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신학위원회 성서와 동성애 1차 토론회(2024. 02. 06)
------------------------------------------------------------------------------
소돔 멸망 설화의 핵심은 ‘무너진 공의’에 있다
강철구의 〈소돔과 고모라의 구약성경의 수용과 새로운 접근〉에 대한 논평과 정치사적 보충
멸망에 이르게 한 죄가 동성애?―오래된 과잉해석
성서에서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고 추정되는 본문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이 구절들은, 나의 사견으로 는, 둘 중 하나에 속한다. 동성애라고 볼 개연성이 거의 없는 것을 억지로 끼워맞춘 과잉해석의 산물이 거나, 동성애를 언급한 것이 분명하지만 동성애에 관한 일반화된 관점을 보여준다기보다는 그 텍스트 구성 집단의 정치공학적 언술의 일부로 해석되는 구절이다. ‘기브아 멸절 설화’(〈사사기〉 19장)와 하느님나 라를 물려받지 못하는 자들의 목록(〈고린도전서〉 6,9)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극형범죄 목록(〈레위기〉 20,13)과 순리에서 빗나간 행위 목록(〈로마서〉 1,26)은 후자라고 볼 수 있다. 강철구 교수의 논문이 다루고 있는 〈창세기〉 18~19장의 ‘소돔과 고모라 멸망 설화’는 오인된 과잉해석에 속하는 텍스트다.
‘소돔(과 고모라) 멸망 설화’는 〈창세기〉를 제외하고도 제1성서 중 7개의 문서, 제2성서 중 6개의 문서 에서 언급되어 있을 만큼 오랫동안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모든 용례는, 하나도 예외 없이, 하느님의 결정적인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그 죄악이 너무 심각해서 종족 혹은 국가를 절멸시킨 만큼 치명적인 것이다.
심각한 죄악과 하느님의 최종적 징벌이라는 주제는 성서 전반에 걸쳐서 너무나 많이 나온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그런 메시지를 담아낸, 꽤 널리 알려진 하나의 소재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소돔 설 화를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심판으로 귀결된 치명적 죄악을 동성애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관행이 널리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동성애 반대론자들만의 편견이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그렇 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런 생각은 오인된 과잉해석에 불과하다. 13개 성서 문서들 어디 에서도 소돔 이야기를 동성애와 연결시켜 이해하지 않았다. 발제자인 강철구 교수가 지적하고 있듯이 그런 오독의 역사는 5세기에 저술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De civitate Dei)에서 비롯된다.
과잉해석의 신학적 기원―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책을 쓸 당시는 제국 로마가 물밀처럼 밀려오는 게르만 부족들의 침입과 약탈에 시달리고 있던 때였다. 특히 서기 410년 8월 24일부터 3일간 벌어진 서고트족(Visigothi)의 로마시 약탈사 건(Sack of Rome)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미 20년 전에 켈트족이 침입해 들어와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살육해댔는데(서기 390년), 그런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이에 당대 로마의 지식인들은 이런 참담한 일이 왜 벌어져야 했는지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 가장 많이 제기된 주장의 하나는 그리스도교 때문 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흥분한 시민들은 교회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교회를 위한 적절한 변론이 절실했다. 당대 최고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을 저술한 것은 바로 이런 변증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무분별한 성적 욕망과 우상숭배로 인해 로마가 멸망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도성은 (파괴된 로마 같은 세속국가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로마는 정의롭 지도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로마는 결코 하느님의 나라일 수 없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분별한 성적인 문란함과 탐욕이다. 소돔 멸망 설화는 그런 타락과 파멸을 이야기하는 성서적인 논거의 하나로 다루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비판한 로마의 성적 탐욕에는 동성애 현상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고대로마는 동성 애 현상을 둘러싼 보수파와 자유파 간의 오랜 갈등이 있었다. 20세기 미국과 비교되는 고대로마의 과잉 군사주의(overmilitarism)는 가족을 전사(warriors)의 출산 기능에 깊이 연루시키는 도덕 개념을 발전시켜왔 다. 그런 군사주의적 가족론에서 성애(sexual love)가 자리잡을 장소는 지극히 협소했다. 이것은 성애 (sexual love)적 장소의 탈가족화(de-familialization) 현상을 부추겼다. 로마제국에서 성행했던 매춘업은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 현상과 일부 겹치면서 별개이기도 한 현상 이 바로 동성애 현상이다. 동성애는 출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이라는 점에서, 고대그리스의 철학자 플 라톤의 사랑론인 《향연》(Συμποσιον)의 주장처럼, 진정한 사랑의 극치라는 주장이 자유파들 사이에서 널리 확산되었다. 반면 로마의 보수파는 출산과 무관한 사랑을 무분별한 욕망의 분출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 보면서 그것은 결국 제국의 찬란한 위상을 추락시켜 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계 이민자로서 로마 체제의 논리에 순응하면서 생존해온 사람이다. 