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글입니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 연구소와 [한겨레신문]이 공동주관한 4.19 50주년, 광주항쟁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열정과 좌절의 싸이클을 넘어 - 민주주의의 위기와 제2의 민주화의 모색> (성공회대성당. 2010.4.14)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벌써 8년 전의 글인 탓에 잊고 있었다가, 올해 한신대신학대학원 5.18 기념 학생주관예배 때 설교를 하게 되어서, 지난 글들을 찾다가 발견하였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 이 심포의 발표글들을 전재하였고, 내 글을 여기에 있습니다. 논평자는 서울시립대 교수이고 철학자인 이성백 선생님께서 하셨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6128.html
폴리뉴스에서 다른 글들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52732
-----------------------------------------------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운동’,
그 수상함에 대해 묻다
최근의 집합행동, 그 수상함에 대해 묻다
한나라당은 지난 4월 6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을 밝혔다. 그 내용은 밤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옥외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집회 및 시위를 금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현재의 ‘집시법’으로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기조를 지닌 대부분의 집회와 시위를 충분히 불법화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에서 법조항을 하나 더 추가하는 행위는 아마도 시위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심리적인 위압을 주고자 함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야간 집회와 시위의 금지 자체는 인권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 친정부 인사로 물갈이된 인권위에서 사무국 보고서로 제출되기도 했으니 법률안 자체로도 난항이 예상되며, 더욱이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지, 오히려 역효과를 빚을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불법화한다고 집단행동이 억제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촛불집회에 관한 많은 논평이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집합행동에 나선 대중의 절대다수, 그리고 그들을 이끌었던 지도집단의 대다수는 조직된 대중이 아니었고 시위라는 저항행위에 익숙한 이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선행하는 저항의 의미틀을 조롱했고, 조직운동가들의 전승된 대항행위에 관한 지혜를 무시했으며, 즉흥적이고 이벤트적이며 도발적이었다. 전승된 대항기억에 의존하지 않고도 대규모 집합행동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을 한데 엮는 감정적 결속의식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는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확신도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구나 놀랍게도 촛불집회의 전개양상은 파괴적이지 않았다. 더 비상한 질서관이 작동하고 있었고, 더 도덕적인 가치가 집단행동의 형식을 구성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법적 압박을 기도하는 것은 안이한 대응방식으로 보인다.
실제로 촛불집회라는 집합행동은 법적 강제로 억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정부가 주장하는 이른바 ‘법치’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시위로 인해 기소된 이들 가운데 단지 5%만이 실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경찰과 검찰의 과잉 법적용이 까발려졌을 뿐이다. 검찰은 집시법 기소 대상자의 3/4 이상을 경범죄로 하고 나머지 1/4만을 선별하여 기소했음에도 그것마저도 법적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결과를 빚었다. 이러한 사태는 결국 집합행동에 나선 대중에게 저항의 ‘법 외부적 성격’을 학습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하여 더 엄격한 법률 개정안을 만들고 그 시행을 최대한 엄격하게 하는 것으로 집합행동의 활력을 제거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 한국에선 그리 효과적이지 못한 방책으로 보인다. 아마도 정부와 여당의 무모한 법률 개정 행위는 제2, 제3의 촛불집회라는 집합행동이 일어날 경우 그것을 통제하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한, 실패할 전략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이 그다지 효과적이지도 않은 것에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어 온 시민들의 비판적인 집단행동에 그들이 적지 아니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의 반증일 것이다.
어쩌면 용산에서의 죽음은 정부의 이 당혹스러움이 경찰 수뇌부를 강박증에 빠지게 함으로써 벌어진 의도하지 않은 자충수였는지도 모른다. 또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강박증에 빠진 검찰의 과잉행동이 야기한 예상 못한 사태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사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부에 대한 공분(公憤)을 촉발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반정부적 집합행동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켰다. 아마도 집시법을 개정하려는 여당의 행동 또한 공공연한 집합행동을 자극하는 직접적 혹은 잠재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사려 깊은 정부였다면 이 부담스런 사태를 대체하기 위해 한국사회의 현실과 집합행동의 양상에 관해, 그 수상한 변화에 관해 좀 더 주목하였을 것이다.
그 수상함의 배후: 시민의 탄생 내력
사회통합을 위한 통치수단으로 허용이나 설득보다 제재(sanction)와 강제(coercion)에 더 많이 의존하는 지배양식은 한국 사회에서 근대국가적 제도화가 시작된 식민지 시대 이래 군부 권위주의 시대까지 계속되어온 비교적 일관된 정치 형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이 이러한 정치체제의 전환을 이룩하는 견인차 역할을 함으로써, 이러한 지배양식은 대다수 국민에게는 시대착오적 통치술로 기억되게 되었다. 물론 검찰이나 경찰 같이, 저 낡은 통치술의 전면에서 활약해온 정부기구들에서는 여전히 그 시대착오적 조직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겠지만 말이다.
