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야! 한국사회' 코너의 2010년 12월 14일자 칼럼
---------------------------------------
우상타파, 선불교에게서 배우자
한 불교잡지에서 글 하나가 눈에 띠었다. 「우상타파는 또 다른 우상을 낳고」라는 동봉 스님의 글이다. 불상을 장작으로 썼다는 단하 선사 얘기를 읽으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로선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의 깊이와 그 도발적 과감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글 말미에서 저자는 한 번 더 허를 찌르는 말을 덧붙였다. ‘우상타파라는 우상’에 대한 경계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이른바 ‘불교사찰 땅밟기 기도’를 염두에 두면서 쓴 글인데, 품격이 넘친다.
진리를 만나려는 열정으로 참선수행을 하는 이가 부처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타파해야할 우상이라고 말하는 선불교의 전통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 이르는 성찰의 담론이다. 이것이 어떻게 남의 종교시설에 함부로 난입해서 자기들의 예배 행위를 수행하는 것에 빗댈 수 있을까. 후자는 자기를 성찰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자를 정복해서 벌이는 무례함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여기서 나는 최바울 씨(인터콥 선교회 대표)의 트위터 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땅밟기 기도 사건이 보도된 직후, 개신교의 열혈청년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불교는 우상숭배이다. ... 당연히 ... 국민들이 우상에서 벗어나도록 ... 불교 절간에서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집에까지 방문하여 ... 기도해야 한다.”
그는 한 단기선교팀의 피랍사건 직후에 아프간 거리 한복판을 십자가를 앞에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겠다는 이른바 ‘평화행진’을 기획했던 이다. 또 얼마 후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 좌파가 한국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으며, 전교조도 이슬람에 물들었다는, 근거 없는 말을 하였던 장본인이다.
그는 진리를 알고자 열성을 다하는 수많은 개신교 열혈 청년들의 롤 모델이다. 한데 그에게서 땅밟기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당연한 행동이다. 나아가 아프간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것으로 생길 수 있는 피해는 선교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에 다름 아니다. 또한 그는 다른 종교는 우상숭배고, 자기가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시민사회단체는 우상에 물든 자들이라고 서슴지 않고 단언한다. 필경 이런 선배를 둔 후배들의 신앙행위가 땅밟기 기도인 셈이겠다.
이런 일들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두 종단 신자들의 감정이 격화되고 있다. 또 딱히 종교에 귀의하지 않은 많은 이들도 불편한 감정으로 개신교를 바라본다. 이에 대한 우려의 말들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분명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이상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표회장에 입후보한 한 후보가 공약을 발표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국민의식 개혁운동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명시한 내용은 미신, 우상타파, 퇴폐풍조 퇴치, 사회 정화 등이다. 하나하나 물어야겠지만, 우상타파 발언만으로도 문제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6개 교단과 6개 단체가 가입한, 한국 개신교 최대의 연합단체의 장이 되겠다는 이가 개신교가 도발하여 종교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공약의 하나로 내건 것이 우상타파다. 더구나 이것은 ‘국가 존망 위기 타개책’의 한 항목이다. 다른 종교가 이웃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국가 존망의 위기로 보였다는 것인가. 그는 이 말로 누구에서 호소하고 있는가. 한기총은 이런 공약을 공유할 수 있는 단체인가.
개신교 교회를 담임했던 사람의 하나이자 개신교 신학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그리고 품격 있는 가르침을 준 동봉 스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를 찾는 이들을 위한 조언 (2) | 2011.02.07 |
---|---|
학살당한 소, 돼지를 향한 애도 (0) | 2011.01.15 |
반대 없는 총화는 독재다 (0) | 2010.12.10 |
사과해야 하는 종교 (0) | 2010.11.09 |
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0) | 2010.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