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삼인 2006)의 2부 1장에 수록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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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주기까지는 그들은 ‘꽃’이 아니었다
안병무의 ‘오클로스론’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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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3월, 40대의 한 남자가 동대문야구장 공중전화부스 옆 쓰레기더미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보름가량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이 시신은 꿰나 훼손되었다. 그 사이에 어림잡아 7백 명 정도의 사람이 공중전화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누구도 쓰러져 있는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사후에야 이 남자는 ‘48세의 노숙자 김종식’임이 밝혀졌다. 국졸 학력이 전부인 그는 소작과 날품팔이를 전전하다 노숙자로 전락했고, 영향실조와 추위로 가망 없는 삶을 마감했다. 꿈이 아직 살아있었을 시절, 어떤 로맨스에 젖었을 법한 시절, 가난하지만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시절의 그가 어떻게, 어떤 경로로 노년에 채 이르기도 전에 모든 것을 포기한 무능력자로 전락했는지는 알 수 없다. 퍽이나 힘겨웠을 그 여정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누구도 그에 관한 기억을 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또 다른 사람인 정주영 씨를 세상이 기억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넘치는 이야기를 가진 그에 관해 한국의 거의 모든 매체는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려 온힘을 기울였다. 기억의 불균형은 아무리 소통매체가 발전해도, 국내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흐르는 소통망을 통해 범람하는 말의 바다로 뒤덮인 세상이 되어도, 아니 그럴수록 그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촘촘한 통신망의 세계는 기억의 지평을 놀랍게 확장했지만, 동시에 망각의 공간을 더욱 은밀하게 만들었다. 침묵하는 존재, 아무도 말 걸지 않고, 아무도 이야기하거나 기억하려 하지 않는 존재들의 공간은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들었다.
지구화된 세계의 고통은 이렇게 심화된 기억의 불균형 속에서 체감된다. 세계의 경계가 가장 빠르고 가장 폭력적으로 허물어진 지구적 경제 메커니즘 속에서 그야말로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그러한 소용돌이 속으로 급격하게 휘말려들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는 구조화된 고도실업, 그리고 고용시장의 외부화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의 과도한 팽창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 한국이 당면한 가장 직접적인 고통의 양상이었다. 이제 불행은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도사리고 있다. 자칫 경쟁에 뒤처지기라도 하면, 혹은 이런저런 운 나뿐 일이 닥쳐 휘청거릴 순간이 오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들 태세다. 실패의 가능성은 널려 있었고, 실패로 인한 불행, 그 무자비한 폭력은 누구에게나 예감되고 있었다. 예감된 폭력에 대한 공포는 만연했다.
이런 세상에서 누가 이웃을 돌보랴. 남의 불행을 짓밟고 살아도 불확실한 미래인데...... 혹여 눈앞에 불행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괜스레 마음이 아파오는 법이지만, 그를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런 세상에서 자본의 고약함은 끝이 없다. 이러한 불편함을 잊게 하는 무수한 여흥의 산업화가 발달하게 되고, 그것을 소비하며 가볍게 웃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가운데 성찰적 진지함은 점차 가슴 속에서 사라진다. 결국 시민사회의 기억의 불균형은 폭력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현저히 감퇴한 양상을 나타낸다. 곧 망각된 야만의 사회, 은폐된 야만의 체제가 바야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인 것이다.
이제 실패자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수많은 김종식’은 오늘도 서울역에서, 시청이나 을지로 지하철 통로에서 정처 없이 서성이고 있다. 그들 중에는 본래부터 달동네 무허가주택 출신도 있고, 대기업 오피스맨(걸) 출신도 있다. 지지리 풀리지 않는 인생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다 구덩이에 빠져 잘 나가던 일터에서 퇴출되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이리저리 살다 공적 사적 네트워크에서 잘려나간, 심지어 최후의 보루였던 가족으로부터도 퇴출된 사람일 수도 있다.
