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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좁은 문’, 그 문에 이어진 길 위를 걷는 이들

[공동선] 2020.01+02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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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그 문에 이어진 길 위를 걷는 이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마태복음7,13)

 

 

에이셀싸테 디아 테스 스테네스 퓔레스(Εισελθατε δια της στενης πυλης). 20여 년 전 헬라어 공부에 매진하던 신학생 시절 외우고 다녔던 문장 중 하나다. ‘스테네스 퓔레스좁은 문이라는 뜻이고 에이쎌싸테 디아‘~를 통해서 들어가다는 뜻이다.

이 문구가 당시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단지 그냥 유명한 문구였기에 외워두었던 것이다. 근데 지난 여름,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목사들 몇명을 인터뷰했는데 그들 중 두 사람이 이 문구가 신학생 시절 굉장히 중요했다고 진술했다. ‘좁은 문이 그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물었더니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말은 하나로 포개졌다. 부유한 교회가 아닌, 가난한 교회 목회를 하라는 것이라고.

이 말이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의 연배가 모두 사십 대라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신학교에 다니던 때는 1990년대 말부터 2천년대 초였다. 알다시피 그때 한국사회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퇴출되었고, 어린 자녀에게 줄 분유 살 돈이 없어 고철을 훔쳤다 잡히고 배가 고파 남의 사무실 냉장고를 털다 잡힌 사람의 이야기가 도처에서 회자되던 때였다. 자살자가 속출했고 거리에 노숙자가 들끓었다.

근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시절 어떤 이들은 더 풍요로워졌다. 그들은 흥청망청 파티를 벌였고 미친 듯이 여흥에 젖어 있었다. 정우성과 조인성이 주연한 영화 더킹의 시간적 배경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5,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16대 대선,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바로 이 시절이었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특권층의 향락적 소비가 부상하면서 텐프로라는 특급접대여성을 고용하는 신형매춘업소들이 등장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또 라마다르네상스 호텔 회장 조남욱씨가 재계와 정계, 법조계 고위층 인사들 대상으로 호화파티를 벌이던 때, 거기서 윤석렬 씨의 부인 김건희 씨로 추정되는 줄리가 활동하던 때도 그때였다.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흥청망청대는 부자를 선망하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던 인사말이 부자되세요였다. 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들의 주요 소재는 재벌가 이야기였다.

이 시기 부자 교회들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선교 위기를 맞고 있던 교회에선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했는데, 몇몇 강남의 부자 교회들이 그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떠돌이 신자들은 부자 교회로 속속 달려갔고, 부자 교회의 사치스런 프로그램을 많은 교회들이 모방하고 있었다.

신학교에선 거의 모든 학생들의 꿈은 부자 교회에 취업하는 것이었고, 부자 교회들의 프로그램을 훈련하는 워크샵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일부 신학생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성서 구절을 되뇌면서 부자 교회가 아닌, 가난한 교회로 가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이 꿈꾸던 목회자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 성서 구절 자체로 돌아가 보자. ‘좁은 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을 뜻하는 퓔레스라는 단어는 제2성서에서 이곳 외에 두 번 더 나온다. 하나는 사도행전16,13이다. 소아시아에서만 활동하던 바울은 생면부지의 땅인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지역으로의 선교여정에 오른다. 혈통주의 성향이 강한 예루살렘계 예수파의 주장에 대해 떠돌이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바울은 심한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가 속해 있던 안디옥의 그리스도파 주류그룹이 예루살렘파와의 전면적 충돌을 원치 않게 되자 바울은 안디옥계의 지도자들을 향해 강력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안디옥계 영향권 아래 있던 소아시아 선교가 여의치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여 바울은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떠나야 했던 것이다.

한데 그 첫 기착지인 마케도니아의 수도 빌립보에는 조력자를 찾기가 여의치 않았다. 바울 같은 이스라엘계 신앙의 선교사들은 흔히 이스라엘계 회당(쉬나고게, συναγωγη)을 찾는다. 하지만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다. 난감했던 바울이 어찌어찌해서 찾아낸 것은 이스라엘계 신앙에 귀의한 이들이 예배를 나누는 작은 기도처(프로슈케, προσευχη)였다. 그 모임은 성문 밖의 기각티스 강가에 있었다. 바로 이 성문사도행전16,13퓔레스라고 쓰고 있다. 즉 이 퓔레스는 빌립보 성문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히브리서13,12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라는 구절이다. 이 말을 고백하는 장소는 지중해의 어떤 대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고백의 내용에 담겨 있는 예수께서 고난을 받은 성문 밖은 예루살렘의 성 바깥에 있던 골고다(Γολγοθα) 언덕을 말한다. 헬라어로 표기된 골고다는 해골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굴고레트(גולגולת)를 음역한 것이다. 시신과 마주치면 심각하게 부정탄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신을 사람들과 분리시키는 장소가 필요했다. 아마도 골고타 언덕은 예루살렘에서 시신을 유기시키는 장소의 하나였을 것이다. 귀족층들은 더 북쪽 지역의 동굴 속에 안치시켰던 반면, 서민은 이렇게 유기시키는 야산을 필요로 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는 로마에 의해 처형당했다. 당연히 여기서 성문은 유다의 도읍인 예루살렘의 성문을 말한다. 요컨대 퓔레스는 도성의 문을 가리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국가의 도읍이 있는 도시 성문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성에는 여덟 개의 퓔레스가 있었다. 그 문들은 모두 대문들이다. 한데 마태복음7,13의 문은 스테네스 퓔레스. 즉 대문이 아니라 좁은 문이다. 그렇다면 그 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예수는 어느 유월절 절기를 맞아 느닷없이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 길이 얼마나 엄중했는지 제자들은 두려워 떨면서 그분을 따랐다. 동시에 그들은 이제 드디어 그때가 온다는 것인가, 이렇게 수근대며 설레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제자들끼리 누가 그날 주님의 오른편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

