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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역사의 예수 다시보기_10 : 시로페니키아 출신 헬라 여인 이야기 - 이례적 지역협력자 2

역사의 예수 다시보기 열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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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페니키아 출신 헬라 여인 이야기

이례적 지역협력자 2

 

 

 

티레의 호리아

 

마가복음의 스토리 구성을 살펴보면 거라사 무덤터의 남자 이야기(5,1~20)부터 시로페니키아 여인 이야기(7,24~37) 사이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동선만 살펴보면 거라사 사건 이후 예수는 갈릴래아 호수 이편으로 건너와 나사렛 회당에 갔다가(6,1) 인근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닌다.(6,24) 그리고 저 유명한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난 어느 호숫가에서(6,34) 배를 타고 호수 북동 끝단의 벳세다()로 갔다가(6,45) 북서 끝단의 게네사렛으로 온다.(6,53) 이런 광폭의 숨 가쁜 행보에 이어서 예수는 페니키아의 티레(Τυρος. 튀로스)로 간다.(7,24)

 

예수님이 거기에서 일어나서 티레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셨는데, 그것을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숨길 수 없었다. (마가복음7,24)

 

티레는 페니키아 지역의 주요 도시국가 중 하나로, 시돈과 더불어 성서 속에 나오는 고대 이스라엘과 깊은 인연이 있는 나라다. 현대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80km 정도, 그리고 시돈에서는 남으로 40km 쯤에 있으며 고대이스라엘과 변경지대를 공유하고 있다.

티레 도심은 구도심(old city)와 신도심(new city)으로 나뉘는데, 신도심은 구도심에서 1km 정도 거리의 섬이다. 신도심은, 마치 대몽항쟁 때 강화도처럼, 아시리아와 바벨로니아의 침공을 피해 섬으로 왕실과 일부 시민이 도피해서 생겨난 것인데, 1km나 되는 바다가 일종의 해자(moat) 역할을 한 덕에 이 도시는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그 바다를 흙과 돌과 나무로 덮어버리는 일종의 간척 작업을 통해 기어이 정복했고, 이후 이 도시는 더 이상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되었다.

지중해 최고의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제해권을 쥐고자 했던 여러 강대국들에 의해 이 도시는 숱한 정복과 식민통치를 당했지만, 로마 식민치하이던 서기 1세기에는 시비타스 포에데라타(civitas foederata), 곧 최고의 자율권을 보장받은 자치도시로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무역에 있어서 알렉산드리아에 필적하는 대도시로 부상했고 지중해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서쪽의 최대 글로벌 허브도시였기에, 이곳으로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중국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또 이곳은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헬레니즘적 종교의례나 스포츠 축전, 그밖의 여러 축제들이 대대적으로 열렸고 학문적 교류도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하여 문화적 혼융(Cultural hybridization) 현상이 이 지역 사람들의 삶과 의식 속에 깊게 스며 있었다.

그런데 예수가 이곳으로 왔다. 마가복음의 표기에 따르면 에이스 타 호리아 튀루(εις τα ρια Τυρου)로 갔다. 직역하면 티레의 호리아로. 이것은 5,1거라사 지역으로이라는 표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늬앙스가 있다. 5,1지역코라(χωρα)를 번역한 것으로 도시에 속한 시골지역(countryside)이라는 함의를 갖는다. 반면 호리아는 영어의 프론티어(frontier), 변경에 가까운 표현이다. 이 단어는 티레와 이스라엘의 접경지대에 매우 잘 어울린다. 말했듯이 티레가 이스라엘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도시국가이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 두 국가는 그랬다. 그러니까 예수가 간 곳은 이스라엘의 북쪽과 티레의 남쪽 지대다. 다만 그곳을 티레의 호리아라고 한 것은 그 영역이 티레의 자치권이 더 강하게 작동하던 곳이었음을 시사한다.

예수가 그리로 갔다는 것은, 갈릴래아의 통치권을 갖고 있는 안티파스의 병사들이 계속 추격하기 어려운 곳으로 갔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실제로 예수는 거기서 은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안티파스의 추격자들에게 동선이 포착된 탓에 국경 지역, 티레의 주권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어느 마을에서 숨어지내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데 여기서 예수는 완벽히 은신할 수 없었다. 그곳에도 병자를 치유하고 악령을 쫓아낸다고 알려진 이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중에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더러운 영이 붙은 딸의 엄마다.(7,25)

 

헬라여인

 

그녀에 관한 정보가 더 있다. 7,26 전반부에는 이런 어구가 있다. 아래 표는 그것의 헬라어 구문과 직역한 영문 문장이다.