그가 제국의 주류엘리트 사회에서 인정받아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 지도자라는 평판을 받게 된 것은 로마인보 다 더 로마인스럽게 그 전통의 수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신국론》에도 그런 관점이 은연 중 내포되어 있다. 그는 몰락하고 있던 로마가 하느님의 (이상적인) 나라일 수 없음을 말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로마 체제는 보존되어야 하는 현실적 질서임을 전제로 자신의 논지를 펴고 있다. 야만족의 국가는 그것을 대 체할 수 없다. 왜냐면 그 나라들은 잠정적인 평화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만이 그것을 감당할 나라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 왜냐면 너무나 많은 제국의 지도자들이 성적인 문란함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부 종교와도 결합되어 있다. 해서 아우구스투스는 성적 문란과 우상숭 배를 직결시킨다. 즉 동성애 현상을 포함한 성적 문란은 도덕적 타락만이 아니라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런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식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보수파의 시각에서 체제의 재구축을 추구하고 있고, 그리스도는 그 런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바보야 문제는 ‘공의’야!―소돔 멸망 설화, 다시 읽기
다시 성서의 소돔 멸망 설화로 돌아가보자. 앞에서 말했듯이, 발제자는 성서의 여러 텍스트에서 활용 하고 있는 소돔 키워드에는 반동성애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지 않음을 논하였다. 발제자에 의하면 여러 성서 텍스트들은 우상숭배를 비판하기 위해, 혹은 약자를 수탈하고 억압하는 권력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혹은 성적인 일탈을 비판하기 위해 소돔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적인 일탈은 동성 애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발제자가 얘기하고 있듯이 낯선 방문자들을 욕보이겠다고 소동을 일으킨 소돔의 성적 일탈자들은 동성애적 욕구를 표출한 것이 아니다. 그랬더라면 손님을 보호하려는 룻이 자 신의 두 딸을 대신 내놓겠다는 말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핵심은 특정한 섹슈얼리티 간의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약탈적 사랑(plundery love)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약 탈적 사랑이라는 성애적 욕구가 본문에서는 어떤 동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발제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제까지 소돔과 고모라 멸망 설화인 〈창세기〉 18~19장 에서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주목한 것은 19장이었다. 반동성애론자들이 그랬다. 또 그것에 반론을 펴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한데 이런 해석 방법은 일부 일탈자들의 죄가 무엇인지에 집중하게 된다. 여기에는 긴장이 있다. 사적인 과실이 공적 징벌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징벌도 과잉이 아닌가.
해서 발제자는 대안적 방법으로 18장을 주목한다. 특히 20~21절에서 하느님을 향한 부르짖음(체아카. tse'aqa)이 소돔(과 고모라)로부터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체아카’라는 히브리 단어는 성 서에서 하느님의 공의가 철저히 무너져버린 현실에서 약한 자들의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절박한 하소연 을 함축하는 단어로 상용된다. 불과 ‘의인이 다섯 명도 없다’는 소돔의 백성이란 하늘을 향해 하소연하 는 민중의 반대편에 선 자들이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학대함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폭력을 통해서 전복시킨 자들”이다. 이것은 바로 그 앞 구절인 17~19절과 대비된다. 소돔의 지도자들과 반대편에 있다고 가정하는 아브라함에게는 종족 번창의 약속에 언급된다. 하여 하나는 번창하고 다른 하나는 멸망했다. 번창한 자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택함받았다. 반면 멸망한 자들은 공의를 저 버렸다.
이런 해석은 소돔 멸망 설화의 해석을 둘러싼 논점을 바꿔버린다. 도시의 멸망이 성적 일탈 탓인지 낯선자들에 대한 적대(hostility) 탓인지를 둘러싼 사적인 논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좀더 거시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로 관점을 전환시킨 것이다. 바로 약한 자들에 대한 공의가 무너진 것, 그것이 멸망의 진 정한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자칫 도시 일탈자자들의 사적인 부적절함에 주목하게 했던 해석의 과오는 이런 논점의 전환으로 해소 될 수 있다. 특히 성소수자를 비난하고자 하는, 확증편향적 해석은 그들로 인해 우리 사회 전체가 재앙 에 빠질 수 있다는 논점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현혹시킨다. 그런 점에서 발제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암살된 이후 내전을 제압한 뒤 최고 권력자의 자라에 오르는데, 아직 ‘왕’이라는 호칭에 대한 원로원 의원들의 강한 반감을 고려해서 자신의 호칭을 ‘아우구스투스’, 곧 지존자라고 부르게 했다.자의 해석은 그런 주장을 둘러싼 논쟁의 여지를 근원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공의의 붕괴 주장은 보충적 논의가 필요하다. 왜냐면 공의의 붕괴 논의가 19장에 서는 낯선 자들의 방문을 환대하지 않는 주민들의 태도에 대한 논의와는 표면상 별개의 얘기처럼 보이 기 때문이다. 양자 사이의 연결고리가 될 만한 보충적 설명이 필요하다. 문제는 본문 자체에서 그것을 설명할 만한 직접적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해서 상상력이 필요하다. 고대사는 워낙 사료 사 이의 간격이 너무나 넓기 때문에 특히 개연성 있는 상상력을 통한 보충이 불가피하다. 해서 나는 여기 서 발제자의 논의를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보충하고자 한다.