그렇게 올라간 예루살렘에서 예수 일행은 낮에는 성전에서 메시아를 연출하는 퍼포먼스를 연일 벌였고 밤이 되면 성밖 어디론가로 빠져나갔다. 인파가 움집한 곳에서 메시아 퍼포먼스는 대중에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대중이 빠져나가는 밤에 성 안에 있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여 예수 일행은 밤에는 모처로 향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이 사건에 관한 성서 스토리를 읽는 우리는 그곳이 어디인지 안다. 그곳은 예루살렘 동편의 골짜기를 지나 근방에서 제일 높은 편인 올리브산 자락 어느 곳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이를 체포하러 온 이들이 배신자의 제보가 필요했다는 것은 그이 일행의 은신처가 어디인지 몰랐다는 것을 가정한다. 한데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활동한 예수 일행은 삼일 째 되는 날 밤, 다시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집에서 비밀 만찬을 나눈다. 오늘 우리의 성찬예식은 바로 이 비밀 만찬 장면을 상징화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일행은 그 밤에 어떻게 성 안으로 들어갔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성안으로 통하는 개구멍을 통해서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디에나 개구멍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벽 바로 바깥의 마을로 들어갔다는 것일 수 있다. 조선의 기록물 속에 평안도와 함경도의 국경지역에 관한 묘사에 나오는 성저야인처럼 성밖에는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해발 700~750미터쯤 되는 고지대에 위치한 도성이다. 근데 이 도성은 세 개의 골짜기에 둘러싸여 있다. 하나는 동쪽의 키드론 골짜기(kidron Valley). 앞에서 언급한 올리브산은 바로 이 키드론 골짜기를 지나 동쪽의 더 높은 고지대에 위치한 산이다. 두 번째 골짜기는 남쪽과 서쪽의 자 모양의 힌놈 골짜기(또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 valley of (ben-)hinnom). 그리고 세 번째로는 남동쪽에서 도시를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튀로포에온 골짜기(tyropeon valley)가 있다.(아래 지도에서 점선으로 표기된 부분이 이들 세 골짜기들이다.)

키드론 골짜기와 튀로포에온 골짜기 사이의 역삼각형 모양의 도성이 가장 오래된 예루살렘성이다. 그 북쪽 언덕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다.

 

한데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국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할 무렵 많은 유민들이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 도시 외곽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튀로포에온 골짜기 서쪽 지역에 집단거주했고, 요시야 왕의 조부인 히즈키야 왕이 그곳에 외성을 쌓았다. 위의 그림에서 튀로포에온 골짜기 서쪽의 네모난 부분이 확장된 외성 지역이다. 이후 이 외성 지역은 다시 왼쪽 윗부분에서 대각선으로 나뉘어서, 대각선 왼편 고지대는 윗성’, 아래 저지대는 아랫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윗성에는 주로 부유층이 거주했고, 아랫성에는 서민층이 거주했다.

만약 예수 일행이 개구멍을 통해 성안에 들어갔다면 아마도 아랫성 지역의 모처로 갔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외성 바깥 지역의 모처로 갔겠다. 이곳은 더 가난한 서민들이 살고있는 곳이어서 성문은 없고 작은 길들이 있는 곳이다.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좁은 문은 바로 가난한 서민들의 공간으로 가는 문을 의미한다. 퓔레스는 왕들이 지나가고 귀족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곧 그 문은 권력의 문이다. 한데 그 문으로 바벨로니아 제국의 군대가 쳐들어와 유다국을 멸망시켰다. 로마제국의 군대도 그 문들로 들어왔고 하스모니아 왕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해서 마태복음7,13의 뒷부분에서 말하길, ‘넓은 문과 넓은 길에이스 텐 아폴레이안(εις την απωλειαν), 곧 멸망으로가는 통로라고 한다. 권력의 길이 곧 멸망의 길이라는 얘기다.

한데 과연 그럴까. 2000년 전후에 신학생이던 이들 몇이 대세에 거슬러서 가난한 교회 목회자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20년 전의 그 마음을 지켰나고? 그들은 너무나 허덕여서 생존에 급급하다보니 어느덧 좁은 문이라는 말조차 잊었다고 했다.

그 무렵 거의 모든 교단의 신자 수는 감소했는데 교회 수는 매년 7% 가까이 증가했고 목회자 수는 매년 9% 이상 늘어났다. 그리고 매년 1500개 가량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 그렇게 폐업한 교회의 다수는 설립한 지 3년이 못된 교회들이었다. 그 혹독한 세월을 겨우겨우 견뎌내느라 허덕인 많은 목사들은 좁은 문이라는 말조차 잊고 지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그 말은 잊었지만, 아직도 자신들의 삶의 자리가 그 말 속에 담긴 꿈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청년 시절만큼 단호하게 그 꿈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수없이 작은 유혹들에 동요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자리 이탈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서 잠정적으로나마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좁은 문의 진리는 이러하다. 그 문 이후의 성공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 문에 이어진 길 위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