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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엄마의 계보’에 놓인 역사의 천사들 - 안병무의 ‘민중의 윤리’에 대하여

이 글은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삼인 2006)의 2부 2장에 수록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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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계보에 놓인 역사의 천사들

안병무의 민중의 윤리에 대하여

 

 

 

 

1

 

봄 환절기만 되면 선생은 연례행사처럼 중환자실에 실려 갔다. 그에게 그 해 봄(1995)은 더욱 혹독했던 모양이다. 열흘이 넘게 그곳에 자신의 몸을 구금시켜야 했다.

봄이 다 지날 무렵, 선생의 몸의 고통을 헤아릴 영혼이 결핍된 마음의 미성년자인 나는 언제나처럼 한 보따리의 질문거리를 안고서 그를 방문했다. 밖에 다른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에도 선생은 나와의 대화를 끊지 않았다.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는 둔감한 제자에게 어떻게 해서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게다. 10년이 다 된 이제야 되새길 만큼 나는 지독히도 무심했지만, 다행히도 그 때 선생의 말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의 권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계급에 심취해 있던 당시의 내게 살림에 주목해 보라는 권고였다. 선생은 좀처럼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항상 사견처럼 의견을 제시했고, “선택은 군()이 할 일이야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그러고 보면 이 날의 주목해보라라는 말은 상당히 강한 요청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야 생각하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이론에 몰두해 있는 나에 대한 꾸지람이었겠다. 물론 계급 이론이 죽임의 사유라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나의 공부 자세가 사람의 아픔을 생각하기보다는 사유에서 사유로 이어가는 모양으로만 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겠나 싶다.

두 번째 얘기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생각하게 된 것에 근거해서 본다면, 첫 번째 것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하나를 쓰려고 해.” 새삼스런 말이다. 선생은 항상 글을 쓰고 있었다. 잠자다 조용히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건만, 아마도 긴 중환자실의 체험이 이제 정말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긴박감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민중에 관한 것이야.”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제 그가 민중에 관한 것이 아닌 글을 썼던가. 선생을 알게 된 1986년 이후로 그는 항상 민중 혹은 민중신학에 관해서 얘기했다. 필경 이 새삼스러움은 최후의 작업으로 자신을 결산하려는 것이겠다.

근데 내 엄마에 관한 얘기야.” 이 대목에서 나는 적이 혼란스러웠다. 10년쯤 전, 이미 집필을 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선생에게 민중신학에 관한 총론적 이야기를 어떻게 해서든 드러내게 하려고 제자들은 대화집을 기획한 적이 있다. 민중신학 이야기(1987)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이후 선생은 구술을 대필하는 형식으로 주옥같은 글을 수없이 생산해냈다. 그리고 살림에 대한 그의 신학적 상상력은 바로 그 이후에 본격화된 것이다.[각주:1] 그러니 민중신학 이야기이후의 민중신학을 다시 이야기한다쯤의 총론이 나와야 한다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한데 엄마에 관한 얘기라는 선생의 말은 이러한 내게 뜬금없는 얘기처럼 들렸다. 선생은 자신의 민중신학 이야기를 성찰하는 책을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당시의 나로선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민중신학의 한 장르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2

 

엄마에 관한 선생의 글은 이듬해 선천댁(19961)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해 말(1030)에 세상을 떠났다. 책 출간 이후 의외로 건강이 좋아져서 다른 작업을 시도했지만 완성하지 못했으니, 이 책은 선생의 마지막 저서인 셈이다.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표현은 선생과 선천댁의 관계를 더 잘 드러낸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의 거리감과 거의 극적이라 할 만큼 대조적이다. 그만큼 선천댁과 그는 가족이상의 함의를 갖는 체험공동체로 엮인다. 어찌 보면 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남편이었고, 나아가 신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선생의 입장에서 엄마이자 아내이고 또 신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엄마인 선천댁의 삶의 여정을 통해 민중의 자기 초월의 전형을 말하고자 한다. 민중을 정의해보라는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답변을 피해왔던 선생에게 이것은 다른 방식의 대답이었고, 내가 아는 한, 최후의 대답이었다.