사회적 관계가 뿌리 뽑힌 사람,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어진 이는 마약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한다. 이것은 존재의 무장해제며, 자기의 부정이다. 그것은 죽음의 예비 과정이며, 그러한 중독 상태는 그(녀)가 존재의 파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곧 삶의 가장 끝단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그래서 자살했고, 또 많은 이들이 길에서 아무렇게나 쓰러져 죽어갔다.
물론 실패자는 회생할 수 있다. 사실 국가나 사회는 실패자를 회생시키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종 복지제도나 사회부조형 시민운동들은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회생의 기회를 또 다시 놓친 것은 게을렀기 때문이라거나 무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튼 적지 않은 실패자는 점차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해 간다. 실제로 국가나 시민사회, 또 일상의 담론에서 실패자를 무능력화하는 메커니즘은 꽤나 많다.
그렇게 무능력화된 사람, 그렇게 희망을 지워버린 사람은 말이 어눌해진다. 누구도 그(녀)를 부르지 않고 누구도 그(녀)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그(녀) 자신도 세상에 대해 문을 닫아버린다. 그(녀)가 세상에 말을 하는 것은 값싼 도움을 얻기 위한 비굴함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처신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한지 계산할 능력도 상실해버렸다. 무엇이 자신의 욕망인지조차 잊어버렸다. 한마디로 그(녀)는 ‘실어증’에 걸려버렸다. 동시에 세상은 그(녀)가 실어증에 걸렸는지조차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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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힘’에 관한 민중신학적 상상력을 가장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그리고 안병무 선생의 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용어를 들라면 나는 단연 ‘오클로스’(ỏχλος)를 떠올린다. 흔히 ‘무리’ 혹은 ‘대중’으로 번역되는 이 어휘는 제2성서에서 174번이나 등장하지만, 이 중 거의 80% 이상이 예수 이야기와 관련된 문맥에서 사용된다. 그들은 주로 예수 주변의 익명의 사람들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그들은 말씀의 청중이고 기적의 목격자이며, 하느님 나라 선포의 수혜자, 특히 그 나라의 선취적(先取的) 사건으로서의 기적의 수혜자인 무명의 사람들이다. 1
그런데 〈마태오복음〉이나 〈루가복음〉에서 이런 사람을 지칭할 때 흔히 사용된 용어로 ‘라오스’(λαος; 백성)가 있다. 요컨대 이 두 복음서에서 라오스와 오클로스는 질적으로 구별된 사람의 부류로 사용되지 않는다. 용례를 통해서 볼 때 라오스는 ‘영역 내의 사람들’이라는 함의를 갖는다. 그래서 왕국의 백성일 수도 있고 특히 하느님의 백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 또는 회당 (체제) 내부의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반면 〈마르코복음〉의 경우엔 이러한 라오스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제1성서의 인용문에서만 두 번 나올 뿐이다.(7,6; 14,2) 흥미롭게도 〈마르코복음〉을 대본으로 하여 쓰인 것으로 알려진 〈마태오복음〉과 특히 〈루가복음〉은 몇몇 곳에서 〈마르코복음〉의 오클로스를 라오스로 바꾼다.(〈마르코복음〉 15,15→〈마태오복음〉 27,25; 〈마르코복음〉 3,9→〈루가복음〉 6,17; 11,18→19,48; 11,32→20,6; 12,37→20,45 등) 한편 〈마르코복음〉 이전에 집필된 바울의 서신들에는 이 용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또 제1성서의 그리스어 역본인 《70인역 성서》(LXX)에서도 라오스의 빈도에 비해 오클로스는 현저히 적게 사용되었다. 2 필경 오클로스는 라오스에 비해 생소한 단어였고, 때로는 불편한 뉘앙스를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정황을 보건대, 〈마르코복음〉이 라오스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또 오클로스를 의도적으로 강조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의미심장함에 주목한 이가 일본의 급진적 신학자인 다가와 겐조(田川健三)다. 3 안병무 선생을 포함한 일단의 민중신학자들이 오클로스에 주목하게 된 것은 추측컨대―선생 자신은 부정하고 있지만―다가와의 영향으로 보인다.
