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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위험한 믿음 - 이삭 번제물 사건, 다시 읽기

[맘울림] (2021.상반기)에 수록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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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믿음

이삭 번제물 사건, 다시 읽기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창세기22,19

 

 

 

 

그 속에 ‘위험한 믿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너무 늦게 낳은 아들, 그래서 애지중지했던 아들을 신이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창세기22장의 저 유명한 텍스트는 이런 상황을 전제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신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했고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숫양을 보내 아들 살해라는 비극으로 귀결되지 않게 했다고 함으로써 신의 짓궂은 장난은 사면을 받는다. 또 신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신실함에 신이 축복을 재확인해주었다고 함으로써 아들을 죽일뻔했던 아브라함의 행동 또한 정당화되었다.

여기서 신이 아브라함에게 준 축복의 내용에 주목해보자.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여 원수들의 성(oyeb shaa, the gate of their enemiesr)을 차지할 것이다.”(창세기22,17) 흥미롭게도 아브라함이 아니라 그 후손들이 축복을 받는다. 요컨대 이 설화의 형식상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이지만, 숨어 있는 사실상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임하는 세력(“너희 자손이”)이라는 얘기다. 그들이 다른 종족 혹은 다른 나라의 땅(“원수들의 성을”)을 점령하고 있다. 이렇게 원수들의 땅을 차지하는 세력은 필경 유다국일 것이다. 점령 이야기는 국가와 어울리고, 이 아브라함 설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유다국과 관련(모리아산, 브엘세바, 헤브론)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유다국의 서기관들은 오래된 과거의 전설상의 인물들인 아브라함과 이삭을 소환하여 유다국이 받은/받을 축복의 이야기로 읽고 있다.

한데 유다국 서기관들이 의도한 것과는 달리, 이 텍스트 속에는 다르게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아들을 제물로 바친다는 위험한 믿음에는 이 텍스트를 축복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 없게 하는 요소가 들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 그 점을 주목해 보겠다.

 

이삭은 어디에?

 

글 서두에 인용한 성서 본문을 다시 보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브엘세바 쪽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았다.” 텍스트를 섬세히 읽는 독자는 이 대목에서 틀림없이 의구심을 품었을 것이다. 아들 이삭은 어디에 갔는가? 분명 제물을 바치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이 보내준 숫양을 이삭 대신 번제물로 바쳤지 않은가?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창세기22,10~13

 

이삭은 분명 죽지 않았다. 근데 그는 어디에 있을까? 나흘 전으로 돌아가 보자. 신이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이튿날 아침 아브라함은 장작더미를 나귀에 싣고 이삭과 종 둘을 데리고 그곳으로 길을 떠난다.

모리아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서 아브라함은 두 종에게 나귀와 함께 기다리라고 하고는, 이삭과 산을 오른다. 장작을 짊어진 이삭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불과 장작은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양은 어디에 있나요?”(22,7) 사흘 내내 궁금했겠지만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참았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목적지에 점점 가까이 가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물었다. 아브라함이 말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이다.”(22,8) 아들의 궁금증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아니지만, 아들은 더는 물을 수 없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하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고 그 순간에 신이 숫양을 보내주어 아들은 죽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번제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으로 이야기의 1부는 마무리된다. 해서 훗날 사람들은 이 성소를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라는 뜻의) 야훼 이레(Yahweh-yireh)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브라함과 동행한 이들 가운데 오직 이삭만이 대사가 있다. 그리고 그이만이 구체적인 행동 묘사가 나온다. 한데 산에서 내려올 때는 이삭의 말도 행동도, 아니 그의 존제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삭이 아버지를 떠난 것이 아닐까라고.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이삭은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분명 산에 오를 때 장작을 짊어지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 함께 걸었다.”(22,6) 어린 아이였다면 아브라함이 혼자 짊어졌거나 아들에게 몇 개 정도 들게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지고 갔을 것이다. 그렇게 보는 근거가 하나 더 있다. 신으로부터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탁을 받을 당시 아브라함의 거주지는 브엘세바였다.(21,33) 그런데 제물을 바칠 제단은 모리아 산에 있다. 훗날, 그러니까 유다국 왕실 서기관들이 이 텍스트를 문서화하던 당시의 지명으로는 예루살렘이다.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약 120km쯤 된다. 그곳을 아브라함 일행은 사흘 동안 갔다. 나귀를 데리고 갔지만, 나귀에는 사람이 아닌 장작이 실려 있었다. 그러니까 그 거리를 아브라함 일행은 사흘 동안 걸어간 것이다. 요컨대 텍스트는 이삭이 장성한 청년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와 바울보다 한 세대쯤 젊은 이스라엘계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이 사건 당시 이삭의 나이가 25세였다고 주장한다. 막연한 추정으로 보이지만, 창세기의 구절들을 통해서 어림잡아 그때쯤 이 일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할 만하다. 이삭의 제물 사건을 다루는 22장의 바로 다음 장에 사라의 죽음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가 127살이었다.(23,1)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 나이가 아흔이었으니,(17,17) 모친이 사망할 당시 이삭의 나이는 37살이었겠다. 그렇다면 문맥상 이삭은 37세 미만이었을 것이니, 20대 중반으로 추정하는 요세푸스의 가정은 꽤 그럴 듯하다.

