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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속신앙’은 이 사건에선 무죄다

이 글은 [경향신문]의 2016년 11월 12일자 '사유와 성찰' 코너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112058005&code=990100&s_code=ao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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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신앙은 이 사건에선 무죄다

 


201133, 사진 한 장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국가조찬기도회 때에 이명박 대통령이 바닥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아 소리를 내며 기도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그것이 시끄러웠던 이유는,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할 때 그의 기도가 국가 통치자로서의 판단력을 마비시킬까 하는 국민의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기도 자세에 비해 그의 모습이 자신의 신앙을 너무 표 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통령은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공통된 이해다. 대통령의 취임식 때에 성서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미국과는 종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다르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다종교사회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의 공직자는 모든 종교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며, 또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자도 그 신념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최근 동영상 하나가 논란의 무대에 올랐다. 국가안전처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박승주 씨가 지난 5월에 주관했던, 광화문에서 열린 한 행사에 관한 영상물이다. 그 행사의 이름은 국중대회(國中大會) 대한민국과 한()민족 구국천제 재현 문화행사. 이 행사에서 낭송된 하늘에게 발원하는 기도문에는 거룩하신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들이시여.”라고 우리사회의 여러 종교의 신들을 한꺼번에 호명하고 있다. 많은 매스미디어들을 이 장면을 수없이 보여주면서 이 행사를 광화문 굿판이라고 규정하며 비아냥댔다.

박승주 씨가 국가안전처 장관으로서 전문성이 있는지를 대부분의 매스미디어는 광화문 굿판이라는 말로 충분히 설명된다고 주장하는 듯이 보인다. 심지어는 그가 국민안전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굿판을 벌일 것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나 역시 그가 적합한 인사가 아니라는 데 공감한다. 내 검색능력으로는 안전 전문가로서의 그의 경력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화문 굿판을 적격 여부의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주관한 종교적 문화행사를 특정 종교에 귀속시키지 않게 구성했고, 또 한국인이라면 비종교인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행했다. 해서 그것은 특정 종교의 장소가 아닌, 시민의 공적 공간인 광화문에서 수행되기에 적합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으로서 여러 종교들과 비종교인들로 구성된 시민사회 전체를 대변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수행법을 과장되게 연기한 것과는 다르다.

필경 매스미디어들의 이런 부적절한 보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발언들 속에 들어있는, 무속을 연상시키는 종교적인 표현들과 오버랩되었기 때문이겠다. 사람들은 이런 표현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과 그녀의 아버지인 최태민에게 심신이 사로잡혀 있다는 증좌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아바타처럼 조종된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약과 오류가 겹쳐진 이해다. 최태민이 그리스도교와 불교와 천도교를 결합한 소종파의 창시자이고 또 심령술을 통한 병치유로 유명한 주술사였지만, 그가 박근혜와 긴밀한 공조관계에 있던 19년 중, 거의 대부분은 개신교 목사이자 개신교 주술가였다. 19753월에 그녀를 처음 만난 지 한 달 후에 그는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육영수 여사가 피살된 이후 칩거하고 있던 23세의 청년 박근혜는 목사 최태민이 주도하는 무수한 행사들과 사업에 적극 관여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들 가운데는 개신교 엘리트들이 특히 많았고 무속인은 거의 없다. 이런 활동과 인맥이 자양분이 되어 그녀는 정치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즉 최태민과의 만남으로 인해 형성된 박근혜의 이력에서 무속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가장 많은 행사에 참여한 것은 개신교 행사였고, 무수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그녀와 함께 했다. 그리고 최순실 또한 개신교 신자다.

그러므로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대통령의 어법이 이상한 것을 굳이 종교와 연계시킨다면, 무속이 아니라, 개신교적 주술신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일당 등과 함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온 잘못된 권력욕이 국정농단의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신교 엘리트들의 잘못된 종교관이 한몫했다. 하여 개신교 신학자로서 나는 나의 종교가 우리사회와 종교들에게 사과할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