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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평행이론, 멜로와 평창

[한겨레신문] '야!한국사회' 2011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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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이론, 멜로와 평창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경제 질서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 우루과이를, 바로 그 무렵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다. 1987년이다. 공식적으로 그 방문은 우루과이라운드와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우루과이의 멜로라는 국경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행한 교황의 짧은 연설의 한 대목이 미묘하다. 그것은 영화 <아빠의 화장실>에 잘 표현되어 있다. “노동은 살기 위해서만 수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시 교황은 세계화 자체는 불가피한 현실임을 받아들이되 시장 우상숭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수차례 말했다. 브라질에서 경제신학을 공부한 김규항 교수에 의하면 요한 바오로 2세의 문헌 안에서 세계화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관점은 대체로 각 인간들이 선택해야 하는 윤리적 문제로 환원되어 있다.

한데 <아빠의 화장실>은 이러한 윤리적 선택의 사각지대를 보여준다. 가난한 국경마을 주민들은 교황 방문 소식을 접하면서 인생역전의 꿈을 꾸었다.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교황을 따라 이곳을 방문할 것을 연일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집을 저당잡히고 고리대금을 쓰면서 방문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교황이 왔다. 한데 그는 짧은 연설을 마치고는 바로 다음 순방지로 이동했다. 그를 따라온 이들은 수백 명 정도, 그것도 대부분 기자다. 교황이 자리를 뜨자 그들도 서둘러 가버린다. 그리고 남은 것은 마을사람들의 전 재산인, 아니 집과 영혼을 저당잡아 마련한 음식 찌꺼기들뿐이다.

영화는 교황 방문 소동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파산한 실제 사건을 다루었다. 모든 관계를 시장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있고, 그것을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되 그 가치에 휩쓸려 노동을 온통 상품으로 환원시키지 말고 살아가라는 교황의 도덕선생 같은 훈시가 있고, 그런 교황의 말과 행동을 상품화하는 매스컴이 있고, 그런 뉴스에 소박한 인생역전의 꿈을 꾸었던 맨몸둥이 인생들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시장은 더 맹렬하게 자기 원리를 확산시키고 있고, 교황은 더 높이 숭배되며, 매스컴은 그 긴장을 활용해 성공한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맨몸둥이들은 그 와중에서 몰락하고 있다.

나는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에 관한 호들갑스런 언론 보도를 보면서 평행이론을 떠올려야 했다. 영화는 교황의 멜로 방문을 1988년으로 묘사하는데(실제 사건은 1987), 평창 동계올림픽은 2018년에 열린다. 30년을 사이에 두고 멜로와 평창은 평행되는 사건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설마 했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확정되었고, 강원도민과 전 국민은 환호해마지 않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대박 인생역전의 욕구가 요동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욕구의 논거를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가 산술화해 주었다. 그 수치는 4년 만에 20조에서 65조로 세 배 이상 뛰어올랐다. <아빠의 화장실>에도 교황을 따라올 방문객 총수에 대한 방송의 추정치가 나온다. 순식간에 2~3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열 배 가까이 뻥튀기됐다. 한데 실제로는 고작 4백 명이었다. 더욱이 그 중 마을사람들이 준비한 음식을 소비해준 이는 거의 없다. 그리고 방송은 교황께서 많은 것을 주고 가셨습니다”, “작은 마을 멜로에는 축복의 기운이 넘쳐납니다라는 멘트를 전 세계로 날린다. 필경, 1988년 올림픽 때처럼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방송의 축복 멘트가 넘쳐날 것이다.

우루과이의 멜로처럼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의 하나인 강원도는 대박의 꿈을 꾼다. 한데 정부와 재벌과 매스미디어의 설레발에 부화뇌동한 대가를 혹독히 치루는 것은 이 가난한 지역 주민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 답답한 상황을 이제라도 물릴 길은 전혀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