10년간 계속된 민주정부들의 시대에 한국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제재와 강제의 대상이었던 사적인 욕구를 정치적으로 게걸스럽게 발산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조희연은 자끄 랑시에르(Jacques Ranci?re)의 ‘정치적인 것’의 사회철학적 함의를 끌어 들이면서, 정치를 국가가 회수하여 관리로 대체하는 ‘정치의 국가화’에 대해, 그것을 사회화(정치의 사회화)하는 것에서 급진민주주의의 담론적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조희연의 용어를 끌어들여 한국사회의 민주적 제도화 과정에서 뚜렷한 ‘정치의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글에서 내가 이야기한 방식에 따라 다시 요약하면 이렇다.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의 이행을 바라보는 한 시선으로 ‘국민의 시민으로의 이행’을 이야기할 수 있다. 여기서 ‘국민’이란 국가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내면화하는 집합적이고 대상화된 수동적 존재이고, 반면 ‘시민’은 자기 개인 혹은 자신이 속한 사적 결속체(가족이나 사적 네트워크 등)의 이해를 위해 국가와 거래, 교섭하는 다중화된 적극적 존재를 가리킨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적 제도)화 과정에서 시민은 억제된 권리의 과잉 발산과 강요된 국민/민족적 결속의식의 과잉 해체를 체현하면서 주체화되었다. 요컨대 민주화 시대 등장한 한국의 시민은 분출하는 인정욕구에 몰두하면서 주체화하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의 민주적 제도화가 소비사회화 및 지구화와 서로 깊게 얽혀들면서 전개되었다는 점은 시민적 주체 형성에 주요 요인이 되었다. 한마디로 ‘시장화된 시민’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기업이 그런 것처럼 시민 개인도 공공적 가치가 과잉결핍된 시장의 충실한 일원이 되어 갔다. 하여 시장화된 시민은 공공성이 결핍된 천민적 특성을 지녔다. ‘천민화된 시장적 시민’의 정신 속에는 타자를 상상할 기억의 자리는 결여되어 있다. ‘타인의 몰락’과 ‘자기애에 대한 몰두’라는 점에서 독재자와 천민적으로 시장화된 시민은 동질적이고, 그런 점에서 ‘큰 독재자’의 자리에 ‘작은 독재자들’이 들어선 것이 한국사회의 민주적 제도화의 한 디스토피아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10년은 시민들에게, 그렇게 열렬하게 자기애적 인정욕구에 몰두했음에도, 그리 행복하게 체감되지 않았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민주화운동을 수행하던 주역들은 민주화라는 유토피즘, 현실의 불행을 극복하는 저 상상의 나라를 꿈꾸며 행복을 선취(先取)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의 나라의 상상적 시민’은 민주정부들이 권위주의 정부를 대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세대적 기억’으로 자기를 주체화하며 ‘현실의 시민’이 되었다. 이때 ‘세대의 단위’가 반정부적 행위를 공유하던 조직의 범주에서 세대적 기억을 공유하는 광범위한 시민층의 범주로 확장되었음은 물론이다. 요컨대 민주화시대의 민주적 세대론은 실제를 투영하기보다는 ‘시장화된 시민’의 자기 알리바이로 ‘성화된 과거’가 회수된 결과다. 마치 예수 당대와 그 후속의 예수운동이라는 시대의 변혁을 꿈꾸던 한 사회운동이 시대에 대한 변혁의 꿈이 사라진 ‘사회운동 이후’의 주역인 교회에 의해 계승될 때, 교회는 그 존재 방식이 변혁적 사회운동으로 해석될 수 없음에도 예수와 예수운동가들의 세대적 기억을 자기들의 기억으로 전유함으로써 예수의 하느님나라라는 성화된 과거를 독점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해서 이후 교회 밖에서 예수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시장화된 시민은 그들의 욕구 밖에서 민주화를 상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결국 시장화된 시민의 ‘정치의 사회화’ 아니 ‘정치의 사사화’라는 민주적 제도화의 실패는 스스로에게조차 포스트민주화라는 다른 담론공간을 희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시민적 주체의 딜레마
‘신자유주의와 코드화된 민주적 제도화’, 이것은 민주정부 10년 동안 한국 정부가 비교적 일관성 있게 추진했던 국가발전전략의 양상을 요약한 것인데, 이러한 제도화 과정은 근력기반사회(brown-based society)에서 지식기반사회(knowlodge-based society)로의 정치경제적 변동을 수반하고 있다. 지식기반사회적 시스템은 생산성의 증대가 고용증대를 낳지 않고, 상대적으로 소수인 지식기반노동자의 상승과 다수의 근력기반노동자의 추락이라는 노동의 이분화 양상을 수반한다.
