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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오늘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 IMF 시대 민중신학의 의의

[계간 현대사상]의 틀별중간호 [지식인리포트2 - 한국좌파의 목소리](1998)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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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IMF 시대의 민중신학의 의의

 

 

 

 

1

 

언젠가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참을 망설였다는 듯 조심스런 목소리로 한 사람이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목사님은 왜 그리스도인이세요?” 뜬금없는 이 질문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아마도 그가 예의 아닌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선 거의 모두가 공감하는 눈치다. 실은 이런 류의 질문은 내겐 전혀 생소하지 않다. 여러 곳에서 비슷한 질문을 수차 받아온 터였으니 말이다.

이 날 강의의 요지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신조를 줄줄이 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해체적 지향에 그 초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심지어 신상(image of God) 파괴의 신앙을 내포한다. 가령, ‘신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었다는 그리스도교의 공리적 신조를 보자. 이 말은, 그 표현이 시사하는 대로, ‘신이 인간의 구원자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다교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그리스도교적 사유의 전제일 뿐이다. 그리스도교의 이 신조는 바로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특성화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신이 택한 방식은 신 스스로가 자신을 퇴행시키는 방법이었다는 주장인 것이다. 구원받아야 할 존재의 치욕스러움의 현장 에서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군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신을 해체하고 그 안으로 개입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것은 타자적 존재로서의 신/신상의 자기 부정을 선언하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 신조를 고백하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임을 자임하는 사람은 궁극자 초월자 전능자 등등의, 인간에 대한 타자성을 통해 신상을 표상하려는 욕망까지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탈권력적 실천을 통해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한 신[각주:1]인 야훼의 신상이, 후속의 역사 속에서 유다교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에서도 권력의 얼굴로 표상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전화(canonization)는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파생된 성서의 권력화된 얼굴에 다름 아니다. 또한 직제화도 이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 권력화된 존경의 메커니즘이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역사는 권력을 지향한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의 형성사에 다름 아니다.[각주:2] 요컨대 그리스도교 신앙은 탈종교적 신앙의 형성 운동, 즉 권력과 결탁한 종교적 지식의 균열을 폭로함으로써 해방적 지향성을 내재화하려는 신앙적/신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는, 과연 저렇게 생각하고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여전히 유의미할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던 모양이다. 이런 질문을 갖기 위해서 대단한 통찰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질문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이른바 그리스도교 정통 사상의 범주 내부로 포함될만한 신상들까지도 부정한다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사이의 이분법이 교란된다.

어떤 담론 공동체가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은 통상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경계(boundary)를 명료화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다. 유다교와 자신을 구분하고, 무수한 이교들과 구분하고, 이단들과 구분함으로써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각주:3] 외부의 존재들과의 다양한 차이들을 절대화하고 관계성을 폐절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타자들, 즉 구원담론 외부의 존재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주후 1세기 팔레스틴에서의 예수님의 실천이 동시대 유다교의 배제주의적 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음에도, 주후 4세기에 이르면 이미 강력한 반민중적인 배제주의적 담론으로 그리스도교는 그 위상을 확고하게 정착시키게 되었던 것이다.[각주:4]

이렇게 종교적 경계를 해체하려 든다면, 결국 그리스도교는 존립할 의의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그는 묻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대망하는 주체들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부정되어야 할 것에 불과한 것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신앙 운운하느냐는 것이다. 그냥 사회운동가혹은 이론가라고 하지 왜 굳이 신학자혹은 민중신학자라고 주장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가령,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소멸로 귀결된다고 주장했음에도, 동구권과 서구권의 무수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심지어 마르크스 자신까지도, 공산주의적/민주주의적 실천의 무대로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것을 보라. 이것은 원론적인 규범적 이해 및 그러한 반국가론적 지향으로 역사적 실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없었던 이론의 위기와 관련된다. 이런 점에서 완전한이론이 구축되지 않는 한, 양자는 모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보적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회라는 제도적 실재를 반그리스도적인 것이라고 규범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과,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현실태로서의 교회의 유의미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모순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리적인 규범성과 그것의 현실적인 실행은 종종 상보적인 실천의 패러독스를 담고 있는 것이다.

 

2

 

이제까지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고자 기를 썼다. 그러나 질문이 다분히 공세적이고 실랄한 데 비해 대답은 너무 소박하고 우회적이라고 누군가 불평을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공격할 차례다.

