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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보는 교회적 성서 읽기의 가능성 - 김경호의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

김경호 목사의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 1[야훼 신앙의 맥]과 2권 [새 역사를 향한 순례]에 대한 서평으로 [기장회보] 487(2007 9)에 게재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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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보는 교회적 성서 읽기의 가능성

김경호의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

1야훼 신앙의 맥와 2새 역사를 향한 순례의 출간을 축하하며

 

 

 

 

1989, 네 명의 소장연구자가 만나 성서 교재를 위한 공동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작업은 순조롭지 못했다. 결국 두 번이나 실패하고, 세 번째 팀이 결성되고서야 작업은 완료될 수 있었다. 매월 2회씩 모여 꼬박 하룻밤을 지새우며 제법 치열한 토론을 벌이기가 만2, 두 권짜리 함께 읽는 성서 시리즈는 이렇게 태어났다.

김경호 목사를 만나게 된 것은 이 공동작업에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2년간 지속된 저 탄탄한 모임의 사실상의 리더였다. 특히 공동작업 중에 누구든 감정이 다치는 경우 그의 지도력은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작업이 안정된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그의 역할은 지대했다. 여기에 구약학 연구자로서 정보의 세밀함을 균형 있게 구사하는 능력이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시선을 강조하며 진행된 작업이어서 자칫 큰 패러다임에 치중한 나머지 세밀함을 놓칠 수 있었는데, 그의 특화된 능력은 그러한 난점을 보완하는 데 누구보다도 큰 공헌이 있다.

이번에 발행한 그의 저작 야훼 신앙의 맥새 역사를 향한 순례, 시작하는 말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두 권의 함께 ... 시리즈의 후속판이다. 실은 함께 ... 시리즈는 안병무 선생의 역사와 해석의 발간 10년째를 기리면서 새로운 상황 속에 성서를 재해석한 책으로 제작한 것이다. 1982년에 발간된 󰡔역사와 해석󰡕이 한국의 1970년대를 함축하며 1980년대를 선도하는 성서 안내서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듯이, 1992년에 발간된 함께 ... 시리즈1980년대적 민중운동을 반영하는 새로운 성서 읽기를 추구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서 안내서의 계보는 한국적 그리스도인(이 표현은 안병무 선생의 용어다. 더 얘기할 지면이 아니어서 그냥 표현만 인용한다)의 성서 이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함께 ... 시리즈는 시작부터 새로운 상황 속에서 그것을 계승하는 다른 작업을 향한 호출신호를 발신하고 있었다. 한데 안타깝게도 김경호 목사가 시작하는 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 계보는 너무 오랫동안 중단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공식 인쇄물로 출간된 형태는 아니었지만, 1990년대 이후를 담아내는 새로운 문제의식의 성서 안내 작업은 여러 곳에서 이미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었다. 각각의 모색마다 다른 강조점을 가지며 다중적으로 시도되었고, 최근엔 그 성과물이 속속 공식 출판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간행된 김경호 목사의 두 책은 특히 이러한 시도들 중 가장 돋보이는 성과물이다.

1993년 강남향린교회를 창립할 때 그는 민중신학적 지향의 교회를 표방했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을 담아내는 핵심적인 하나의 요소가 성서학당이었다. 매주 쉼 없이 계속된 강좌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입소문을 타고 널리 회자되었다. 곧 강좌는 2~3반으로 나누어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도 했다. 또한 수강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강좌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지대하였다. 같은 시기 비슷한 강좌를 하고 있던 내게도 그 불똥이 튀어서, 불가피하게 그와 비교되는 불행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남향린교회의 교인들은 거의 모두가 이 강좌를 통해 교인이 되었고, 그밖에도 많은 이들이 각자 자기가 속한 교회나 공동체에서 그의 강의를 통한 성서 공부와 신앙운동을 계속 이어가려 모색하곤 했다. 그리고 2004, 분가선교를 실행에 옮긴 그는 새로 창립한 들꽃향린교회에서 이 강좌를 계속하고 있다.

십여년간 쉼 없이 계속된 강좌를 통해 원고는 끊임없이 다듬어졌다. 이것은 이 책이 역사와 해석이나 함께 ... 시리즈를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김경호 목사라는 유능한 연구자이자 목회자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과의 10여 년 간의 부단한 대화를 통한 공동작업의 결실인 것이다. 추측컨대 그의 대화적인 목회적 자질이 그러한 공동작업을 가능케 했을 법하다. 하여 교회 현장의 감각이 살아 있는 책이라는 점, 바로 이 사실이 이 책이 갖는 가장 빛나는 특징이다.

