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일, 크리스찬아카데미와 기윤실이 공동주최한 포럼 '이데올로기와 한국사회, 그리고 교회'(오전 10~12시. 조에홀)가 있었다. 김호기 교수가 발제를 했고, 신학 부문, 역사 부문, 사회 부문에서 한 명씩 논평자로 참여했다. 역사 부문 토론자는 홍문기 총신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사회 부문은 조성실 시사평론가가, 그리고 신학 부문은 내가 맡았다. 윤석렬 정부의 최근 극우적 이념으로 정국을 드라이브하는 현상을 염두에 둔 주제로 보인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문제의식의 하나를 점검해보겠다는 취지인 듯하다. 오프라인 참여자나 온라인 참여자가 너무 적었다. 아마도 이벤트의 사회가 되어 버린 한국의 담론 지형에서, 제목이 너무 이벤트답지 못한 것이 그 한 이유가 아니었을지. 아무튼 바쁜 중에 열심히 애쓴 두 주관단체 담당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김호기 교수의 발제는 ppt로 수행했는데, 유튜브에 포럼 영상이 있으니 혹 관심 있는 이는 찾아보시길.
오랜 만에 김호기 교수를 보았는데, 얼굴이 많이 부은 듯하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지 않은지 걱정된다. 혹여 이상이 있다면 건강 회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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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에 ‘변방성’이 꿈틀대는 신자들이 있다
김호기의 ‘이데올로기와 한국사회, 그리고 교회’에 대한 논평
회귀! 퇴행?
발제자는 윤석렬 정부가 한국사회를 ‘이념 논쟁에로 회귀’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회귀’라는 조심스럽고 중립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발표에서 엿보이는 발제자의 생각은 ‘회귀’보다는 ‘퇴행’에 가까워 보인다. 윤정부의 이념적 행보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제기한 몇몇 비평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의 표현은 좀더 상투적이면서도 명료하다. ‘철 지난’ 혹은 ‘때 아닌’ 같은 어구가 대표적이다.
비판적이라는 점에서는 나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발제자에 대한 비평의 자리이니 조금 트집을 잡아보면, 이와 거의 같은 표현의 문제제기가 천안함 사건 직후 이명박 정부가 강경한 반공이념으로 정국을 휘몰아칠 때도 있었고, 특히 박근혜 정부가 강경한 이념 정치를 펼 때도 있었다.
2007년과 2010년에 실시된 한국인의 갈등의식 조사들 두고 그 변화 추이를 분석한 한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 갈등의식이 고조되던 2007년에 비해 2010년에는 이념적 갈등이 크게 강화되었다. 발제자가 ‘시장 보수’ 정권으로 규정했던 이명박 정부는 특히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념 갈등을 정치에 본격 활용했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는 ‘시장 보수’ 정권이라는 평가가 일면 타당하지만, 중반기 이후의 정치적 행보는 이념 논쟁을 부추김으로써 정권의 내적 자생성을 강화시키려 했던 ‘안보 보수’ 정부의 성격이 명료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겹치지만, 그럼에도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이념 논쟁을 주도한 이들은 이른바 ‘뉴라이트’임을 자임했던 자들인 반면 후자는 ‘올드라이트’ 정권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런 점에서 ‘철 지난’, ‘때 아닌’ 같은 주장들은 그 비판 기조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그 이념 행보를 시대착오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분석 여지를 별로 남겨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발제자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퇴행’이라고 번역했던 나의 억측이 개연성이 있다면, 발제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제자는 ‘귀환’의 국내외정치적 요인을 지적하고 있으니, 나의 평가가 억측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는 국내정치적 요인으로 21세기 이후 여러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정치 양극화의 쓰나미 현상이 한국에도 휘몰아치면서 포플리즘 정치가 만연하고 이런 맥락에서 이념 갈등이 횡행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국제정치적 요인으로 포스트세계화 시대의 대안정치 현상의 하나로 세계를 휘젓고 있는 신냉전화 현상을 지적한다.
발제자가 사회학자로서 책임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논점은 여기까지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이념 갈등 심화 현상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또 향후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한지의 문제는 신학자들의 과제일 것이다.
