 당시 그리스도교 전체의 최고지도자였던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nnes Chrysostomus, 349년경~407)주일=일요일은 교회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포고했다. 이제 주일 성수는 교회활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중세에 이런 전통은 더욱 강화되었는데, 수많은 교회적 계율들이 신자들의 주일=일요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주일 성수에 관한 무수한 기복적 설화들이 신자 대중의 일상적 믿음 주위에 바리케이드처럼 둘러쳐 있었다. 종교개혁가들인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나 칼뱅(Jean Calvin, 1509~1564)이 주일 성수에 대하여 교회적 활동보다 영적인 준수를 더 강조했던 것은 중세 교회들의 지나친 기복적 주일 성수 전통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종교개혁 전통의 교회들도 주일 성수를 교회에 대한 충성심을 확보하는 규율적 요소로 제도화했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이후 공휴일이 된 주일=일요일일을 단지 축제일로 보내는, 자칫 방만한 활동에 몸을 놓아버릴 우려로부터 방어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에 분명하다. 이런 규율들을 통해 사람들은 하루 종일 교회의 가르침을 몸에 새기는 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교회활동으로 주일을 보내는 관행을 일반화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교회적 규율에 순응하는 삶과 신앙의 수동성에 묶어버린 자로 신자들의 몸과 영혼이 조직화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대다수 열정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일 성수는 결국 교회를 위한 일, 교회를 위한 기부 등으로 환원되는 일체의 교회활동에 열렬히 매진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처럼 이해되었다. 이렇게 주일 성수 신앙은 성찰이 실종된 채 열정이 넘쳐나는 종교로 그리스도교가 변질되는 신앙적 배후가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일반적인 주일 성수 담론을 정리해 보자. 말했듯이 주일 성수 담론의 요체는 신자들이 주일=일요일을 교회 활동에 몰두하게 하는 데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일=일요일그 단 하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하나의 시간적 은유다. 7일 가운데 하루가 아니라, 전체를 대표하는 하루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 신앙은 신자들이 살아 있는 모든 날을 교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을 상징하는 하루에 관한 신앙이다.

나아가 주일 성수 담론은 교회에 대한 충성심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은 전체 사회에서 신자 개체에까지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공간으로 침투한다. 하여 주일 성수를 하지 않는 사회나 개인, 곧 그리스도교 문화로 제도화되지 않은 사회나 개인은 그리스도교화되어야 하는, 개종과 계도의 대상이다.

이것은, 주일 성수를 하는 사회는 세계를 계도하고 지배하는 나라가 되어 마땅하고 그렇지 못한 사회는 감시와 통제를 받는 나라가 되어 마땅하며, 또한 주일 성수를 하는 개인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가르침을 주는 이가 되어 마땅하고, 그렇지 못한 개인은 감시와 통제를 받는 자가 되어 마땅하다는 생각과 연계된다. 요컨대 감찰의 논리가 주일 성수 담론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즉 주일 성수는 지배와 통제의 담론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주일=일요일을 특별한 날로 지키는 문화적 관행을 가진 나라는 서구 제국들이다. 또한 그날을 노동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개인은 일상에서 적어도 하루를 휴일로 지내는 것이 가능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아 집과 교회 밖에서 딱히 여흥을 즐길 시간을 보낼 데가 없는 서양에서 일요일은, 유대인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존재에서 존재자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비경제 활동의 시간이며 한 주일의 노동과 수고의 대가로 주어진 여가의 시간일 수 있다. 또 서구 사회에 속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일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경조사나 단합대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며 각종 자격증 시험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만이 주일 성수를 만족할만하게 기획할 수 있다. 그런 사회와 사람들에게나 교회가 가르치는 주일 성수 신앙은 충족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회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일 성수 담론에 의해 채근당하고 관리 관독의 대상으로 처리되는 것, 주일 성수의 담론적 효과는 이렇게 작동한다.

 

새로운 새로운 안식일성서의 가르침 속의 주일=일요일’, 그리고 현대의 주일=일요일

 

한데 성서에서 예수는 바로 그렇게 작동하고 있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해석을 주도하는 안식일 담론과 일전을 벌인다. 유대사회가 오랫동안 식민지로 살고 있는 이유는 율법에 충실하지 유대 못한 백성들의 삶의 태도 때문이며, 거기에서 벗어나려면 율법과 그 핵심의 하나인 안식일 계율을 준수해야 한다. 하여 모든 유대인은 안식일에 노동하지 않아야 하며, 나아가 회당의 가르침에 따라 하루를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리새파의 주일=안식일성수 담론이다.

마가복음31~6절의 이야기에서, 바리새 사람들은 누가 안식일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자로 나온다. 회당 안에서 그 감시의 시선을 뒤로 하고 예수는 손이 굽은 병자를 앞으로 나오게 한다. 그이는 응급환자가 아니다. 오늘 고치지 않아도 죽을 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이는 그런 장애의 시간이 끝없이  이어지는 질곡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런데 숱한 병자를 고쳤다는 풍문의 주인공 예수가 그이를 그날 불렀다. 이제까지 그 부름을 받지 못했고, 오늘이 아니면 그 부름을 결코 받지 못할 수 있는, 그이에게는 오직 그날뿐인 부름에 직면했다. 그이에게는 다시 올 수 없는 질곡에서 해방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감찰자들은 그 병자가 그 날에 해방되어서는 안 되는 날로 규정짓고, 예수가 그것을 위반하는지를 감시하고 있다. 곧 바리새파의 안식일은 그 날에 해방받지 않아는 되는 사람의 날인 셈이다. 다른 날을 기다릴 수 있는 자들의 날이고, 끝없이 지연되는 해방의 시간에도 뼈에 사무치게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자의 날이다.

