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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우리 안의 식민의식’을 넘어

한백교회 2000년 7월30일 하늘뜻 나누기 원고를 수정 보완해서 [반신학의 미소]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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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의식을 넘어

 

 

 

 

한 병사가 군복을 입은 채 프랑스 국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위대한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듯 비장한 표정이다. 한데 실상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알제리인이었다. 바로 프랑스의 식민지 백성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압제자의 국기를 향해 이런 충성심을 표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신화의 비밀이 있다.

이것은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파리 마치라는 프랑스의 한 잡지 표지에 실린 사진을 가지고 던진 질문과 대답이다. 이후 이 사진은 일약 신화론의 교과서적 텍스트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열린 전범재판소엔 원주민 학살 혐의로 낙인찍힌 일본군 병사들이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고 한다.

 

1994년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그 배경은 이렇다. 1991년부터 시작된 북미 핵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미국 내에서 보수강경파가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굴욕적인 핵시설 해체를 수락하라는 정치군사적 압력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전쟁의 위협이었다. 이미 1991년 이라크를 향한 대대적인 공격으로 그 호전성의 시범을 보인 뒤였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선 그 위협이란 실로 엄청난 하중을 지닌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당시 미국내의 보수강경파의 입지 강화에,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의 김영삼 정부가 지대한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 정계 요로를 휘젓고 다니면서 공식 비공식으로 북미간의 관계 개선을 필사적으로 방해하고 다녔고, 이는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의회의 냉전주의자들의 입지를 한층 강화시켜 놓았던 것이다. 다행히 북한을 전격 방문한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IAEA 사찰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이듬해인 199510월 제네바 합의로 북한이 굴욕적인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전쟁의 위기는 일단락되었다.

이 전쟁 위기 상황은 각 이해당사자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을까? 북한은 협의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약속받았던 경제적 지원은커녕 경제 제재를 해소하지도 못했다.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공화당은 이 협약에 대한 미국의 이행을 방해하는 갖은 조건과 제한을 입법화하였던 것이다. 이후 내란이 일어난 최빈국에서나 있었을 법한 극도의 기아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사태의 진전은 제네바 합의 자체가 미국이 북한의 붕괴를 예상하고 한 사기극에 불과했다는 강력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요컨대 북한은 이 사태로 인해 얻은 것이 거의 없었다.

반면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가상적이 사라짐으로써 국제적으로 확산된 반핵-군축 여론에 밀려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있었다. 미국의 군사비가 전체 국가예산의 50%를 상회한다고 하니, 무기시장 없이 과연 미국 경제가 지탱될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들 정도다. 사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군사력은 미국이 전후 세계질서를 주도해간 제1의 비결이었다. 요컨대 미국을 정의하는 가장 적절한 개념 중의 하나는 군사제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군수산업이 극도로 비대한 사회라는 뜻을 포함한다. 그런데 미국이 규정한 불한당 국가에 속하는 이라크와 북한이 미국의 군사예산 감축 및 세계 무기시장 위축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구실을 해주었다. 물론 이것은 미국의 군수산업이 위축될 상황을 모면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4~2000년에 세계 무기시장의 63%는 미국의 것이다. 군산복합체적 국가로서의 미국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뿐 아니라,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던 의회가 클린턴 정부에게 국제적 지탄을 받고 있는 군사전략인 NMD(국가미사일방어체제), TMD(戰區미사일방어체제)로 상징되는 미사일을 통한 세계지배전략을 승인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북미 협상은 동아시아의 냉전기류를 확산시키면서 일본의 재무장화를 가속화시키는 주된 계기가 된다. 때맞춰 일본 국회에서는 기미가요를 국가(國歌)로 그리고 일장기 히노마루를 국기(國旗)로 채택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평화헌법의 개정 압력이 일본 정계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재무장화가 시작된 일본군은 세계 3~4위 수준에 해당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미국과 TMD 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이것은 사실 가까운 미래에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미국에 필적할 유일한 국가인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 구축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러한 전략이 확고해지면, 한반도의 평화 정착 나아가 통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일본에게 있어서 남한이나 대만은 중국의 팽창을 막는 전진기지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내 강경파와 군수자본의 득세에 크게 기여한 남한 정부는 과연 어떤 이익을 보았을까? 알다시피 거의 얻은 게 없다. 그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고 있던 절대우방국인 미국에 대한 예속상황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다. 게다가 북한 체제의 붕괴가 남한에 미칠 부정적 영향, 특히 경제적 문제가 거론되면서, 국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의 준비 안된 지원책에 부랴부랴 참여해야 했고, 미국식의 북한 핵시설 해체 사업에 깊숙이 끼어들어야 했다.

이렇게 보면, 어느 모로 보나 1994년 남한의 정부가 추구했던 반공주의적 보수강경 노선의 채택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임에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노예는 주인님의 욕망을 위해 자신을 봉사한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한 행동이 아니다. 아니 노예란, 자신의 욕망이 곧 주인님의 욕망이라고 믿는 자다. ‘주인님이 잘되는 게 곧 자신의 삶의 목적이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때 노예는, 그의 신체는 주인에게 정복당한 상태다. 즉 그의 신체는 주인님의 식민지인 것이다. 그래서 주인과 노예인 것이다.

파리 마치의 표지에 실린 흑인 병사의 신체는 기실 프랑스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주인에게 양도했기에, 자신의 신체의 욕망, 사랑일 수도, 가족애일 수도, 부를 향한 욕망일 수도 있는 그의 신체의 존재 의의가 식민지 종주국인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욕망으로 대체된 것이다. 또한 일본군으로 참전한 조선의 청년들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다.

이러한 대체에 신화의 비밀이 있다. 제국주의는 신화를 통해 대상을 식민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지인 신체를 가진 자는 주인의 욕망을 위해 존재하며,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주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호세아 예언자는 군사 대제국인 앗시리아와 에집트 사이에서 설왕설래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조정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에브라임은 바람이나 먹고살며 날마다 열풍이나 쫓아다닌다.

거짓말만 하고 허풍을 떨며 아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에집트에 기름을 선사한다

호세아서 12,2(표준새번역 성서에는 12,1)

 

그가 보기엔 저들은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펴려하기보다는 제국들의 정복야욕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할 뿐이었다. 저들은 호들갑스럽게 조공을 바치며 제국의 후원을 기다린다. 앗시리아 혹은 에집트는 자기들을 지켜주는 큰 형님뻘되는 대국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을 먹으려는 것처럼 부질없는 행위일 뿐이다. 왜냐면 제국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조정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들은 결코 이스라엘의 영원한 우방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백성에게 있는 한 톨의 알곡까지 갈취해서 그들이 이루려했던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예언자는 힐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집권층의 태도를 우상숭배라고 비난한다. 일종의 사대주의요, 노예의식을 가리킨다. 열심을 다하는 것 같지만, 왜 그렇게 하는지를 성찰할 줄 모르는 태도다.

 

우리는 과연 자주적 국가일까?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큰 형님 미국을 맹목적으로 신봉해왔던 열혈 반공 냉전주의자들의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주한미군의 법적 위치에 관한 소파(SOFA) 협의가 진행 중이다. 과연 우리는 여기서 우리 신체의 자주권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까?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치권 경색의 원인의 하나는 분명 냉전적 사고와 관련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민족이라는 자기 신체의 이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식민화된 의식의 소유자들이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신화를 파헤치고 그것을 비판하는 지혜, 호세아적 지혜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