개신교 극우의 부활과 분화
최근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과 교회가 어떻게 연계되었는지를 묻기 위해서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두 번의 대선에서 실패한 보수정권이 지리멸렬한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던 때다. 그런 절망의 분위기를 역전시킨 것이 2003년 3.1구국기도회다. 김진홍 등이 주도했던 이 집회에는 무려 10만 명(경찰추산. 주최측 추산은 20만 명)이 모였다. 중요한 것은 이 집회 이후 개신교의 극우주의적 정치세력화가 본격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개신교가 주도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독교 (반공)국가’ 담론이 한기총을 중심으로 개신교를 거대한 정치연합으로 변모시키는 계기인 것이다. 이와 함께 한기총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개신교 반공주의 세력이 분화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2005년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개신교의 또 다른 정치세력화가 모색되었다. 한기총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반면, 뉴라이트를 표방한 개신교 세력은 개신교계 시민운동 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가 좀더 사회운동에 익숙한 세력이다. 해서 전자는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좀더 권위주의적인 개신교국가 담론에 더 친화적이라면, 후자는 민주화 시대 개신교 반공적 보수주의 양상이 보다 강하다.
한편 2007년 이후, 온라인 공간을 주요 활동무대로 하는 이른바 한국판 개신교 ‘넷우익’ 단체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일부 단체들은 오프라인 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주요 활동공간이 온라인이라는 점, 그리고 청년 개신교 신자들이 이 네트워크의 핵심 유저들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의 이념적 성향이 대체로 뉴라이트 극우주의 성향을 띤다는 점이 주목된다.
극우개신교 부활의 이유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한기총의 시대를 이끌어간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은 과연 한국개신교를 대표하는 이들인가? 그들은 성공한 목사들이었지만 시민사회나 교계의 폭넓은 존경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한기총이 급부상하던 시절,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적폐로 지탄받는 대표적 세력이었고 그런 과녁은 대체로 한기총의 주역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한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한국사회의 교회를 향하 비판이 1990년대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무렵 새롭게 부상하는 교회들이 적잖았다는 점이다. 나는 이 교회들을, 선발대형교회와 대비하여, 후발대형교회라고 명명한 바 있다. 전자는 1970~80년대에 주로 전국의 대도시들에서 나타났는데,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이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급성장하였다. 후자는 1990년대 이후 주로 강남과 분당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중상위층이 대거 유입해들어옴으로써 대형교회가 되었다. 또 전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지상주의에 가깝다면, 후자는 풍요의 품격을 강조하면서 성장을 이룩한 교회들이었다. 주목할 것은 이들 후발대형교회에서는 담임목사직의 교회 세습 현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2천년대 급부상한 교회들 중에는 교회의 재정투명성을 극도로 강조하거나, 이웃에 대한 나눔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있었고,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그런 교회들을 이상적 교회로 모델링하는 경향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후발대형교회들에는 한국사회의 파워엘리트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파워엘리트는 일터라는 사회적 전쟁터에서 가장 성공한 전사들이다. 또 그들은 자녀들에 대한 과열된 교육 욕망을 주저 없이 분출하는 주역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들이 교회를 따뜻한, 포용적인 보수의 신앙 문화의 전당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담임목사는 그런 욕망을 가진 이들을 대거 흡수하기 위해 교회를 그것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교회들이 후발대형교회 현상을 주도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담임목사직 세습이라는 폐습을 거둬내는 교회를 만들었지만, 정착 그 교회의 파워엘리트들은 사회에서 누리는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장으로 교회를 구축했다. 수천, 수만 명의 중상위층의 사람들이 수십년 혹은 대를 이어서 매주 1회 이상의 공식・비공식의 모임을 갖는,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공동체가 바로 한국의 후발대형교회다. 해서 이런 유형의 교회는 거대한 인맥공장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전 인구의 20%도 안 되는 개신교 신자들이 파워엘리트의 40%를 점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 교회의 파워엘리트들이 집중된 곳은 전체 교회의 1% 정도에 불과한 후발대형교회였다.
그 반대편에는 실패한 많은 중소형교회들이 있다. 또 규모에선 대형이지만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대형교회들은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해서 실패한 혹은 열패 의식에 사로잡힌 교회들은 열렬히 후발대형교회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개는 실패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바로 그런 위기가 감돌던 시기에 열패감에 시달리던 선발대형교회 목사들이 주축이 된 한기총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이 교회운동은 사회적 신망도를 높이지는 못했지만, 사회를 형성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는 데는 성공했다. 여기에 극우주의가 한몫했음은 의심의 여지 없다.
