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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강좌

한백신학교실 시즌4 - <제2강: 페이크뉴스2 - "제발 이런 수치스런 일은 마시오"(사사기 19,23)

이 글은 '한백신학교실 시즌4 - 혐오와 억측의 성서 다시 읽기: 동성애에 대한 개신교의 페이크뉴스 맞서기'의 <제2강:  페이크뉴스2 - "제발 이런 수치스런 일은 마시오"(사사기 19,23) -부족동맹 이스라엘 해체기, 헤게모니 전쟁> (2017 06 25) 강의 원고입니다. 
동영상은 이 강좌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볼 습니다.
https://www.facebook.com/pg/HBThSch/posts/?ref=page_internal

둘째 강의_제발 이런 수치스런 일은 마시오(사사기 19,2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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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25)

페이크뉴스2_“제발 이런 수치스런 일은 마시오(사사기19,23)
부족동맹 이스라엘의 해체기, 헤게모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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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다. 롯이 소돔 성 어귀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서 맞으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청하였다. “두 분께서는 가시는 길을 멈추시고, 이 종의 집으로 오셔서, 발을 씻고, 하룻밤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길에서 하룻밤을 묵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롯이 간절히 권하므로, 마침내 그들이 롯을 따라서 집으로 들어갔다. 롯이 그들에게, 누룩 넣지 않은 빵을 구워서 상을 차려 주니, 그들은 롯이 차려 준 것을 먹었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돔 성 각 마을에서,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든 남자가 몰려와서, 그 집을 둘러쌌다. 그들은 롯에게 소리쳤다. “오늘 밤에 당신의 집에 온 그 남자들이 어디에 있소?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리고 나오시오.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 하겠소.”

롯은 그 남자들을 만나려고 바깥으로 나가서는, 뒤로 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을 타일렀다. “여보게들, 제발 이러지 말게. 이건 악한 짓일세. 이것 보게, 나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게.”

그러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에게 비켜서라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 이 사람이, 자기도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하는구나. 어디, 그들보다 당신이 먼저 혼 좀 나 보시오하면서, 롯에게 달려들어 밀치고, 대문을 부수려고 하였다.

안에 있는 두 사람이, 손을 내밀어 롯을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에, 문을 닫아걸고, 그 집 대문 앞에 모여든 남자들을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쳐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대문을 찾지 못하게 하였다.

―〈창세기19,1~11

 

그래서 그들이 그 곳을 지나 계속 나아갈 때에,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 가까이에서 해가 지고 말았다. 그들은 기브아에 들어가서 묵으려고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들어가 성읍 광장에 앉았으나, 아무도 그들을 집으로 맞아들여 묵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그 때에 해가 저물어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본래 에브라임 산간지방 사람인데, 그 때에 그는 기브아에서 살고 있었다. (기브아의 주민은 베냐민 자손이다.) 그 노인이 성읍 광장에 나그네들이 있는 것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어디로 가는 길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레위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유다 땅의 베들레헴에서 길을 떠나, 내가 사는 에브라임 산골로 가는 길입니다. 나는 유다 땅의 베들레헴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이 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나귀에게 먹일 먹이도 있고, 또 나와 나의 처와 종이 함께 먹을 빵과 포도주도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인이 말하였다. “잘 오셨소. 우리 집으로 갑시다. 내가 잘 돌보아 드리리다. 광장에서 밤을 새워서는 안 되지요.” 노인은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들은 발을 씻고 나서, 먹고 마셨다.

그들이 한참 즐겁게 쉬고 있을 때에, 그 성읍의 불량한 사내들이 몰려와서, 그 집을 둘러싸고, 문을 두드리며, 집 주인인 노인에게 소리질렀다. “노인의 집에 들어온 그 남자를 끌어내시오. 우리가 그 사람하고 관계를 좀 해야겠소.” 그러자 주인 노인이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젊은이들, 제발 이러지 마시오. 이 사람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그에게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 제발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마시오. 여기 처녀인 내 딸과 그 사람의 첩을 내가 끌어내다 줄 터이니, 그들을 데리고 가서 당신들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이 남자에게만은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마시오.”

그러나 그 불량배들은 노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레위 사람은 자기 첩을 밖으로 내보내어 그 남자들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 남자들이 밤새도록 그 여자를 윤간하여 욕보인 뒤에, 새벽에 동이 틀 때에야 놓아 주었다. 동이 트자,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이 있는 그 노인의 집으로 돌아와, 문에 쓰러져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그 여자의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 집의 문을 열고 떠나려고 나와 보니, 자기 첩인 그 여자가 두 팔로 문지방을 잡고 문간에 쓰러져 있었다. 일어나서 같이 가자고 말하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그 여자의 주검을 나귀에 싣고, 길을 떠나 자기 고장으로 갔다.