 

여기서 게네이(γενει)의 원형은 게노스(γενος). 영어의 ‘gen(e)-’의 어원이 되는 단어다. 그러니까 토 게네이는 인종적 뿌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토 게네이헬레니스에 연결될까 쉬로포이니키싸에 연결될까. 어디에 연결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우선 문장의 형태상 토 게네이는 바로 앞의 쉬로포이니키싸에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경우 그녀는 인종적으로 페니키아 사람(1)이다. 한데 이렇게 해석하면 헬레니스가 발목을 잡는다. 헬라 여인이라는 뜻의 이 단어가 일견 그녀의 혈통적 배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헬레니스는 헬렌(λλην) 혹은 헬레노스(λληνος)의 여성형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헬렌은 프로메테우스의 손자였는데, 그에게서 그리스 족속이 탄생했다. 이때 그리스 족속이란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고린도 등, 아카이아(Achaea) 지역의 도시국가들이 자리잡았던, 에게해와 이오니아해로 둘러싸인 발칸반도 남쪽의 땅에 살던 사람들이다. 해서 헬렌을 조상으로 하는 그리스 땅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헬렌이라고 불렀고, 그것의 남성형 어미가 붙은 단어인 헬레노스도 같은 의미로 쓰였다. 또 그리스 여성은 헬레니스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위의 성서 본문의 헬레니스는 아카이아 지역의 그리스 여인이라는 얘긴데, 그러려면 토 게네이는 어색하지만 문장상 멀리 떨어져 있는 헬레니스에 걸려야 한다. 이 어색함을 감안해서 여러 영어성서들은 토 게네이‘by birth’로 해석하여 시로페니키아에 연결시켰다. 여러 한글성서들도 비슷하게 보았다. 그러면 이 문장은 시로페니키아에서 태어난 헬라 (혈통의) 여인이 된다. 그것은 그녀의 선친 중 누군가가 페니키아로 이주했다는 얘기다.

한데 이렇게 해석하려면 ‘by race’ 혹은 ‘by origin’으로 번역되는 게 자연스러운 토 게네이‘by birth’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가 헬레니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수하는 한 그러하다. 하지만 헬렌, 헬레노스, 헬레니스는 아카이아 지역 사람에 국한시키기보다는 좀더 광역의 문화적 계층을 가리키는 단어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로스가 이 용어를 복잡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기원전 4세기 후반의 인물인 그는 그리스인들이 야만시했던 마케도니아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열렬한 헬레니즘의 신봉자였다. 해서 그는 정복한 방대한 영토를 느슨하게나마 통합하는 장치로 헬레니즘 문화를 활용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그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제국들의 시대가 도래하는데, 이 시기, 곧 기원전 3~1세기를 역사학은 아예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헬레니즘은 이 시기 지중해 지역 일대를 연결하는 일종의 보편적 문화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헬레니즘 제국들을 몰락시킨 로마제국 시대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여 헬라 사람이라는 표현은 발칸반도 남부의 종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좀더 흔하게는 일종의 보편주의적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지중해 지역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대중은 헬라어도 몰랐고 헬라문화로 자신을 포장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헬라 사람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헬레니즘 문화를 몸에 체현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 중에는 코스모폴리탄적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이들이 포함된다. 또한 고귀한 계층은 아니지만, 헬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헬라적 방식으로 많은 것을 해석하려는, 헬라적 도시 출신의 중간계층의 사람들도 헬라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또 비하의 용례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갈라디아서3,28에는 그런 용례가 반영되어 있다. 바울은 자신의 논적을 유대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일종의 원리주의적 이스라엘 지상주의자들(fundermental Israeli chauvinists)이다. 바울에 의하면 그들은 분리주의적 어법을 즐겨 사용했다. 자유인 대 노예, 남자 대 여자, 그리고 유대인 대 헬라인도 이런 어법의 일종이다. 바울은 이런 분리주의적 관념을 전복시키면서 하느님 안에서 그들 간의 차별은 전혀 근거 없다고 주장했다. 즉 이 구절에 시사된 유대인들은 헬라 사람이라는 것을, 타자를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각 지역의 토착문화에 과하게 밀착된 이들은 코스모폴리탄적 취향의 사람들을 타자화하면서 헬라 사람들(놈들)이라고 비난하곤 했으리라는 것이다.