다가와는 오클로스가 등장하는 〈마르코복음〉의 문맥에 세리, 병자, 매춘녀, (천민의) 자식 등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요컨대 오클로스는 계층적 함의를 갖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락에서 제자들과 오클로스가 대비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는 〈마르코복음〉 저자가 제자를 비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입한 개념이라는 해석을 내린다.
반면 안병무 선생은 오클로스를, 다가와처럼 특정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하지만, 그것은 전승의 효과이지 저자의 고의적 조작에 따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즉 그들은 〈마르코복음〉의 청중일 뿐 아니라 그로부터 한 세대 이전에 있었던 예수 사건의 대중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대중의 사건인 ‘(역사의) 예수 사건’이 〈마르코복음〉과 대중이 벌인 ‘마르코의 예수 사건’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대중의 계층적 연속성에서 보는 것이다. 바로 오클로스가 그 최초 사건의 ‘담지자’였고 ‘전달자’였으며 마르코적인 ‘해석자’였다는 것이다.
안병무 선생이 전달자를 엘리트로 보지 않고 가장 밑바닥 대중인 오클로스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선생의 논지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중은 계몽적인 훈화나 잠언 같은 용도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narratives) 속에 마음이 동화되어, 시공간을 넘는 사건의 동참자로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이야기 속에는 자신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연루되어 있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꿈이 농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중은, 오클로스는 그 이야기 속에 자신을 마음과 몸을, 삶 전체를 실어 이웃에게, 동료에게, 혹은 낯선 이들에게 전달했던 것이라는 얘기다.
선생의 상상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경험의 유사성’이 ‘기억의 유사성’을 낳았다면 도대체 그 기억되는, 곧 기억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되는 예수 이야기의 형식은 어떤 것일까? 선생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유언비어’(루머)다.
예수의 처형은, 의인에 대한 그 처절한 도살극은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너무나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왜 하느님은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가? 악한 자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한데, 여전히 불법과 폭행을 자행하고 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기름기가 흐르고, 그들의 자녀는 귀티 나는 풍모가 넘치지 않는가? 그들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고, 그들이 벌이는 사업은 번번이 대성공을 거듭하지 않은가? 의인을 죽인 자들이 대변하는 공식적 담론에 따르면, 예수는 거짓 예언자이고 사기꾼이며 하느님을 함부로 들먹인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자였다. 저들은 포고령을 내려 온 도시, 온 마을로 전령을 보낸다. ‘예수는 처형됐다. 그 불온한 자가 죄값을 다 치르려면 백번을 죽어 마땅하다. 아마도 신께서 그를 영원한 형벌로 다스릴 것이다. 그러니 백성들은, 예수를 따르는 불순분자들의 획책에 속지 말라. 그들은 그 자가 죽지 않았다는 등 터무니없는 거짓 선동을 일삼는 자들이다. ......’ (가상의 포고령이지만, 그랬을 법 하지 않은가.)
필경 공식적 매체를 지배하는 이들의 시선에는 이 포고령이 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이들, 특히 예수를 기억하는 오클로스들의 눈에는 이것은, 이 분통터지는 모함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가 죽임당한 일로 크게 절망했지만, 저들의 ‘거짓말’에 너무나도 억울했기에, 공식적 매체에 의한 그 기억의 불균형에 참을 수 없었기에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고령이 위세 떠는 ‘광장’ 한복판에서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서로 은밀히 쑥덕이며 입에서 입으로 예수에 관한 자신들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단편적 기억들은 그리 오래지 않아, 긴 줄거리를 가진 예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 안병무가 보기에 〈마르코복음〉의 원형은 이렇게 탄생했다. 비공식적 대중매체인 유언비어의 형식으로 그것은 기억되었고 전달되었으며 긴 이야기로 구성된 것이다.