흔히 기존의 교회의 성서 읽기는 교인들의 신앙적 자의식을 강화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외부의 타인/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키워갔다. 이러한 신앙 인식적 관행은 오늘날 그리스도교, 특히 한국적 그리스교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외부의 낮은 자, 저 타자화된 이들과의 연대성, 그러한 연대적 신앙을 강조하는 민중신학은 한국적 그리스도교의 성찰의 지점을 매우 적절하게 지적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데 그간 민중신학의 특징이자 문제점은 이러한 성찰이 교회를 쉽사리 포용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교회를 넘어서는 신앙적 실천의 감성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교회를 아우르는 실천을 유도하는 데 민중신학은 무능했다.

한데 김경호의 두 책은, 앞서 말했듯이, 바로 교회의 성서 공부 현장의 산물이다. 바로 그가 지향했던 민중신학에 기반한 교회, 즉 자기 중심적이고 타자에 대해 배타적이기보다는 타자와의 연대를 지향하는 교회, 그의 표현으로는 생명과 평화의 신앙을 찾아가는 교회, 이러한 교회에 적절한 성서 안내서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그의 생명과 평화의 개념은 자칫 타자성을 인간에 한정된 것으로 이해하는 인간 중심주의적 오해를 불식시킨다.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존재의 고귀함을 망각한 것, 그러한 인식론적 편견을 타자성이라고 그는 적절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성서 안내서는 전 9권이나 되는 방대한 기획을 갖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난 십여년 간의 교회의 성서 공부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원고는 매우 완성도 높게 다듬어져 있는 상태다. 이중 1~5권이 구약성서를 다루는 것이고, 6~9권은 신약성서에 관한 것이다. 만약 교회가 이 책들로 성서 공부를 한다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각각 40주씩, 80주 동안 진행하도록 계획된 것이다. 그 속엔 각 과마다 주제에 따라 관심을 환기시키는 미리 살펴보기가 있고, 내용에 대한 충실한 해설 부분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생각나누기라고 이름 붙은 대화나눔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각 장의 생각나누기에는 생각을 돕는 설교 원고가 덧붙여져 있다. 물론 모두 그가 교회에서 설교한 것 그대로다.

나는 김경호 목사로부터 그가 목회하는 작은 교회가 출판등록(평화나무)을 하여, 이 소중한 책을 모두 출간하겠다는 무모한계획을 들었다. 경제성에 대한 고려 때문에 내용에 대한 타협을 조금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해석된다. 한꺼번에 다 출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작은 교회가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여 먼저 두 권을 내었다. 그리고 약간의 수익이 발생한다면, 거기에 또 일부를 보태서 다른 책들을 내겠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2009년까지는 9권을 모두 간행하겠단다. 무모하리만큼 놀라운 계획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책으로 내겠다고 한 것은 이 소중한 작업을 자기들의 교회 내에서만 소비하는 것으로 남게 할 수 없다는 전체 교인의 뜻이 담겨 있다. 힘겹겠지만, 한국 그리스도교의 성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신앙의 공간을 확대하는 데 어떡해든 기여하겠다는 생각이리라. 과연 김경호가 목회하는 교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이 책들 중 이미 출간된 두 권을 검토할 수 있었다. 나의 개인적 취향에 따른 아쉬움이 있다면, 최신의 학문적 정보를 그리 많이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은 이 책에 담긴 학술적 노력이 한국 교회는 물론이고 신학교에서 다루는 것보다는 훨씬 현대적인 학문적 성과물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필경, 그가 교회적 감각을 너무 지나치게 앞서가는 학문적 요소를 알리기보다는 교인들과 소통하면서 생명과 평화를 나누는 신앙공동체를 꿈꾼 탓이겠다.

글 속에서 내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이 교회를 위한 섬세한 배려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흔히 한국교회들이 그렇듯이 성서에 관한 학문적 감수성의 결핍을 동반한 교회성이 아닌, 현대의 학문적 성과들과 성실하게 대화하면서도 교회적 신앙을 지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이 한국 그리스도인의 지적, 신앙적 성찰에 중요한 기여를 하리라고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