중소형의 많은 교회들이 한기총 운동에 편승했다. 전광훈이라는 대단한 활동가는 1990년대에 이들 중소형교회 목사들을 하위단위에서 조직해내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실패 감정은 그들을 극우주의적으로 정치세력화되는 동력이 되었다.
이와 같이 후발대형교회의 주역들, 담임목사와 평신도 엘리트들은 이런 실패(예감)자들의 극우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마도 발제자는 이들을 이념적으로 세계주의적 보수나 중도 범주로 해석하는 것 같다. 한데 나는 이런 규정보다는 문화계급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이들을 웰빙보수주의적으로 주체화된 신자와 교회로 설명한 바 있다. 문제는 그들의 웰빙이 사회를 더욱 양극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데 있다. 그들의 계층편향적인 웰빙신앙은 열패감에 사로잡힌 이들을 증오의 정치에 과몰입된 신앙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온라인 극우개신교, 부활의 이유
후발대형교회가 급성장을 구가하던 시기는 세계화의 작혹극에 한국사회가 난도질 당하던 시기와 겹친다. 또 그 이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세계화 제도를 정착시키면서 중위국에서 선진국으로 부상하던 시기와도 겹친다. 그 시기에 한국사회를 지배한 담론의 하나가 ‘자기계발담론’이다. 후발대형교회는 기독교적 자기계발담론의 진원지였다. 좀더 성공한, 혹은 성공 가능성에 열려 있는 청년들은 후발대형교회로 이동했다. 그리고 실패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갔다.
같은 시기 교회를 떠난 많은 청년들이 신천지 신자가 되었다. 한데 그들 중 상당수는 가족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배제와 박탈을 체험한 이들이었다. 자기계발 신앙에 몰두하던 많은 목회자들의 관심 목록에서 실패와 좌절, 절망이 사라져 간 탓에 그들은 교회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신천지는 바로 이런 이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소박한 성공의 성취감을 선사했다. 문제는 신천지에 빠져들수록 그들의 반사회성이 더욱 강화되어 간다는 데 있다.
한편 제3의 길이 있었다. 교회 어른들이 전방(일터와 가족)의 치열함과 대비되는 평화로운 후방공간을 교회에서 구현한 것처럼, 일부 청년들은 가족과 학교, 그리고 일터에서 치열한 전사로 살면서, 미친 듯이 놀아대는 후방지대로서 클럽을 찾았다. 그런데 그들의 또 다른 향락의 공간이 있었다. 온라인 네트워크 속에 가상의 클럽이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자기계발 신앙에 따라 끝없이 성공을 향해 질주하도록 셋팅된 현실의 공간에서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계산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수(imaginary numbers)가 활약하는 새로운 수의 세계가 있었다. 실수(real numbers)들만의 계산기가 작동하지 않는 그곳에서 그들은, 문화비평가 박원일의 표현대로, ‘인터넷의 막장성’을 향유했다. 그곳이 규범의 바깥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일베는 그런 막장성이 구현되던 대표적 장소다. 그곳에선 ‘혐오’가 막장 놀이의 수단으로 부상했다. 이때 혐오의 대상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행해지던 불링(bullying) 현상과 유사하다. 약하고 만만한 상대가 표적이 되었다. 한국판 넷우익의 한 축은 이렇게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형성된 과잉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막장의 놀이공간을 혐오주의적으로 향유한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들에게서 이념은 놀이의 일부였다.
이런 넷우익의 놀이성을 신앙적 소명과 결합시킨 신박한 개신교 청년들의 온라인 네트워크들도 주목의 대상이다. 이것은 한국판 넷우익의 다른 축이다. 그들은 이념을, 놀이의 수단으로 향유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국가를 만들어가는 소명으로 인식했다. 그들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극우담론의 표적이 된 이른바 ‘적그리스도들’과 전쟁을 벌였다. 한데 이들의 주요 전쟁터는 온라인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개신교판 ‘네트워크 전사’(network army)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극우개신교 현상들은,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친화적 우파들이 만들이 만들어낸 후발대형교회가 일으킨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효과의 부정적 파생물 성격이 짙다. 말했듯이 후발대형교회는 한국사회 파워엘리트의 사회적 연결망(Social Network)에서 가장 강력한 클러스터(cluster)의 하나다. 해서 그 현상이 미치는 사회적, 종교적 파급력은 막강하다. 최근의 개신교 극우주의 양상은, 후발대형교회 현상의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종교적 리스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한국개신교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개신교 극우파의 언행에 조준되어 있다. 그런 시선은 개신교 선교의 위기를 초래했다. 또한 가장 평판 나쁜 종교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시선은 개신교 신자들의 자기거울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교회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신자들의 종교제도적 충성심 이완으로 나타났다.