한데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무엇을 망각하는 일을 수반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주체, 전달하는 주체, 해석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선생에 의하면 〈마르코복음〉은 오클로스의 기억이 토대가 된 텍스트다. 간직하고 전달하고 해석하는 이들 기층대중의 ‘공감’ 속에서 예수에 관한 기억이 살아남았다. 공감은 그들이 절망하기도 하고 희망에 부풀기도 하는 현실 한복판에 자리잡는다. 그 안에서 울고 웃고, 화내고 참고, 사랑하고 미워한다. 이렇게 기억한다는 것은, 그 내용 안에 ‘기억되는 예수’만 있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이들의 삶’이 들어 있다. 즉 기억은 기억하는 이와 기억되는 이의 소통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선생은 경험의 유사성에서 기억의 유사성을 읽는다. 기억하는 이들이 오클로스이고 이들의 공감 아래서 유언비어 형식으로 〈마르코복음〉의 저자에게로 예수 이야기가 전달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계층적 좌절의 구조와 그것을 탈출하려는 계층적 욕망과 꿈이 예수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는 다른 경험, 즉 (계층적 유사성이 아닌) 다른 요소에 의해 기억의 유사성이 담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오클로스를 통한 〈마르코복음〉의 예수에 관한 기억은 역사의 예수를 보는 단지 하나의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적 예수 이해는 ‘예수→〈마르코복음〉’으로 이어지는 이해의 계보 위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 사건의 전승 양식이 유언비어였다고 하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예수와 그 주변의 오클로스’ 간의 대화를 통한 기억과 ‘〈마르코복음〉과 그 주변의 오클로스’ 간의 대화를 통한 기억이 서로 연계성을 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예수에 관해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일은, 예수 개인이 누구였는지를 밝혀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4 예수와 그 주변의 대중이 더불어 일으킨 사건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서구의 역사의 예수에 관한 어떤 연구도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사건을 통한 예수 이해는 역사적으로 가능하며, 이러한 역사학적 가능성 위에 안병무의 민중신학은 기반을 두고 있다. 5
안병무 선생의 이러한 상상력의 기반은 놀랍게도 한국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관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1980년 광주’의 기억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는지를 보면서 선생은 유언비어라는 예수 이야기의 전승 양식을 착안했던 것이다. 다른 장에서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선생의 성서 읽기는 이렇게 한국적 맥락, 그러한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중사건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다시 우리의 핵심적 질문에로 돌아가 보자. 사회로부터 뿌리 뽑힌 존재인 오클로스에 관한 이야기로 말이다. 앞서 ‘라오스’라는 단어가 ‘영역 내의 사람들의 부류’를 포괄적으로 가리킨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반면 〈마르코복음〉은 이 어휘보다는 오클로스를 선호했음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다가와나 안병무 선생은 공히 이들 오클로스가 뿌리 뽑힌 자들이라고 본다. 즉 ‘체제의 영역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영역의 안과 밖’이라는 사회의 대립구조가 이 두 단어에 얽혀있다.
