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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부당한 사면권의 주체들

이 글은, 한백교회의 2018년 2월4일에 했던 하늘뜻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해서 [공동선] 139(2018. 03+04)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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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사면권의 주체들

 

 

 

  

 

검사 출신의 한 법조인이 온누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 화제다. 그때 수세자 대표로 간증한 것을 보고, 서지현 검사는 8년 전의 악몽 같은 사건을 폭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성추행 가해자가 검사라니. 이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가 바로 안태근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 할 말을 잊었다. 검찰과 법무부의 검사들이 서로 특수활동비를 교차해서 나누어 가졌다는 이른바 톤봉투 사건의 핵심인물이 아닌가. 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을 때 그와 1천여 건의 전화 통화했다는 인물이다. 이는 검찰 내부의 수사 관련 정보를 내통했을 수 있다는 혐의에서 그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와 우병우는 대학 1년 차이의 선후배 간이고, 또한 1년 차이로 소년등과한 이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수많은 부적절한 사건들에 개입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게다가 부산 LCT 사건에도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건, 온누리교회가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이다. 우리사회의 모든 정보들을, 허튼 소문까지도 공유하는 매체인 고가의 찌라시를 정기구독하는 파워엘리트에 속하는 신자들이 넘쳐나고, 그들보다도 결코 정보력이 뒤처지지 않을 이들이 즐비하게 당회원으로 재직하는 교회다. 그런 교회가 안태근 씨에 관한 의혹들을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

이 교회는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수세자 대표로 안태근 씨가 선정된 이유를 그가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도덕적 결함을 덮어버리는 성공지상주의와 연결시켜 해석할 것이다. 해서 사람들은 이렇게 비판할 것이겠다. 성공한 자에게 넓은 구원의 문을 선사하는 교회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일은 비단 이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권력형 비리와 범죄의 이력을 가진 이들이 수많은 교회들에서 무수히 목사와 장로직을 수행하고 있다. 또 안태근 씨 못지않은, 아니 더욱 심한 문제를 지닌 이들에게 곳곳에서 아낌없는 세례가 베풀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고대 유다국의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비일비재했던 모양이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성전 문 앞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많은 유력 인사들에게, 그리고 사제들과 장로들에게 일갈하며 외쳤다.

 

너희는 모두 도둑질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음행을 하고, 거짓으로 맹세를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긴다. 너희는 이처럼 내가 미워하는 일만 저지르고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으로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우리는 안전하다하고 말한다. 너희는 그런 역겨운 모든 일들을 또 되풀이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다. 그래,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성전이, 너희의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곳으로 보이느냐? 여기에서 벌어진 온갖 악을 나도 똑똑히 다 보았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서7,9~11

 

 

교회도 그렇듯이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의 하나는 죄의 사면에 있다. 죄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더구나 신의 법정은 사람의 법정보다 더욱 엄중하다. 해서 신은 자신의 백성에게 사면의 기회를 준다. 그것이 바로 성전 같은 종교적 예배의 장소다. 하여 예배 행위는 사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루살렘의 야훼 성소에서는 제사를 통해 신에게 사면이 청원되고 신은 사면을 선포한다.

그런데 종종 종교적 사면은 사회적 사면과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범죄의 가해자는 신에게 사면을 갈구하지만, 피해자는 복수를 갈구한다. 이럴 때 신의 판단은 어떠해야 할까. 여기서 신의 판단을 대행하는 이가 제사장이다.



아하스

기원전743~728

히스기야

기원전727~699

므낫세

기원전698~644

아몬

기원전643~642

요시야

기원전641~610

여호아하스

기원전609(3개월)

여호야김

기원전608~598




한데 예레미야 예언자는 신의 판단을 대행하는 제사장들의 농간을 비판한다. 그 농간에 의해 어떤 자들은 도둑질을 하고 살해를 하고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사면을 받는다고 말이다. 누가 그런 범지자들일까? 누가 제사장들의 사면을 독차지하는 자들일까? 예언자의 말 속에서 추정되는 자들은 이들이다. “나그네와 고아를 억압하고, 죄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자들(6) 요컨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이들이 사면받고 있다고, 예언자는 성전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도대체 성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당시는 여호야김 왕이 다스리던 시대다. 불과 몇 년 전, 요시야 왕이 살아있을 때까지도 그들은 그가 이끄는 개혁연합의 중심세력 중 하나였다.