, 그렇다면 이삭을 20~30대 청년이라고 가정하자. 그런 아들을 백삼십 세나 된 아비가 제단에 묶는 것이 가능했을까? 물론 아들이 아비에게 철저히 순종적이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한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비는, 어느 랍비의 해석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을 먹이고서야 제단에 단단히 묶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비의 행동을 아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비는 칼을 두 손으로 쥐고 높이 쳐들어 번제단에 묶인 아들을 향해 내리꽂으려 한다. 그 순간 아비와 아들의 눈이 마주쳤다면 어땠을까. 아비는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상황에서 차라리 자신이 죽고 싶었을 테지만, 아들은 저 비정한 아비의 행동에 발버둥치며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을까?

 

그것은 모두에게 파국이었다

 

신이 예비해 두었다는 숫양을 바침으로써 이 참혹한 비극은 면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될 수 있을까. 아들은 자신을 찌르려고 칼을 높이 쳐든 아비를 용납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불편한 사실에 직면해야 한다. 아들은 아비와 함께 산을 내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함께 브엘세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들은 어디에 갔을까?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이야기가 나오는 다로 다음 장 첫 부분에서 사라의 죽음 이야기가 나오는데, 놀랍게도 그녀가 죽은 곳은 남편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망한 곳은 헤브론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아내는 남편과 별거하고 있었을까. 혹 이삭 번제물 사건 이후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갔는데, 아내는 그곳을 떠나 헤브론으로 간 것이 아닐까. 브엘세바는 황량한 스텝지역에 있는 성읍이지만 그래도 오아시스여서 살만한 곳이었다. 한데 헤브론은 거의 해발 1,000m 가까운 고지대의 마을이다. 은폐하기 좋을 만큼 험준한 곳이다. 게다가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왜 아내는 살만한 곳이 아닌, 험준한 곳으로 떠나갔을까. 혹은 남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신해버린 것은 아닐까.

더 상상력을 펼쳐보자. 사라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고자 했던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해서 남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사건 이후 아브라함 가족의 해체로 귀결된 것이겠다.

한데 창세기35장에는 헤브론에 관해서 흥미로운 언급을 한다.

 

야곱이 기럇아르바 근처 마므레로 가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다.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던 헤브론이다. 이삭의 나이는 백여든 살이었다. 이삭은 늙고, 나이가 들어서, 목숨이 다하자, 죽어서 조상들 곁으로 갔다.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안장하였다.

창세기35,27~29

 

헤브론은 이삭의 공간이다. 그는 사망하기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삭 번제물 사건 이후 사라는 아들이 아비를 버리고 간 곳, 그곳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살았던 것이 아닐까.

만약 이렇게 전개된 사건이라면 이삭은 이 일로 씻을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다. 어떤 랍비는 이삭이 이 사건 이후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가 몸의 장애로 나타났다는 것일까. 있을 법 하지만 근거는 없다. 그러나 너무나 심각한 상처를 받을 만한 사건이었고, 그것은 아브라함의 가족의 해체를 초래했으며, 몸이든 마음이든 이삭은 병증에 시달리게 되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삭을 족장으로 모시는 이들은 어땠을까. 족장이 병증에 시달리고, 가끔 히스테리컬해졌다면 그의 아내, 자녀들, 종들, 씨족 구성원들 모두가 족장의 이상증세로 인해 괴로움을 겪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위험한 믿음’이 파국을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Jr)의 소설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1952)은 아내와 이혼하게 된 아비의 심리적 이상증세가 두 아들에게 부정적으로 전이되고, 그것이 형제살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상상력을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화 시대 도시와 농촌의 폭력적 갈등이 일으킨 트라우마적 혐오 증상에 덧씌워 해석했다. 여기서는 끝내 해소되지 않은 심각한 부부 갈등이 파국의 원인이었지만, 창세기22장에는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물 사건이 그 부부 갈등의 원인임이 시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브라함의 위험한 믿음이 있었다.

심대한 고통은 전염병처럼 사람들에 전파되어 집단적 병증을 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원감염자에게 다시 전파되기도 한다. 심대한 고통은, 그로 인한 병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들의 관계를 파괴한다.

오늘 한국사회는 혐오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세대갈등, 젠더갈등, 섹슈얼리티 갈등(성소수자 문제), 좌우 이념갈등, 지역갈등 등 수없이 많은 분쟁을 낳는 요소들이 뒤얽혀 나타난 현상이다. 서로 분노하고 적대하며 공격하게 하는 혐오주의는 그렇게 병증처럼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모든 갈등들과 종교가 깊게 연루되어 있다는 데 있다. 특히 그 갈등들이 겹치는 지점에 개신교가 자리잡고 있다. 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은 그 갈등들을 부추기는 자로 전면에 서 있다. 또한 개신교의 종교사회적 능력은 분노를 널리 퍼뜨리는 고성능의 확성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위험한 믿음이 우리를 더욱 병들게 하고 있고 또한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하여 우리는 여기서 통렬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위험한 믿음을 그대로 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