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2017년 9월 24일에 새길교회에서 했던 설교 겸 강연 원고를 다듬어서, [공동선] 137(2017,11+12)에 실린 글이다. 새길교회의 설교는 새길교회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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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와 21세기
‘긴 1984년’과 안병무
연극 〈금관의 예수〉의 포스터. 1971년경 김지하가 시나리오를 〈금관의 예수〉는 1973년 원주 가톨릭회관에서 초연된 뒤, 전국의 성당과 교회를 돌며 공연되었다.
안병무 선생은 1984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시아 그리스도론 워크샵’에서 “Jesus and People” 1을 발표하였는데, 이 글의 도입부에서 선생은 김지하가 1971년에 쓴 희곡 〈금관의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성당 앞에 세워진 예수상 아래서 추위와 굶주림에 겨워 절망의 탄식을 하는 거지들과 시멘트로 박제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금관 쓴 예수상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을 중심 스토리로 하는 희곡입니다. 아래는 선생이 인용하고 있는 이 시나리오의 한 대목입니다.
내 힘만으로는 안 된다.
너희들이 나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너와 같이 가난하고 불쌍하고 핍박받으면서도 어진 사람들이 아니면 안 된다.
네가 내 입을 열었다.
네가 내 머리에서 금관을 벗겨내는 순간 내 입이 열렸다.
네가 나를 해방시켰다. 자 가까이 오너라, 가서 시멘트를 벗겨내라.
내 머리 위에는 가시관으로 족하리라.
내겐 금이 필요 없고, 금은 네게 필요하다. 금을 가져다 네 벗들과 함께 나누어라.
이 구절에서 거지와 예수, 양자는 각기 이 세상의 질서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존재하지만 주체적으로 의미를 구현할 수 없는 존재, 타인에 의해서만 성스럽든지 속되든지 규정되는 존재, 그런 점에서 ‘비존재적 존재’입니다. 한데 그들이 만나 서로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도 구원을 받고 거지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각자는 이제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적 상상을 선생은 ‘민중메시아론’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와 민중이 더불어 구원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지요. 사실은 이러한 예수와 민중이 엮여 서로에게 해방이 되는 구원사건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민중메시아론적 구원사건의 ‘원사건’(primordial event)적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이 민중메시아론이 말하는 수신자는 예수도 민중도 아니라, 시민사회의 주역들입니다. 예수와 민중을 대상화하는 그들이 예수-민중이 더불어 일으킨 메시아적 사건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금관을 벗겨내고 거지에게 나누어주는 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 그런 담론전략이 담긴 신학적 수사가 민중메시아론인 것이지요. 아무튼 민중신학의 절정의 사유이자 세계 신학사에서 가장 파격적인 문제제기의 하나를 선생은 이 워크샵에 참석한 이들에게 도발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이 글이 발표된 1984년은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자로서 사유능력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입니다. 그 해에 자타가 공인하는 선생 최고의 저작인 〈예수사건의 전승모체〉가 발표되었지요. 2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여기에는 선생의 예수론이자 민중신학적 이론의 핵심인 오클로스론이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오클로스 해석에서 역사의 예수 해석학, 그리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민중메시아론이 하나로 꿰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민중신학적 논점이 시작된 1975년부터 10년 가까운 사유의 결론이었고, 그 이후 돌아가시기까지(1996년) 10년 남짓의 시간도 이때의 사유를 근간으로 하여 외연을 확장해간 시기였습니다. 해서 저는 1975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자로서 활동한 시간 전체를 특징화하기 위해 ‘긴 1984년’이라는 용어를 쓴 바 있습니다. 3 해서 안병무를 독해하기 위해 1984년의 주요저작, 가령 〈예수사건의 전승모체〉나 “Jesus and People”(〈예수와 민중〉)을 먼저 읽고 그 글 속의 민중신학적 문제의식이 그 이전시기에 어떻게 전개・발전해 갔는지, 그리고 그 이후에 선생의 생각이 어떻게 외연을 확장해 갔는지를 살피면서 읽는 것이 안병무 독해의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1984년을 정점으로 하는 안병무의 민중신학이 그 시대와의 치열한 대면과 성찰의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강조하는 바는 우리의 시대와 대면하며 읽는 안병무, 곧 ‘21세기적 안병무 독해’에 관한 것입니다.