한데 흥미롭게도 〈마르코복음〉의 공간적 틀과 오클로스의 용례를 살펴보면, 오클로스는 ‘회당 안’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6 예수 시대 유대의 촌락 사회에서 회당이란 유대인을 규정하는 구체적인 경계의 역할을 하였다. 우선 비유대인은 회당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한편 유대인이기는 하되 출입이 유보된 사람들도 있다. 가령 타인을 부정타게 하는 이들이다. 흔히 복음서가 ‘죄인들’이라고 부르는 자들을 말한다. 이렇게 유보된 존재는 언제든지 죄인의 굴레가 되는 요건에서 벗어나면 복권될 수 있다. 이치상으로는 말이다. 한데 문제는 그것이 현실에선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가령, 목동이나 (하급)세관원, 거렁뱅이 같은 이들이 죄를 짓지 않으려면 더 ‘깨끗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들 천민에게 허용된 깨끗한 직업은 거의 없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유대인의 율법에 충실할 수 없다. 또 매춘녀는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인 유대 사회에선 사실상 복권될 수 없는 존재다. 문둥병이나 악령 들림 같은 심각한 질병에 걸린 이는, 예수의 기적 이야기에서 보듯이, 기적을 통해서 몸이나 영혼이 깨끗해지더라도 여간해선 체제의 수호자들에 의해 정결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회당은 유대 사회의 ‘안과 밖’을 경계지우고, 그 외부에 대한 배제와 박탈을 구체적으로 체험케 하게 하는 기구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오클로스가 회당 밖에서만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영역 밖의 사람들이라는, 즉 라오스와는 대립되는 사회 계층적 함의를 지닌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오클로스는 타율적으로 영역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대 사회에선 귀속할 곳이 없다. 심지어 문둥병이 걸린 이는 가족으로부터도 배척된다. 하혈하는 여인(〈마르코복음〉 5,24~34) 7이 예수의 옷깃에 손을 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찌할 줄 몰랐다는 것은 오클로스가 영역 내의 존재라고 여기는 이를 대할 때의 주눅들어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실상은 오클로스가 영역 외부의 존재라는 것은 그들의 자괴감이기도 했다. 즉 그들은 타율적일 뿐 아니라 자율적으로 영역 밖의 사람들인 것이다.
‘군대’(레기온, λεγιον)라는 악령 들린 이(〈마르코복음〉 5,1~20)는 자기 자신의 이름마저도 잊었다. 성서에 의하면 그는 무덤 사이를 뛰어다니며 괴성을 지르는 존재다. 즉 그는 사람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 사람의 언어가 아닌 것을 발성한다. 그는 사람의 영역 내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소망과 무의식적인 욕망을 표현할 언어를 상실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그가 자해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세상을 위협하는 그의 언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그를 잡아 묶어둬야 한다고 믿었다. 아무도 그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보려 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조차 않았다. 예수가 그를 만나고 그의 이름을 묻고 그와 얘기를 나누기까지는......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세상은 오클로스와 대화하는 데 장애물로 가득하다. 대화의 결핍은 기억의 상실을 야기한다. 즉 그들은 유대 사회에선 망각된 존재다. 그렇기에 이들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해 그토록 몰인정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 저주받은 이들의 고통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을, 죽음 같은 삶을 방치할 수 있었다.
주체가 상실된 자, 주체가 없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 바로 그런 ‘비존재인 존재’ 오클로스는 유대 사회의 구원의 주역일 수 없다. 아니 그들은 자기 자신을 정당화할 수조차 없다. 오클로스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인간적 한계 체험을 초극할 신적 지혜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실어증’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는 바로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역이라고 선언한다.
여기에 심각한 간격이 가로놓인다. 세상의 죄를 상징하는 존재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존재 사이에는 여간해선 넘을 수 없는 깊은 수렁이 있다. 그것은 복음서의 ‘벙어리 악령 들린 이’(〈루가복음〉 11,14)의 모습과 같다. 그는 단순한 농아자가 아니다. 단순한 기능장애자가 아니라 신적인 저주를 운명으로 타고난 자다. 세상과 그 자신이 그렇게 믿는 한, 그는 실어증, 곧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상실한 상태의 사람이다. 그것은 세상과의 대화가 차단되는 실어증이다. 그를 주변의 관계와 분리시키는 실어증이다. 요컨대 그는 세상에 속하나, 세상의 어느 곳에도 귀속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 그러한 탈귀속성을 존재의 운명처럼 만드는 실어증에 걸려 있다. 그런 이를 예수가 고쳐주었다. 그것은 단지 질병의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중대한 변화다.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고, 자신의 꿈과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의 성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타자의 구원을 위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능력한 자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앞에 열리게 되는 순간이다. 바로 ‘기적의 파격’이 필요한 것이다.
