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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한국 근대성의 위기와 교회 그리고 탈신학적 전망

이 글은 한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창립기념심포지엄(2001 11 03)에서 발표한 것을 보완하고 주를 첨가하여 동 연구소가 발행한 [탈근대의 담론과 권력비판] (인문학총서 1, 2002)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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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성의 위기와 교회, 그리고 탈신학적 전망

 

 

 

 

 

 

언제부터인지 우리 시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탈근대라는 용어가 익숙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탈근대의 징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때로는 서구의 탈근대론의 번역에 치중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아직 우리는 탈근대의 개념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그것이 근대와 어떻게 다르고, 서구의 탈근대와는 어떤 유사성과 차별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뒷받침되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한편, 이러한 논점의 혼란은 근대를 논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구체적인 연구가 뒷받침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근대와 서양 근대가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유사한지에 대한 논의나, 한국 사회의 근대적 양상과 전근대적 양상, 그리고 탈근대적 양상이 어떻게 서로 연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매우 미약한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과 전망을 탈근대적 관점에서 다룬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개념상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근대와 탈근대에 관한 나의 입장을 잠정적으로라도 정의하고 시작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근대-탈근대를 시기구분의 단계론적 관점에서 보려는, 그리하여 탈근대를 근대의 시간적 이후의 차원으로 처리하려는 경향과 나의 입장을 차별화하려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의 한편에는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강조하는 근대주의적 입장이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탈근대주의가 있다.[각주:1] 이 두 견해는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데서 서로 반대되는 결론에 이르고 있지만, 단계론이라는 동일한 개념적 준거에 따라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근대주의적 입장은 한국 사회는 전근대적 요소가 충분히 극복되지 못한 채로 근대가 비자발적으로 이식되었다는 식민지적 근대성을 강조하면서, 근대의 온전한 구현을 추구하는 미완의 근대를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근대의 완성과 그 이후를 함축하는 탈근대론(시기 구분 개념으로서의 탈근대), 적어도 한국과 같은 식민지적 근대의 사회에는 보수주의의 한 변종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미완의 근대론은 탈근대론이 시기상조라고 보는 것이며, 이러한 비판은 탈근대가 근대와는 다른 범주의 시간적 이후의 차원으로 가정할 때만 유의미하다.[각주:2]

한편, 탈근대주의는 정보화나 지구화 등 후기 자본주의적 현상이 다양한 차이들의 다원적 절합articulation이라는 탈근대적 배치를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가 근대적 사회에서 탈근대적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각주:3]

물론 이 두 입장은 현재 우리의 사회가 근대 또는 탈근대성이라는 일의적 성격으로 규정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때로 근대와 탈근대 중 하나를 중심으로 보고, 다른 것을 부차적 범주로 본다는 전제 하에서 이중 극복의 과제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서로 일정한 수렴점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두 논의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양자의 관계가 거시적으로 미리 규정됨으로써, 그 상호성에 대한 우연적인 접속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단계론은 두 입장이 서로를 포용할 때조차도 다른 입장의 타당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론적 입지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근대-탈근대를 시기구분의 단계론적 관점과는 다른 차원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근대라는 용어 속에는 중심화/통합화의 메커니즘[각주:4]으로 삶을 주조하려는 경향에 대한 강조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비록 시대 범주로서의 전근대 사회도 형식상으로는 중심화 메커니즘을 향한 권력의 지향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그러한 중심화 장치에 얼마나 포섭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즉 전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규제하는 감시와 통제의 사회적기술적 제도화는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푸코나 기든스가 보여준 것처럼, 근대 사회는 사회 구성원 각자의 삶을 주조하는 데까지 이르는 중심화 장치들이 속속 개발되었던 것이다.[각주:5]

물론 근대에 대한 인식이 사회가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로 분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비롯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칸트는 과학적 인식도덕적 실천’, 그리고 미적 취향간의 이질성을 논함으로써 이러한 근대 사회의 경험적 분화를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근대 사회는 이러한 분화를 다시 하나로 통합하여 사유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진다.[각주:6] 이것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단적으로 표출되는 바, 그는 칸트의 근대적 인식간의 간격을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재통합하였던 것이다.[각주:7] 베버의 발견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러한 사유의 중심화/통합화 메커니즘은 칸트의 과학적 인식의 사회학적 번안 개념인 도구적 합리성이 다른 경험적 인식을 압도함으로써 사회적 현상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근대 사회의 중심화 장치의 제도적 핵심에는 민족국가자본주의적 세계경제가 있다. [각주:8]이것들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의 전략적 실천을 대표해온 제도적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된 작동 원리는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근대적 경험의 분화는 민족국가와 자본주의라는 제도적 장을 주요 무대로 도구적 합리성의 원리에 의해 재조직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의 중심화/통합화 메커니즘은, 그 반대급부로 주변화/일탈화된 존재를 만드는 장치, 타자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각주:9] 즉 근대는 중심-주변, 통합-일탈 같은 이항 대립적 질서관이 삶의 세계를 구성하는 체계와 필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유의 대상이 중심으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진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차별적으로 부여되는 규범적/실천적 장치가 필요하고, 그러한 가치가 마치 선험적인 것인 양 보이게 하는 인식론적 장치가 필요하며, 나아가 그러한 선험적 가치에 준거해서 아름다운 것조차 작위적으로 구성해내는 미학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실행되게 하는 제도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근대 담론에 대한 연구는 동시대의 규범과 인식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미학적 감수성에 대한 연구와 접맥되어야 하고, 또 동시대의 제도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다뤄져야만 한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서 중심/통합, 주변/배제의 공간적 경계를 실현하는 기술사회학 및 그러한 공간 재구성을 실현하는 정복의 담론에 관한 제국주의 연구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근대 사회는, 어느 때도 중심화 논리에 의한 완전한 통합을 이룩하지는 못했다. 지구화 현상이 근대의 급진화의 잠정적 귀결이라면,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위상을 향해 치닫는 근대의 신에 관한 신학이 바로 근대성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근대 자본주의적 세계 통합은 그것에 관한 믿음과는 달리 아직 불완전하며, 따라서 그러한 도구주의적 근대에 대한 저항은 담론과 실재간의 괴리가 존재하는 한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것은 거칠게 다음 세 가지로 유형화될 수 있다. 기존의 근대 메커니즘, 그 지식, 그 제도에 대하여 대안적인 근대counter-modern의 추구(새로운 근대의 지향)가 있고, 지배적인 근대의 메커니즘을 일상 속에서 부정/회피해보려는 반근대anti-modern의 추구(근대적 경험의 거부/근대적 경험으로부터의 퇴각)가 있으며, 또한 근대의 메커니즘 자체를 해체적으로 전유하려는 탈근대post-modern적인 추구가 있다. 이들 지배적 근대의 부정들은 종종 서로 얽히면서 역사 속에 그 궤적을 그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탈근대 논의의 위치를 설정할 수 있다.