민족・교회, 그리고 민중―첫 번째 전회에 대하여
안병무 선생이 공적으로 쓴 첫 번째 글은, 우리가 아는 바로는, 선생의 ‘1인 잡지’라고 할 수 《야성(野聲)》 창간호에 실린 〈고난의 의미〉(1951.11)였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29세의 안병무는 이미 전쟁에 대한 성찰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선생은 소천하신 1996년 10월19일까지 45년 동안 대략 1천 편 가량의 글을 썼습니다.
특히 독일 유학길에서 돌아온 1965년 이후 선생의 ‘미친 필력’은 광염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매년 10~20편 정도의 묵직한 논문과 에세이들이 발표됩니다. 특히 1969년 창간된 《현존(現存)》은 선생의 글이 세상과 만나는 주된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국가는 ‘폭력’을 통해 통치를 했고, 저항적 지식인들은 ‘말’을 통해 정치를 했습니다. 4 무엇보다도 ‘말의 정치’의 주된 통로는 정기간행물이었습니다. 장준하로 상징되는 《사상계》를 필두로, 함석헌의 《씨알의 소리》, 김재준의 《제3일》 그리고 안병무의 《현존》은 당시 ‘말의 정치’가 작동되는 대표적 매체였습니다.
《야성》에서는 주로 선생의 글들이 그리스도적 생활공동체 모델을 지향했던 ‘향린원’ 5이라는 ‘종교적 장소’(place as a religion)로 수렴(convergence)되고 있었다면, 《현존》에서는 ‘민족’과 ‘국가’라는 ‘정치적 장소’(place as a politics)를 향하여 발산(divergence)하였습니다. 물론 선생은 항상 신학자로서 정치를 이야기하였지만, 그의 신학적 글은 일종의 정치비평이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축소된 장소로서의) 공동체’에서 ‘(확대된 장소로서의) 국가와 민족’으로의 전회(turn)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글이 바로 1975년 3.1절 기념예배의 설교겸 강연의 원고였던 〈민족・민중・교회〉입니다. 6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은 동시에 선생의 ‘또 다른’ 전회를 예고하는 글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목에 사용된 ‘민중’이라는 용어였습니다. 그때까지 선생이 썼던 어느 글에서도 이 단어는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민중’에 해당하는 성서의 어휘를 선생은 〈마가복음〉의 오클로스(ochlos)라는 그리스어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클로스 역시 선생이 이때까지는 전혀 사용한 적이 없던 어휘입니다. 아마도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성서학자인 다가와 겐조(田川建三)가 자신의 학위논문을 수정・보완하여 저술한 《原始キリスト教史の一断面: 福音書文学の成立》(1968)에서 이 용어의 함의를 빌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7 다가와 상(さん)은 오클로스라는 그리스어가 〈마가복음〉에서는 세관원, 죄인, 매춘여성, 병자 등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는 데서 착안해서 이들의 사회학적 함의를 추적합니다. 그 함의를 읽어내는 실마리로 그는 ‘70인역 성서’에서 매우 많이 사용되는 그리스어인 ‘라오스’(laos)와 오클로스들 대조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라오스는 한글새번역성서가 ‘백성’으로 옮기고 있는 히브리어 ‘암’(ʽam)의 번역어입니다. ‘백성’이란 지역공동체 혹은 국가에 속한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때 라오스가 속한 장소는 마을 혹은 국가입니다. 그렇다면 라오스에 반대되는 이들을 지칭하는 오클로스는 ‘마을 혹은 국가에 속하지 않은 자’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마가복음〉의 오클로스가 사용되는 문맥에서 항상 등장하는 세관원, 죄인, 매춘여성, 병자 등이 마을이나 국가 밖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마을 혹은 국가에 속해 있지만 이 장소들의 주역들에 의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이 〈마가복음〉의 오클로스라는 것입니다. 가령 백성이 그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어떤 이들을 수치스러운 자들로 낙인찍어 자신들의 일원으로 보지 않으려 할 때 바로 이런 이들이 오클로스라는 얘깁니다. 요컨대 오클로스는 ‘속해 있지만 속하지 못한 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로 간주되는 자’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선생의 글 제목 ‘민족・민중・교회’는 모순적입니다. 