―〈사사기19,14~28

 

1성서학을 가르치는 한 신학대학 교수는 위에서 인용한 두 성서 텍스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흔히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묘사는 집단 성폭행과 동반하여 나타나는데 이는 동성애에 대한 가치평가를 보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죄악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애가 심히 왜곡될 때에 동성애로 나타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동네 청년들이 낯선 방문객 남자를 농락하려 드는 것이 동성애라고 그는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집단 성폭행과 연관시킨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그렇게 볼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놀라운 주장을 편다. 이 청년들의 동성애적 집단 성폭행 욕구가 심각하게 왜곡된 이성애 탓이라고 말이다.

그는 심각하게 왜곡된 이성애의 상황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텍스트 속에선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볼만한 구절이 있긴 하다. 집주인이 자기 딸()을 대신 농락하라고 청년들에게 말한 것, 이것이 왜곡된 이성애라는 것일까? 아비가 자기 딸을 강간하라고 말하는 건 분명 왜곡된 성 의식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을 왜곡된 이성애라고 말하려면 설명이 필요하다.

아무튼, 억지스럽지만 그렇다고 해두자. 그런데 동성애적 범죄 욕구를 드러낸 건 동네 청년들이 아닌가. 아비의 왜곡된 이성애적 문제와 청년들의 동성애적 범죄 욕구는 무슨 관계일까? 또 다시 구차한 설명이 필요하다. 어쩌면 집주인과 한동네에 사는 청년들이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고 그는 주장할지 모르겠다. 한데 청년들은 집주인의 협상안을 거절했다. 즉 그들은 아비의 왜곡된 이성애적 의식을 공유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그의 해석은 허점투성이다. 1성서 해석의 전문가인 그가 이런 터무니없는 논리를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알고 싶은 건 이것이다. 어쩌면 그는 동성애가 치명적으로 나쁜 범죄임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성서 읽기에 투영된 결과가 이것일 것이다. 물론 누구든 자신의 문제의식을 갖고 성서를 읽는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억지논리로 성서를 읽어내고 있다는 데 있다. 게다가 이렇게 해석한 것이 타인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 아니 인권모독을 수반하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인 문제다. 이성애가 극도로 왜곡된 상황에서 동성애가 등장한다는 주장은 성서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억지주장이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주장이다. 그의 심각하게 왜곡된 머릿속에서나 존재하는 억견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억견의 성서적 알리바이처럼 그가 제시하는 두 본문 중의 하나인 사사기19장의 텍스트를, 그 텍스트가 드러내고 있는 의미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다. 그것은 제1성서 전문가라는 이의 주장이 또 하나의 페이크뉴스임을 드러낼 것이다.

 

부족동맹 이스라엘


여호수아기, 사사기, 사무엘기상의 무대가 되는 사회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부족동맹체 사회다. 물론 이 텍스트들은 군주시대에 저술된 것들이다. 아마도 이스라엘국 왕실 서기관들이 최초로 부족동맹 이스라엘 시대에 관한 문헌을 남긴 장본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왕실과는 독립적인, 지방 성소의 예언자 길드에서 유래한 전승에도 부족동맹 시대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것 중 문헌 형태의 것들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구술적 기억으로 전승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한데 이스라엘국 영역에서 전승된 부족동맹 사회에 대한 문헌은 현존하지 않는다.

한데 이스라엘국에서 유래한 전승의 상당 부분이 이 나라가 멸망할 무렵 혹은 그 직후 유다국으로 전수된다. 그것을 유다국 왕실, 특히 요시야 왕의 서기관들이 위의 세 개의 두루마리 형식의 문헌으로 편찬해냈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이스라엘 부족동맹에 대한 기록은 모두 유다국 왕실의 산물이다. 그밖에 이집트의 문헌, 모압국의 문헌 등에서도 이 시대를 시사하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고, 최근에는 고고학적 유물들을 통해서도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학계에서 이 분야에 관한 논의 중 가장 활발한 것은 부족동맹 이스라엘의 출현에 관한 것이다. 이에 관한 가설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최근의 연구사적 논의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학은 크게 네 단계의 전개 과정으로 설명된다. 1920년대 이후의 알트(A. Alt) 학파와 1950년대 이후의 올브라이트(W.F. Albright) 학파는 이 분야의 고전적 가설을 대표한다. 흔히 이주가설정복가설이라고 각각 불리는 이 주장들은, 서로 대립각을 높이 세웠지만, 팔레스타인 외부에서 들어온 종족적 집단이 사회적 조직에서나 문명 수준에서나 원주민을 압도하는 새로운 사회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관점을 견지한다. 차이가 있다면 서서히 이주해 들어온 것이냐 갑자기 대대적인 정복을 통해 들어온 것이냐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신학자들이나 신학생들이 알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지식은 바로 이러한 고전 가설의 기반한 일련의 논의들이다.