요시아 개혁연합에 참여한 이들은 대개 네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그룹은 그를 왕으로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암하아레츠(am-haaretz). 이 히브리어는 땅의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와 그 유사형 단어들을 통해 추정해보면 그들은 농민 일반을 가리켰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열왕기에 등장하는 암하아레츠는 단순한 농민이 아니라 정치세력화된 농민이다. 그들은 유다국의 비교적 대규모의 농경지가 있는 지역인 쉐펠라(Shephelah) 지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쉐펠라는 블레셋 땅의 동편에 인접한 비교적 낮고 완만한 구릉지대다. 둘째 그룹은 개혁파 귀족세력이다. 유다국이 본격적인 군주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던 아하스 왕 이후 국가는 중앙의 관료집단이 등장하고 그들과 연계된 지방의 대지주세력이 생겼다. 이것은 자영농민의 예속농민화 과정과 맞물리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암하아레츠와 중앙관료-대지주는 서로 대립된 사회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중앙관료집단 가운데 자신들의 계층적 이해와 상충되는 세력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중앙관료-대지주 세력에 의해 왕권이 위축되는 것에 반대하고 왕권 중심의 국가를 꿈꾸었던 이들이었다. 이들 개혁파 세력은 정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암하아레츠와 동맹을 맺었다. 해서 이들의 정치적 위상은 친농민적 왕당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요시야 왕실에서 정책과 군사, 그리고 기록의 전문가들인 관료집단으로 왕을 보좌한 이들이다. 셋째 그룹은 레위인이라고 불렀던 전투적 종교집단으로 왕의 개혁을 지지한 행동대원 같은 이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그룹이 바로 예루살렘의 제사장들이다.

유다국 역사에서 성전 제사장들의 위상은 이전까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이스라엘국에서는 국가의 제사를 수행하던 두 개 정도의 국가성전이 있었다. 북쪽 끝의 단(Dan) 성전과 남쪽 끝의 벧엘(Bethel) 성전이 그렇다. 반면 유다국의 예루살렘 성전은 왕실채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유다국은 국가발전 정도가 미미했기에 지방을 통제할 만한 군사행정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당연한 것이겠다. 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은, 그때까진, 왕에게 절대 충성하는 왕실 소유의 전문직 종교노예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나 요시야 왕 때에 와서 예루살렘 성전의 위상이 급상승한다. 이 두 왕은 중앙성전을 국가성전으로 격상시켰고, 지방성전에 대해서는 폐쇄를 원칙으로 했던 것 같은데, 실상 폐쇄에 이르지는 못했다. 아무튼 이 두 왕 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급부상과 함께 성전 제사장들의 위치도 격상한다. 그들은 이제 관료의 위상을 얻게 된 것이다.

요시야 왕 때까지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은 왕의 개혁의 열렬한 지지자들이었다. 그런데 왕이 갑자기 서거하였다.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Necho II)의 팽창주의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유다국은 심각한 국난에 빠졌는데, 이때 암하아레츠가 등장해서, 과거 아몬 왕이 서거했을 때 8살의 요시야를 왕으로 옹립했던 것처럼, 요시야의 아들인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추대했다. 요시야도 공석이 된 왕의 자리에 올라설 적임자가 아닌데 암하아레츠가 그를 옹립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아하스도 적임자는 아니었다. 그는 요시야가 서거했을 때 22세였는데, 3개월 만에 느고가 그를 폐위하여 압송하고 새로운 왕으로 선임한 자인 여호야김이 25세였다. 즉 요시야의 아들 가운데 여호야김은 여호아하스보다 손위의 왕자였던 것이다.

암하아레츠는 왜 여호야김이 아닌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옹립했을까. 또 과거에 요시야는 왜였을까. 여기서 우리는 암하아레츠가 옹립한 두 왕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요시야의 모친인 여디다는 보스갓 (Bozkath) 출신이고, 여호아하스의 모친 하무달은 립나(Libnah) 출신이다. 그런데 보스갓과 립나는 모두 쉐펠라 지방의 성읍들이었다. 즉 암하아레츠는 왕실 가운데서 친농민 세력 출신의 왕자를 왕으로 옹립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호아하스는 느고에 의해 3개월 만에 폐위되었고, 여호야김이 새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요시야-여호아하스 노선과 반대되는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들은 이집트의 예속되기를 선호하는 자들이었다. 이른바 보수정권이 집권한 셈이다.

바로 이런 인물인 여호야김이 정권을 확고히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요시야 시대를 주도했던 개혁연합은 붕괴했다. 암하아레츠와 레위인은 더 이상 역사적 사건의 주체로 부상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집트 군대나 여호야김의 군대에 의해 세력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진멸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개혁적 귀족세력은 잔존했지만 권력게임에서 크게 밀려버렸다.