탈근대를, 나는 근대의 시간적 이후라는 관점보다는 근대 부정의 한 양상으로, ‘근대성에 내재된 근대에 대한 비판을 극단화하는 태도로 본다. 탈근대는 근대 이후에 오는 다른 시대의 범주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가 사라져버리는 순간, 탈근대적 문제설정은 무의미해진다. 근대가 있으므로 탈근대는 존재하며, 근대가 더욱 강력하게 구축되면 될수록 그것의 해체를 추구하는 탈근대는 더욱 유의미한 담론으로 자리잡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근대와 탈근대는 서로를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필요로 하는 이율배반적 위치에 있다. 특히 근대의 부정으로서의 대안적 근대와 탈근대는 서로 그러하다. 지배적 근대의 메커니즘에 연계된 지식이 차이의 차별화를 구축한다면, 탈근대 담론은 차이가 극대화된 탈중심적인 실천을 통해 구체화된다. 하지만 탈근대의 논리는 끝없이 차이를 극대화하기 때문에 근대로부터의 퇴각/일탈의 양상을 띠곤 한다. 그것은 지배적 근대의 중심화 폭력에 대항하기에는 무력한 개체들만을 양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반근대적 주체는 서로 연대해야할 필요에 직면한다. 물론 그것은 평등한 연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연대는 재질서화 과정을 수반하며, 그 과정에서 타자들간의 차이는 다시 차등화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다시 차이를 부각시키는 정치가 필요하다. 요컨대 탈근대적 연대는 반근대적 차이화와 대안 근대적 통합화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2장에서 나는 한국 근대와 교회가 서로 어떻게 연계되어 왔는지를 묻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의 지배적 근대의 위기에 교회가 어떻게 관여되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 근대가 서구 근대의 위기를 보다 적나라하게, 파행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문제인식을 전제한다. 이 글의 제3장에서는 한국 근대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그리스도교의 실천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차이와 연대의 변증법을 통한 탈근대적 연대의 정치를 탈신학적 모색을 통해 다루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근대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위기 가능성을 내포한 메커니즘이다. 그러므로 근대의 서구 사회들은 위험을 타세계로 전가함으로써 제국주의적 면역의 장치들을 다양하게 구축하여 왔다.

한국 근대는 처음에는 의사서구로서의 일본,[각주:10] 그리고 나중엔 서구에 의해 식민화된(신식민지화된) 상태의 중심화 메커니즘으로 구축되었다. 따라서, 단순하게 말하면, 한국 근대가 직면한 위기는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1]이중적이라는 말 속에는 근대한국이 결합되면서 위기 가능성이 더욱 증폭되었다는 양적인 차원뿐 아니라, 질적으로 파행성을 띠게 되었다는 점도 내포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이중적 위기를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고 본다. 식민주의, 국가주의,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첫째로, 한국에서의 근대는 탈전통의 기조와 서구 모방의 기조가 결합된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서구에 의한 식민화를 경험했던 제3세계의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근대화가 탈서구화의 기조를 띠었던 것과 대조된다. [각주:12]그러하여 한국인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주의와 내면화된 식민주의가 결합된, 식민지적 분열증상인 무의식의 이중성double consciousness을 보다 강하게 띠게 되었다. [각주:13]그런 점에서 초기 교회의 조선 선교는 불가피하게 서구에 대한 선망 의식과 결합되어 있었다. 점차로 서양 출신 선교사들이 조선 선교의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그러한 무의식의 식민화는 한결 심화되었다. 이들 선교사들은 이미 1900년대 초부터 교권체제 중심의 교회 제도화를 추진해왔고, 1907백만구령운동에서 시작된 부흥운동 형태의 탈정치적 선교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화와 부흥운동이 대단히 성공적이었음에도 3.1운동 이전까지 교회의 모습은 선교사들의 생각대로 형성되지 만은 않았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들의 활동공간이 넓어지고,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운동이 보다 대중화됨에 따라, 교권체제와의 소모적인 갈등을 피할 수 없었던 그리스도교 운동권 인사들이 대거 교회로부터 이탈하는 현상이 초래되었다. [각주:14] 이러한 그리스도교 운동권의 이탈은 서구 교회의 반마르크스주의적 편향과 맞물리면서 더욱 강화된다. 여기에 선교사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몰인식 그리고 피선교지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그러한 양상의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서구에 대한 식민 의식은 독립 이후 미국에 대한 선망 의식으로 표현되며, 미국의 세계관을 통한 민족 의식과 세계 인식을 신앙의 이름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것은 미국의 대 한반도 전략과 맞물리며, 근본주의적인 반공주의 기조를 갖는 신앙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된 근본주의적 신앙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극편향과 쉽게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각주:15]