한편 1970년대 중반 이후 고전 가설에 대한 수정주의적 견해가 제시되었다. 흔히 혁명가설이라고 불리는 이 논의는, 노먼 갓월드(N.K. Gottwald)의 거의 천 쪽에 달하는 대작이 그 중심에 있다. 실은 그 훨씬 이전(1962)에 올브라이트의 제자인 조지 멘덴홀(G.E. Mendenhall)이 발표한 논문에서 혁명가설이 최초로 제기되었지만, 거의 주목받지 못하다가 갓월드에 의해 연구사적 전환점으로 거론되면서 새삼 중요한 저술로 평가되었다. 이후 멘덴홀이 갓월드의 가설이 사회적 혁명을 강조하는 데 반해 자신은 문화적 혁명이라고, 양자의 차이를 부각시키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혁명가설의 가장 주된 공통점이자 연구사적 공헌은 고대 이스라엘은 외부인이 아니라 바로 팔레스타인의 내부의 기층대중에서 유래했다는 관점을 확고하게 했다는 데 있다. 또한 이들의 연구가 중요한 것은 비교인류학과의 학제간 연구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는 데 있다.

한국에서 갓월드의 기념비적 저작은 민중신학적 지향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읽혀지기 시작했고, 적어도 일각에서는 한때 열렬한 탐독의 대상이었으며, 그의 학문적 명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오늘날에는 적지 아니 회자되고 인용되는 주요 저작에 속한다. 하지만 방대한 학제간 연구의 소산으로 제기된 이 책의 풍부한 이론적 함의들은 거의 제대로 독해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더욱이 목회 현장에서는 이 책의 이론적 함의는 고사하고 문제의식의 일부라도 거의 참조되기조차 않는 상태에 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연구들이 쏟아졌는데, 이 논의들은 2의 수정주의적 연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고전가설들과 혁명가설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식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연구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내부에서 출현한 것이라는 합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갓월드를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혁명가설을 따르지 않는다. 이주가설이나 정복가설, 혁명가설이 공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잘 조직된결속체는 왕국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심지어 최근의 추세는 왕국 출현기인 기원전 10세기보다 훨씬 후대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사회문화적 결속체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이데올로기적이고 사회적인 통합의 수준을 매우 낮게 평가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다른 팔레스타인 족속들과 이스라엘이 잘 구별된사회적 실체였다는 전제가 고대 이스라엘 역사학에서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들의 저작이나 논문이 조금씩 번역 출간되고 있어 약간의 인지도가 생기기도 했지만, 성서학자들조차 대부분 제2의 수정주의적 견해를 거의 알지 못한 형편이다.

―《당대비평25(2004 )에 실린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상상의 과거의 정치학에서 발췌

 

 

 

고전 가설

정복모델

올브라이트 학파(W. F. Albright / George Ernest Wright / John Bright / David Noel Freedman / Frank Moore Cross ) / Yigael Yadin

이주모델

알트-노트 학파(Albrecht Alt / Nartin Noth / A.H.J. Gunneweg )

수정 가설

문화적 혁명 모델

George E. Mendenhall

사회정치적 혁명 모델

Norman K. Gottwald

재수정 가설들

Martin Chaney / Baruch Halpern / Niels Peter Lemche / Israel Finkelstein / Robert Coote / J. Maxwell Miller / John Hayes / Rainer Albertz

 

노먼 갓월드의 사회종교적 재부족화설(theory of social retribalization)


벧아브

(아비의 집)

미스파하

(문중)

 

 

세베트/마테

(지파)

 

 

이스라엘

(부족동맹)

 

 

 

 

 

 

 

 


- ‘왕 없는 사회

- 미스파하를 기준으로 하는 남성 평등공동체

- 동맹의 신 야훼와 다신(多神) 사회

- 에브라임 부족

- 베냐민 부족

 

 

     

상상의 이스라엘 부족사회                  이스라엘 부족동맹과 중부 고원지대




한 여자의 죽음, 그 배후의 정치사를 묻다

사사기19~21장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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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라티누스 왕국에는 야누스 신전이 있었는데, 전쟁을 벌여야 할 경우 왕은 예복을 갖추어 입고 신전의 문을 여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의미심장하게도 야누스 신은 머리 앞뒤로 두 개의 상반된 얼굴을 가진 존재다. 전쟁기에는 정의가 가장 광적으로 외쳐지는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사에서 가장 치졸한 생존법이 난무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야누스의 두 얼굴과 전쟁의 두 얼굴은 서로 닮았다.