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빈곤화의 특징은 압도적으로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분화 현상과 관련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분화는 매우 빠르게 전개되었으며 또한 매우 폭력적이었다. 즉 이러한 이분화를 완충하는 제도적 시스템이 거의 형성되지 않은 채로 노동시장은 급격히 분화되었고, 하위노동시장은 가혹한 노동 상황에도 불구하고 빈곤 추락의 정도가 매우 높은 특징을 갖는다. 결국 중산층의 하향화 현상이 뚜렷한 추세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발전동원체제 아래서 높은 경제적 성공가능성에 충만한 대중이 일종의 폭넓은 ‘상향의 회색지대’를 형성하며 사회적 통합의 축을 이루었다면, 현재는 하향의 회색지대에서 빈곤선 아래로의 추락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여념이 없는 대중의 무한경쟁의 상황이 사회적 통합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타인이 몰락’을 내포하는 시민성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제도적 과정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민주화라는 성화된 기억의 도시, 그 도시의 일원으로 자기 자신을 상상적으로 동일시한 민주적 제도화 시대의 시민은 이렇게 게걸스럽게 자기 욕구를 추구하며 타인의 몰락을 체현한 정체성으로 주체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더욱 심화된 빈곤화의 위험으로 인한 예감된 공포에서 그네들은 벗어날 수 없었다. 해서 민주화 시대 시민은 불행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시민이라는 존재의 딜레마를 낳는다. 민주화라는 성화된 기억의 도시, 그 도시의 상상의 시민이라는 자의식은 민족공동체로서의 민주사회에 대한 신념과 가치에 대한 도덕적 결속의식을 공유하게 한다. 하지만 천민화된 시장적 가치에 의해 규율된 시민은 타자의 몰락과 자기애의 몰입이라는 특성을 지니며 주체화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적 자의식의 어정쩡한 결합은 저 사회적 불행 느낌으로 인해 존재의 불안감으로 체현되어야 했다.
이러한 존재론적 불안감은 존재의 딜레마를 극복해야만 해소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민은 민주화라는 신성함에 대한 상상을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그 철회는 그 도시의 상상적 시민권자인 자신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과거의 것으로, 그리고 민주주의 너머, 즉 포스트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현재의 것으로 재배치하는 기억방식이 대두하게 된 이유겠다. 포스트민주화는 이렇게 새로운 바람의 틀이 되었다.
한데 앞서 본 것처럼 민주화 시대의 불행감의 핵심에는 빈곤화의 예감,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포스트민주화에 대한 상상’을 민주화 시대의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역사화하려는 욕망으로 표현되었다. 바로 그것이 MB정부의 등장으로 구현된다.
이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체계의 요소 변화로 약술할 수 있다. 즉 군부 권위주의 시대는 사회적 동원이 군인의 합리성을 대중에게 강요함으로써 발전동원체제의 국민, 군사적으로 동원된 국민이 탄생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반면 민주적 제도화의 시대는 국가와 거래, 교섭하는 대중적 주체, 곧 시민이 등장한 시기인데, 이 사회적 존재는 민주화운동 세대의 기억을 사회적 기억으로 전유하여 정치화함으로서 주체를 재형성하였다. 그리고 포스트민주화 시대는 기업의 합리성, 기업 특유의 생각의 틀에 의해 사회적 제도가 재구조화되어야 한다는 시민적 욕구를 통해 역사화되고 있다. ‘사람 중심의 행복도시를 경제과학 중심도시로 전한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한 세종시 논란은 신자유주의와 코드화된 민주화라는, 성장과 참여의 모호한 결합을 지향했던 참여정부의 행정복합도시 비전과, 도시의 경제적 자족성을 위해, 비록 공공성이 후퇴하더라도, 모든 조건의 효율적 재배치를 강조하는 MB정부적 기업도시의 비전은 이러한 차이를 매우 잘 드러내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운동과 시민종교, 그 사이에 성찰 없는 시민이 살고 있다
어떤 정부도 단기간에 한국 사회의 시민적 불행감을 해소할 수 없다. ‘시간 지연’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벤트 정치’는 그러한 시간 지연의 유용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벤트 정치가 정치적 전략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의 본질로까지 지위 상승을 도모할 때 발생한다. 소비사회는 이벤트를 더 이상 홍보수단이라는 부수적 요소가 아니라 자체의 속성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동반한다. 그런 점에서 기업적 정신이 시민적 합의의 핵심요소로 작동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형성된 정부, 즉 ‘정치의 기업화’를 상징하는 정부에게 있어서 이벤트 정치는 단순히 정치의 시간 지연책이 아니라 정치 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4대강 개발사업이라는 어마어마한 국토프로젝트는, 유원지나 공원 같은 국지적 공간이 아닌, 전국으로서의 국토 자체가 이벤트적 스펙터클로 재현되게 하는, 이벤트적 정치의 가장 완벽한 사례이다.