코로나팬데믹 현상은 이런 충성심 이완 현상을 극적으로 강화시켰다. 많은 교회들은, 외적인 확장은커녕, 출석교인의 심각한 이탈에 시달리고 있다. 극우성향의 개신교 정당들이 공약으로 교회 대출 금리의 파격적 인하를 주장했던 것에서 시사되듯 많은 교회들은 이미 심각한 부채상환에 고통받고 있었다. 교회의 신용도가 낮은 탓에 시중은행들은 대출을 꺼리고 있고, 이자율이 좀더 높은 제2, 제3 금융권이 교회 대출 틈새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많은 교회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한데 사회적 평판이 급락히 악화되고 코로나팬데믹으로 신자의 충성도가 걷잡을 수 없이 이완된 것이다. 이제 많은 교회들은 존립 자체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서 신자 감소의 위기를 덜 혹은 전혀 겪고 있는 교회들도 있다. 특히 후발대형교회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지대에 진입해 있다. 더욱 문제는 거의 모든 개신교 교단이나 교회연합체들이 성공하는 후발대형교회들의 성공비법을 모방하고 평가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개신교의 극우화는 개신교의 퇴행화 현상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를 퇴행화시키는 주요 원인자이기도 하다. 발제자는 진리와 정의, 포용과 통합을 선도하는 역할을 개신교가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고 있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또 그런 주류 교회들의 양상에서 배제된 교회들과 신자들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주의를 부추기면서 성공한 교회들에 대한 열패감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현재 한국교회의 아프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그것에 반대하는 교회나 기관, 그리고 신자들의 규모는 턱없이 적다. 교회 안에서,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 그렇다.
한데 다른 점이 있다. 한국개신교가 전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충성심을 신앙심과 동일시해왔던 이제까지의 관행에서 이탈하게 했다. 그들은 이 교회 저 교회로 떠돌아다니면서 절대적이었던 것들을 스스로 해체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교간 경계를 넘나들곤 한다. 또한 종교 바깥에서도 진리를 향한 탐구에도 귀를 귀울인다. 심지어 인간세계 바깥의 소리에도 감각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은 ‘떠돌이 신자들’ 사이에서 변방성이 신앙의 요소로 자리잡으려 꿈틀대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교 신앙사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의 하나는 ‘영’의 발견이다. 몸의 굴레를 벗은 존재는 몸의 제도가 만들어낸 어떠한 장벽에도 구애받지 않는 존재인 영을 체감했다. 요한복음은 그런 영을 ‘바람’으로 묘사했다. 변방성은 바람 같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어떤 규격의 상자에도 가둬둘 수 없는 영이 장벽으로 가득했던 신앙의 언어를 리셋팅하기 시작했다.
그런 변방성으로 자신을 해석하기 시작한 떠돌이 신자들이 광범위하게 한국개신교의 경계 지대, 아니 변방지대에 나타났다.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교단의 경계, 교회의 경계, 종교의 경계, 이념의 경계, 민족과 인종의 경계, 섹슈얼리티의 경계, 온갖 경계의 족쇄들을 하나씩 몸에서 벗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의 변화를 부르짖는 이들의 대열에 이미 서 있다. 단지 교회 안만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가 못 보았을 뿐이다.
이러한 변방성의 강화를 극적으로 체감하는 이들이 대대적으로 출현하는 일은 다른 어느 곳보다 교회의 변방지대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교회가 가장 적폐가 심한 곳으로 낙인찍힌 덕에 많은 이들이 떠돌이 신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런 이들과의 소통법이다. 어떻게 변방성을 신학적 서사로 만들어 낼 것인지, 특히 그런 변방성의 신앙을 혐오사회로 추락하고 있는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정치신학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신학이 필요하다. 바로 이 과제를 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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