그런데 전쟁 때만 야누스의 문이 열리는 건 아니다. 그 문은 극단의 가치가 공존하는 곳에는 항상 열려 있다. 이원론적 가치, 그것이 서로를 밀쳐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곳에서, 서로를 배제하고 억압하려 맞싸우는 곳에서 그 문은 열린다.

이런 극단주의가 판치는 시대는 매우 가학적이다. 감금, 고문, 보복, 살육, 강간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열거되는 그로테스크한 어휘들이 난무한 세상이다. 대상이 적이든 제3자든 관계없이 눈에 띠는 대로 강자가 휘두르는 도끼는 끝을 모른다. 한데 이런 극단의 시대는 모든 흉물스러운 만행이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정의를 위한 필요악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여기서 더욱 우리를 당혹케 하는 것은 협상, 화해, 평화, 사면, 복권 등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이 들어간 이야기들 속에서도 잔혹한 시대의 얼굴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적이 없어졌다고, 혹은 적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향한 도끼질은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야누스의 두 얼굴은, 저 악과 진리의, 불의와 정의의 이분법은 희생당하는 3의 관점을 배제하고 있다.


모파상의 프랑스판 소설집 비곗덩어리 표지.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단편소설 비곗덩어리(Boule de Suif, 1880)고상한 이들이 자행한 3를 향한 도끼질을, 그 무뢰함을 고발하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19세기말 보불전쟁(The Franco-Prussian War, 1870~1871)에서 프로이센에게 패한 직후 프로이센군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의 루앙(Rouen)이라는 곳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왕당주의 대 공화주의, 보수주의 대 자유주의 대 급진적 사회주의, 그리고 이탈리아와 프로이센에서 불기 시작한 민족주의 등, 숱한 정의의 이념들이 난무하며 갈등하는 시공간 한 가운데를 무대로 해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일단의 프랑스인들이 프로이센군 점령지를 벗어나기 위해 적군 사령관을 매수한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프랑스령 땅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눈이 두텁게 쌓인 겨울 길은 그들의 바쁜 여정에 발목을 잡는다. 일행 중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의 창녀인 엘리자베스 루세만이 음식을 가져왔기에, 지체가 높거나 부유한 일행들은 하는 수 없이 이 천한 여자의 음식을 나누어 먹으려 그녀에게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밤늦게 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을 지키는 프로이센군 장교는 통행증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순순히 통과시켜주지 않으려 한다. 그자가 암시적으로 제시한 통행허가의 조건은 비곗덩어리와 하룻밤을 보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은밀한 종용에 못 이겨 그는 하는 수 없이 장교에게 몸을 맡긴다. 무사히 마을을 통과해서 목적지를 달리는 마차. ‘비곗덩어리는 수치감과 분노로 괴로워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비웃는다.

이 소설에서 숱한 이데올로기들,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그 진리의 소리들비곗덩어리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요컨대 모파상은 야누스적 두 얼굴의 세계를 희생당하는 제3자의 시선을 통해 그려내고 있으며, 그런 관점에서 저 숭고함을 자랑하는 이데올로기들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세계가 아니라, 바로 현실의 세계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식량과 몸을 나누어줘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이의 나눔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는 것, 반면 그 나눔을 받아먹는 이들에게 그녀의 식량과 몸, 아니 그녀의 애절한 생명은 단지 조롱거리에 불과했다는 것뿐이다.

나는 사사기19~21장의 한 레위인의 아내 이야기를 읽어내기 위해 모파상의 단편 비곗덩어리의 시각에 기댄다. 왜냐면 이 레위인의 아내는 시종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텍스트 속의 모든 인물들은 그의 말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텍스트를 담고 있는 성서 자체도 그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사기이 텍스트에는 부족동맹을 지탱하는 숭고한이데올로기, 평등과 정의의 가치를 부르짖는 강렬한 소리들로 뒤덮여져 있는데, 그 소리들이 한 비극적 여인의 비명을 먹어 버렸다. 하지만 저 숭고한 이데올로기의 주체들은 강간당하고 난도질 되어 죽임당한 그의 몸이 필요했다. 그렇게 동맹의 이데올로기는 침묵 속에 묻힌 한 여자의 비극적 죽음을 도구화하여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이 글은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의 관점을 참조하면서 이 텍스트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여인의 소리를, 무시당하고 희생당하는 제3자의 침묵을 강요받은 비명도 헤아리는 신의 이데올로기를 찾아보려는 하나의 시도다. 성서 텍스트가 말하지 않은, 성서 텍스트가 말했어야 할 신의 이데올로기 말이다.