정치사적 보충―공의와 낯선자 적대의 정치학
성서 속의 소돔과 고모라 멸망 설화는 여러 층위의 역사적 흔적을 내포한다. 우선 소돔과 고모라로 대표되는 사해 남부 지역의 평지 성읍(국가)들의 갑작스런 멸망의 층위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아마도 EBA(Early Bronze Age) 3기로 추정되는 기원전 23세기 어간에 일어난 정치적 격변과 자연 재앙을 주목하 곤 했다. 정치적 격변이란 오늘의 이라크와 이란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중원지역에서 발전한 청동기 중 기의 정복국가들의 가나안 침략 상황을 반영한 〈창세기〉 14장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유프라 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중하류의 네 개 정복국가들(시날Shinar, 엘라살Ellasar, 엘람Elam, 고임Goiim)의 지배에 대항하여 사해 남부 평지의 다섯 개 성읍국가들(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이 동맹을 맺고 독립전쟁을 벌였다는 정황이 담겨 있다. 바로 이 시기에 소돔 등 사해의 성읍국가들이 파괴된 고고학적 흔적이 발 굴되었다.
한편 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소나기처럼 퍼부었고 연기가 솟아올라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리는 재앙이 내렸다고 묘사되어 있다. 최근의 지질고고학(Geoarchaeology) 연구에 의하면 소돔과 고 모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화산과 지진에 의한 파괴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급격한 융기와 침식이 일어 난 지층이 발굴된 것이다. 그 지역에는 귀중품과 식량의 잔해는 거의 없었고 큰 도자기 등은 그대로 남 아 있었다. 이는 주민들이 휴대할 수 있는 생필품만을 가지고 급히 피신했다는 정황을 반영한다. 영락없 는 대규모 화산과 지진의 흔적이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메소포티미아 중원지역에서 발원한 길가메시 설화가 메소포타미아 지역 일대에 널리 회자되고 있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 구술설화는 그로부터 거의 일천 년쯤 지나서 아시리아 의 황실 문서고에서 서사시 형식의 기록물로 발견된다. 이것은 오늘날 길가메시 설화의 표준판으로 받 아들여진 길가메시 서사시 원본이다.
이 설화는 소돔 멸망설화와 거의 비슷한 EBA 3기의 국가 중 하나인 우르크의 왕 길가메시를 주인공 으로 하고 있다. 설화는 길가메시의 폭정을 심판하기 위해 대지의 여신 아루루(Aruru)가 반인반수의 괴물 엔키두(Enkidu)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괴물은 땅에 내려와서 성전여사제인 샴하트(Shamhat)와 14 일간 격정적인 성관계를 한 뒤 완전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제 엔키두는 길가메시를 만나 격투를 하게 된다. 한데 그 격투는 그들의 브로멘스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완전한 사랑을 구현하는 연인이 된 다.
요컨대 이 설화는 신과 인간이 섞이고, 인간과 동물이 섞이며 이성애와 동성애가 섞이는 방식으로 서 사가 진행되고 있다. 신화는 현실을 이상적으로 반영한다. 현실의 익숙함을 내포하면서도 그것의 신화적 상상력과 얽혀 있기에 대중은 그것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며 대대손손 전승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다 면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이어지는 긴 역사에서, 이 설화가 발생하고 회자되며 황실 문서로 기 록되기까지 하는 동안 동성애는 결코 이상하거나 혐오적인 현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방증되고 있다. 즉 소돔 멸망 설화의 시대, 그리고 그것이 성서의 여러 문서에서 재활용되는 여러 시대의 상황은 동성 애가 그로테스크한 퀴어적 섹슈얼리티로 분류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다시 소돔 설화로 돌아가자. 이 설화의 다른 층위는, 문서가설이 J자료층으로 분류하는 유대아 지역의 설화다. 그리고 이 (구술 혹은 문서) 자료층이 왕실문서로 기록된 시기는 요시야 시대로 보인다. 유대아 왕국 역사에서 본격적인 문서활동은 바로 요시야 시대 어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이나 이후에 유대아왕국은 활발한 문서기록실을 운영하지 못했다. 하여 길가메시 서사시가 아시리아제국의 황실에서 문서화된 것처럼, 소돔 설화도 요시야 시대에 문서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다른 가능성보다 훨씬 더 개연 성이 높다.
