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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신자유주의 악령의 쿠데타

[한겨레신문]의 '야!한국사회'에 실린 칼럼 원고.(20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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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악령의 쿠데타



다섯 번째. 18대국회에서 수행된 날치기의 횟수다. 미디어법, 4대강사업 예산, 한․미 FTA 비준 동의 등, 헤아려보니 하나하나가 난감한 사안들이다. 십년을 숙의해도 여간해서는 합의되기 어려운 사안들을, 무수한 협의들을 통해 양보하고 절충해야 가능한 것들을, 그나마 운 좋게도 주변 조건들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합의 될까 말까한 사안들을, MB 정권은 불과 몇 년 만에 다섯 번이나 원안을 고수하며 통과시켰다.
날치기로 인한 국회파행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하나의 사안들은 시민사회의 삶의 양식을 심하게 훼손시킬 수 있는 우려가 충분한 것들이다. 더욱이 그 각각은 파행적 부작용이 미치는 시공간의 범위가 폭넓다. 하여 반대견해들과 충분한 숙의를 거치며 조정을 거듭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단박에, 불과 몇분 만에 결정해버렸다. 다섯 번이나.
한데 이 모든 날치기 가운데 최고는 단연 한․미 FTA 비준 동의다. 그로 인한 파급력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우려가 충분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참여정부 때도 이 협약은 국내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가 빗발쳤다. 특히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비경제적인 수단을 무력화시킨다는 우려가 논란의 핵이었다.
당시 정부는 자동차 관련 사안들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으니, 그런 정도의 피해는 거둔 실익에 비해 적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MB정부는 미국의 재협상 압력에 굴복하여 그 실익을 상당부분 양도했다. 그래도 두 정부의 주장은 한결같다. 시장의 성공이 그 피해들의 상당부분을 상쇄시키고도 남는단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현 정부는 이른바 국회 끝장토론을 수행했고 생중계까지 했다. 하지만 소득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원안대로 고수해야 하는 전제조건에서 수행된 토론이 어떻게 합의를 낳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시장의 성공이 충분하다고 봐도 우려가 잠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문제다. 재벌기업들은 최근 단기간에 가장 비약적으로 성공한 이들에 속하지만 그 성공은 사회에 호혜적으로 반영되지 않았고, 독과점 현상만 심화시켰다. 심지어는 자기 식구에 대해서도 보호하려는 일말의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거의 모든 기업들은 노동의 비정규직화를 무차별적으로 추진했고, 결국 값싼 노동력을 과도한 노동 강도로 사용한다. OECD 최고의 자본무단통치의 사회다.
하여 우리 모두는 안다. 기업의 성공이 시민 개개인의 성공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위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한․미 FTA가 거둘 것이라는 직접적인 성공의 가능성은 거의 전적으로 대기업들에 치우쳐 있다. 그들은 그 성공으로 사회적 자원을 더 많이 장악할 것이고, 자기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들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다른 압박이 없다면 말이다.
그런데 한․미 FTA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의 자본이 시민사회에 기회를 더 많이 줄 거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하여 그들에게 국내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주었다. 자유로운 시장은 ‘착한 투자자’에게 유리하다는 신자유주의적 환상의 결과겠다. 하지만 1998년 이른바 IMF 재앙을 거치면서 무차별하게 유입시킨 외국자본은 그야말로 쓰레기들 같은 관행을 보였다. 시장은, 사회적 국가적 제약이 없을 때, 더 악독한 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창출한다. 결국 이번 날치기는 신자유주의 악령의 쿠데타였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별로 없다. 신자유주의의 꼭두각시인 이 정권이 붕괴되고, 차기 정부는 어떤 피해를 입더라도 이 비준을 무효화하거나 재협상하는 것 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