아무튼 노선을 달리하면서도 근본주의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독립 이후의 남북 지역에서 각각 근대화를 주도하게 되면서, 두 개의 독자적인 국가가 서로 극단적인 적대성을 띠면서도 서로의 내적 통합을 강화하는 양상으로 구축되었다.[각주:16]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민족 분단 상황은 미소의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성과 양 체제의 근본주의적 민족의식이 서로 연동되게 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서 전투적 반공주의와 친미적 선망의식을 신앙 속에 용해시킨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남한의 근대성을 지키는 주요한 수구세력의 하나가 되어왔다.[각주:17]

둘째로, 한국 근대는 강한 국가주의적 기획과 맞물려 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군부정권이 추진한 근대화 프로젝트는 국가주의적 발전동원 체제statist developmental mobilization regime를 구축하며 실행되었다.[각주:18] 이것은 무엇보다도 일제에 의해 구축된 일상화된 협력의 제도적 장치[각주:19]가 미군정 시대를 경유하면서 거의 그대로 승계되었던 데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각주:20] 이렇게 해서 과대 성장한 국가 기구와 과소 성장한 시민 사회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징을 이루게 되었으며, 여기에서 한국 근대화의 특징인 국가 주도의 발전 전략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일제의 협력자들과 군정 당국을 중개해준 주된 장본인이 바로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 근대성 형성에서 그리스도교의 부정적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국가주의적 근대화 기획은 강력한 성장지상주의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돌진적 근대화rush-to modernization[각주:21]라는, 오직 성장만을 위해 모든 가용 자원을 일사분란하게 조직통제하는 발전동원체제가 용이하게 작동되게 하기 위해, 국가는 전투적 반공주의 외에, 탈빈곤화와 탈전통화를 슬로건으로 내건다.

아무런 실질적 보장도 없이 농민은 도시로 불러들여졌다. 잘 살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꿈에 부픈 이농자들은 조상의 얼이 깃든 땅을 떠나 황무지 같은 도시 환경에 부딪치면서, 그 숱한 위험에 직면하면서, 존재의 대안적 안착지로 교회를 선택했다. 탈빈곤의 담론과 서구에 대한 선망 의식이 절묘하게 얽히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탈전통화에 공모한 이농민들에게 교회의 몰전통주의적 태도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 근대화 시기 교회의 유래 없는 성장은, 바로 대책 없이 도시로 동원된 이농자들을 교회가 대대적으로 회수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한국 교회의 신앙은 그리스도교의 승리주의triumphalism적 요소를 극대화한 형태였다. ‘승리주의, 단언하면, 서구의 제국주의적 신앙관에 기반한 것으로, ‘성취주의적 선교관이라고도 불리는 선교 중심적 팽창주의 신앙과 관련된다. 그 담론적 형식은 상징적 중심으로서의 하느님과 선민공동체로 이해되는 실제적 중심으로서의 교회를 한 편에 두고, 그 외부의 다른 한 편을 배제하는 양상을 지닌다. 이때 주변은 타자로 취급되어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타자화된 존재가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 존재 방식과의 단절 선언이 전제되며, 그리스도교의 제도적 전통에의 순종 선언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승리주의는 근본주의적 신앙과 안성마춤으로 서로 부합한다. 요컨대 근본주의 일색인 한국 교회는 한국 근대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승리주의적 신앙으로 재무장하였으며, 그것을 근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활발했던 서구에 비해 한결 강력하게 추구할 수 있었다.[각주:22]

이러한 승리주의 신앙 담론은 한국 근대의 성장 지상주의적인 돌진적 근대화 담론과 구조적 등가를 이룬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는 근대화를 위해 동원된 이농자 대중을 그러한 동원체제에 순응하게끔 하는 지배의 메커니즘으로 적합했다.

이러한 순응의 담론적 장치로서 그리스도교의 죄관념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각주:23] 인간 존재의 선험적 죄성에서 시작하는 죄론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출발점이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실존을 지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본주의적 신앙 일색인 한국 교회의 경우는 더욱 현저하다. 한국찬송가공회가 엮은 찬송집은 죄송가(罪頌歌/罪悚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압도적으로 를 강조하고 있고, 실제로 예배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도 죄를 소재로 한 것들이다. 또한 예배 설교를 위한 성서 구절 및 설교 내용도 죄를 소재로 한 것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약성서의 죄-구원 담론의 주된 특징은 죄의 상태에서 구원의 상태로의 존재 이전이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갈라3,27) 옷 입음이라는 용어는 보는 이(타자)의 시선을 가정한다. 그런데 죄의 옷이든 그리스도의 옷이든 간에, 입고 있는 자 자신은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다. 실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이는 모든 장벽을 뚫는 시선을 가진 존재, 즉 하느님뿐이다. 즉 보는 이는 전지적 타자인 셈이다. 이것은 죄가 실정법 위반의 범위를 넘어 정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인간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전지자의 시선 앞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의 죄성이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가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여기서 그리스도교 죄 담론의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는 역설적 존재가 도출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인 것이다.