왜 민중이 고난의 담지자이고 역사의 주체인가를 그는 선천댁의 삶을 통해 이야기한다. 운명의 얄궂음으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욕망보다는 아들의 욕망을 욕망하는 엄마, 자기의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타인을 품는 몸이 되고자 한 이.[각주:2]

모든 체제는 그 자체 내에 숭고함에 관한 제도들을 담지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가부장적 체제 속에 담긴 숭고함의 제도들에 속한다. 실재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는 숭고성의 제도로서의 아버지, 어머니의 규준에 따라 살도록 강요받고 나아가 그 규준을 내면화하여 욕망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타인, 즉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기의 삶을 배려하는 희생의 존재가 된다. 이로써 아버지, 어머니가 됨으로써 타인을 위한 존재로 자기를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한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숭고성은 다른 방식의 내용을 갖는다. 아버지는 자신을 채움으로써자기를 초월하는 존재라면, 어머니는 자기를 비우고 타인을 채움으로써 그것을 실현한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존경의 대상으로 기억된다면, 어머니는 친밀성으로 자식과 마주한다. 안병무 선생이 어머니를 한사코 엄마로서 이야기하는 것은 선천댁에 관한 기억을 친밀성이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아무튼 타인을 위한 존재로의 두 길, 숭고한 아버지, 숭고한 어머니는 이렇게 탄생한다.

선생이 엄마 이야기를 통해 민중을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지배와 종속의 틀인 가부장제 안에 살면서 그러한 일상 안에서 일상을 넘어선 삶의 지평, 곧 자기 초월의 지평을 말하기 위함이다. 선생이 수없이 말해왔던 민중의 자기 초월이란 바로 이러한 양식이라는 말이겠다. 뒤에서 좀 더 이야기하겠지만 이것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선생의 말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가부장제 같은 현실 세계의 모순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민중이 몸으로 담지한다는 민중론자들의 통상적인 주장과 맞닿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관점에서 볼 때 삶의 세계가비록 억압적이라 하더라도단단한 바위처럼 강고한 틀로 우리 몸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초월이란 그 체제 속의 숭고함에 다가감으로써 실행된다는 것이다. 선생은 선천댁에게서 민중의 일상 속에서의 자기 초월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선생이 예수를 읽는 독법이기도 하다. 신이 자신을채움으로써가 아니라비움으로써 타자인 인간과 세상을 품은 것이 곧 예수라고 하는 선생의 주장과 선천댁 이야기는 동일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다. 선생은 엄마의 얼굴에서 민중을 보았으며, 또 신을 보았다. 곧 선천댁의 민중사건은 예수의 민중사건과 동일한 계보로 엮인다.

 

3

 

앞에서 나는 민중신학의 한 장르로서 선천댁을 본다고 했다. 여기서 자신의 신학적 사상의 핵인 민중을 이야기하기 위해 선생은 자전적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 타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자전적 글이다. 그는 단지 어머니 선천댁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話者)일 뿐이다. 타인이 주인공이라는 것과 자전적 글이라는, 얼핏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요소가 한데 어우러지려면 양자는 체험이 깊게 엮인 관계여야 한다. 곧 글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서 화자 자신이 성숙하게 됐다는 식의 성장담(成長談)인 경우 같은 것이다. 흔히 이런 부류의 글은 가족이나 스승 등과의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공적인 의미를 발견하려는 이야기 전략에 속한다.

최근 나는 이러한 전략이 엿보이는 책 두 권에 대해 서평을 쓴 바 있다.[각주:3] 이 두 책 모두 아버지혹은 아버지의 아버지’, ...를 기억함으로써 저자들이 염원하던 민족의 진정한 해방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향한 미완의 꿈의 궁극을 읽는다. 바로 민족과 민주주의를 향한 위대한 뜻으로 자기를 채움으로써 자기를 초월한 숭고한 아버지의 얼굴에서 구원의 계보를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그 얼굴을 닮고자 욕망하는 화자인 자기 자신의 얼굴이 덧입혀져 있다. 이것은 민족 해방과 민주주의의 담론에서 전형적인 기억방식에 속한다.

반면 선생은 이러한 아버지의 구원론적 계보에서 망각된 엄마의 계보를 생각해낸다. 말했듯이 자기를 비움으로써 타인을 품을 수 있었던 자기 초월의 상상력을 표상하는 얼굴이다. 그는 그 얼굴을 떠올리면서 민중신학자로서의 자신의 얼굴을 묘사한다. 그 속에 엄마의 얼굴과 닮아지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담는다.