한국어에서도 헬라 사람처럼 장소와 연결된 단어가 문화적이고 계층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경우가 적잖다. 가령 성북동 마님이라는 용어가 대중매체를 통해 종종 사용되곤 한다. 성북동은 청와대와 가까운 탓에 권력 실세들이 적잖이 살고 있고, 서울 한복판임에도 배산임수의 명당이어서 부유층의 호화주택들이 많은 곳이다. 이런 이유와 연관된 것일 텐데, 그곳엔 고풍스러우면서도 모던한 미술관들이 곳곳에 있고, 문화재급 건물들도 적잖다. 또 저명한 예술인, 유학자, 종교인들의 흔적도 꽤 많다. 이런 지역적 품격에 비해 대중교통은 다소 불편하다. 해서 서민이 살기엔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로 이런 장소성과 결합된 마님은 흔히 볼 수 없는 고품격의 전통적 여성을 연상시킨다.

한편 청담동언니홍대언니라는 이름의 온라인 여성의류쇼핑몰이 있다. 청담동과 홍대라는 장소성이 언니라는 여성 표현과 연결되어 있다. ‘언니마님보다는 젊은 여성을 가리킨다. 또 청담동과 홍대는 성북동보다는 훨씬 진취성이 강한 모던문화를 상징하는 장소다. 성북동이 좀더 단아하고 은폐적이라면 청담동과 홍대는 좀더 화려하고 과시적이며 종종 퇴폐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명품패션의 일번지라는 별칭에서 시사되듯, 청담동은 부유층의 모던문화를 연상시킨다. 반면 홍대는 좀더 인디적인 상징성을 갖는다. 하여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섞여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요컨대 청담동언니홍대언니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적인 문화적 취향을 표현하는 청년여성의 문화적 표상으로 사용되곤 한다.

이쯤에서 마가복음7장의 헬레니스로 돌아가자. 그녀는 인종적으로 아카이아 지역에 국한된 그리스 혈통의 여성인가 아니면 코스모폴리탄적인 헬레니즘적 문화를 표상하는 인물인가.

 

시로페니키아에서

 

예수가 이 여인을 만난 곳은 시로페니키아의 변방 지역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혈통적으로 그리스 사람이라면, 그녀는 이민자인 셈이다. 헬라 혈통의 시로페니키아 여성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럴 경우 토 게네이가 문장상 멀리 떨어진 헬레니스에 걸려야 한다. 좀 어색하다. 한데 좀더 흔한 어법인 헬라 문화에 세례받은 사람으로 본다면, 본문은 시로페니키아 혈통의 헬레니스트 여자라는 뜻이 된다. 문장상 좀더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헬라 사람의 보다 흔한 어법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더 개연성 있다. 해서 여기서는 후자의 관점에서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여인이 예수를 찾아왔다. 말했듯이 이곳은 호리아’, 즉 변방이다. ‘헬라 여자혹은 헬레니스트 여자는 도시에 어울릴 만한 사람인데, 그녀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예수를 만났다. 예수가 도시로 들어가지 않으니 예수를 만나려면 그녀가 올 수밖에 없다.

변방은 어떤 곳인가. 일단 이스라엘과 티레 사이의 변방 지역은 산지다. 성서에 자주 나오는 백향목이 자라는 곳이다. 백향목으로 가득한 산동네에 이스라엘 사람들과 페니키아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다. 그들의 주된 업종은 나무를 베어 티레 도시로 운반하는 일이겠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복장에서나 소비 패턴에서 헬레니즘 문화를 향유할 만한 이들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 아주 가난했을 것이다. 시골이 대개 그런데, 변방의 시골은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곳으로 예수가 숨어들어와 은신하고 있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한 헬레니스트 여성이 예수를 찾아왔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녀가 살고 있거나 연고가 있을 도시 티레에서 갖은 수를 다 써보아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더러운 영에 들린 딸을 고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근데 예수라는 이는 많은 악령 들린 이들을 치유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이가 시골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녀는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밥상의 부스러기

 

악령 들린 딸의 치유를 갈구하는 엄마는 얼마나 절박할까. 한데 예수의 말은 너무 독하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줄 수 없다. 여기서 강아지로 번역된 퀴나리온(κυναριον)은 비하의 표현임이 분명하다. 해서 귀여운 반려동물의 늬앙스를 담고 있는 강아지보다 욕설에 가까운 개새끼가 더 적절하다. 즉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딸을 고치고 싶어 찾아온 여인에게 예수는 그녀의 딸을 개새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 낯선 땅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여인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것일까. 설사 그녀를 향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해도 딸에게 화를 내면 될 일 아닌가. 아픈 딸이 무슨 죄인가. 그런데 그 딸을 개새끼로 비유하고 있다. 도대체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서 그녀의 정체성을 헬라 여인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은 예수의 독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녀는 이 산골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다. 티레 주권이 강한 지역에서 이 시골 사람들의 마음엔 이 도시 시민에 대한 선망과 적대감이 공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조상 대대로 익숙한 전통과는 다른 풍조의 사람들, 헬레니스트에 대해서는 선망과 반감의 간격이 훨씬 깊었을 것이다. 한데 그런 이가 여자라면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적대감이 더 강하게 작동하였겠다. 그 도시의 헬레니스트, 특히 여자들이 모두 이 깡촌 사람들의 착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적대감이 작용하는 마음의 자리엔, 굶주리는 자신들의 고혈을 빨면서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바로 저들이라는 상념이 깊게 새겨 있었다. 그런 마음이 분노로 표현되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은 바로 헬라 여자였다.