이와 같이 예수가 비판적으로 보았던 유대교의 안식일이나 그리스도교 일요일은 감찰자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것은 감찰자의 종교에 다름 아니다. 해방에 관한 메시지는 있지만, 실제로는 해방 약속을 빌미로 통제를 하고, 그 통제를 정당화하는 종교다.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그것은 제국의 종교이기도 하다. 제국에 의한 통제를 정당화하고 그러한 통제의 기술을 공여하는 종교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앞에서 예수가 그런 안식일과 싸운 것처럼, 성서의 안식일, 주일이 아니다. 가령 십계명에서 안식일은 제7일에 주가 쉬었듯이 이 계명을 받는 당신도, 당신의 가족, , 가축, 더부살이 하는 이방인도 함께 쉬게 하라는 계명이다. 지배자들에게 감찰하라고 준 계명이 아니라 지배자로 하여금 그이에게 귀속된 모든 존재를 감찰에서 해방시켜 주라는 계명이 안식일 계명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최소한의 요건이다. 7일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날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더 확장하라는 것이다. 요컨대 성서의 안식일은 감시와 통제의 날이 아니라 해방과 자유의 날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의 주일 성수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아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그것을 재해석한 이는, 그리스도교 사상가가 아니라, 유대교 사상가인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이다. 그는 1951년에 저술한 책 안식일(The Sabbath)에서 신이 창조 후에 모든 일에서 손을 뗀 날이 안식일로 표상되었다는 점을 주목한다.(“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창세기2,3) 6일간의 창조는, 그에 의하면, 신이 공간을 점령해간 것이다. 혼돈의 공간, 질서 외부의 야생의 공간에서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다. 그런데 안식일은 그러한 공간 정복의 생산적 과정을 중단시키는 시간의 도래를 뜻한다. 공간의 정복의 역사가 시간에 의해 중단된 것, 바로 그것이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출애굽기208~11절과 신명기512~15절에서 신은 이 날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한다. 이제 신의 쉼은 인간의 쉼으로 이전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공간을 점령하고 그곳에서 초과이윤을 생성시키는 발전의 법칙을 따라 살아간다. 거기에서 문명이 발전하고 역사가 생성된다. 안식일은 바로 이런, 인류가 추구해온 정복과 발전의 공간 법칙이 멈추는 시간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본주의적 공간의 역사에 대한 그의 비판이 담겨 있다. 즉 공간의 정복을 지향해온 인류의 기술문명을 멈추게 하는 시간, 기술문명이 통제하는 공간의 질서 속에 끼어들어 그것을 전도시키는 시간, 그것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곧 물질의 질서에 따라 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에게 탈물질의 질서를 몸에, 사회에 부여하는 날, 그것이 안식일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 날은 단지 7일 중 하루가 아니라, 물질문명으로 인해 소진된 인간 존재의 영성을 회복시켜 7일 모두를 사는 인간 전체에, 나아가 사회 전체에 영원의 시간을 부여하게 하는 날이다.

이러한 헤셸의 해석은 새로운 안식일로 일요일을 해석해온 그리스도교적 관점의 실패를 넘어선다. 그런 점에서 그의 해석은 새로운 새로운 안식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그 안식일은, 그에 의하면, 성서의 안식일 영성의 회복이며, 동시에 우리 시대에 의미 있는 안식일의 영성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여기서 새로운 새로운 안식일로서의 주일=일요일 신학에 관해 한 가지를 더 추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예수의 안식일 신학이다. 헤셸이 간과했던 .........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 먹는 이들을 비난하는 바리새 사람들에게 예수는 말한다. 안식일은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날이기도 하다(마가복음2,23~28). 이때 안식일의 주인공은 굶주린 이들이다. 한편 제1성서(=구약성서)의 십계명에는 가족, 가축, 노예, 이방식객을 거느린 이들에게 내린 안식일 해석이 있다. 그들은 생산을 멈추고 쉴 수 있는 자들이다. 그 쉼의 날에 자신의 일상을 지배했던 생산의 법칙, 공간 점령의 법칙에서 돌이키는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자들인 것이다. 현대사회로 오면 시민이 그런 이들이겠다. 그리고 헤셸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안식일의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한데 여기에는 점령할 일자리를 못 가진 이들, 아니 자신의 존재와 영혼까지 물질문명에 의해 도구화된 이들의 안식일이 생략되어 있다. 그들 중에는 일요일에도 쓰레기통을 뒤지는 걸인들, 일요일에도 차가운 골방에서 취업을 위해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들, 일요일에도 극도의 불안정 고용상태에서 힘겹게 땀 흘리며 노동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일요일에 일상을 지배하는 생산의 체계를 성찰하기보다는 그 체계에서 생존하는 데 급급한 이들이다. 그런데 예수가 설파한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안식일은 그날을 성찰할 줄 아는 이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그날을 성찰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안식일이 스스로 성찰하는 날이기도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올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