여성주의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Laura Mulvey는 복장도착증transvestism 개념을 통해 여성이 남성 중심적 액션 영화를 통해 자신을 영화 주인공(남성)의 시선에 의해 감시당하는 자로 인식하는 성전환적 동일시가 그녀 자신의 쾌락의 체험과 맞물리며 나타난다는 점을 설명하였다.[각주:24]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죄 담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데, 즉 죄인이면서 의인이라는 존재 전환적 동일시가 그에게 구원의 희열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은 유대교의 바리사이적 율법 사상 속에 담겨있는 전통을 재해석한 것으로, 바울은 율법주의가 시선적 감시자의 역할을 함으로써(“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았으며―「갈라3,23) 율법에 매인 사람들로 하여금 유대주의적 제도에 순응하게 하는 시선의 장치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했고, 이에 그것을 해체하는 언술로서 그리스도의 옷 개념을 활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전통 속에서 이것은 다시 교회에 매인 사람들을 그리스도교 제도 속에 순응하게 하는 시선의 권력으로 자리잡아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보는 이’, 그 전지적 타자 앞에서의 삶의 수동성을 야기하는 신앙의 장치인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전지적 타자는 사람들에겐 결코 보이지 않는 존재, ‘절대적 타자이기 때문에, 그와 사람들 사이를 매개하는 중개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보는 이와 보여지는 이, 이들간의 극단적인 구별을 전제하는 이분법적 문제 설정의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현실의 권력이 보는 이의 시선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데서 나타난다. 파시즘과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 신앙관의 친화성이 여기에 있다. 교권 중심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적/통합적 메커니즘은 그 자체가 파시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리스도교 권력은 세속의 지배 권력과 제휴하면서, 신앙을 세속적 체제의 안보 논리의 하나로 전환시키곤 했다. 바로 여기에 권위주의적인 국가의 지배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게 하는 한국 교회의 보수주의적 신앙의 비밀이 있다.

그런데 한국 근대의 국가주의적 발전전략은 중심-주변의 이항 대립적 논리에 따른 차이의 차등화 체계가 파행적으로 작동되는 양상을 띠었지만, 그럼에도 국가의 공공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제약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비해 마지막으로 언급할 한국 근대의 자본주의적 요소는 공공성의 제약보다는 무한경쟁의 원리에 규제되는 시장 자유주의적 성격을 강조한다. 시장 자유주의란, 개인 간의 자유로운 교환 관계가 사적 이익 추구 동기로 이해되는 사회 체계를 함축한다.

1970년대까지의 국가의 과도한 시장 형성적 역할로 말미암아,[각주:25] 자본은 상품의 구매자보다는 조절자(국가)에 더욱 의존하는 관행이 생겨났고, 이는 국가의 특혜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일반 대중까지도 국가와의 공식비공식적 유착에 집착하는 경향을 낳았다. 그리하여 국가주의적 위상이 완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도 국가는 공공성보다는 사적 이익의 확대를 위해 마음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른바 공공성을 결여한 천민적 관행이 정착되었다.[각주:26] 그것은 그 체제의 주된 수혜자인 자본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나아가 범사회적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1980년대에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가르며 계층화된 주거지역이 나뉘게 된다. 이에 중산층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이른바 중산층 대형교회middle-class mega-church가 대두하게 된다.[각주:27] 이런 유형의 교회는, 피박탈 대중인 이농자 집단이 현실을 회피할 수 있게 하는 반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신화적 비전을 제공했던 과거의 교회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이 새로운 유형의 교회는 자본주의적 기재에 훨씬 유연하게 적응하고 있었고, 공격적인 선교 전략을 통해 사회의 보수주의적 문화의 수호자이자 포교자로서 지배연합에서의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성공한 몇몇 교회에 국한되지 않았다. 왜냐면 계층적으로 다른 지역에 입지한 교회들까지도 포함해서 대다수의 교회가 비록 규모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심리상으로는 중산층 대형교회를 신앙적 목표로서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유형의 교회의 주된 특징은 매우 합리주의적인 경쟁 원리가 구석구석에 스며있다는 점이다. 신앙은 세속 세계의 고단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안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고무시키는 일종의 처세술이 되었다. 다양한 종교적 활동은 더 이상 삶의 성찰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량적 지표에 의해 표준화되어, 보상의 체계로 작동하였다. 이제 신앙적 실행들 하나하나는 종교적 상징 권력을 사기 위한 일종의 화폐 거래의 일환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본주의적인 교환 관계를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로서 작동하였고, 일상 속에서는 신앙의 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각주:28] 결국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본주의적 시장을 일상에까지 확장하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상에서 나는 한국 근대의 위기를 세 가지 지점을 통해 조명해보았다. 여기서 뒤의 두 가지는 근대의 중심성 메커니즘이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간의 모순적 상관관계를 통해서 구현된다는 관점을 강력한 국가주의와 시장 자유주의라는 요소로 번역한 것이고, 여기에 한국 근대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식민성의 관점을 첨부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리가 본 한국 근대의 위기는 근대 속에 내재된 지배적 근대에 대한 비판의 극단화라는 관점에서의 탈근대론적 문제제기의 전제가 된다. 그리고 식민성의 문제제기는 탈근대론을 탈식민주의론과 연계시키려는 의도를 함축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국 근대와 연동되어 그 파행적 위기 상황을 심화시키는 주된 장본인이었던 한국 그리스도교에 대한 탈근대적 비판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그것은 민중신학자 서남동의 용어를 발전시킨 탈신학적 전망이라고 이름 붙이고자 한다.

