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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과서의 식민주의

[한겨레신문] '야!한국사회'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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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의 식민주의




   알렉산드로
6세가 1492년 교황에 즉위한 뒤 집무실에 새로 걸어 놓은 그림 중 7개의 학문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찾아내고 해석해보라. 독일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이 맡은 과제의 내용이다.

이 그림들은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로의 이행기에 가톨릭교회가 학문과 교육체계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그림을 교수조차도 다 보지는 못했다. 그것에 관한 연구논문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발제를 맡은 학생은 우리 학제로 말하면 대학교 3학년쯤 된다. 내 생각에 이런 숙제는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 교수는 학생이 그것을 다 찾지는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했는지, 일부만 가지고 발제해도 좋다고 했단다. 하지만 그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기어이 모든 걸 찾아냈다.

이제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참고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곧 그의 해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일이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 그는 해석을 위해 끙끙거리며 도서관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우리 학문풍토에서 학생들은 어떤 주제든 과제를 부여받으면 책을 먼저 찾는다. 아니 학생만 그런 게 아니라 연구자들도 대개 그렇다. 책이 없으면 연구는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면, 공부하는 방식도 그렇게 된다. 공부는 곧 책을 보는 것이고, 책은 세상을 담고 있으며, 책에 없는 세상은 알 수 없는 세상이고, 하여 세상은 곧 책이 된다. 물론 이때 책은 서양의 책’, 서양 학자들에 의해 묘사된 세상이다. 식민지적 지식은 이렇게 우리들의 생각 깊은 곳에 뿌리박는다.

해서 서양의 석학이 방한했을 때, 그토록 세상을 읽어내기 위해 우리가 주구장창 읽어댔던 책의 저자인 바로 그이에게 따라붙는 단골질문의 하나가 지금의 한국에 대해 말해달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내가 목격한 한 사례에서 그런 질문을 한 이는 한국의 권위 있는 학자였다. 그 석학은 이 당혹스런 질문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당신이 내게 좀 가르쳐주시오.’

한 유학생의 숙제에서 서양과 한국의 공부 풍토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럼에도 내가 알고 있는 많은 학생들과 학자들은 서양의 책을 마치 종교적 정전(canon) 모시듯 받들고, 그 책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보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자주 본다. 참고문헌을 표시하는 각주가 없으면 그 해석은 격이 떨어지고, 그것은 서양의 언어로 된 것이어야 제격이다. 해서 심지어는, 나도 예외가 아닌데, 한글번역본을 참고 해놓고 그 원본 서적을 각주로 표시하곤 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비일비재하다.

반면 자기가 다루는 대상 자체를,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살펴보고 해독해 내려는 노력은 생각보다 적다. 내 생각에는 학생 때부터 그런 공부법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탓이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보았지, 세상을 직접 보고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에겐 낯선 공부법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내가 뭔가를 주장할 때마다 들어야 하는 당혹스런 되물음이다. 기왕에 비약을 했으니 좀더 해보자. 내 생각에는 우리에게 만연한 교과서 공부법에 큰 책임이 있다. 교과서는 책이 곧 세상 자체라는 생각의 응결체다. 책의 바깥을, 아니 경험세계를 볼 수 없게 하는 책이다. 그것만을 보면 된다는 생각의 진원지다. 그리고 입시제도와 대학의 서열제도가 그런 식의 공부에 미친 듯이 몰두하게 하는 원흉이다. 교과서의 내용이 민족자주를 얘기한다고 해도 교과서 중심의 공부방식과 평가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 한 생각의 식민주의는 별로 개선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