안병무 선생 자신은 이 간격의 심대함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고난의 담지자인 오클로스가 역사의 주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영역 밖의 사람들인 ‘오클로스’를 예수 이야기의 전승 주체라고 이야기할 때 거기에는, 그가 의식하든 않든,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질곡 같은 간격을 넘는 기적적인 사건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대중을 무능력화하는 실어증의 체제가 그들의 신체 구석구석까지 스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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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의 비판적 지식사회의 민중론은 실패했다. 오늘날 민중론을 얘기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처럼 여겨진다. 그것은 여러 이유로 설명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민중론들이 ‘고통의 담지자인 민중’과 ‘역사의 주체인 민중’ 사이의 간격을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은 데 있다. 그래서 그 ‘고통’과 ‘고통을 낳는 구조’를 깊게 천착하지 않았다. 사회의 고통의 구조는 독재자가 꿈꾸는 세상에 관한 프로그램의 산물이라고만 생각했지, 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이 그 구조의 재생산에 관여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독재자의 성공주의를 자기 자신이 모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독재자의 체제가 낳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실패자에게 가중된 고통이 연동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이 연루되지 않은 ‘체제의 악’을 제거하면 된다는 속단은, 여전히 계속되는 아니 더욱 심화되는 영역 밖의 사람들에 대한 가중된 폭력을 성찰하는 데 장애가 된다. 나아가 실어증에 걸려,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멋대로 상상해서 역사의 주체라는 ‘숭고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심화된 폭력은 미화된 허상 때문에 더욱 은폐되었다.
실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적의 파격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악령이 지배하는 세상의 만만찮음에 주목하게 한다. 또한 그 악령이 파 놓은 함정에 어느새 걸려버린 우리 자신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에 대해 경청하게 한다. 우리 자신도 체제의 방식대로 ‘기억의 불균형’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역 밖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론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선생 자신이 오클로스론의 충분한 의미 가능성을 살리지 못했지만, 그것의 중요성은 오늘처럼 불균형한 기억의 체계가 야만을 은폐하는 체제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을 천착할 가능성에 열려 있게 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선생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식인의 증언’을 애기한다. 사회의 숱한 퇴출 기재들, 그 속에서 귀속할 곳을 하나하나 빼앗겨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무능력화와 자기 파괴의 양상, 이 모든 것이 그들의 말을 빼앗음으로써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회에서, 이미 무능력화되어 언어를 잊어버린 민중은 여간해선 스스로 ‘역사의 꽃’이 되지 못한다. 언어를 되찾아주어야만 하는 일이 필요하다. 언어를 앗아간 체제, 모두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은폐될 정도로 정교한 침묵의 메커니즘을 읽어내고 폭로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출발점은, 우리의 신앙의 첫째 과제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그네들의 감춰진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바로 안병무 선생이 주장하는 바, ‘증언의 신학’이 필요한 것이다. □
★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론이 주장되기까지