 

2

 

사사기는 삼손 이야기까지 부족동맹기의 여러 사사(士師) 혹은 판관(判官)이라고 불렀던 영웅들(Shoftim, שופטי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데 그것은 16장까지만 해당한다. 17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영웅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설화들이 담겨 있다. 17~18장은 단 부족이 이주하게 된 경위에 관한 이야기이고, 19~21장은 베냐민 부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징적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 사사기의 문맥적 구조

흥미롭게도 이 두 텍스트는 모두 레위인이 줄거리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앞의 이야기에서 레위인은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지역으로 갔다가 단 부족과 더불어 북쪽으로 옮겨간 반면, 두 번째 이야기의 레위인은 에브라임 지역에서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베냐민 지역을 경유해서 되돌아오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7~18

단 부족의 이주 이야기

레위인이 중심

베들레헴에브라임북쪽으로 이주

19~21

베냐민 부족에 대한 응징 이야기

에브라임베들레헴베냐민에브라임

 이렇게 사사기를 구성한 이들은 유다국 왕실 서기관들이다. 그들에게 에브라임이 경쟁국의 핵심공간이고 베들레헴이 자국 시조 다윗의 탄생지임은 강렬하게 자리잡은 전이해다. 물론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한편 이들이 구성한 텍스트에는 오래전, 부족동맹 시대의 기억이 깔려 있다. 한데 이 오래된 기억에는 장소적 긴장이 새겨있다. 벤야민과 에브라임 간의 긴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긴장은 한 레위인이 묵은 벤야민 족의 성읍 기브아(Gibeah)에서 커다란 파열음을 일으켰다. 우리가 이 텍스트를 읽기 위해 알아야 할 첫 번째 정보는 벤야민과 에브라임 족속 간의 긴장에 관한 것이다.

에브라임 부족은 부족동맹 이스라엘을 이끌어온 으뜸세력이다. 하여 이 부족의 지도자가 되는 자들은 동맹의 가치, 지향, 전통에 대한 책임의식이 남달랐다. 한데 이 동맹은 군주제 사회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부족간 평등의 지향과 맞물린다. 동시에 이러한 평등 지향성은 부족 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부족 내부의 문제이기도 했다. 부족을 구성하고 있는 씨족들, 그리고 씨족을 구성하고 있는 문중 간에 평등이상이 동맹의 정신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등이상을 오늘날의 잘 발전된 민주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건 지나치다. 또한 그 이상은 철저한 남성 중심적 사회의 가치였다.

아무튼 오늘의 관점에서 이러한 평등의 이상은, 그 현실을 너무 과장해서 떠벌릴 수는 없어도, 빛나고 훌륭하다. 그런 기반 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에 따르면 어느 부족도 다른 부족 위에 있어서는 안 되고, 어느 씨족도, 어느 문중도 다른 씨족과 문중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현실은 에브라임 부족이 다른 부족을 압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에브라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맹의 가치와 이상이 깨어질 수도 있었기에 더 큰 가치를 위해 유보하는, 일종의 필요악 같은 것이었다. 하여 에브라임은 사정권을 쥐고 휘두르는 경찰부족처럼 군림했다.

이렇게 에브라임족의 수위권은 동맹이 존속하고 있던 시간 내내 계속되었다. 그런데 가끔은 에브라임의 수위권을 위협하는 영향력 있는 영웅들이 다른 종족에서 등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기드온이나 입다, 사울 같은 이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비에브라임 출신 영웅의 지명도가 부족의 경계를 넘어서 동맹 차원에 미칠 경우, 그들이 속한 부족과 에브라임 부족의 갈등이 심화되곤 했다는 데 있다.

사사기끝부분에 덧붙여진, 부족동맹 후기 상황을 반영하는 두 텍스트는 이러한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에브라임과 벤야민 간의 장소적 갈등의 맥락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부족동맹 후기로 갈수록 에브라임 수위권이 흔들리고 있고, 이것은 군주제에 반대하고 문중, 씨족, 부족간 평등을 추구하는 동맹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통합의 효과가 점차 위축되어가고 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여전히 에브라임 부족이 여전히 가장 강력한 부족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두 텍스트에는 몇몇 구절들에서 의미심장한 첨가문이 들어있는데, 그것은 아직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때에 있었던 일이라는 언급이다. 물론 이 첨가문이 군주시대의 산물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필시 창세기~열왕기까지의 거대한 서사를 편찬하는 주역이던 요시야 왕실 서기관들의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나오게 된 한 부가문일 것이다. 여기서 이 구절은 부족동맹 시절이 얼마나 혼돈스러웠는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군주제사회로의 이행이 혼돈의 질서화 과정이라는 군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다.