그런데 MB정부의 ‘정치의 기업화’, 그 위험스런 정치에 대한 비판적 논점들은 대부분 MB 시대의 끊임없는 정부 비판적 저항의 동원논리가 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대중의 저항의 담론적 틀은, ‘의미’의 차원에서 보면, ‘알 수 없는 모호함’ 그 자체이다. 통합적 의미보다는, ‘격앙된 분노’라는 감정의 요소가 집합행동을 유발하는 데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2년 ‘효순이 미순이, 장갑차 살인사건’이나,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그리고 2008년 광우병소고기 사건과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사건 등, 최근 연이은 대규모의 대중적 광장의 정치는 의미의 수렴보다는 분노라는 격앙된 감정의 공조가 집합행동을 촉발했고 추동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것은 인터넷 매체가 이들 사건들에서 공히 사건에 대한 공통감각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인터넷매체는 어느 매체보다도 광범위하게 감정, 특히 분노감정의 교류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사건에 대한 무수한 의미들이 넘쳐나지만 그것을 통합하는 거대한 의미는 여간해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하여 인터넷에서 감정의 공유라는 합의동원의 조건이 형성되면, 집합행동이라는 광장의 정치가 발생하는 것은 매우 용이해진다. 게다가 위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최근 연이은 비슷한 형식의 대대적인 집합행동은 이러한 광장의 정치에 대한 신뢰도를 높임으로서, 서로 의미를 공유하지는 않지만, 이 에피소드적 사건들을 아우르는 유사한 공조감을 낳는다. 즉 각 사건별로도 거대한 의미론적 틀이 부재할 뿐 아니라, 그 사건들을 엮는 의미틀 역시 부재하지만, 집합행동의 참여자들은, 마치 조직도 다르고 이념도 다른 민주화운동 세대 간의 공조의식이 존재했던 것처럼, 거대한 동기의식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분노라는 거대한 감정적 공조와 그것을 엮는 거대한 의미틀의 부재, 이러한 특성의 집합행등은 마치 종교와 같다. 해서 이들의 집합행동은 마치 종교의례처럼 수행된다. 그것은 한국의 포스트민주화 시대의 ‘시민종교의 탄생’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가 될 수도 있다. 종교의례는 공통의 의미보다는 공통의 감각을 격렬하게 소비하는 ‘예외적 공간’을 제공해준다.
종교의례는 의례의 참여자에게 일상에서 벗어나는 짜릿함을 체험하게 해 주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간격의 심대한 차이, 그로 인한 자기 분열을 종교의례는 해소시켜주는 것이다. 하여 집합행동의 비상함, 그 격앙된 감정은 일상으로 복귀한 후에는 유지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민주화 시대 시민의 모순적인 존재의 딜레마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라는 성화된 도시의 상상적 시민과 생존게임에 몰두하는 천박한 시장의 노예가 된 현실적 시민 사이의 간극, 그것은 존재의 딜레마였다. 그리고 그것의 해소 방식의 하나가 민주화를 과거의 열망으로, 현재의 바람을 신자유주의적으로 정향된 포스트민주화적 성공주의로 배치하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기대로 나타났다. MB 정부는 이런 기대와 맞물려 등장했다.
그런데 MB 정부에 대한 저항적 집합행동은 다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도덕적 가치로 공유하면서, 그것을 위반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MB 정부에 대해 분노를 퍼붓는다. 그리고 나서 그 집합행동의 수행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민주화시대와 포스트민주화시대를 아우르는 가치, 그리고 그런 가치와 연계된 지식기반사회적 제도화의 무한경쟁의 질서에 규율된 존재로 살아간다. 바로 그 모순된 행위, 비일상과 일상적 행위 사이에 그러한 모순을 완충하는 집합의례가 있다. 바로 이것이 종교의례의 효능이다.