그의 질문 취지를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그리스도교를 해체하려 함에도 당신은 왜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느냐?’는 것이다. 해체라고? 물론 이런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어떤 점에서 동의하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나의 해체론의 배경에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적 정체성의 형성 및 발전 과정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스스로를 사회의 다른 범주들로부터 근본적으로 타자화하려는 자의식과 결부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즉 종교는 사회의 다른 범주들과 필연적인 연계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그리스도교적 인식론, 바로 이것을 문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내겐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본받는진정한 도를 회복하는 첩경이었는데, 질문자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은 그것이 너무 과도한 비판이어서, 그리스도교 자체를 해체하려는 것이라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이때 그가/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교는 무엇인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역사적으로 현존하는 종교적 체제를 가리킨다. 요컨대, 이 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곧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신앙에 가하는 위협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며,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 체제가 무너진다면 신앙도 끝장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체제를 개혁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으나, ‘그것을 넘어서는 것운운하는 것은 안될 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개혁그것을 넘어서는 것간을 구분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준거는 그리스도교 당국이 허용할 만한 비판인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원칙적으로 자기 갱신을 원치 않는 이들에게 개혁의 내용과 실행의 전권을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종교 체제는 역사 속에서 하나의 권력 불럭으로 실재해 왔고, 그 성쇠는 권력을 행사할 능력, 즉 세계의 다양한 자원을 전유할 능력의 정도에 따른 결과였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그에게, 아니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방식, 즉 힘의 논리, 맘몬의 논리에 의존하여야만 교회와 그리스도교가 존속하며 성공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도대체 당신은 왜 굳이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선택해야 하느냐?”, 라고.

주류적 그리스도교의 언술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존재론적 타자론을 담고 있다. 첫째는 신이 인간의 타자적 존재라는 이분법이다. 물론 이 타자론이 신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는 신과 인간 사이의 어떠한 접점도 없다는 것이 강조된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신의 육화(incarnation/bodification)가 실현되었다는 신학적 수사는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따른 것임을 부각시킨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과 인간 사이에 비로소 접점이 놓이게 되었는데, 그것은 신의 은총의 귀결이지 인간의 행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언술은 행업주의(行業主義)[각주:5]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함축되어 있는 신학적 레토릭이다. 그래서 이것은 1930~40년대 일단의 독일 신학자들에겐 진보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에 몰입되어 있던 나치즘을 비판하는 유용한 신학적 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언술은 인간을 성숙한 사유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유형의 파시즘적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담론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자신의 운명을 위탁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권력, 성직자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담론적 기초였다. 그러므로 신학은 인간의 타당한 행태에 관한 윤리를 다룰 필요가 없게 된다.[각주:6]

둘째, 인간에 대한 인간의 타자성 주장이 있다. 그리스도교적 언술에서 이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점은 교회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존재론적 실재라고 가정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세속적 세계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다는 함의를 갖는다. 교회가 윤리적으로 어떠한 처신을 해 왔든 간에 말이다. 이러한 논변은 교회 외부의 인간 세계에 대한 논의를 동반해야 할 필연성으로부터 신학을 격리시킨다. 즉 신학은 세계와 인간을 향한 윤리를 구성해야 하는 의무감을 떨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혹 세계와 인간에 대한 윤리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를 경유한, 즉 교회의 통제/관리 아래 있는 세계와 인간에 한정된다. 이른바 교회 중심주의인 것이다.[각주:7] 이것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상반된 사회윤리적 태도로서 구체화된다. 교회가 세계의 관리자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을 경우엔 역사에 대한 개입주의를 강하게 표방해 왔던 반면, 교회가 세속권력을 통제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엔 탈역사주의를 지향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류적 그리스도교의 언술 속에는 인간의 비인간적 실체에 대한 타자성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가령, 우주의 모든 것 속에 깃든 생명력을 강조하는 정령신앙(animism)에 적대하는 언술로서 유일신 신앙이 도용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각주:8] 이것은 비인간적 혹은 준인간적 존재라고 여겼던 신분(노예), 인종적, 성적 타자들에 대한 배타주의를 정당화했고, 동식물을 포함한 생태환경 자체에 대한 정복주의 담론과 접맥되기도 했다.[각주:9] 교회가, 교회의 담론이 인류 문명사의 생태환경에 대한 착취와는 무관한 듯 빈 허공을 바라보는 하고 있을 때조차도.