예수는 그런 대중의 메시아임을 자임했다. 그들이 비록 편견에 차 있기도 하고 퇴행적 마음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더라도 그런 마음까지 애틋하게 여기면서 그들의 분노와 꿈을 대변하고자 했다. ‘티레의 호리아사람들에게도 예수는 그런 존재였다. 험한 지형, 들끓는 야수, 국경지역을 떠도는 도적떼, 그리고 군대 등의 만행이 일상화된 곳, 해서 그곳 사람들은 더 혹독하게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한데, 그런 척박한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대중의 심상 속에 주인집 자식들의 밥상은 맛나고 푸짐했다. 어떤 병도 나을 것 같은 음식들 말이다.

한데 이런 대중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찾아왔다. 아마도 예수의 첫인상은 이 깡촌 사람들이 그녀를 마주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위에서 언급한 예수의 독설에 뒤섞여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예수의 말은 아마도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내가 베푸는 신의 밥상을 넘보지 마시오. 당신들의 밥상을 민중들이 넘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오.’

이런 독한 말을 들은 이가 권력자라면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당장 그런 자를 요절내고 말았을 것이다. 설사 자신이 그런 정도의 힘을 갖고 있지 못하더라도,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권력의 연계망을 조금만 작동시켜보면 저런 깡촌에서 망발이나 지껄여대는 무당 같은 존재에게 보복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헬레니스트란, 그 자신이 고귀한 계층이 아니더라도, 그런 정도의 권력 친화성은 갖고 있다. 하니 은거 중인 예수에게 치명적인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예수는 이 순간 조심성이 없었다. 너무나 대중의 날것의 감정은 대변했던 탓이다.

한데 뜻밖이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을 모독한 이 무뢰한 독설에 복수심은 품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이다. ‘당신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개새끼들도 아이들이 먹는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엔 두 가지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예수의 치유를 받을 자격이 없는 계층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이곳의 가난한 주민들의 착취자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 해서 자신과 같은 이른바 헬레니스트들에게는 나누어줄 신의 밥상거리가 없다는 예수의 말을, 그 말속에 담긴 역설적 폭력의 현실을 그녀는 받아들이고 있다. 예수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다녔는데, 많은 이들은 그것을 공감하지도 받아들여 다르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한데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두 번째 사실은,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나누어 먹는 것도 신의 질서라는 점을 예수에게 항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율법은 밭에서 곡식을 추수할 때 부스러기까지 주워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주인의 밥상에 놓인 음식을 개새끼에겐 줄 수 없다는 예수의 말의 허점을 그녀는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그녀의 딸을 치유했다. 그녀의 말에 자신의 편협함을 반성한 결과겠다. 그것은 그녀 자신도 자신의 편협했을 태도에서 돌이켰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실천하는 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함축하는 것이겠다.

비록 그녀의 나눔 행위에 관한 정보가 본문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런 추정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왜냐면 이 복음서가 바로 이 지역 근방에서 회자된 예수 이야기들이 모여서 예수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과 행적을 기억하고 서로 나누고 더 큰 예수 이야기 묶음으로 만들어낸 대중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을 이 여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녀는 대중과 삶이 깊게 교차하기엔 좀 멀리 있는 사람일 수 있지만, 하여 그녀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가 간직되어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녀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은 이 설화를 대중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민중 친화적 활동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설화에서 주목할 것은 그녀가 숨겨진 예수의 추종자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예수를 따라다니며 유랑하는 예언자로 살아간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던 사람이다. 즉 그녀도 예수의 지역협력자의 하나였다.

하나 더, 그녀는 예수와 대화하면서 예수의 편협한 당파성을 깨닫게 했다. 즉 예수의 예수다움은 홀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찰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예수는 대중을 깨우치지만, 대중도 예수를 깨우치게 한 것이다. 예수 이야기는 그런 상호적 성찰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후주]

(1) ‘시로페니키아페니키아 지역을 말한다. 이곳을 시로페니키아라고 부른 것은 로마제국이 이 지역을 시리아 속주(Provincia)에 편입시켜 황제가 파송한 최고행정관(Rector Provinciae)이 관할하는 영역의 일부가 되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