이제 19장 이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에브라임 산골에 살고 있던 한 레위인이 친정으로 돌아가 버린 아내를 데리러 베들레헴으로 갔다. 여기서 아내를 표기하는 히브리어는 필레게쉬(pilegesh, פִּילֶגֶשׁ)인데, 일반적으로는 영어로는 컨큐바인(concubine), 한국어로는 으로 번역되었다. 한데 이 두 단어는 법률상의 아내가 아닌 여자라는 함의를 갖는데, ‘필레게쉬는 정식 부인이기는 하되 낮은 서열의 아내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그런 점에서 둘째 부인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합할 것 같다.

본문은 이 둘째 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간 것은 화가 났기때문이라고 말한다.(2) 흔히 이 여인이 친정으로 간 것을 그의 성적인 방만함 탓으로 해석하곤 했는데, 본문에 따르면 이 사태의 책임은 남편 쪽에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 만약 아내가 책임이 있는 경우라면 본문은 쫓아냈다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두 번째 장면은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있었던 사건을 다룬다. 기브아 지역이 무대인데, 이곳은 베냐민 영역에 속하는 성읍이다. 집필자인 유다의 서기관들이나 그 독자들은 이 대목에서 눈이 크게 뜨였을 것이다. 왜냐면 그곳은 사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필경 저자나 독자들은 여기서 편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기브아의 편에서 이 텍스트를 쓰거나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사울을 낳은 고장이 무뢰배들의 땅에 다름이 아니라는 편견으로 쓰였고 읽혔겠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그 레위인은 기브아에 이르러 한 노인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성읍의 불량배들(bene-belial, 벨리알의 아들들)이 몰려들어 행패를 부렸다. “그 남자를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를 맺어야(yadah, יָדָה)겠다.”(22) 이 어구는 일반적으로 성적인 관계 맺기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본문은 동성애자들이라는 뜻인가? 그러나 텍스트는 레위인이 자기의 아내를 내주자 불량배들은 그를 끌고 가 윤간하는 것으로 순순히 물러났다. 그들이 동성애자들이라면 그다지 상식적이지 않은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때 이 용어는 성적인 의미로 한정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위협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밤새도록 그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갖은 능욕을 당하다가 새벽에야 놓여졌다. 만신창이가 되어 죽을 것 같은 몸으로 가까스로 남편이 묵은 집 앞까지 왔으나, 그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문지방을 붙잡은 채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남편은 아침에 그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서 가자.” 아내가 옆방에 잠든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난폭한 이들에게 능욕당했음을 모를 리 없는 이의 말이다. 필경 옷이 갈가리 찢겨져 있었을 것이고 온 몸에 능욕의 흔적이 역력했을 텐데, 그런 아내를 향해 던진 첫 번째 말로 이처럼 부적절한 것이 있을까.

아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남편은 그를 나귀에 싣고 본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칼로 그를 열 두 토막을 내서 이스라엘 전 지역으로 보낸다.


The Levite’s Concubine, Morgan Picture Bible, 13th cent.


이상은 에브라임-베냐민 전쟁의 원인을 다루고 있는 19장의 이야기를 텍스트의 구술 방식에 준해서 요약한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온 부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 물론 이때 이스라엘 전체가 모였다고 가정하는 것은 과장이겠다. 아마도 그 레위인이 속한 성읍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근의 에브라임 부족 사람들이 주로 모였을 것이고, 만약 이것이 에브라임 전 부족이 동원될 만큼 사건이 확대되었다고 가정하면, 인근 부족들이 압력에 못 이겨 많지 않은 의용군을 보내왔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에브라임 군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족하겠다. 이때 에브라임이 내걸은 전쟁의 명분은 기브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저지른 모든 수치스러운 일을 벌하자는 말(20,10) 속에 들어 있다. 아마도 에브라임이 부족동맹의 수위권을 주장하는 데에는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통제하고 응징하는 도덕적 책임감을 다른 어느 부족이 가질 수 있겠느냐는 자긍심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기브아 인들이 저지른 파렴치한 행위는 그야말로 적당한 명분거리임에 틀림없다. 다른 경쟁 부족에게선 부족동맹을 지켜나갈 도덕적 능력이 결여돼 있음이 이 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에브라임 군대는 기브아 장로들에게 책임자 색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명백히 잘못한 일이라도, 그들의 가족 친지가 보는 앞에서 다른 부족에게 자기 부족의 일원을 넘겨주는 일은 부족을 대표하는 장로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겠다. 그것은 또한 부족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더구나 평소에 에브라임 부족의 횡포를 고깝게 여기던 터가 아닌가.