주류적 신학 속에 함축된 이와 같은 존재론적 타자론은, 정교분리가 확립된 근대 이후에는 세속적 역사에 대한 신앙적신학적 언술의 반개입주의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렇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조를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들, 이른바 그리스도교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마치 신앙의 본분과는 분리된, 부가적인 문제인 양 생각하곤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의 해체론에서 탈신앙의 위험을 느꼈던 것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교식의 기억의 재현술이 관여되어 있다. 제의신상(종교) 건조물 등이 그러한 역할에서 혁혁한 공로를 거둔 노하우들이다. 그리고 소위 신학이라는 전문가적 담론들이 이러한 노하우들의 경험을 이론적으로 변증하고 일반화보편화하는 소임을 다해 왔다. 그리하여 이러한 기억의 재현술들은 그리스도교적 사유의 규칙성을 부여했으며, 이런 사유를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와 연계시킴으로써 이해집단 간의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한다. 결국 그리스도교 체제는 종교문화, 교회, 신학 등이 복합적으로 엮어진 제도적 실재(institutionalized reality)로서 존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제도화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신학하기(doing theology)는 종교문화, 교회, 신학 일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어야 한다.

그러니 결국 나의 해체론은 그리스도교 자체를 문제시하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길게 이야기한 데서 드러나듯이, 그 비판의 핵심은 종교의 해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른 범주들과의 필연적인 연계성을 회복하는 신앙적/신학적 체계로서의 종교의 재정립에 있다. 그리해야만 그리스도적 신앙/신학은 비로소 인간의 문명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며, 그 안에서 문명에 대한 비판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신이 인간 문명에 대해 비평하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다른 방식이 아닌 육화의 길(the way of incarnation/bodification)을 택한 것처럼. 그러므로 이를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그리스도교적 제도화의 경로 자체를 문제시해야 하며, 그 귀결로서 형성된 제도적 실재인 종교문화, 교회, 신학 자체를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반신학/탈신학으로서의 신학하기의 급진적 실천이 요청된다.[각주:10] 바로 이러한 신학하기의 한국적인 한 유형으로 민중신학(mingung theology)이 탄생하였다.

 

3

 

민중신학은 역사의 전개를 위기의 관점에서 본다. 이때 위기는 배제-박탈의 메커니즘의 독특성에서 시공간적인 구체성을 띤다. 그런데 주류 신학들[각주:11]은 이러한 위기를 적절하게 비판하는 논리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왜냐하면 주류적 신학들은 주객 이원론의 시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령, 예수님의 말씀과 행태를 물을 때, 주류적 신학들은 예수님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언제나 예수님은 였고, 주변의 대중은 ’, 즉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인 것이다. 예수님이 절대 불변의 진리라면, 그 주변의 대중은 이 절대적 진리성의 내용에 개입할 어떠한 가능성도 갖지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리스도교적 사고에서 텍스트-컨텍스트의 이분법으로 이어진다. 즉 이미 형성된 진리성은 텍스트이며,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은 컨텍스트다. 여기서 진리는 매우 권위적으로 상황을 정복한다. 이것은 세계 속에서 지배세력의 식민주의 전략과 병행한다. 즉 신학적/신앙적 지식은 권력과 연계되어 세계 곳곳에서 배제-박탈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반신학/탈신학의 신학하기를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말하는 위기는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로 몰려들지 않고 여가를 즐기게 되었다든가, 그리스도교 인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든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배제-박탈의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세계를 보는 예언자의 애상(哀喪)스런 시선, 그 눈동자 속에 투영된 세계, 세계인식을 시사한다. 이런 현실을 보며 민중신학은 참을 수 없어 세계의 변혁에 뛰어든다. 지금 여기의 우리의 위기에 대한 신학이론적 개입이 바로 민중신학인 것이다.[각주:12]

민중신학은 박탈당하고 배제당한 사람들의 고난의 현실을 본다. 그리고 그것을 고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배제-박탈의 메커니즘은 종종 은폐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의 자리는 이러한 은폐된 고난의 구조에 대해 신학적인 비판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과제를 민중신학은 증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러한 증언의 공간을 민중 현장(Minjung-locale)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배제-박탈의 구조가 배태한 고난이, 고난의 체험이 들어 있으며, 그러한 고난으로부터 발원한 아벨의 곡소리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동시에 고난의 구조를 넘어서려는 대중의 염원과 이 염원의 구체화, 즉 자유를 향한 해방의 실천이 담겨 있다.[각주:13] 이러한 민중 현장에 참여하는 민중신학자의 담론적 실천을 우리는 증언의 수사학이라 말한다.