우선 예수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면 예수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규범적 준거이기 때문이다.[각주:29]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주 초기부터 예수는 신의 육화로서 표상되었다는 점이다. 빔 밴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인간이 된 천사, 아니 천사였던 인간은 시공간적인 모든 장벽을 꿰뚫을 수 있는 전능한 관찰자가 아니라 사건의 일부가 되기를 열망했다. “누군가 나를 타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라고. 인간은 신처럼 자신을 초월하기를 열망하고, 신은 인간 사건의 일부가 되기를 열망한다. 바로 여기에 신의 육화 신앙이 자리한다. 그것은 신이나 인간의 개별적 초월이 아닌, 신과 인간이 더불어 자기 초월의 사건을 일으키는 관계론적 수사인 것이다.

이러한 신의 육화 신앙은 신성화된 신의 부정, 신의 자기 비하를 선언한다. 그것은 전지적 타자를 전제해온 진리담론의 폭력성에 대한 전복이다. 사람들의 자기 초월 가능성을 원천 봉쇄함으로써 그들이 죄의 감옥 아래 포박된 채보이지 않는 시선의 주체에게 자발적으로 순응하게 되는 신앙의 장치, 그 순종의 담론적 메커니즘을 신의 육화 신앙은 전복시킨다. 이제까지 중심화 논리를 구축해왔던 진리를, 진리에 관한 지식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의 육화로서의 예수 담론은 탈구조주의적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한 소종파 집단의 텍스트인 요한복음[각주:30], 예수의 입을 빌어 ‘46년간이나 건축되고 있는 성전을 무너뜨리고 대신 ‘3일 만에 지어질 새 성전을 이야기한다.(2,20~21) 이 전승에서 옛 성전은 유대인의 존재의 중심에 있는 진리체계를 상징한다. 나아가 그것은 유대인의 눈에 비추인 로마제국을 포함한 세계의 현재, 그리고 그 과거와 미래의 담론을 상징한다.[각주:31] 예수는 바로 그것을 해체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 예수가 지을 새 성전을 제시한다. 한데 여기서 주지할 것은 새 성전은 3일만에 지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부활한 예수의 몸을 뜻한다.[각주:32] 신의 육화라는 메시지의 부활이 선언되고 있는 것이다.

‘46년과 3의 대조는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옛 성전이 내포하고 있는 일체의 지식들, 과학들, 계산법들을, 그 일체를 모조리 전복시킨다. 요컨대 그것은 대안적 진리 체계의 구축 자체를 해체하는 발언이다. 그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진리와 당위는 더 이상 왕좌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나아가 다른 어떤 것이 그 대신 왕노릇하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계 공동체가 제시하는 육화된 신의 사건이란 일종의 기적이다. 모든 복음서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漁의 사건은 요한복음에서는 신의 기적 사건이 아니라 가장 작은 자에게서 출발한 나눔의 사건으로 각색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6) 제자들이 가진 적은 양의 음식을 부풀려 5천 명 이상의 사람이 먹게 됐다는 초자연적 기적 사건이 아니라, 가장 보잘 것 없는 노예 소년[각주:33]의 주머니에서 나온 음식이 계기가 되어서 모든 이가 자기 소유를 내놓아 함께 나누게 되었다는 사회적인 기적 사건임이 시사되고 있는 것이다.[각주:34] 이것이 요한복음이 말하는 육화된 신과 인간이 함께 일으키는 자기 초월의 사건이다.

한데 요한계 공동체는 그러한 사건을 ()의 사건으로 묘사한다. 무너진 성전 대신에 새로 지어질 예수의 몸, 예수 부활의 사건이란 바로 대중의 자기 초월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부활은 죽었다 살아난 예수의 몸을 보았다느니 그의 상처자국을 만졌다느니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느니 혹은 그가 잡은 생선으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느니 하는 전승된 말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자기 초월의 사건이라는 게다.

그런 점에서 요한복음영의 정치학은 유대교 회당 체제 내에서 주변화된 존재들, 가난하고 병들고 천한, 소외된 변두리 존재들이 더 이상 신으로부터 배제된 자가 아니라 신과 더불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주체 의식을 찾아내는 정체성의 정치, 유대주의 공동체의 욕구 속에 가려진 자신의 욕망을 찾아내는 차이의 정치였다. 한데 그것은 탈중심화된 주체들이 자신의 사적 이익의 확대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보고 세계를 보는 호혜성의 정치를 지향한다.

이것은 당시 급속하게 제도화되어 가는 유대교의 회당 체제와 그리스도교 교회 체제에 대한 비판의 소리였다. 교회는 유대교 회당의 모범을 따라, 교권화교리화직제화라는 제도적 틀을 구축해 가고 있었다. 이것은 애초에 구상했던 바울의 교회 모델의 계승인 동시에 그로부터의 이탈이기도 하다.

예수가 사라진 이후, 적어도 30년 이상이 시간이 흐른 뒤에, 아직 그리스도인은 성전-회당 체제가 함축하는 기존의 진리관을 대체할 대안적 진리 체계, 즉 그리스도의 몸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이때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은 다름 아니라 교회라고 말한다.(로마12,5; 고전12,12~27) 즉 교회는 육화된 신의 자기 초월의 사건을 구현하는 제도적 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존하지 않는 예수의 사건을 역사화하기 위해 바울은 그것을 위한 제도적 현장을 찾아냈던 것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온다. 종족도 다르고 계층도 다르며 성별도 다른 존재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간의 평등한 연결망을 구축하는 호혜적인 교회상을 제시한다. 제도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권위화는 사랑의 가부장제라는 에토스에 규제되어야 한다.[각주:35] 교회의 신앙은 사랑과 나눔과 섬김의 정신에 따라 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주의 몸인 교회는 서로 연대하는 공동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공동체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바울은 범세계적인 그리스도의 몸의 연결망을 모색했다.[각주:36] 요컨대 바울의 몸의 정치학은 해체의 정치를 넘어 제도화의 정치이며 사랑으로 차이를 봉합하는 연대의 정치인 것이다.

