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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별금, 이번에도 교회는 사회를 향한 사과에 실패했다

[경향신문]의 '사유와성찰' 코너에 실린 칼럼(2019.11 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01205703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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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교회는 사회를 향한 사과에 실패했다

 

소망교회 은퇴 목사의 전별금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10년간 매월 730만 원 가량을 받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 고액의 아파트와 사무실, 그리고 차량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게다가 교단은급제도에 의해 은퇴연금도 수령하게 될 것이고, 이미 퇴직금으로 수령했는지 모르겠지만 교수로 재직한 연수도 17년 정도 된다.

한국에서 퇴직금이나 전별금에 대한 표준화된 원칙을 마련한 개신교회는 거의 없다. 퇴임하는 목사별로 그때그때 임의로 계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액의 퇴직금과 전별금을 지급하는 대형교회들도 마찬가지다. 당회를 구성하고 있는 장로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표준이 이번 전별금 액수의 근거였을 듯하다. 한데 그렇게 묻는다면 한국의 초대형교회(출석교인 1만 명 이상의 교회) 중 하나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교회에 속한다고 알려진 이 교회 장로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표준이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201830대 그룹 전문경영인의 퇴직금 순위를 보면, 1위가 68원 억 정도를 받았다. 그는 13년간 전문경영인으로 재직했다. 2위는 14년을 일하고 59억 원을 받았다. 그렇게 20위쯤 되면 30억 정도를 받는다. 2017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상위 1%의 임금소득은 하위 10%의 임금소득의 110배에 이른다. 그리고 상위 1%의 평균임금은 26천만 원이 넘는다. 한데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서 이 교회의 전현직 장로들 중에는 대기업 임원, 대형병원 의사, 거대로펌 변호사 등, 임금소득이 최상위에 있는 이들이 즐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장로들의 사회적 표준에 따라 16년간 담임목사로 재직했던 이번 전별금은 꽤 인색한 셈이다. 실제로 전임(前任) 목사의 경우는 퇴임의 대가로 총 90억 원이 넘는 지원을 받았다고 하고, 최근 세습문제로 전국적 스타가 된 어느 목사는 30억 원 정도의 퇴직금이 책정됐던 모양이다. 그리고 세계 최대교회를 만들어낸 여의도의 아무개 목사는 2백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니 소망교회의 이번 전별금은 꽤 겸손한 액수.

한데 다른 시각도 있다. 개신교 목사들의 평균수입이, 2017년 조사에 의하면, 176만 원이다. 이 금액은 그해 하위 10% 노동자의 평균소득인 243만 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 다른 조사에 의하면 소망교회가 속한 예수교장로회 통합파의 경우 2013년에 교회별 교인수의 중위값과 평균값은 각각 63명 대 327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교회의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뜻하며, 평균수입에 못 미치는 목사들의 수가 월등히 많다는 것을 뜻한다. 한데 176만 원이라는 수치가 나온 2017년에 이 교단의 교인수는 18만 명 이상 감소했고 교회 수는 5백여 개가 늘었다. 2017년에는 양극화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얘기다.

알다시피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매우 심각한 상황인데, 개선되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너무 심각하다. 2017년 자료에 의하면 OECD 36개국 중 지니계수가 31위이고 5분위배율이 31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한데, 앞에서 보았듯이, 교회도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욱이 목사의 빈곤 정도는 너무나 심각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망교회의 전별금은 서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사회적 표준에 비해 너무 과하다. 은퇴목사와 장로들이 자신들의 평균적 생활 수준에 따라 조금 겸손한전별금을 논하기보다는 서민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평균적 생활 수준에 따라 조금 질박한전별금을 책정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사실은 이런 문제 제기는 소망교회를 포함한 대형교회만이 아니라 물질적, 상징적 자본을 과점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파워엘리트 계층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들 대부분은 부와 권력을 독과점하고 대물림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않는다. 교회의 목사 세습에 전 사회가 분노하고 꼼꼼하게 문제를 캐내지만, 권력세습 현상은, 목사 아무개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그런 자원을 누리는 이들 사이에서 죄의식 없이 마구 수행된다. 물론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나의 지론에 따르면 교회는 사회의 권력 대물림의 장치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장소이고, 그런 행위에 대한 영적 세탁의 전문가들이 매우 기민하게 활동하는 장소다. 해서 인구 대비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20%도 안 되는 종교가 사회의 파워엘리트의 45% 정도를 점하는 일이 일어난다.

나는 소망교회의 은퇴목사가 최근 논란이 된 교회세습에 반대한 것에 대해 알고 있다. 초대형교회 목사가 그렇게 발언한 것은 세습반대를 외치는 많은 이들에게 적잖은 힘이 된다. 하지만 소망교회의 많은 교인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권력세습에 대해 사과할 줄 모르는 무감각한 태도가 아쉽다. 이번 전별금 건은 그런 상징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교회는 사과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