여기서 우리는 요시야 왕 시대에 ‘나그네’의 정치경제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무렵 유다국은 번 영기를 맞이했다. 그때는 가나안 지역의 패권국가들인 이스라엘국과 아람국이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초 토화되고 국가가 멸망하게 되던 시기였다. 해서 이들 국가들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국은 유대아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나라였다. 해서 이스라엘국의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었음 은 의문의 여지없다.
〈호세아서〉 6,6 “강도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을 살해하니 차마 못할 죄를 지었다.”는 구절은 그런 정황을 암시한다. 유대아와 이스라엘 국경 지역의 한 성소인 세겜 인근에서 제사장 집단이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이야기가 이스라엘국의 전설적 예언자 호세 아의 입을 빌어서 기술되었다. 역시 요시야 왕실 서기관의 기록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2016년의 영화 〈증오〉(Nienawiść. 한국에서는 〈끝까지 살아남아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됨)의 내용을 연상시킨 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인 볼히니아(Volhynia) 지방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 극우민병대의 폴란 드인 학살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과거 폴란드에 의해 식민지배를 겪었던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일대 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의 극우민병대가 폴란드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던 것이다. 위의 성 서 구절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국의 속국이었던 유대아의 국경 지역에서 유대아 종족주의 이데올로기 에 밀착된 지방사제 집단이 이스라엘계 난민을 학살했던 정황이 들어 있다.
한데 유대아의 요시야 왕은 이런 증오에 찬 지방세력과 생각이 달랐다. 사실 지방호족들은 난민을 노 예로 편입시켜 자기들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다. 이것은 그 지역 평민들까지 예속농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와 맥을 갖이 한다. 한데 요시야 정권은 그런 호족을 견제하고 왕실 중심의 국가를 만들려 했다. 그런 맥락에서 이스라엘 난민들이 유대아 산지 공터에 들어와서 주거지를 만드는 것은 나쁘지 않은 징 조였다. 실제로 이 시기 유대아 산지에 대대적인 주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런 갑작스런 인구증가의 주된 이유의 하나는 난민의 유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시야 왕실은 그들을 백성으로 포용하는 정책을 취했다. 또한 농노화되는 자영농도 복원시킴으로써 왕실의 우호세력으로 포용하려 했다. 왕실개혁문서인 〈신명기〉는 바로 그런 사회권을 확대하려는 정책 을 잘 보여준다. 법을 반포하는 현장에 초대된 법의 백성은 귀족만이 아니라 평민과 노예, 난민, 심지어 가축까지 포함한다. 어느 것도 왕에게 귀속되는 것이지 호족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님을 천명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난민의 환대는 요시야 개혁의 핵심사안의 하나였다. 한데 이런 정부가 소돔 멸망 설화도 왕실 문서에 포함시켰다. 필시 그 동기는 낯선 이를 적대했던 국가의 멸망을 이 설화가 핵심 소재로 삼 고 있기 때문이다.
소돔 설화의 맥락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낯선자 적대 현상과 공의의 파괴는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발제자의 논점은 정치사적으로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텍스트에서 반동성애 모티브를 발견하려는 일부 성서 해석자들은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한 논거를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나는 그런 논자들에게서 충실한 역사학적 논거를 보지 못했다. 반면 발제자는 본문에 담긴 직접적 언술 속에서 그것이 동성애 관련 텍스트가 아니라 공의의 부재에 관한 비판적 텍스트임을 충실하게 논증했다. 나는 그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그런 논거의 정치사적 개연성을 보충하고자 했다. 하여 〈창세기〉의 소돔 멸망 설화는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 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
'논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냉전의 사회적 공간화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제기 (0) | 2024.03.11 |
---|---|
개념지도로 민중신학을 그리기, 재밌고 깊다 - 최형묵의 《민중신학 개념지도》(동연 2023)에 대한 단상 (2) | 2024.02.24 |
저기에 ‘변방성’이 꿈틀대는 신자들이 있다 - 김호기의 ‘이데올로기와 한국사회, 그리고 교회’에 대한 논평 (6) | 2023.12.04 |
‘부서진 시사 조각들’에게 최선의 관계에 대해 묻다 (0) | 2022.12.16 |
‘보수의 마음 읽기’의 가능성에 대하여 - 이나미의 〈전환과 통합의 관점에서 본 보수의 마음〉에 대한 논평 (0) | 2021.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