증언의 수사학은 예수님의 민중 현장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수님과 그 주변의 대중이 함께 사건을 일으킨다.’ 여기서 사건은 신의 구원 사건이다. 그런데 이때 구원의 행위 주체는 예수님만이 아니다. 즉 신의 독백적 행동에 의해 구원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사건은 예수님과 그 주변의 대중이 더불어 일으킨 사건인 것이다. 민중신학은 사건 속에서 결합한 예수님과 대중을 민중이라 부른다. 즉 고난의 구조와 해방의 실천이 합류할 때, 그 행위자들을 가리켜 민중신학은 민중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중은 고난의 담지자이자 역사의 주체인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이 말이 고난의 담지자=역사의 주체라는 등식으로 표현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난의 담지자는 곧 역사의 주체라는 구조결정론적 주장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결정론적 민중론은 민중이 누구인가?’ 라고 끊임없이 묻는다. 그의 직업은?, 그의 교육수준은?, 그의 자산상태는?, 그의 소득수준은?, 그의 신분 상승 가능성은? , 숨가쁘게 계속되는 질문들을 통해서. 그런데 과연 어디가 민중과 비민중을 가르는 보편타당한 경계선인가? 나아가 민중을 판별하는 이러한 여러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으며 어떠한 요소가 항구적인규정적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 과정은 변화무쌍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사유의 지리한 연쇄를 유보시키는 지점, 즉 다른 모든 요소들이 그것의 파생에 불과하다는 공리적인 개념을 안주시키는 피안의 공간을 전제한다. ‘완전한개념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것은 공리적 개념의 폭력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결국 이런 류의 민중론은 이론적으로는 아무 것도 대답할 수 없거나, 권력이라는 유전자를 담지한 개념화/이론화의 전제군주적 옹립을 통해서만 답변이 가능하다.

여러 분야의 민중론과 마찬가지로 민중신학도 이런 류의 민중론에 의존하곤 했다. 여기서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민중 개념에 관한 이론의 한계는 민중신학을 이론화하는 데 지속적으로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즉 민중신학은 이론화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다분히 수세적으로 이런 시도에 대한 일반적인 거부감을 표현하곤 했던 것이다.[각주:14] 급기야는 어떤 논객()에 의해서 민중신학의 위기론이 거론될 때, 이론적 발전의 가능성을 내포한 중요한 민중신학적 수사들, 가령 해석학적 언명으로서의 민중의 눈개념이나, 실천 주체의 문제를 구원론적 언명으로 신학화한 민중 메시아론등이 위기의 원흉으로 비판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위기론은 기실 실천의 관점에서 이론화하는 것에 대한 몰이해의 소산일 뿐이다.[각주:15]