민족과 교회는 서로 연결되지만 민중은 민족의 일원으로도, 교회의 일원으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김지하가 〈금관의 예수〉에서 말한 교회당 밖의 ‘거지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그때까지는 그것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아마도 의당 그들을 민족이나 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인데, 그렇지 못한 것은, 김지하가 담시 〈오적〉에서 고발하고 있는 불의한 정치권력, 부패한 관료들과 재벌들 같은 ‘나쁜 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실상은 당연히 하나여야 하는데, 교회와 국가의 ‘나쁜 권력’이 그렇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선생은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안병무 선생의 첫 번째 신학적 전회인 ‘공동체에서 민족/국가로’의 이행을 대표하는 글이지만, 동시에 ‘민중으로’ 관심의 초점으로 옮기기 시작하는 터닝포인트로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후자의 관점이 바로 민중신학자들의 안병무 해석입니다.
‘긴 1984년’―두 번째 전회에 대하여
안병무 선생을 포함한 민중신학자들은 1970년대 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각자 민중 현장을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대중설화 8를 수집하고, 판소리나 가면극을 살피고, 감옥 이야기와 빈민촌 이야기 등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한 민중신학자들의 행보는 시민사회의 언어와 대조되는 ‘민중언어’를 찾아나서는 것이었습니다.
민중언어를 몰랐을 때까지 안병무를 포함한 민중신학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민중신학적 주장을 폈습니다. 하나는 국민/민족의 일원에서 배제된 민중을 만들어낸 불의하고 부패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탈당한 권리의식을 되찾도록 민중을 계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중언어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선생과 민중신학자들은 두 가지 점에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는 민중과 민족의 분절은 단지 불의하고 부패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만이 아니라, 체제(국가든 교회든)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시민 혹은 성도의 의식적, 무의식적 공모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가령 ‘죄’는 지배체제의 언어입니다. 그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편견과 배제의 언어가 ‘죄’라는 말로 구체화된다는 얘기지요.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자는 누군가를 죄인으로 낙인찍어 증오하고 배제함으로써 존속하는 사회, 그러한 체제를 비판하는 자입니다. 또한 지배체제가 봉쇄한 민중의 소리, 그 산산이 부서져 파편화된 소리들을 복원하고 증언하는 자입니다.
두 번째 민중신학자의 과제는 민중의 소리 속에서 생동하고 있는 민중의 생명력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지배체제의 언어 속에서는 ‘죄’로서만 드러나는 민중의 모습이 민중의 언어 속에서는 ‘살림’ 9의 영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지배체제의 질서는 죽임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배제된 이들, 오클로스, 살해당해 시신이 되어 뒹구는 아벨의 자녀 10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 사회 속의 모든 이들을 죽임의 질서 속으로 휘몰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 그 죽임의 질서는 부메랑이 되어 그 사회의 국민/시민 모두를 향해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해서 죽임당한 아벨만이 아니라 가해자인 카인까지도 구원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카인의 언어 속에는 구원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거기에는 끝없는 폭력의 연쇄만이 이어질 뿐입니다. 〈창세기〉 4,17~24의 카인의 후예들에 관한 간략한 스케치에 따르면 그들의 역사는 정착생활을 하고 음악을 만들며(homo musicus) 도구를 생산하는(Homo Faber) 발달된 문명을 이룩해내지만 동시에 그 문명은 폭력과 살상으로 점철된 죽임의 문명인 것입니다. 반면 민중의 언어 속에는 그 죽임의 문명을 ‘단(斷)’하는 살림의 언어가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김지하의 희곡처럼, 예수와 민중이 각자 자신의 것을 나눔으로써 서로 살게 되는 살림의 언어입니다.