선생이 ‘오클로스’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거론한 것은 1975년 김찬국, 김동길, 두 교수의 출소를 기념하는 3.1절 기념예배의 설교에서였다. 이것은 《기독교사상》 1975년 4월호에 〈민족, 민중, 교회〉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이후 1979년 〈예수와 오클로스〉(《현존》 106. 1979년 11월호)라는 글에서 체계화된 민중신학적 논리로서 처음 제출된다. 다가와 겐조처럼 오클로스를 사회계층적 발탈대중의 함의를 갖는 개념으로 이해하였지만, 다가와가 〈마르코복음〉의 대중으로만 이해하여 이 텍스트의 편집적 의미를 읽는 데 활용하고 있는 반면, 선생은 예수를 읽는 데 활용한다. 하지만 이 〈마르코복음〉의 어휘가 역사의 예수를 읽는 데 활용될 수 있는지를 타당성 있게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같은 해 나온 〈전달자와 해석자〉(《현존》 101. 1979년 5월호)와 이듬해 발표된 〈그리스도교와 민중언어〉(《현존》 108. 1980년 1~2월) 등은 선생이 이 딜레마를 설명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성과가 〈마가복음에서 본 역사의 주체〉(《민중과 한국신학》 1982; 이 글은 원래 〈민중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신학사상》 34. 1981 가을호에 발표된 것이다)에서 드러난다. 즉 안병무 선생은 예수의 이야기가 오클로스에 의해 어떻게 전달되어 〈마르코복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민중언어의 전달이라는 시선에서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선생은 ‘1980년 광주’의 민중언어가 어떻게 공식적 매체의 기억을 거스르며 진실을 담아내는지에 착안하게 되면서, 민중언어로서의 이야기의 전승을 보다 구체화하게 된다. 즉 ‘유언비어’의 발견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가 불트만으로부터 배운 ‘탈역사적인 실존적 사건’을 ‘역사적 실존의 사건’ 혹은 ‘현존적 사건’으로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바로 유언비어 속에는 지배언어에 의해 위조된 절망을 희망으로 전치시키려는 대중의 갈망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와 오클로스 간의 시공간적 대화의 과정이 곧 역사의 예수 사건이요, 마르코의 예수 사건이며, 그것들 간의 연계의 근거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유언비어 논의로 오클로스론을 보완한 텍스트는 선생의 민중신학적 연구 성과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예수 사건의 전승모체〉(《1980년 한국 민중신학의 전개》에 수록. 이 글은 본래 1984년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주최의 ‘한국기독교 100년 기념 신학자 대회’ 때 발표되었다). 이렇게 해서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론은 완성된다. □
- 흥미롭게도 게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이나 빌라도의 법정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사람을 가리킬 때도 이 어휘가 사용된다. [본문으로]
- 《70인역 성서》에서 라오스는 약 1350회 정도, 오클로스는 50회 정도. [본문으로]
- 그의 박사학위 논문(1965)을 기초로 하여 발전시킨 책인 《마가복음과 민중해방―원시그리스도교 연구》(사계절, 1983) 참조. [본문으로]
- 이러한 실증주의적 역사의 예수(Historical Jesus) 연구는 사실상 파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텍스트에서 ‘망각’된 것을 밝혀내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에 기반을 둔 연구 과제인 ‘실제 예수’(Real Jesus)는 누구였는지의 문제는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하다. [본문으로]
- 현대신학의 딜레마는 신학적 담론의 성서적 전거들에 관한 해석이 ‘역사학적 실패’, 즉 역사학적으로 검증 불가능하거나 역사적 타당성을 지니지 못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신학은 근대성과 담론 내적으로는 긴장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문으로]
- 다가와나 안병무는 그 점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 같은데, ‘회당’은 주로 바리사이의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추상적이지만 유대인 전체를 결속시키는 ‘성전’과 일상의 영역 속에 사는 사적 대중 사이를 매개하는 장(field)이다. 그런데 이 회당 안에서 예수는 바리사이와 충돌했고,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그러한 충돌은 주로 안식일법 등 정결례을 둘러싼 이견에서 비롯되었다. 이 ‘정-부정의 체계’야말로 추상적 신앙 공간인 성전과 일상적 대중 사이를 연결짓는 바리사이적 신앙의 장치 또는 그들의 회당 지배의 장치이었다. 〈마르코복음〉의 지리적 공간 구조에 의하면 예수는 이 충돌이 결정적으로 벌어진 이후, 단지 한 번의 예외(나자렛 고향 회당)를 제외하고는 전혀 회당 안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회당 밖으로 나와서 활동할 때 주요 대중이 바로 오클로스였다. [본문으로]
- 이 이야기에서 예수의 행보를 오클로스가 함께 하고 있다(24절). 그리고 하혈하는 여인은 그 중의 하나였다(25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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