반면 고난의 구조행위자로서의 역사의 주체의 문제를 상호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민중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제기되는데, 이것은 민중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물음과 관련된다. 다시 말하면 배제-박탈의 구조 속에서 고난의 담지자가 역사의 주체로 전화되는 과정에 관한 발생론적 접근으로서의 민중론이 대두한 것이다.[각주:16] 이것은 고난의 구조가 자동적으로 역사의 주체를 형성하지는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어떻게역사 주체로서의 민중(연합)이 형성되는가? 결국 이 어떻게의 물음에 접근하기 위해서 민중 형성 과정에 유의미한제도화의 문제가 주목된다. , 기존의 제도들이 배제주의적 암호들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것들을 해독하여, 그 민중 형성의 장애적 요소들을 폭로/비판하며, 나아가 민중 형성에 유의미한 대안적인 제도들을 모색하는 과정이 곧 민중론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제도(institutions)는 구조와 행위자의 상호관계를 매개하는 유형무형의 사회적 장치들을 말한다.[각주:17] 그것은 규칙성/반복성을 통해 행위자의 선택의 폭을 제약하는 동시에, 규칙성/반복성의 변형[각주:18]을 통해 행위자에 의한 구조의 변형/재구성을 실현한다. 이때 민중 현장은 민중 형성에 유의미한 재도화를 이룩하려 투쟁하는 실천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렇게 민중론을 구성함으로써 민중신학은 실천이론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민중신학이 민중론 일반과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굳이 구별해야 한다면, 위기구조에 대한 민중신학의 개입이 신학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학적이라는 것은 어떤 특성을 갖는가? 나는 신학적인 것과 비신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명료한 경계를 개념화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체험 속에 그 경계는 실존한다. 요컨대 민중 개념과 마찬가지로, 신학도 초역사적 범주화보다는 역사적개념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이라는 것은 시공간적인 차이에 의해 제도들 간의 차이가 노정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또한 역사적이라는 말 속에는 상이한 제도들 간의 차이가 시공간적 연계[각주:19]를 매개로 해서 서로 연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전통, 즉 선행하는 그리스도교의 제도들이 민중신학적 신학하기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 성찰의 과정이 선행 제도들의 재해석 과정을 경유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설사 선행했던 제도들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탈신학/반신학의 기치를 내걸 때조차도 민중신학의 텍스트는 선행했던 그리스도교 제도들인 것이다. 이때 유념해야 할 것은 탈신학/반신학의 프로그램은 텍스트에 함의된 절대불변적 진리성 주장을 해체한다는 사실이다.[각주:20]

탈신학/반신학적 프로그램의 세례를 받으며 재해석된 관점에 따르면, 텍스트는 컨텍스트를 임의로 선별하지 않는다. 오히려 컨텍스트는 예측할 수 없이 다가온다.[각주:21] 또 텍스트는 이렇게 다가온 컨텍스트의 의미를 마음대로 규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텍스트는 컨텍스트들이 유영(遊泳)하는 의미 가능성의 바다 속에 내던져져 그 속에서 자유롭게/우연적으로 상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의미 형성에 영향사적 개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때 컨텍스트는 지금 여기에서의 그리스도교 내부의 유형무형의 제도들일 수도 있고, 그 외부의 것일 수도 있다. 즉 신학적 개입이라는 말은, 정교분리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속의 문제는 저들의 고민거리일 뿐이라는 주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민중신학은 교회 제도들의 비민중성을 비판하는 언어일 수도 있지만, (종교적 영역 외부의) 국가 혹은 지구적 차원, 심지어 일상의 권력을 문제시하는 비판담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민중신학적 사유는 그리스도교 전통을 비판의 준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신학적이다.

이와 같이 신학적 사유는 시공간적인 연계성을 통해 상호관련되는 유형무형의 그리스도교 제도들 간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행위자의 선택의 폭을 제약하는 구조와, 구조의 변혁을 창조적으로 실현하는 행위자 간의 상호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민중신학의 개념적 장치가 바로 사건(event)이다. 여기서 반민중적 제도화를 극복하고 민중적 제도화를 구현하려는 시공간적인 계보를 민중 사건(Minjung-event)이라고 명명한다. 즉 민중사건은 민중현장에서 벌어지는 민중 형성 과정의 시공간적인 네트워크와 관련된다. 이 점에서 민중신학의 원형적 사건은 예수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중사건과 비민중적 사건을 분류하는 근원적 준거를 민중신학은 예수사건에서 찾기 때문이다. 또한 민중 사건론은 예수사건이 교회적 사건으로 전화 발전되는 과정을 비평하는 과제를 수행한다. 나아가 민중사건론은 오늘날 예수사건이 무엇으로 재현되는지를 해석한다. 가령, “전태일이 예수다라는 민중신학의 입론적 주장은, 예수사건이 (날로 신도수가 배가되고 있던 교회의 이른바 부흥사건에서가 아니라) 전태일로 상징되는 1970년대 한국의 민중사건에서 결정적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선언하는 셈이다.