안병무 선생은 민중언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예수와 민중이 한데 어우러져 벌이는 이야기가 바로 살림의 이야기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와 민중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혹은 한편이 다른 편에게 ‘일방향적으로’가 아니라, 한데 어우러져 ‘서로 살림’이 이룩되는 것, 그것을 선생은 민중신학의 그리스도론이자 구원론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단독자가 아니라 예수와 민중이 더불어 일으키는 사건을 가리키고, 예수와 민중의 함께 일으키는 살림의 이야기, 그 사건의 이야기가 죽임의 질서에 스스로 갇혀 버린 국민/시민/성도를 구원하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안병무 선생의 글 “Jesus and People”이 말하는 민중메시아론의 골자입니다.
21세기와 안병무
프랑스 혁명은 유럽적 근대국가에 관한 이상을 만들어내는 역사적 계기였습니다. 이제 국가는 더 이상 군주나 소수 귀족들의 나라가 아니라 ‘데모스’의 나라입니다. 데모스(demos)란 라오스처럼 백성이라는 함의를 지니는 그리스어인데, 근대 민주주의 얘기를 하고 있으니 ‘국민’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한 번역어일 것입니다. 통치의 대상이라는 의미의 백성보다는 주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속에 있는 ‘국민’이라는 뉘앙스가 더 도드라진 단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프랑스혁명 이후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이상은 근대유럽의 민주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또 이것은 근대 복지국가 이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데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대대적으로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국제적 유민/난민으로 들끓게 됩니다. 주권 없는 이들이 넘쳐나고 복지제도 밖의 사람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사회, 이것은 데모스의 국가라는 민주주의 이상이 무력해졌음을 의미했습니다. 11
이런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또 한 번 극심해졌습니다. 한편 1960년대 이후에는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이동하는 경제적 유민의 이동이 새로운 유민/난민 현상으로 대대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리고 2천 년대를 전후로 하는 시기에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적 유민/난민의 물결과, 이슬람 사회들을 휩쓸고 지나고 있는 전쟁이 야기시킨 난민의 물결이 전 세계 도시들에서 범람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와 2007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신자유주의적 격랑에 휘말리게 되고,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유민화/난민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표적 사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일터에서 퇴출된 자,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자, 신용불량자, 가출청소년/녀 등, 내적 국경(internal borders) 12의 외부로 배제된 이들이 대량 발생한 것입니다. 하여 2천 년대 이후 한국은, 법적이든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내적) 국경 밖으로 내몰려 노동권과 인권, 생존권, 나아가 몸과 정신에 대한 자기 통제능력까지 유실한 이들로 뒤덮인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국경 너머 다른 사회 속으로 떠밀려간 자 혹은 내적 국경의 외부로 밀려난 자, 그리하여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자, 그들은 현대판 오클로스입니다. 그들은 삶의 주요한 장소에 속하지 못한 자들이고, 속속 귀속되어 있던 장소들에서 떠밀려나가고 있는 자들이며, 그 과정에서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속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죄’는 지배적 사회의 시선에 포착된 그들의 몸에 덧입혀진 옷입니다. 또한 죄는 그 시선을 내면화한 저 낯선 존재들의 자의식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자신을 부정하고 불결한 존재로 생각하는, 이런 자의식을 가진 존재, 이들 낯선 존재들은 그 사회의 ‘하위주체’(subaltern)가 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불결하고 부정한 자라고 자인하는 존재들은 야곱처럼 속이는 자이고 사기 치는 자입니다. 불리한 여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대우든 감수해야 하고 어떤 인권의 훼손도 견뎌야 합니다. 윤리도 불필요하고 우애도 사치스런 태도에 다름 아닌 삶, 오직 생존본능만이 필수적 덕목인 삶, 게다가 그들을 낯선 자 취급하는 사회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이들은 밑바닥 문화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선망의 태도를 내면화합니다. 해서 그들은 천박함의 동일시를 몸에 체현합니다. 하여 자본주의적인 천박한 욕구에 매몰된 존재가 되곤 합니다. 물론 그들 모두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시민사회는 종종 그들이 모두 그렇다고 단정하며 비하합니다. 요컨대 그들은 ‘괴물적 존재’, 그로테스크한 타자로 표상됩니다. 13