이제 양자는 물러설 길이 없게 되었다. 기어이 전투가 벌어졌고, 공방 끝에 에브라임 군의 승리로 결말났다. 기브아 군인들은 숲으로 도주했고, 헤렘의 전통에 따라 군대는 성읍으로 들어가 사람이건 가축이건 간에 닥치는 대로 살육했고, 가옥이란 가옥은 모조리 불살랐다.

이것으로 전쟁은 끝났다. 이제 에브라임에게서 남은 것은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다. 베냐민 부족의 잔존자들은 에브라임 수위권에 도전하지 않은 한에서 생존이 허락되었을 뿐 아니라, 전후 복구를 지원받았다. 가장 문제는 노동력의 회복이다. 이것은 동시에 외적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만약 그것이 복원되지 않는다면, 에브라임 부족은 이 부족을 위해서 자신의 자산을 내어줘야 하고, 군대를 보내줘야 한다. 동족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는 한, 지도적인 부족으로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빨리 이 부족의 세력을 복원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본문은 두 편의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전후 복구 대책의 일단을 시사한다. 에브라임에 잘 순종하지 않는 또 다른 부족인 길르앗의 야베스 족속을 공격해서 거기에서 끌고 온 여자들을 베냐민 부족에게 주었다는 이야기와, 베냐민 사람들이 축제 때에 실로 지역의 여자들을 납치해오는 것을 방조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전자는 길르앗의 아베스 족속보다 베냐민 족속이 에브라임에 있어서 중요한 족속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에브라임 부족의 관심은 윤간당해 죽임당한 여인의 비참한 운명에 있지 않았다. 즉 이스라엘 동맹의 가치를 대변하는 에브라임 족속의 지도자들은 여성의 존재가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길르앗의 야베스 족속의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오는 것이나, 세겜의 여인들을 납치하는 일과 같은, 기본적으로 기브아의 불량배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성적 난행(亂行)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표방한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에는, 처참하게 죽은 아내의 시신에서 그녀의 남편이 겪은 능욕을 읽고도 남음이 있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처절한 고통과 죽임을 당한 아내를 감정이입하는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남편의 분노와 결합된 분노다.

군대 소집을 주도한 에브라임의 장로들은 같은 가부장으로서 레위인의 울화통 터지는 심사를 감정이입했던 것이겠다. 물론 이미 시사했듯이 그 배후에는 이 같은 감정이입을 넘어, 에브라임 수위권 유지가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한 그들 나름의 정당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었다고 보는 것이 지당하다.

실제로 사사기텍스트는 한번을 제외하고는 이 여인의 시좌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무언가 남편이 잘못을 범했으리라고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이 여자가 겪었을 고통은 전혀 언급되지도 않을뿐더러, 친정으로 간 아내를 회수하고자 베들레헴으로 간 남편과 상대한 이로 묘사된 이는 오직 그의 아버지뿐이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에서 결혼이라는 게 장인과 남편간의 거래에 불과하고 여자는 여기에 개입할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에 접한 여인의 심정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 대해서 텍스트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또 기브아에서 불량배들이 난동을 부릴 때, 집주인과 이 레위인이 그의 아내를 내어줄 것을 거론할 때조차도 그 피해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여인은 단지 수동적으로 자신의 주인인 남편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처럼 묘사될 뿐이다. 유일하게 여인이 행위 주체로 나타난 것은, 밤새 윤간당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남편이 묵은 집으로 기어와 문지방을 붙잡고 쓰러져버린 것에 관한 묘사다. 하지만 이것도 여인의 처참한 모습을 통해 능욕 당한 남편의 복장 터지는 심사를 나타내는 데 기여할 뿐, 사실상 이 여인을 주체화하지 않고 있다.