이와 같이 민중신학은 예수사건을 오늘 여기에서 재현함으로써 시대의 위기를 넘어서려는 고난과 해방의 수사학이다. 즉 억압적 구조가 은폐하고 있는 배제-박탈의 메커니즘을 폭로함으로써 그것의 균열을 야기하려 하는 신학 담론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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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 협약과 WTO의 설립을 전후로 하여, 민중신학 안팎에서는 글로벌 자본의 운동이 민감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의 위기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러한 변화가 미칠 파급은 대체로 비관적 기조 아래서 논의되었다.[각주:22] 아니나 다를까, 1997년 몰아친,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경제적 위기는,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는 전 세계적 공황의 위험성은 불안한 우리의 심사를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더욱이 그 속도와 정도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극렬하게 체감되었다. ‘민중의 시대는 갔고 바야흐로 시민의 시대가 도래했다, 국적없는 속류 시민사회론을 떠벌리던 논객들의 말문이 한 순간에 막혀버렸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상황에서 2백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장 잃은 사람들, 자본주의의 냉혹함에 의해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무수한 사람들의 의 이야기가 한반도 남쪽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전지구적 수준으로 일어나는 현상의 국지적 모습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대단한 희망의 전조라도 선사해 줄 양, 호들갑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실상 그것은 이 험악한 위기로부터의 생존비법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것이 호혜적이고 평등주의적이라기보다는 (적자생존식의) 개체주의적이고 가학적인 대안을 제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국가나 공동체에 의해 제약당하지 않는 인간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실상 무한경쟁의 경제적 논리 속에 국가/공동체에 매개되지 않는 개별화된 인간을 노출시키는 자유를 의미한다.[각주:23] 이것은 국가 제도 속에 어느 정도는 가미된 호혜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정신을 제거해 버리려는 추세와 맞물려 있다. 결국 경쟁력 있는 자에게는 천국을, 경쟁력 없는 자에게는 지옥을 선사하는 진리론이 우리 주위를 맴돌며 항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비판담론들은 몹시 어려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대안 이외에, 글로벌 자본의 공세를 빗겨갈 이렇다 할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보통신 기술의 고도화로 인해서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공세는 브라운관 등을 통해서 화상 기호의 모습으로 우리들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 아니 삶 내면의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자유자재로 가해지고 있다. 요컨대 오늘날의 자본은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재하다. 이러한 신적 존재와 싸움을 벌이기란 참으로 버겁다.

바로 그렇기에 이 싸움에 사제다운 자들의 개입이 진정 필요하다. 가나안을 지배하던 계급주의적 종교인 바알 신앙에 대항하여, 떠돌이 민중의 신 야훼가 도전장을 던진 것처럼, 오늘 우리는 자본이라는 전능자에게 도전장을 내민 해방자의 종교를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민중신학의 과제가 있으며, 민중신학 다운 비판의 내용이 전망되는 것이다.