이런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배타주의가 극성을 부립니다. 이런 배타주의는 종종 극우주의와 결합됩니다. 하여 극우적 배타주의자들은 저들 괴물스럽게 표상된 타자에 대한 적대와 린치를 제도화하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고대뿐 아니라, 오늘의 오클로스도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는 시민사회와 오클로스 사이의 소통 단절의 상황이 낳은 디스토피아적 현실입니다. 시민사회는 저 낯선 괴물적 타자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우선 시민사회의 언어에서 소외되어 가는 과정에서 저들의 언어가 비틀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비틀어진 언어는 이상한 소리, 몸의 이상증상, 심지어 악마적 행동 등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민중신학자 서남동은 이 비틀어진 언어를 ‘한의 소리’라고 불렀지요. 14 해서 시민사회는 이 한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일본의 영화 감독 코레이다 히로카즈(是枝裕和)는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Nobody Knows, 2004)에서 그 비언어적 언어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를, ‘금지’라는 근대적인 맥락과는 다른 포스트근대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비틀려 있든 아니든, 그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것은 ‘무관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해서 금지든 무관심이든 그 들리지 않는 오클로스의 소리를 번안하고 증언하는 자가 필요합니다. 서남동 목사는 그런 자를 ‘한의 사제’라고 불렀습니다. 민중신학자는 한의 사제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안병무 선생은 그러한 민중신학자의 행위를 ‘증언’이라고 불렀습니다. 민중신학자는 시민사회에서 은폐된 저 소리의 증언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언이라는 행위는 그 침묵의 소리를 듣고 해석하며 전하는 자입니다. 그것은 시민사회가 듣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 그 은폐의 장치를 밝혀내는 것이기도 하며 그것의 해체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일을 하는 민중신학자일까요? 골방에서 전문적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침묵을 강요당한 그 소리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것을 들었을 때 해독하기 위해 힘껏 노력하는 자, 그 해독을 방해하는 사회적 문화적 장치들을 해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 그리고 그렇게 가까스로 해독된 소리를 전하기 위해 온 힘 다해 일하는 자, 그런 일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증언자이고 민중신학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병무 선생은 사람들이 그런 민중신학자가 되는 것을 ‘이웃을 만난 자’로 해석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타자화된 자들은 종종, 아니 흔히 괴물적 존재, 그로테스크한 자로 재현됩니다. 최소한 불쾌한 자, 가까이 하기 싫은 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낯설고 이상한 존재(queer)가 우리의 일상을 가로질러 횡단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불연 듯 그 불편함으로 인해 사유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강도 만난 이를 돌보는 사마리아인처럼 환대로 반응하곤 합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순간을 선생은 예수를 만난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즉 저 낯설고 이상한 이가, 우리 삶에 불연 듯 끼어들어 우리로 하여금 그이를 위해 고민하게 하고 무언가를 하게 하는 순간, 우리는 예수를 그렇게 대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예수-오클로스 사건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의 구원사건입니다. 바로 이것이 선생이 말하는 민중 메시아론의 골자입니다.