문제는 예루살렘 제사장들이다. 말했듯이 그들은 한때 민중적 개혁의 지지파이자 왕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들이었다. 한데 요시야 시대와는 달리 개혁 노선과 왕의 노선이 나뉘게 되었을 때 이들 제사장들은 가치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독자적 존립을 추구하게 된다. 이는 여호야김 시대에는 왕의 노선에 가담하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양상은 농민들에게 맘껏 갑질해 대는 왕과 귀족세력에게 신의 사면권을 남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위에서 인용한 예레미야서의 텍스트처럼, 바로 이런 모습의 성전을 향하여 도둑들의 아성이 되어버렸다고 맹비난을 퍼부어댔던 것이다.

이제 오늘 우리 시대로 돌아와 보자. 예레미야 시대에 사면권을 남발했던 성전처럼, 우리 시대에도 사면권을 남발하는 세력들이 있다. 글 처음에 언급한 교회도 그중의 하나다. 한데 얼마 전 이재용 삼성부회장에게 사면권을 날렸던 법원도 그 하나다. 또 사건을 조사하고 그것을 범죄로 만들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구인 검찰과 경찰도 사면권을 쥐고 흔들어대는 대표적 기관이다. 그런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교회든 법원이든 검찰이든 경찰이든, 사면권의 행사는 결코 공정하지 않았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흥분하게 했던 일들과 다르지 않는 사례들이 오늘 여기서도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할 때, 어느 청년이 장기수들과 교류를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바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와 상의해서 네 명의 장기수를 추천받았고, 그 교류가 출발점이 되어서 이 교회는 아직까지 네 개의 조로 나뉘어서 교회활동을 벌인다. 아무튼 이때 추천받은 이들 중에 석달윤이라는 분이 있었다. 얼마 전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고문피해자를 다룬 TV 사회고발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대표적 고문피해자로 소개되었던 바로 그분이다. 교회가 석달윤 선생과 교류를 시작한 때는 아마도 1996년쯤인 것 같다. 그때 선생은 60대 초의 나이였다. 편지도 보냈고, 가난했던 청년들이 한푼두푼 모아 선생이 원하는 책도 보냈으며 영치금도 보냈다. 그리고 대구교도소에 계실 때 접견을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교도소는 접견을 허락하지 않아 허탕만 쳤다.

그런데 1998, ‘국민의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국가보안법으로 장기간 구금되어 있던 분들이 출소했다. 우리 교회와 교류를 했던 네 분 모두를 출소 환영식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석달윤 선생은 1980년 진도 납북어부가족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으면서 허위자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결과 무기징역 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18년 만에 가석방된 것이다. 이 사건의 주범으로 기소된 이는 사형을 선고받아 이미 실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참여정부 때에 진실화해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작업을 거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인 2009년에 이 사건의 관련자 전원은 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고문의 가해자도 조작사건으로 형을 언도한 이도 아직 아무도 사죄하지 않았다. 그중 1심 판사였던 여상규 씨는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에 적을 두어온 3선의 국회의원인데, 석달윤 선생에게 사과할 의향을 묻는 기자를 향해 웃기고 앉아 있네라고 막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불자다. 어쩌면 어떤 승려는 이 사람에게 사면권을 남발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사면권을 베푼 종교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개신교다. 아무튼 이렇게 남발된 사면권은 그들이 자행한 권력행위의 부당한 피해자에게 사과할 필요를 망각하게 한다.

한국 종교의 신뢰도는 다른 분야와 비교할 때 중간 정도다. 하지만 내가 속한 종교인 개신교는 가톨릭과 불교보다 훨씬 낮다. 만약 개신교를 독자적 범주로 하는 조사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최하위권에 들어있었을 것이다. 한편 신뢰도가 가장 낮은 범주에 법원과 검찰이 자리잡고 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OECD 조사에 나타난다. 2007~2014년에 한국은 42개 국가 중 39위였다. 40위보다 불과 1% 높은 순위다. 만약 2015년 이후의 조사였다면 더 낮아졌을지도 모른다.

개신교와 사법부, 그리고 검찰이 직면한 이 처참한 성적표의 가장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바로 부패하고 부정한 권력자들에게 사면권을 남발한 것과 관련이 있다. 해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성전을 향해 퍼부은 도둑들의 아성이 되어버렸다는 독설은 오늘 우리사회에서는 바로 교회와 사법부, 검찰, 경찰 등, 부당한 사면권의 주체들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