이제까지 선생은 좀처럼 자전적 글을 쓰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자기를 회고하거나 그러한 단편적 진술은 존재하되 독립된 자전적 글쓰기는 것의 없었다. 한데 그러한 글쓰기 형식은 선생의 민중신학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선생의 민중신학자로의 여정은 민중의 고통을 발견함으로써 시작된다. 그 고통은 자기가 겪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는 그것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민중신학의 원초적 기조다. 그런데 그 발견 속에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품격을 위해 그 고통이 망각되어 왔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자기는 민중의 고통의 공범이었던 것이다. ‘공범 의식민중의 (고통의) 망각’, 바로 이것이 민중신학의 또 다른 핵심적 기조다. 바로 이 두 기조가 선생이 민중신학자이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앞 장에서 나는 민중의 망각을 민중이 실어증에 걸렸다는 표현으로 말한 바 있다. 즉 망각은 민중 외부에서 민중의 고통이 은폐되었다는 것뿐 아니라, 민중 자신에 의해서도 은폐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중은 자신의 고통을, 그러한 고통을 낳는 죽임의 구조와 그 구조를 정당화하는 죽임의 담론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볼 언어를 상실했고, 그러한 언어의 상실은 운명적 좌절감으로 인식된다. 하여 민중의 실어증은 우울증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자의 과제는 민중의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 대신 말하는데서 시작된다. ‘증언이 민중신학의 주요 내용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선생의 독특한 역설적 구원론이 펼쳐진다. 타자로서의 민중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고난당하는 예수가 구원자였던 것처럼, 고난의 담지자인 민중이 구원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이자 지식인인 자신은 민중의 고통을 망각하는 죽임의 체제에 속한 자가 됨으로써 예수의 고난을 방조한 자와 같은 부류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의 고통과 그 방조자의 연계틀은 민중의 고통과 그 방조자의 틀과 유비된다. 그것은 죽임의 문화와는 같은 계보의 속한다.

1980년대 말, 그가 죽임-살림에 관해 사유를 본격화하던 시기에 나온 다른 글인 종주권과 민중의 투쟁카인과 아벨 이야기(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에서 아우 아벨이 흘린 피의 호소의 전달자로서 신을 떠올려낸 것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에게서 신은 고통의 증언자다. 곧 신의 사건은 살해당함으로써 말을 상실한 민중의 고통의 소리를 증언하는 데 있다. 반면 그 침묵을 조장하고 방조한 자는 카인의 계보에 있는 존재다. 전자가 살림의 계보라면 후자는 죽임의 계보다. 다시 말하면 시민이자 지식인인 그는 민중의 고난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카인의 계보, 죽임의 계보에서 아벨-셋의 계보, 신의 살림의 계보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 자신의 구원체험이다. 그러므로 증언자는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자 수혜자인 셈이 된다.

이상이 그의 민중 메시아론의 골자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이러한 구원론적 이해의 틀에서 증언자, 곧 화자/저자는 증언의 주인공일 수 없다. 즉 화자/저자는 증언에서 부재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안병무 선생에게서 민중신학적 글쓰기가 자전적인 형식으로 나타날 수 없었다고 보는 이유다. 선생에게서 증언일 수밖에 없는 글쓰기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타자적 존재인 민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은 민중의 실어증을 조장하는 체계의 하나로 윤리적 규범들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민중에게 고통을 내면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것이다.(종주권에 도전한 민중 야곱. 그래도 다시 낙원에로 환원시키지 않았다에 수록) 그런 점에서 윤리는 민중 억압의 틀이며, 민중을 실어증 걸리게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것을 폭로하는 민중신학의 증언 담론은 민중을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방식보다는 그러한 윤리의 배후를, 그 음모를 드러냄으로써 윤리를 해체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반면 선생은, 자기 자신에게 그토록 엄격했던 것처럼, 민중을 타자로 기억하는 모든 존재에게는 강한 윤리적 요구를 부과한다. 그것은 물론 자기 자신의 뜻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가는 자기 충족의 윤리보다는 타자를 자기 몸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되는 자기 비움과 타자 배려의 윤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중의 윤리는 예상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특히 이러한 민중 메시아론적 상상력을 신앙적 정체성의 자양분으로 삼아 민중 현장에 뛰어들었던 이들이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비롯된 항변은 매우 신랄했다. 현실의 민중은 구원자이기보다는 종종 야비하게 이용하고 심지어 치졸한 사기를 치기까지 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떤 학생 출신 여성 노동자가 민중 현장에서 동지인 노동자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그들이 진정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비윤리성이 아니라 자신들이 함께 하고자 했던 이들의 비윤리적 태도로 인한 상처였다.

사실, 산업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되고,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이리저리 떠밀려 사는 사람들은 삶의 존재론적 준거를 상실한다. 이러한 준거 부재의 삶은, 그들 자신이 사회적 생산 체계의 소모품적 도구로 전락할뿐더러, 주변의 모든 것을 생존을 위한 도구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갖는다. 다행히 정착할 곳을 찾은 이들은 새로운 규범 세계를 구성하지만, 번번이 일시적인 정착지에서 밀려나야 하는 이들은 이 새로운 윤리적 규범 체계의 일탈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자들이다. 그런 만큼 민중에게 부과된 윤리란 그들을 억압하는 논리가 되고, 이렇게 비윤리적인 존재로 규정된 이들은 사회를 건설하는 당당한 시민적 주체로서 부상하지 못하게 된다. 윤리의 주체인 시민의 보호 감독 아래에서만 정착자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하위주체가 되는 것이다. 결국 민중을 체제에 순응하게 하는 이러한 윤리 체계는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도출된다. 하지만 동시에 바로 이러한 문제는 그들 사이에서조차 더 약자, 더 허점이 많이 노출된 자에게 더 많은 폭력이 가해진다는 데 있다.

