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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요한이 잡힌 뒤, 갈릴래아 촌락에서 - ‘일상권력’과의 충돌에 대하여(〈마가복음〉 1,2~3,7)

[맘울림] 55.(2021.11)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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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잡힌 뒤, 갈릴래아 촌락에서

일상권력과의 충돌에 대하여(마가복음1,2~3,7)

 

 

 

 

 

 

가버나움

 

(14)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1,14~15

 

이 구절 속에는 예수에 대한 대중의 기억이 함축되어 있다. 예수는 그이가 이끄는 집회에 안티파스의 군인들이 난입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아비규환 속에서 하느님나라 운동의 재개를 도모하며 흩어진 추종자의 한 사람이었다. 필시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하느님나라운동을 재개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때 그들은 각자 2의 요한이었다. 예수도 그랬다. “때가 찼다.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의 선포는 이미 요한의 선포로 알려진 메시지다. 그도 2의 요한이었다.

이 구절은 예수가 갈릴래아로 온 것이 요한의 하느님나라 운동을 재개한 것임을 말하는 포괄적 텍스트라면, 이 구절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구절은 그 운동의 첫 번째 국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16)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Aνδρεας)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마가복음1,16~20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그들은 모두 갈릴래아 호수에서 조업하는 어부였다. 예수와 그들은 초면의 관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요한의 추종자로서 당국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중이 아닌가.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은신처는 고향이다. 한데 예수는 고향 나자렛이 아닌, 그곳에서 직선거리로 40km 이상 되는 가버나움 근방의 호숫가로 향했다. 그것은 이들 넷이 모두 혹은 일부가 신뢰할 만한 동지였다고 보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들 모두 혹은 일부는 세례자 요한의 운동에 동참했던 동료였을 것이다. 실제로 요한복음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요한의 제자로서 예수와 동료관계였음을 말하고 있다.(1,40)

 

(35)다음 날 요한이 다시 자기 제자 두 사람과 같이 서 있다가, (36)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서,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하고 말하였다. (37)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와 형제간인 안드레였다.

―〈요한복음1,35~40

 

그들은 가버나움의 어부였을까. 마태복음8,14~17을 보면 베드로는 가버나움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버나움이 그 근방에서 가장 큰 어촌이고, 요한과 야고보가 선주의 자제였다고 한다면, 그리고 베드로와 안드레가 가버나움의 어부였다면 당연히 선주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 형제도 가버나움의 어부였을 것이고, 여기서 더 나아가 추정해본다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요한과 야고보 집안이 소유한 배에서 함께 노동하는 어부였을 것이다. 하여 정리하자면 그들은 예수가 세레자 요한 체포 사태 때에 그곳을 탈출하여 갈릴래아로 와서 처음 결속한 측근인사들이며, 그들의 거주지인 가버나움이 예수의 첫 번째 은신처이자 활동거점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발굴된 고고학적 정보들을 보면 가버나움은 당국에 의해 추적당하고 있던 세례자 요한계 잔존세력이 은둔하기 적합하다. 우선 변경지역의 어촌마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고대사회에서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는 하나의 선()으로서의 국경(border)으로 나뉘는 게 아니다. 국가의 경계선은 명료하지 않다. 오히려 그 경계는 선이 아니라 면()으로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변경지대(frontier zone)라고 부른다. 이 나라에도 속하고 저 나라에도 속한, 혹은 여기에도 속하지 않고 저기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이 바로 변경이다. 두 개의 정체성,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그것이 변경의 사람들을 특징짓는 개념이다. 가버나움이 바로 그런 곳이다. 안티파스의 공권력을 피해 은거하며 활동을 도모하기에 변경 마을 가버나움은 안성맞춤이다.

또한 이곳이 꽤 큰 어촌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가버나움 회당(그림에서 굵은 검은 색 선으로 표기된 부분)에 대한

발굴 작업이 시도되었는데, 그 아래쪽에, 회당 건설 과정에서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가옥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가옥들은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시대로 추정되는 시기에 실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가옥의 구조가 흥미롭다. 작고 빽빽하게 구획된 매우 많은 가옥들이 마치 수십 가구가 함께 모여 사는 다세대주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공동체가 매우 긴밀하고 평등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나자렛 같은 지역의 가옥 흔적들이 집집마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건조물 형식을 띠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것은 가버나움이 어촌 가운데서도 제법 큰 마을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 가족 단위의 작은 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다수가 함께 조업할 만한 제법 큰 배가 있었고, 그것을 가공하는 작업까지 수행할 만큼의 규모가 있는 마을이라는 얘기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가 예수를 따르게 되는 이야기에서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마가복음1,20)라는 묘사는 세베대와 마을 사람들이 선주와 삭꾼의 관계가 아니라 마을사람들이 함께 조업하는 일종의 어촌조합으로 엮여 있는 상황을 시사한다.

이런 촌락은 외부인에 대해 대단히 배타적인 반면 내적 결속력은 대단히 높다는 특징을 갖는다. 한데 이 마을의 적어도 네 명의 청년들이 신원을 보증하는 사람, 더구나 촌장 역할을 하는 집안의 아들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은 빠르게 그 마을의 내부인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그 사실에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만큼 마을사람들은 가족처럼 연결되어 있고, 외부인이 그 연결망 안의 사정을 알아내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마을은 2의 요한이 되고자 하는 이가 은거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다.