영의 정치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사건 속에 실천을 개체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위적인 진리관을 통해 차이를 차등화하는 중심화 메커니즘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다. 그러나 개체화된 비판은 전세계적 규모로 벌어지는 권력의 폭력, 특히 팍스-로마나에 대항할 수 없다. 팍스-로마나를 대체하는 팍스-크리스티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바울이 그것을 교회와 교회간의 연대로 보았던 것처럼, 그것은 몸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영의 정치와 몸의 정치의 변증법이 필요한 것이다.

한데 역사적 교회는 영을 억압하였다. 영의 정치를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하였고, 순화된 영만을 주변부로 포용하였다. 오늘날 주변부에서 일어나 새로운 중심을 형성할 기세로 확산되는 이른바 성령파 그리스도교는 영의 제도화이지 제도를 넘어서는 영의 정치가 아니다. 아무튼 교회가 영과의 변증법적 관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자기를 근원적으로 성찰할 신앙 내적 잠재력을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영이 부재한 교회의 변증론에서 출발했으며, 그것을 넘어서고자 할 때조차도 근원적인 자기 성찰을 시도하지 못해왔다.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 탓이리라. 그런 성찰적 잠재력의 부재 위에서 신학은 형성되었으며, 그래서 오늘날 신학은 교회의 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자기 진단을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영의 정치와 몸의 정치의 변증법을 지향하는 탈신학적 전망이 요청되는 것이다.

영과 몸의 변증법은 유기체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상호 긴장을 통한 연대이어야 한다. 그러한 연대의 계기는 양자가 공유하는 호혜성의 에토스로부터 나온다. 물론 그것은 교회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간의 문제이며, 나아가 호혜성을 상실한 전지구적인 위기에 대항하는 연대인 것이다.

인류에게 지배적인 근대는 국가주의와 시장 자유주의간의 변증법을 통한 중심화 메커니즘으로 구현되어왔다. 그것은 호혜성을 상실한 정치경제에 의해 구축된 배제 박탈의 체제와 일란성 쌍생아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탈신학적 전망은 근대에 대한 대안적 근대 프로그램이며, 또한 근대의 해체론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처럼 그러한 근대의 위기가 파행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탈신학의 문제제기는 더욱 절실하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승리주의에서 낯섦을 향한 욕망으로서의 신앙으로, 낮아짐의 미학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식민주의적 예속성은 우리 내면에 식민지적 영토를 만들어내려는 서구-백인-남성 중심적 신학들의 음모를 폭로하는 과제를 탈신학적 전망에 부여한다. 그러한 신학들은 교회의 성찰 담론의 역할을 수행할 때조차도 한국 근대의 위기와 대면하기보다는 서양 근대의 신학적 성찰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것은 신학적 성찰 작업 자체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의 생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서구신학으로부터 탈맥락화함과 아울러 우리의 삶 속에 재맥락화하는 탈신학적 모색이 필요하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제국주의적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전지구적인 탈근대적 연대의 담론을 모색해야할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각주:37].