책 하나를 쓰려고 해. 민중에 대한 것이야. 근데 내 엄마에 관한 얘기야라는 말에서 나는 선생이 이러한 항변에 얼마나 진지하게 고뇌했는지를 엿보게 되었다. 최후까지 그가 고민했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고, 어떻게 해서든 나름의 답을 찾고 싶어 했던 것이다.

비록 윤리라는 것이 체제의 정당화의 틀이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 윤리를 해체하는 일이 증언의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일상 속에서 민중의 자기 초월의 근거일 수 있다는 것을 선생은 이 책에서 말하려 한다. 사실 윤리로 뒤덮인 세상은 밖에 있는 존재처럼 사유할 수는 있어도 그 밖에서, 즉 윤리 외부에서 삶을 살 수는 없다. 세상 밖은 사유의 대상이지 실천의 대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러한 사유는 노동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유한 계층의 자유로움이지, 밥벌이의 지겨움을 한 시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가족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여건의 사람들에게 허용된 영역은 아니다. 민중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민중에게 윤리는 단순히 해체의 대상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선생은 이에 대해 자기를 비우고 타자를 품는 엄마의 품성을 민중의 자기 초월을 향한 윤리의 기축으로 제시한다. 자기를 채움, 숭고한 뜻을 이룸보다는, 그러한 아버지의 계보에 있는 기존의 윤리적 인식론을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한편으로는 해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를 비우고 타인을 품는 엄마의 계보에 있는 타자의 윤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제 글을 정리해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선생의 자전적 글쓰기의 생소함에 대해 얘기했고, 선천댁이 그러한 생소함과는 대비되는 글쓰기 양식을 띠고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리고 자전적 글쓰기의 생소함이 선생의 민중 메시아론적 담론의 내용과 맞물린다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민중 윤리를 해체의 대상으로만 이야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쓰인 선천댁, 민중의 그 자기 초월의 가능성에 관한 주장을 구체화하는 이 저서는 새롭게도 자전적 글쓰기 형식으로 쓰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말의 화자이자 구원의 대상인 선생과 말의 대상이자 구원의 주인공인 선천댁은 친밀한 체험공동체로 엮이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전적 이야기의 속성이고, 특히 친밀성이 속성인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 관한 자전적 글의 본성이다. 증언자로서의 저자는 증언의 담론상의 주인공인 엄마의 경험에 불가분 개입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생의 민중론에서 민중이 외재적 존재가 아닌 것으로 기억되는 양식이 바로 선천댁에서 시도된 것이다. 여기서 증언자는 타자의 내부화를 체험한다. 그러므로 민중의 윤리와 타자의 윤리는 여기서 또한 엮인다. 즉 민중의 고난을 은폐하는 틀로서의 윤리를 해체함과 동시에 민중의 성찰적 차원으로서의 윤리를 자기 내부에 부과한다. 이로써 민중신학의 윤리라는 낯설었던 개념은 한 장르의 등장과 더불어 행복하게 탄생한다.

  1. 한국신학연구소가 1988년 12월 창간한 월간잡지 《살림》은 제호부터 그의 신학적 상상력의 소산이었다. 그 호에 실린 그의 글 〈살림운동〉은 당시 그의 관심이 ‘민중에 관한 죽임의 문화를 넘어선 살림’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문으로]
  2. 이때 타인은 두 아들만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자식을 품는 엄마의 심성은 혈연의 연을 넘어서 여러 인연으로 엮인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다. 심지어 남편의 나이 어린 여자에게까지도 돌봄의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여기에는 물론 기억의 편집이 없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선천댁의 돌봄 속에는 남성 중심적이고 가족주의적인 이기심이 불가분 엮여 있을 것임에도, 그런 요소들은 선생의 기억에서 삭제/망각되었으니 말이다. 이 요소들은 가부장제가 심어준 모범적인 여인상을 통해 체제가 여성을 통제하는 기제이다. 여기에서 ‘선천댁’을 통한 그의 민중 사유의 한계지점이 보인다. 나는 다음 글에서 이러한 성찰과는 다른 방식의 안병무의 민중론을 말함으로써 분열된 안병무의 성찰의 다른 지점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본문으로]
  3. 최기일의 자서전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과 안재구(・안영민 부자)의 자전적 기록인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에 관한 서평으로, 이 글은 《교수신문》(2003.6.19)에 실렸다. http://www.kyosu.net/?news/view/id=4813&page=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