남편은 이런 사회의 한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조 탓만 할 일은 아니다. 그는 그런 가학적 세계의 충실한 일원이고자 했고, 나아가 그런 폭력성의 세계를 조성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불량배들에게 아내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설사 생명의 위협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밤새 수많은 불량배들에게 난폭하게 강간당하도록 아내를 내보내놓고 자기는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더구나 죽은 듯이 쓰러진 아내를 보고 그가 취한 행동이라는 게, ‘이제 가자는 말 건넴이라니. 본문에는 그가 죽었다는 암시가 전혀 없다. 아내가 죽었는지를 확인하려는 노력도 전혀 없다. 통곡하는 남편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지도 않다. 남편이 취한 행동은 아내를 나귀에 실어 집으로 와서는, 아내를 조각조각 잘라 이웃 부족들에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의 분풀이 행동에는 자기를 대신해서 온갖 능욕을 당하다 죽은 아내를 배려한 흔적이라고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이 당한 모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전쟁에서 승자는 패자를 잔인하게 살육한다. 여기에 여자와 노인, 그리고 어린아이들, 심지어 가축들도 포함된다. 그것은 이 전쟁이 성전(聖戰)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부족동맹의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하느님이 거룩한 전쟁을 치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복한 지역의 모든 생명체를 죽인다는 헤렘의 전통은 순전히 종교적 이유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포로를 재생산에 투여할 소유 체계가 불완전한 시대의 인습이 들어 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군주제 하의 소유체계의 도입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 이념이 들어 있다. 그러나 기브온에 대한 응징의 전쟁에 관한 한, 그 뒤처리에서 보여주듯이 전혀 정복전이 아니었다. 즉 약탈물을 소유하려는 데 초점을 둔 전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헤렘의 실행은 성찰적이지 못한 분풀이 행위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에브라임 군은 전쟁을 끝낸 후, 복구라는 명분 아래 또 다시 길르앗의 야베스 족속을 무차별 도륙한 후, 여인들을 잡아다 베냐민 사람들에게 주었다. 또 베냐민 사람들이 세겜 여인들을 납치하는 걸 조장/방조했다.

자신들이 수호하는 하느님의 원리만이 온전하며, 다른 족속의 가치는 그렇지 않다는, 아니 특수한 사례를 일반화하며 위험천만이라는 인식 태도, 에브라임의 가치관 속에는 이런 선악 이원론이 깔려 있다. 기브아 인들은 이런 류의 수위권에 저항했지만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대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 그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내를 죽임으로 내몬 레위인도 그런 극단주의자들이 만든 세계의 일원이자, 동시에 그런 극단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세상의 가학성을 생산하는 데 앞장섰던 한 사람이다. 사사기19~21장의 텍스트는 그런 사람들을 주요 행위자로 삼고 있는 설화들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설화들의 편찬자들은 왕 없는 세계의 무질서를 강조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써먹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군주제 사회는 어떻게 다른가?

 

3

 프랜시스 코폴라의 영화 드라큘라가 무시무시한 흡혈귀/뱀파이어에 관한 얘기라기보다는, 인간보다 더 인간애 넘치는 비인간, 인간의 가치를 박탈당한 존재에 관한 얘기라고 읽는 것은 어떨까? 15세기 루마니아의 트랜실바니아 지방의 영웅 드라큘라 백작이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그가 전사했다는 투르크의 흑색선전에 속아 아내 엘리자베타가 자살하는 얘기로 영화는 시작된다. 백작은 아내의 영혼이 구제받지 못한다는 사제의 선언에 절망하고 분노하면서 십자가를 칼로 찍어버리며, 악마가 되기를 선언한다. 수세기가 흐른 뒤, 악마가 된 그는 영국으로 향한다. 엘리자베타가 환생하여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내를 위해 악마가 되고, 그녀를 찾아 자신이 안주할 공간을 버리고 낯선 곳, 전근대의 신화가 자리잡기에 부적절한 근대성의 공간으로 찾아가고, 그녀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존재로 그를 묘사하고 있다.

사사기19~21장 이야기의 등장인물들, 특히 아내를 불량배에 넘겨준 그 레위인은 어떤가?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수호하는 존재임을 자부해온 이들이 아닌가? 하느님의 진리의 담자자로서 악에 대항해서 모든 걸 바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의 진리는 3인 한 여자를 죽게 하고, 그 죽음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재생산할 기회를 추구했다. 물론 그때마다 정의를 위한다는 숭고한 구호들이 뒤따랐다. 그런데 그 정의는 3를 희생시키는 걸, 그 희생을 이용해서 지켜낸 정의다. 하여 그 정의는 숭고함과 야만이라는, 야누스적 얼굴을 하고 있다.

드라큘라 백작은 정의로부터 소외된 존재다. 그는 악을 추구하고, 정의를 부정하는 존재로 규정된 자다. 그는 파멸을 야기하는 존재로 알려진 자다. 그는 세계를 향해 저주의 독성을 뿌리는 어둠의 세력의 최정점에 있는 존재라고 소개된 자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위해 자기의 여인을 버린 게 아니라,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렸다. 그렇다면, 어쩌면 드라큘라는 사방에 가학적 문화를 새기고 다니는 정의의 수호자들 때문에 죽임당한 이들의 악귀가 아닌가? 그들의 반진리적 실천은 바로 진리의 파괴성 때문이 아닌가? (공동선2017.07-08호에 게재될 예정)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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