  1. 유재건은 한국 지식사회에서 근대를 보는 세 유형의 관점을 제안하였다. 즉 아직 근대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미완의 근대’를 강조하는 견해를 ‘근대주의’적 입장, 이미 탈근대 시대에 돌입했음을 강조하는 ‘탈근대주의’적 입장, 그리고 지금의 근대를 극복하는 논리로서의 ‘탈근대 지향론’의 입장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좌담: 근대성의 재조명과 분단체제 극복의 길」, 󰡔창작과 비평󰡕 87 (1995 봄) 참조. 이중 ‘근대주의’나 ‘탈근대주의’는 근대-탈근대를 보는 단계론적 태도에 속한다. [본문으로]
  2. 임현진, 「사회과학에서의 근대성 논의―‘근대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역사문제 연구소 엮음,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비판󰡕 (역사비평사, 1996) 참조. 그런데 ‘미완의 근대’론은 하버마스의 미완의 근대론에서 착상한 것이기는 하되, 논점에 있어서는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이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하버마스는 근대의 자본주의적 경로가 비언어적인 화폐와 권력의 작동 영역인 ‘체제’를 특권화하여, 언어적인 의사소통의 영역인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며, 칸트가 말한 근대성의 세 가지 분화된 가치 영역 가운데 인식적-도구적 차원을 지나치게 특권화함으로써 서양의 근대가 ‘이성의 과다’가 아니라 ‘이성의 과소’로 특징지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하버마스, 󰡔소통행위 이론󰡕 (의암출판, 1995) 참조. 그러나 한국의 ‘미완의 근대’ 논의는 자본주의의 ‘정상적’ 발전조차도 식민성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계몽’을 포기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근대의 진보주의적 인식론을 문제시하는 문명비판적 차원을 갖고 있다면, 한국의 미완의 근대 논의는 여전히 ‘강한 고리’로서의 계몽(진보주의)을 견지한다. [본문으로]
  3. 김호기,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나남, 1999) 그리고 「좌담: 근대성의 재조명과 분단체제 극복의 길」에서 김호기의 발언 참조. 그는 현재 한국 사회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모순 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동시에 많은 측면에서 “근대적인 것들이 급속히 해체되어 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근대와 탈근대의 이중 과제를 논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근대와 탈근대를 이행의 차원에서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본문으로]
  4. 나는 다른 글에서 이것을 ‘친숙함의 체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중심화 메커니즘’과 ‘친숙함의 체계’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담은 다른 표현인데, 굳이 구분하자면 전자가 구조의 작동방식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근대적 주체의 욕망을 강조한 것이다. 김진호, 「‘낯섦을 향한 욕망’으로서의 신앙」, 󰡔반신학의 미소󰡕 (삼인, 2001) 참조. [본문으로]
  5.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 (강원대 출판부, 1993); ―,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1992); 안토니 기든스, 󰡔사적 유물론의 현대적 비판󰡕 (나남, 1991). 참조. [본문으로]
  6. 볼프강 벨쉬Wolfgang Welsch는 근대를 단적으로 요약하기를, “단일화와 보편화 그리고 총체화의 성향을 강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벨쉬,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모던 1󰡕 (책세상, 2001), 190. [본문으로]
  7. 최문규, 「다양성과 심미성: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학의 이해」, 󰡔문학이론과 현실 인식―낭만주의에서 해체론까지. 최문규 평론집󰡕 (문학동네, 2000), 357~61 참조. [본문으로]
  8. 이마무라 히토시, 󰡔근대성의 구조󰡕 (민음사, 1999), 51이하; 기든스, 위의 책, 특히 제8장 참조. [본문으로]
  9. 같은 책, 172~76. 같은 맥락에서 그는 ‘식인주의’라는 표현을 쓴다.(205) [본문으로]
  10. 근대화를 중심으로 하여 동양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일본의 ‘의사서구’로서의 자의식에 관하여는 강상중,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산, 1997) 참조. [본문으로]
  11. 김대환, 「돌진적 성장이 낳은 이중 위험사회」, 󰡔계간사상󰡕 (1998 가을). [본문으로]
  12. 양호민, 「한국 민족주의의 회고와 전망」, 진덕규 엮음, 󰡔한국의 민족주의󰡕 (현대사상사, 1976). [본문으로]
  13. 최정무, 「미국, 무의식의 식민화, 그리고 자기분열」, 󰡔당대비평󰡕 14 (2001 봄), 19. [본문으로]
  14. 장성만, 「‘근대문명’이라는 이름의 개신교」, 󰡔역사비평󰡕 46 (1999 봄), 261. [본문으로]
  15. 김상태,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 형성」, 󰡔역사비평󰡕 45 (1998 겨울); 최형묵, 「욕망과 배제의 구조로서의 기독교적 가치」, 󰡔당대비평󰡕 14 (2001 봄). [본문으로]
  16. 두 체제간의 이러한 적대적인 상호성은 많은 연구자들에게 여러 개념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 송두율은 두 체제간의 ‘상호 침투성’에 대해 언급하였고(「분단현실에의 인식론적 접근」, 󰡔역사는 끝났는가󰡕 <당대, 1995>, 141~44 참조), 임현진 등은 ‘결손국가’broken nation-state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하였으며(임현진・공유식・김병국, 「한국에서의 민족국가 형성과 국가건설: ‘결손국가론’ 서설」, 󰡔전환기 한국정치학의 새 지평󰡕 <나남, 1994>), 박명림은 ‘대쌍관계동학’interface dynamics과 ‘적대적 의존’antagonistic dependence의 개념을 통해(박명림, 「근대화 프로젝트와 한국 민족주의」,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비판󰡕 <역사비평사, ), 그리고 백낙청은 ‘분단체제론’으로 이를 논하였다(󰡔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 비평사, 1998>). [본문으로]
  17. 이것은 최근 한 언론인이 반공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표현으로 교회를 선동하고 있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조갑제, 「카인의 후예, 사탄의 제자, 거짓 선지자」, 󰡔월간조선󰡕 (2001.9). [본문으로]
  18. 조희연,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보수・자유・진보의 개방적 경쟁을 위하여󰡕 (당대, 1998), 64~67 참조. [본문으로]
  19. 일제에 의한 식민 지배에서 ‘협력’을 통한 지배의 일상화에 관하여는 윤해동, 「식민지 인식의 ‘회색지대’―일제하 ‘공공성’과 규율권력」, 󰡔당대비평󰡕 13 (2000 겨울), 145~46 참조. [본문으로]
  20. 브루스 커밍스, 󰡔한국 전쟁의 기원, 상󰡕 (청사, 1986), 제5장 참조. [본문으로]
  21. 한국 근대화를 설명하기 위해 ‘돌진적 근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Matin Hart-Landsberg, The Rush-To Developmental Economic Change and Political Struggle in South Korea (N.Y.: Monthly Review Press, 1993) 참조. [본문으로]
  22. 교회의 ‘승리주의’에 대하여는 김진호, 「한국 교회의 승리주의」, 󰡔우리 안의 파시즘󰡕 (삼인, 2000) 참조. [본문으로]
  23. 순응의 그리스도교적인 담론적 장치로서의 ‘죄’에 관한 이하의 논의는 김진호, 「‘죄론’과 교회의 시선의 권력」(󰡔반신학의 미소󰡕에 수록)에 의존한 것이다. [본문으로]