한편 그곳은 은거의 장소만이 아니라 활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마가복음2,1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παλιν εις Καφαρναουμ) 들어가셨다.”1,37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εις τας συναγωγας)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와 연결시키면, 예수일행이 가버나움을 거점으로 삼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느님나라 운동을 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예수일행이 마을 안에서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게 된 시기에도 가버나움은 여전히 중요한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일행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한 결정적인 순간 그는 다시 북쪽의 가버나움으로 갔다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행보를 보인다.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갔다. 예수께서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가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느냐?’...”(마가복음9,33)

 

갈릴래아 촌락회당

 

가버나움 어촌마을의 밀집가옥 안에 거점을 둔 예수는 제자들과 그 마을의 회당에 들어갔다. 다음은 예수의 첫 번째 공식적 활동을 보여주는 가버나움 회당 사건에 대한 마가복음의 묘사다.

 

(21)그들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는데, (22)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그 때에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24)“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25)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26)그러자 악한 귀신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서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27)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

(28)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마가복음1,21~28

 

이 텍스트는 예수의 첫 번째 회당 활동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보다는 대중이 기억하고 있는 예수활동의 전형적 양식을 집약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활동 양상에 관하여 다음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그의 선포가 범상치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축귀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그이에 관한 소문이 온 갈릴래아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셋째로 그런 일이 일어난 장소가 가버나움 회당이었다. 즉 도시의 회당이 아니라 (조금 큰) 시골 마을의 회당에서 벌어졌다.

한편 그이는 추종자들과 함께 다른 마을, 특히 촌락회당을 두루 다니면서 이와 같이 비상한 가르침과 축귀행위를 펼쳤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마가복음1,38~39

 

물론 예수의 마을 안에서의 대중활동이 반드시 회당에서 벌어진 것만은 아니다. 마가복음2,1~12는 중풍병자를 고쳐주는 얘기인데, 그 장소는 가버나움이거나 그 인근 마음의 이떤 이의 집이다. 그이가 묶고 있던 베드로의 집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정황상 집의 크기가 어느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가난한 촌부의 집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면 촌장인 세베대의 집일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유력자의 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마을이 아닌 다른 마을의 집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곳은 회당이 아니라 마을사람 아무개의 집이다.

하지만 마을 안에서의 활동을 대표하는 가장 전형적 장소는 뭐니뭐니해도 회당이다. 그곳에서 그는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마을의 지도자들과 갈등이 벌어졌다. 그리고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갈등으로 그이는 그 이후 더 이상 회당 안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갈등의 조짐들

 

갈등의 첫 번째 조짐은 나병환자를 치유한 사건이다.(마가복음1,40~45) 나병환자(λεπρος)는 일반적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레위기13~14장에는 피부에 생긴 악성 질병에 대해 길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서인 셉투아긴타(칠십인역성서)는 이를 마가복음처럼 레프로스(λεπρος)로 번역했다. 레위기는 이런 질환에 걸린 이를 마을로부터 격리하라고 명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매우 오랫동안 잘 지켜진 계율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이를 치유한 장소는 회당 안은 물로 아니고 마을 안도 아니었을 것이다. 한데 중요한 것은 예수가 그를 치유한 뒤 율법에 따라 사제에게 보여 깨끗해졌음을 입증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그 일로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있게 되었다.(1,45)

그것은 이 치유행위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까. 이후의 예수 활동이 갈등에 관한 것이니 필시 갈릴래아의 많은 마을회당에서 이 행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데 왜 문제가 되었을까. 예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율법대로 한 것인데 왜 문제란 말인가.

두 번째 갈등의 조짐은 마가복음2,13~17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엿보인다. 여기에는 세관원 레위를 제자로 부르는 사건이 다루어져 있다. 여기서 세관원은 호숫가에 있는 세관(τελωνιον)에서 종사하는 자이니 통행세나 관세의 징수업무를 수행하는 자다. 이런 세관원에게 징세를 당하는 이는 상인이나 순례자다. 반면 나서 죽을 때까지 마을 밖을 나갈 일이 거의 없는, 더구나 잉여의 자산이 거의 없던 농민들과는 업무상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데 이스라엘 사회의 지배담론 속에서 세관원은 민족의 배신자로 취급되었다. 이는 농민들도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별로 없음에도 세관원에 대한 혐오감정을 공유했다는 것을 뜻한다. 상인이나 순례자의 이해관계가 일반화된 가치의 척도로 재해석된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시각은 그 사회에선 중요했다. 대중의 일상은 그들의 시각에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중앙의 권력자는 세관원에게 과잉징세로 뜯길 일이 없다. 그러니 그들을 증오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세관원에 대한 증오담론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중앙의 권력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아무튼 세관원은 촌락사회에서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들 역시 회당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자다. 한데 예수가 그런 자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세관원들(τελωναι)과 죄인들(ἁμαρτωλοι), 그런 천한 자들과 더불어 밥을 먹었다. 그들이 회당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은 그런 자들과는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여 바리사이들의 율법학자들(ογραμματεις των Φαρισαιων)이 예수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왜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고 다니느냐고 말이다.(2,16)