  1. 야훼 신의 이미지가 최초로 형상화한 것은, 주전 13세기경 가나안 지역에서 형성된 부족동맹의 역사적 경험과 맞물려 있다. 즉 성읍국가의 경계 외부로 이탈하여 동부산악지대로 이주한 기층대중이 점차 씨족적․부족적인 연결망을 형성하게 되고,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부족동맹체로 결집하게 되는데, 이러한 연맹의 형성은 권력의 집중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제도화하는 형태로 실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탈권력적 연결망의 질을 압축적으로 실현하는 데 야훼신앙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야훼신앙의 형성사를 해석한 기념비적 저술은 N.K. Gottwald, The Tribes of Yahweh. A Sociology of the Religion of Liberated Israel, 1250~1050 B.C.E. (Maryknoll, NY.: Orbis, 1979)이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이스라엘의 사회적 정체성의 형성이 ‘어떤 혁명적 이행에 의한 의도된 과정의 소산’이라고 보았던 갓월드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임에도, 이 종족적 공동체의 형성이 어떤 지향성을 갖는다면, 그것은 권력 집중화에 대한 거부감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한편 이들의 갓월드 비판은 대체로 신멜더스주의적인 편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아직은 이러한 관점에서의 반비판이 거의 없음에도, 또 다시 비판적인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이들은 행위자의 선택을 과도하게 인구결정론적 시각에서 조명하려 한다. 내가 보기엔, 바로 이 점에서 행위자의 합리적 의도성을 강조한 갓월드의 견해와 그에 대한 비판자들의 신멜더스주의적 견해는 상호보완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본문으로]
  2. 이것은 교회의 발생 맥락과는 어느 만큼은 차별적이고 또 어느 만큼은 연속성을 지닌다. [본문으로]
  3.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서가 거꾸로다. 즉 그러한 구분을 통해 이른바 정통과 분리된 이단과 이교가 출현한다. [본문으로]
  4. 프렌드는 근대 이전기 그리스도교는 촌락 대중의 개종과 관련하여 크게 세 차례에 걸친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주후 3세기 경에는 촌락의 대중이 대대적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고, 4~5세기경에는 그리스도교 내의 이교적 집단으로 전화되었으며, 7~10세기에는 점차 이슬람교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촌락 대중의 종교적 선호의 변화 과정의 배후에는 그리스도교가 반민중적 종교로 전화되는 역사가 있다. W.H.C. Frend, 「종교와 사회변화」, 지동식 엮음, 󰡔로마제국과 기독교󰡕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3), 475~86. 또한 Alistair Kee, 󰡔콘스탄틴 대 그리스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참조. [본문으로]
  5. ‘행업주의’란 ‘은총주의’의 대극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자기 내적 태도와 행위를 통해 신앙적 의를 획득할 수 있다는 테서부터, 역사 내적 지양(종말론적 비약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을 통해서 하느님나라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신앙적/신학적 신념 체계를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이러한 신앙적/신학적 태도는 대체로 신과 인간 사이의 친화성을 강조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본문으로]
  6. 이 점에서 스피노자적 신 이해를 도입함으로써, 이와 같은 주류적 그리스도교의 타자론적 신론에 대한 가장 실랄하고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 Schubert M. Ogden, Christ without Myth (New York: Harper & Row, 1961)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서구 그리스도교가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교회 중심주의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평을 가한 사람 중의 하나는 한스 큉이다. H. Küng, 이홍근 옮김, 󰡔교회란 무엇인가󰡕 (왜관: 분도출판사, 1978) 참조. [본문으로]
  8. 구약성서에서 유일신 신앙(faith of monotheism)은 식민지시대 초기인 제2이사야에 이르러서 비로소 처음 나타난다(이사40,18~20; 41,6~7; 44,9~20; 45,20~21; 46,1~7). 이것은 바벨로니아 제국 말기 메소포타미아 중원 지역의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반체제적인 급진파 예언자의 창조신학에서 그 최초의 형태를 갖게 된다. M. C. Lind, "Monotheism, Power, and Justice: A Study in Isaiah 40~55", The Catholitic Biblical Quarterly 46 (1984), 432~46 참조. 제2이사야는 이 창조신학을, 이스라엘 신앙의 토대이자 구원신학의 요체인 출애굽신학과 결합함으로써 완결시킨다(51,10). 즉 그의 유일신론적 창조신학은 처음부터 해방적 에토스를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제2이사야의 유일신론적인 창조-구원신학은 정체성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이스라엘 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바빌로니아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맞서는 제2이사야의 대항 이데올로기로 등장한다. 따라서 유일신 신학의 출발점은 반권력 지향의 체제비판 담론이었지, 종교적 패권주의의 수단이 결코 아니었다. [본문으로]
  9. Dorothee Sölle, 󰡔사랑과 노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 참조. [본문으로]
