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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 집사의 복음

[한겨레신문](2011.11.3)의 '야!한국사회'에 실린 칼럼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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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집사의 복음




신문보급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가 그날따라 싱글벙글했다
.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무상급식을 받게 되었단다. 기껏해야 그 금액이 매월 오만 원 조금 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 소시민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는 서울의 한 중형교회의 집사다. 한데 담임목사에 대해 불만이 많다. 특히 설교가 맘에 들지 않았다. 지난 시장 선거 직전 주일에도 그랬다. 무상급식은 빨갱이들의 주장이라고 폭언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주보에 낙서를 한다. 목사의 말에 딴 척을 함으로써 그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행동이다. 주보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것을 보면서 목사는 자기 말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상상했다. 해서 예배 마치고 목사와 마주치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은혜 많이 받았다고 말할 것이지만, 속으론 은혜는 무슨 개뿔하며, 설교 시간에 딴 척을 한 자신의 행동에 통쾌해 할 것이다.

목사는 주님의 복음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는 말로 설교를 시작한다. 하지만 김 집사는 그 설교가 기쁜 소식을 준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매 설교마다 누군가를 향한 독설이 있었고, 언제나 그 저주의 대상에게 그자들은 빨갱이예요라고 말한다. 대학생 때 데모하다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형사가 손바닥으로 머리를 후려치며 너 이 자식, 빨갱이야?’라고 말했었다. 목사의 말에서 그는 번번이 그때가 악몽처럼 생각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독재타도니 민주화 하는 말이 생경해졌지만, 그래도 목사의 빨갱이운운하는 말에 맘 상하기는 여전했다.

새 시장은 첫 출근날에 무상급식 확대적용 결재를 했다. 신문보급소장이면서도 평소 신문을 안 보던 그가 신문에서 그 기사를 봤다. 실은 전날 저녁에 TV 뉴스로 들은 걸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새 소식을 들은 것처럼 신선했고 즐거웠다. 그는 그 아침에 주님의 복음을 받은 자가 되었다.

김 집사의 저항은 소심하다. 하지만 그런 소심한 저항을 하는 이는 김 집사만이 아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그 교회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만의 항의를 이미 시작했다. 그런데 그이들이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새 시장의 185억 원짜리 결재를 혹자들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한데 시민의 소소한 행복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재벌의 몇조원이나 되는 부당이익을 망국적 자본주의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한 보험회사 등기이사의 연봉은 31억 원이라고 한다. 보험사 등기이사들의 평균 연봉도 1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감이 오지 않지만 그 수준은 월가를 상회하는 정도라고 한다. 이 회사들이 최근 올리고 있는 실적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지만, 실적을 임직원들의 연봉과 성과급, 그리고 주주들의 배당금으로만 지출하는 것은 타당한가. 이들 보험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1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받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위해 기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또 국가는 특혜에도 불구하고 더 탐욕스런 경영방식만을 고집하는 기업들에게 사회적 공공성을 위해 기여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하지 않는가.

하여 185억 원으로 포퓰리즘을 우려하고 망국을 걱정하는 정치인들과 지도층이 소심한 김 집사에게 줄 수 있는 복음은 개뿔 같은 소리에 불과하다. 바로 그것이 소박한 시민들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의 주역으로 바꾸는 원인이다.

시민의 행복과는 상관없는 곳에 지출됐던 예산들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정부의 포퓰리즘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탐욕스런 이들이 아닌 소박한 이들이 느끼는 소소한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