  24. 로라 멀비,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 윤난지 엮음,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눈빛, 1999); ―, “Afterthoughts on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inspired by King Vider's Dual in the Sun(1946)", Laura Mulvey (ed.), Visual and Other Pleasures (Basingsoke, 1989) 참조. [본문으로]
  25. 임혁백,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의 상관관계」, 󰡔시장・국가・민주주의―한국 민주화와 정치경제 이론󰡕 (나남, 1994), 314~22 참조. 그는 제5공화국에 이르면, 경제 정책이 시장 형성적 성격에서 ‘시장 순응적 성격’으로 이행하게 된다고 보고, 그것은 경제 자율화(또는 탈규제화) 정책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임현진・송호근은 그럼에도 1987년 이전의 국가 경제정책은 여전히 ‘시장 형성적 기재’를 강하게 나타냈다고 본다. 임현진・송호근, 「지연된 전환과 ‘시장’의 환상」, 최장집・임현진 엮음, 󰡔시민사회의 도전. 한국 민주화와 국가・자본・노동󰡕 (나남, 1993), 247. 그러나 이들도 1980년대초 한국, 브라질, 멕시코 등에서 나타난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이 시기가 전반적으로 국가로부터 시장 기능의 독자성이 강화되는 추세의 전환점이 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26. 백종국, 「한국의 국가, 시민사회, 그리고 지배연합의 변동―신중상주의적 지배연합에서 천민자본주의적 지배연합으로」,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엮음, 󰡔한국 정치 사회의 새 흐름󰡕 (나남, 1993), 157~65 참조. [본문으로]
  27. 서우석, 「중산층 대형교회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 󰡔한국사회학󰡕 28 (1994 여름). [본문으로]
  28. 강인철, 「종교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적 동조와 종교의 산업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2002년 1월 포럼 발표 원고) 참조. [본문으로]
  29. 최근 연구의 붐을 타고 있는 ‘역사의 예수’historical Jesus 논의는 현상으로서의 그리스도교 비판에 유용한 준거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김진호, 「‘탈교회적 주체’의 신앙을 향해―‘역사의 예수’ 담론의 정치성」, 󰡔반신학의 미소󰡕 참조. 한데 이 글에서는 ‘역사의 예수’ 연구보다는, 후속 예수 운동의 예수 해석의 두 유형을 통해 이 논의를 펴고자 한다. [본문으로]
  30. 「요한복음」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에 의하면, 1세기 말경 광범위하게 통합되어 가고 있던 유대교 공동체와 그리스도교 공동체 모두에 대해 비판적인 소공동체적 배경에서 이 텍스트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제롬 네이리Jerome H. Neyrey, S.J.는 메리 더글라스Mary Douglas의 ‘집단-결속 모델’group-grid model을 이용해서 ‘요한공동체’가 소수자적인 ‘약집단’-일탈적인 ‘저결속’의 공동체임을 입증하였다. 메리 더글라스, 󰡔순수와 위험󰡕 (현대미학사, 1997); Jerome H. Neyrey, S.J., An Ideology of Revolt. John's Christology in Social-Science Perspective (Philadelphia: Fortress, 1988) 참조. [본문으로]
  31. 「요한복음」은 일반적으로 성전을 가리키는 헬라어 히에론(ἱερον) 대신에 성전의 중심 구역, 또는 성역을 의미하는 나오스(ναος)를 사용한다. 이것은, 「요한복음」이 성전이 무너져 없어진 시대의 텍스트임을 감안하면, 유대인의 존재의 중심을 포괄적으로 함축하는 ‘유대주의’를 가리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던 ‘로마주의’로까지 확대해석할 수 있다. [본문으로]
  32. Neyrey, An Ideology of Revolt, 137・157・160. [본문으로]
  33. 파이다리온(παιδαριον)은 노예 소년 혹은 천박한 신분의 아이를 뜻한다. [본문으로]
  34. 여기서 또한 주목할 것은, 다른 복음서 텍스트에 나오는 아르토스(‘떡’, αρτος) 대신에 여기서는 제의용으로 쓰이는 떡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누추한 음식을 뜻하는 크리티노스 아르토스(‘보리떡’, κριθινος αρτος)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떡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존재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 자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6장 후반부의 떡에 때한 해석에서 성찬 예식에 대한 논의와 연계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이른바 사도권을 승계한 교회의 엘리트 중심의 예전에 대한 문제 제기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요한복음」은 사도의 중계를 통해 위로부터 나누어지는 상징적 예식이 아니라, ‘작은 자들’에게서 비롯된 공동식사가 진정한 성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35. ‘사랑의 가부장주의’Liebespatriarchalismus는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öltsch(1923)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사회 조직 원리를 가리키기 위해 처음 사용한 것인데, 최근 게르트 타이쎈Gred Theißen이 이를 보완 발전시켜 바울에게서 비롯된 ‘교회 윤리론’으로 재해석하였다. 게르트 타이쎈, 「고린토 교회의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 하나의 신학적 논쟁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안병무 엮음, 󰡔사회학적 성서해석󰡕 (한국신학연구소, 1983), 344. [본문으로]
  36. 바울 텍스트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에서 기념비적 저서인 󰡔바울의 목회와 도시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출판국, 1992)에서 저자 웨인 밐스Wayne A. Meeks는 바울에게서 교회들(에클레시아이, εκλησιαι)은 한 지역에 국한된 특정 교회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들”(「로마」 16,4),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로마」 16,16), 또는 “하느님의 교회들”(「고전」 11,16・22), 즉 온 지역에 흩어져 있으나 하느님, 그리스도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대해 있는 교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밐스는 바울 사상을 승계한 하나의 계보에 의해서 보다 명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에페소서」와 「골로사이서」는 아예 단수의 교회(εκλησια)라는 용어로서 모든 그리스도 교회 운동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188). [본문으로]
  37. 테오 순더마이어Theo Sundermeier는 민중신학적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탈근대적 연대를 ‘다원주의적 코이노니아(κοινονια)’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순더마이어, 「삶과 증언으로서의 코이노니아」, 󰡔신학사상󰡕 83 (1993 겨울). 또 재미 신학자인 민경석은 같은 맥락에서 ‘타자들의 연대성’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민경석, 「종교다원주의의 역학과 해방의 실천」, 󰡔신학사상󰡕 103 (1998 겨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