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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정한 자유인 - 여성부의 호주제 폐지 발표에 즈음해서

[기독교영성신문](2002)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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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인

여성부의 호주제 폐지 발표에 즈음해서

 

 

 

 

627, 여성부가 호주제폐지 등, 성적 불평등의 요소를 담고 있는 가족법 개정을 2007년까지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호적제도는 호주 중심의 가상의 가족에 개인의 신원을 관련시키는 국민기록의 장치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활공동체인 소가족 공동체와는 다른, 호주 중심의 관념적인 가족 제도에 의거한 이 제도는 실제로 유명무실하다. 그래서 거주지별 국민등록제도라고 할 수 있는 주민등록제가 신분 등록의 장치인 호적의 상당부분까지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국가에 의한 개인의 관리 통제가 훨씬 수월한 전체주의적 요소를 띠게 되었다. 여기서 국가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호주제는, 그 자체로서는 유명무실하지만, 가족법의 대전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적지 않다. 이혼율이 크게 높아졌으며, 동거 등 제도 외부의 결혼이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고, 성별 출산의 임의적인 조절이 한결 용이해진 상황에서, 호주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의 수는 상당수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여성과 미성년자, 및 태아 등은 성차별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적 폭력에 더욱 크게 노출되었다. 게다가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 여자와 그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 이른바 혼혈아의 경우는 이 모든 배타주의적 차별에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된 존재들이다.

이 모든 것이 실재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호주제가 여전히 현실을 규정하는 결코 적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부가 호주제 폐지 추진의 의지를 명시적으로 표명한 것은 퍽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할 일은 아니다. 이제까지처럼 시민사회운동 단체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국가에 의한 민의 통제를 최소화한, 인권 침해의 우려가 크게 예방된 제도화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러한 호주제에 대한 그리스도교계의 소극적 내지 부정적 태도에 문제를 느낀다. 바울은 예수의 제자가 된 이후 유대의 남성 중심적인 혈통주의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유대인 대 이방인, 남자 대 여자, 자유인 대 노예라는 위계적 이분법이 해체된 공간을, 교회의 이상의 하나로 묘사하였다.(갈라3,26~29) 그는 유대인 못지 않게 많은 이방인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남자들 수만큼이나 되는 여자가 그리스도의 예전에 참여하고 있는 공동체에서, 그리고 자유인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노예들로 구성된 공동체에서 혈통주의적이고 성 차별주의적인, 그리고 계급 차별적인 관행의 제도를 여전히 주장하는 것은바울이 보기에 회당의 율법주의 바로 그러한 차별주의의 온상이었다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예시된 하느님의 뜻과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느님 자신이 그러한 일체의 차별의 벽을 넘어선 분임을 당신의 몸을 통해서 실천한 이였다. ‘하느님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조차 무너뜨렸다. 신이 인간이 됐다는 것은 신의 자기 부정이며, 차별적 신 이해의 해체가 아닌가. 아울러 의인과 죄인의 이분법도 무너졌고, 귀한 존재와 천한 존재를 차별적으로 가르는 분류법도 무너졌다. 일체의 차별적인 이해는 예수님 앞에서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예수님은 모든 굽은 현실, 주름져 굴곡이 쳐진 세상의 모든 관계를 매끄럽게 펴고자 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오늘 우리의 교회는 왜 그것을 말하지 않는가? 무모할지라도 나의 개인적 생각을 말해보자면, 하느님의 창조 세계를 진지하게 살펴보려는 자세가 이완된 탓에, 사회와 삶에 대한 무딘 감수성이 호주제의 반인권적 요소를 보는 눈을 흐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만약 내 가정이 맞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를 얻은 자가 아닌, 단지 관습의 노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