요컨대 선생의 민중 메시아론은 오늘 우리의 시대에 불쑥 다가와 나의 일상의 생각을 교란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며 그로 인해 우리가 고민하고 환대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민중이 바로 오늘 내 앞에 현존한 예수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예수와 민중의 시공간적 오버랩 현상을 선생은 예수사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동참하려면 바로 예수를 대하듯 저 낯선, ‘퀴어’한 이들을 괴물이 아니라 이웃으로 여기는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강도 만난 이를 대하는 사마리아 출신 상인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웃으로 여기지 못하게 하는 장치들, 이데올로기들, 담론들, 제도들, 저 증오의 장치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작동을 해제시키기 위한 일에 혼신을 다해 노력하는 것, 그리하여 무조건적인, 절대적 환대 15의 제도를 모색하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구원체험을 계속하는 길이라고 선생은 말합니다. 안병무 선생은 이렇게 21세기 민중 현실을 대면하는 지혜를 오늘의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 이 글은 그의 글 모음집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한길사 1986)에 〈예수와 민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수록되었다. [본문으로]
- 이 글은 1984년 전국신학대학협의회가 개최한 '한국 기독교 100년 기념 신학자 대회' 때에 발표되었고, 《신학사상》 47(1984 겨울)호에 게재되었다. 이 논문은 선생 생전에만 무려 6회나 재수록되었다. 이 글이 재수록된 책 《21세기 민중신학―세계의 신학자들, 안병무를 말하다》(삼인 2013) 참조. [본문으로]
- 〈체험된 소통의 기록들―‘긴 1986년’ 안병무의 설교 분석〉, 《자유인의 교회―향린교회를 말하다》 향린교회 60주년 기념도서(한울 2013). [본문으로]
- ‘말의 정치’에 대하여는 제2회 세계한국학대회(2004.05.28.)에서 발표된 글 이동수, 〈‘말’과 정치―함석헌의 비폭력적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congress.aks.ac.kr/korean/files/2_1393918396.doc) 참조. [본문으로]
- 향린원의 수도회 모델이 대중적 교회로 변화하면서 1953년 향린교회가 탄생한다. [본문으로]
- 이 글은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된 두 명의 기독인 교수였던 김동길・김찬국의 출소를 기념하는 1975년 3.1절 예배의 설교 원고였고, 이 다음달 《기독교사상》(1975.4)에 게재되었다. 이 글이 재수록된 《21세기 민중신학―세계의 신학자들, 안병무를 말하다》 참조. [본문으로]
- 이 책은 1983년에 서남동의 제자 김명식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다가와, 《원시그리스도교 연구》(서울: 사계절, 1983). [본문으로]
- 당시 대중설화(popular narratives)를 민중신학자들은 ‘민담’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통상적인 어법으로 하면 대중설화는 신화, 전설, 민담이라는 하위 갈래로 나뉜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는 민중신학자들이 말한 ‘민담’을 ‘대중설화’로 고쳐 쓴다. [본문으로]
- 1980년대 말경 선생은 ‘살림’이라는 용어에 꽂힌다. 그 무렵 선생은 또 하나의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는데, 그 잡지의 이름이 ‘살림’이다. 이 잡지의 창간호는 1988년 12월호다. [본문으로]
- 죽임당한 아벨의 이야기는 선생이 말년에 쓴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에 나오는데, 이 글이 처음 발표된 곳은 《살림》 52(1993.03)이고, 선생의 말기 글들을 모아놓은 책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한국신학연구소 1995)에 수록되었다. [본문으로]
- 한나 아렌트, 〈국민국가의 몰락과 인권의 종말〉,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2006) 제9장. [본문으로]
- 내적 국경이라는 개념은 독일의 관념론적 철학자인 피히테의 용어를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강상중의 용어다. 강상중, 〈보론: 내적 국경과 래디컬 데모크라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이산, 1998), 205~222쪽 참조. [본문으로]
- 리처드 커니, 《이방인, 신, 괴물―타자성 개념에 대한 도전적 고찰》(개마고원, 2004) 참조. [본문으로]
- 서남동, 〈한의 사제〉, 《민중신학의 탐구》(한길사, 1983) 참조. [본문으로]
- ‘무조건적인 환대’는 자크 데리다가 임마누엘 레비나스 사후, 그의 환대를 재해석하면서 제시한 용어다. 이에 대하여는 데리다, 《아듀 레비나스문》(학과지성사 2016)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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