과거에는 기성의 종교들, 특히 성장주의 시대 대중종교로 급성장한 개신교가 그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많은 종교들은 그러한 개신교의 시대 적응 전략을 더러는 빠르게 더러는 느리게 모방하면서 존재하였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종교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급속도로 격하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의 경우는 가장 심각하다. 시민사회는 어느 때보다 종교를 필요로 하는데 교회는 점점 시민사회로부터 시대착오적 공간이 되어 가는 사정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적 시민종교의 탄생 내력이 있다. 내가 보기엔 요즈음 한국의 ‘광장’은 그러한 한국적 시민종교의 형성되고 있는 징후를 보여준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이은 죽음, 다른 성격의 이 두 죽음은 마치 기독교의 신의 죽음과 부활의 서사처럼 최근의 일련의 의례를 종합하는 서사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은 것은 사회운동 이후의 사회운동, 즉 집합행동이 끝난 뒤 그 사건들을 엮어내고 그 대미에 의인의 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는 반전의 드라마가 해석의 틀로 자리잡아 간다면, 한국적 시민종교는 나름의 잘 짜인 서사를 갖추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면 시민종교는 제도적 종교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삶의 모순을 해소시켜주는 장치로 작동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서사적 가능성은 광장의 정치가 종교의례적 효과를 내포하고 있다는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종교의례가 된 광장의 정치는 ‘어쩌면’ 불온하다
이제 글의 마무리해야겠다. 분노라는 격앙된 감정은 시민종교의 집합의례를 통해서 광장에서 실연되었다. 많은 이들이 광장의 정치라고 부르는 정치 행위는 동시에 하나의 종교처럼 수행되고 있다. 정치이기도 하고 종교이기도 한 최근의 사회운동의 특정한 양상에 대해서, 나는 그것이 종교처럼 수행되는 점에서 대해 그 문제의 한 측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참여하고 있던 계간 잡지가 민주화운동이라는 성화된 기억에 대해 비판적 논점을 제기해왔던 것처럼, 나는 최근의 새로운 사회운동에 대해서, 그것이 민주화를 향한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에도, 동시에 그 우려스러움, 그 또 다른 불온한 가능성에 대해 지적하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사회의 시민성은 타인의 몰락과 자기애의 몰두를 통해 주체화되었다. 이러한 시민적 주체는 민주화와 포스트민주화를 아우르는 존재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화와 포스트민주화의 시대 시민은 거의 대부분 불행을 체감하고 있다. 이것은 이 시대 시민의 사회적 고통의 배후이자 결과다. 기든스는 근대사회는 이러한 시민성의 양립할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존재하며, 그 속에서 발달하는 성찰적 자아는 ‘수치심의 메커니즘’을 갖는다고 본다. 한데 감정의 사회학을 발전시킨 토마스 쉐프에 의하면 바로 이 수치심은 종종 분노와 적개심을 낳고, 또한 그것이 사회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시대의 광장의 정치는, 그 배후에 놓인 분노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유래한 수치심의 발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수치심이라는 사적 체험은 사회의 구조적 위기와 연관된 것이지만, 사적인 감정의 양상이다. 한데 그것이 모종의 과정을 통해 공적 언어를 획득한 것이 사회운동이다. 이런 관점은 촛불정치와 팬덤이라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행위가 동일한 감정의 메커니즘에서 유래한 다른 행위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적 감정이 사회적 행동으로 번안되는 과정에서, 특히 집합행동처럼 도덕의식이 과잉으로 작용하는 생각의 장치가 종교의례처럼 수행되고 있다면, 이러한 의례에의 참여는 자기 분열의 상처는 봉합하는 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타인의 몰락을 내재화하는 일상의 시민은 바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적인 수치심이 분노로, 그리고 그것이 사회운동으로 번안되는 과정에서 공적인 주체가 발달하게 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은 타자의 배제를 내적으로 공고히 하는 무관심의 체제의 공모자임을 망각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배제라는 망각의 제도는 바로 이러한 자기 성찰의 실패 속에서 우리 몸 안에서 서식한다.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조심하라” (0) | 2018.07.11 |
---|---|
예수운동과 젤롯데 운동 (0) | 2018.07.09 |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개신교 신앙 - ‘88선언’의 ‘2018년식 리폼’을 위하여 (0) | 2018.05.08 |
서바이벌 잔혹터널을 견디는 ‘묵시록’의 지혜 (0) | 2018.05.08 |
추천사_ 테드 제닝스 지음, 박성훈 옮김_무법적 정의 - 바울의 메시아 정치 (0) | 2018.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