  10. 죌레는 현대신학의 패러다임을 정통주의 자유주의 급진주의, 이 셋으로 대별하면서, 급진주의 패러다임의 정당성을 서구-남성 중심주의적 종교 제도를 근본적으로 폐절하지 못한 다른 유형의 신학의 어정쩡한 비평 자세와 관련시킨다. Dorothee Sölle, 서광선 옮김, 󰡔현대신학의 패러다임󰡕 (천안: 한국신연구소, 1993) 참조. [본문으로]
  11. 도대체 민중신학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주류적 신학’이라는 것의 정체가 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실 금세기 중반기를 풍미했던 신정통주의 이후, 주류적 신학 사조라고 내세울 만한 위치에 있는 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최근 신학의 경향은 교회의 교리보다는 학문 시장의 일반적 관행에 더욱 깊이 연루되어 있다. 그럼에도 민중신학은 오늘날 학문시장에서 주류적 위상을 장악하고 있는 여러 신학적 논의들의 대체적인 추세 역시 서구 패권주의적인 배제주의에 경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본문으로]
  12. 김진호, 「1990년대 이후의 변모하는 위기성과 민중신학의 새로운 지평」, ‘한국신학연구소 25주년 기념 심포지엄: 21세기 밀레니엄. 민중신학 대토론회 (1998.7.13~15)’ 발표 원고 (미간행). [본문으로]
  13. 민중신학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대두한 신학적 비판담론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특별히 문제시했던 민중 현장의 문제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 대한 비판담론들의 일반적 인식과 맞물려 있다. 한국의 근대화를 시기구분하자면, 1960~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로 분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민중신학의 전개도 이러한 시기구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민중신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른바 세대론적 시각은 차이와 연속성의 문제를 동시에 포착해야 한다. 이때, ‘차이’는 시대의 위기성에 대한 인식에 따라 노정된다. 반면 ‘연속성’의 문제는, 세대별 담론 간의 평면적 비교보다는, 이러한 차이 속에서 ‘저항의 계보학’을 코드화함으로써 밝혀질 수 있다. 김진호, 「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 문화정치학적 민중신학을 전망하며」, 󰡔시대와 민중신학󰡕 4 (1997), 6~29 참조. 이 글에서는 이러한 연속성을 전제하면서,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민중신학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본문으로]
  14. 그리하여 민중신학에서 ‘민중’이 활력을 가졌던 담론적 위상은 그것이 ‘詩語’로서 작동하고 있을 때뿐이었다. [본문으로]
  15. 왜냐하면 이론화는 실천의 저해요소가 되고 만다는 ‘이상한’ 믿음이 이들 ‘위기론자’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김진호, 「최근의 ‘민중신학 위기론’은 실천이론의 빈곤을 반영한다」, 󰡔이론󰡕 8 (1994 봄), 123~47 참조. [본문으로]
  16. 김진호,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 민중신학 민중론의 재검토」, 󰡔신학사상󰡕 80 (1993 봄), 21~47 참조. [본문으로]
  17. 제도 연구의 가장 고전적인 대상은 ‘정치제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행위들에 규칙성을 부여하는 다양한 유형․무형의 제도들까지도 연구의 영역으로 포괄한다. 가령, 제도 연구는 ‘학연’이라는 규칙적인 일상적 행위 패턴은 어떠한 사회적인 물리적 제도들(유형의 제도들)과 담론적인 제도들(무형의 제도들)을 통해서 행위자들의 선택을 규제하고 구조의 형성에 개입하는가를 묻는다. [본문으로]
  18. 가령, 혁명 이후 혁명주체세력에 의해 부과된 새로운 가치는 반복적 체험을 통해 구조의 변혁을 완수한다. [본문으로]
  19. 시공간은 ‘연속적’이다. 가령 1987년 한국의 시공간은 그에 선행하는 한국의 시공간을 전제로하며, 그에 후속되는 시공간의 전제가 된다. 물론 이러한 연계성은 단선적인 필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20. 신학 분과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선교학에서 텍스트-컨텍스트의 문제는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폴 히버트는 선교신학의 역사를 비상황화(non-contextualization), ‘상황화’(contextualization), 그리고 ‘비판적 상황화’(critical-contextualization)의 변증법적 자기 지양의 과정으로 그리고 있다. P. Hiebert, Anthropological Insights for Missionaries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5) 참조. 이것은 텍스트의 불변적 진리관이 컨텍스트에 용해되는 것을 막아보려는 텍스트주의적 이원론이 어떻게 여전히 진보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본문으로]
  21. 여기서 텍스트가 그리스도인의 전통이라면, 컨텍스트는 그가 삶 속에서 부딪치는 세계와 관련된다. 그는 새롭게 조우한 이 새로운 세계를, 텍스트를 경유하면서, 끊임없이 의미화한다. 이때 그가 만나는 세계는 그의 컨텍스트가 된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텍스트-컨텍스트의 문제는 관찰 시점에 따라 상호교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인간 존재의 의미의 생성에 있어 이 모든 것은 텍스트로서, 상호적 관계를 통해 의미를 발현한다. 이 점에서 민중신학은 텍스트-컨텍스트의 이원론적 도식보다는 ‘상호텍스트’라는 관점을 선호한다. 양권석, 「한국적 성서 읽기의 한 방법으로서 상호 텍스트적 성서 해석의 가능성」, 󰡔신학사상󰡕 101 (1998 여름) 참조. [본문으로]
  22. 아마도 여기에는 1990년대 비판담론 진영에 불어닥친 포스티즘적 사유에 동화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본문으로]
  23. 신자유주의적 자유론을 비판하고 있는 홍윤기, 「1990년대에 대한 역사철학적 성찰」, 󰡔현대사상󰡕 5 (1998여름), 56~89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