여기서 바리사이들의 율법학자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마가복음3,22에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ογραμματεις πὸ Ἱεροσολυμων καταβαντες)라는 표현이 나온다. 마가복음의 용례에 따르면 율법학자를 묘사할 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바리사이들의 율법학자’, 이렇게 두 가지 유형의 표현이 등장한다. 만약 이 둘이 다른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바리사이들의 율법학자들라는 표현은 갈릴래아 촌락사회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바리사이들, 그들 중의 엘리트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곧 지방의 바리사이적 엘리트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추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데 그들이 예수를 공공연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예수는 이와 같이 반론을 편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2,17) 여기서 예수의 관심은 보다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중앙의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촌락사회 안에서도 그들은 배제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예수는 회개하라,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외쳤던 스승 요한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시권력, 즉 일상권력의 문제에 다가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이렇게 지방의 율법학자들과의 갈등은, 이들 율법학자들이 촌락의 바리사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예수가 촌락사회에서 갈등의 핵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갈등, 폭발하다

 

(1)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4)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마가복음3,1~6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안식일에 촌락회당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어느덧 갈등의 핵으로 부상한 된 예수를 주시했다. 그들 중 일부는 율법에 어긋난 행태를 찾고자 했다. 한데 예수는 그런 그들에게 대놓고 문제의 행동을 벌인다. ‘손이 오그라든이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고는 안식일에 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옳은지를 묻는다. 그이는 장애인이지만 응급환자가 아니다. 꼭 그날 치유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근데 예수는 자신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려는 이들을 향해 왜 안식일은 안 되는가라고 묻는다. 손이 오그라든 이는 응급환자는 아니지만 그 질환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는 어느 날이든 치유될 수 있으면 치유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에게 구원이다. 한데 구원을 위한다는 율법은 안식일에는 그가 구원받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결국 예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여 예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안식일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리사이는 헤롯의 당원들과(μετα των ρωδιανων συμβουλιον) 공모하여 예수를 적대하는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마가복음3,6) 헤롯 당원은 헬라어 헤롯의 숨불리온(των ρωδιανων συμβουλιον)을 번역한 것이다. 많은 영어성서들도 ‘the Herodians’이라고 썼는데, 이런 나는 이 표현이 마치 이스라엘 대중 가운데 헤롯을 지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오독될 것이 우려되어 다른 번역어로 옮기고자 한다. 즉 그들은 헤롯의 지방관원들이다.

이때 헤롯은 헤롯 대왕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자 갈릴래아의 통치자였던 안티파스다. 그리고 안티파스는, 그의 부친이 그랬듯이, 그의 영토 내의 요소요소마다 요새를 건설하여 자신의 용병을 주둔시켰다. 그들의 주된 역할은 지방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반란을 억제하는 것 외에 촌락들이 왕에게 바칠 공물을 징수하는 것이었다.

중앙의 권력이 지방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통치다. 즉 마을마다 왕의 관리를 파견하여 통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법체계가 지방까지 잘 작동해야 하고 중앙 권력을 정당화하는 지배이데올로기도 마을 곳곳까지 스며 있어야 한다. 이런 행정력뿐 아니라, 지방 곳곳까지 충분히 통제할 만한 군사력의 보유는 기본이다. 문제는 그런 체제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데 예수 당대는 그런 정도의 발달된 국가가 존재하지 못했다. 하여 그 대안으로 촘촘하게 지방을 통제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바로 왕의 요새에 자신의 용병을 주둔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주군인 안티파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하는 자들로, 마을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고 또 마을 촌장이 바친 공납물을 수거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일종의 낮은 수준의 왕의 지방관리였다.

그런데 이런 제한적 통치는 왕의 지방관리들이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일일이 간섭하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실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부분 알지도 못했다. 마을은 그 마을의 전통적 질서를 관장하는 씨족장 같은 마을의 엘리트 세력에 의해서 관할되었다. 왕의 지방관리들은 마을이 공납물을 충실히 바치는 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대체로 무관심했다. 그래서 안티파스의 공권력의 추적을 당하는 요한의 잔당인 예수 일행이 마을 안에서 은거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한데 예수는 마을의 화당에서 활동하면서 일상 속에 작동하는 회당체제적인 미시권력이 중앙성전의 거시권력 못지 않게 민중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장치였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성전의 제사가 민중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회당도 민중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회당을 통해 일상에서도 배제를 체험해야 했다. 하여 예수는 그런 일상의 권력에 맞서게 되었다.

갈등은 폭발했다. 바리사이는 예수는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모든 바리사이가 일사분란하게 적대행위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대중은 모든 바리사이가 그랬다고 믿었다. 아무튼 촌락사회의 많은 바리사이는 안티파스의 당국에게 예수의 마을에서의 활동을 제보하였다. 이것은 예수일행이 더 이상 마을 안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호숫가로 물러갔다(αναχωρεω, withdr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