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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크로산 신부에게 ‘역사적 예수’를 묻는 것, 이보다 나은 독서가 있을까..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될 아까운 책](부키, 2011.7)에 수록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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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산 신부에게 역사적 예수를 묻는 것,

이보다 나은 독서가 있을까...

 

 

 

신앙을 독점해온 교회에 대한 저항과 문제제기는 근대 이후 다방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론도 그러한 저항과 문제제기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기억한 예수(dogmatic Jesus)가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역사적 객관성을 담론적 무기로 들고 나온 일부 학자들의 도전의 언어다. 교회가 기정사실화했던 사실의 체계가 실은 만들어진 기억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적 예수 연구 영역을 빛낸 주요 저작들은, 너무 학문적이어서 대중이 읽기는 쉽지 않았기에 세세한 내용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교회에겐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역사적 예수를 학문적 과제로 삼았다는 이유 하나로, 그 내용이 교회에게 위험한 것이든 아니든, 자신들의 학문적 이력을 몰수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한편 실제로 내용에 있어서도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연구들도 많았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3세계적 급진신학들에서 역사적 예수는 매우 강력한 저항담론의 축을 이루었다. 민중신학과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이 대표적이다.

연구의 전성시대인 19세기는 독일이 중심지였지만, 20세기는 독일식 연구의 사망기다. 한 세기 내내 죽은 분야 취급받던 것이 세기 말에 이르러 이번엔 미국에서 연구의 부흥기를 맞이한다. 과거 독일식 역사 연구의 특징이 문헌 중심적이었다면, 최근의 연구 경향에서는 문학적 인류학적 고고학적 사회학적 상상력이 역사학적 내용을 보충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과거의 연구가 상아탑 중심의 연구로 전문학자들 간의 대화와 논쟁을 통해 논의가 펼쳐졌다면, 최근의 연구는 교양독서층과의 상호교류가 형식과 내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적 연구서를 꼽으라면 바로 존 도미니크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의 문제작 역사적 예수지중해 지역의 한 유대인 농부의 생애가 단연 떠오른다. 내용에 있어서 문학적 소양이 넘칠 뿐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고고학적 상상력이 역사학을 한없이 풍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분야에서 20세기를 가장 빛낸 저작에 속한다.

1970년대 이래 급성장한 여러 학문 분과간의 통합적 연구가 실험단계를 너머 제대로 된 성과물을 내기 시작할 무렵이다. 새로운 이론들이 절묘하게 예수연구에 활용되고, 미시적 연구와 거시적 연구를 넘나들며 새로운 역사적 사료들이 이론들과 잘 조합되는 하나의 전형으로 평가할만한 책이 출간된 것이다.

그러한 연구를 통해 예수는 고대지중해 문화 속에서 살았던 한 명의 유대인 농부로서 탄생했다. 그때까지 많은 연구들은 예수가 1세기 유대 농민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가정했음에도 실재의 연구에서는 고대유대사회의 최고급 지식인층인 라삐들과의 비교를 통해 해석되었다. 왜냐면 복음서를 제외하면 라삐들과 같은 고대의 최고 지식인층들의 문학들만이 현존하기 때문에, 복음서들 속의 예수의 말이 이들 문헌들과 비교연구되었던 것이다. 하여 예수는 고대의 독보적인 지식층에 속하는 예언자와 진배없는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한데 크로산의 책은 예수의 비교대상을 고대유대사회 농민계층에서 찾았다. 고고학과 인류학은 그러한 학문적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문헌학은 라삐들 같은 최고 지식인들의 자료들만을 보여주었지만, 고고학과 인류학은 동시대 대중에 관한 기록과 상상력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예수는 동시대의 사회운동가였다. 대중을 동원하여 사회운동을 펼쳤던 구왕족 출신 인사나 고위사제 혹은 라삐 출신 인사가 아니라 민중출신의 사회운동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해석된 것이다. 물론 기존의 많은 연구들도 예수가 민중계층 출신으로 사회운동을 이끈 지도자였음을 가정한다. 하지만 크로산은 예수가 유대농민의 한 사람이었음을 재현한 것처럼 그가 주도한 운동을 대중적 예언자의 사회운동 맥락에서 해석하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연구자의 하나다.

이와 같이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는 새로운 이론과 새로운 자료들이 대대적으로 활용되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 성공적인 연구로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이제까지의 대작들의 운명이 학자들의 골방에서 시작과 끝을 맞이한 것과는 달리, 그의 책은 학자들뿐 아니라 목회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서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영문으로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전문서적인데도, 뉴욕타임즈에서 무려 12주나 종교서적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많은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한 세기 전 독일 중심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대중에게 다가가기에는 너무 난해한 것이었던 반면, 크로산의 저작은 대중과 상아탑이 서로 매우 효과적으로 만나는 중간 지점에서 포착된다. 그것은 주로 미국적 학문풍토와 관련이 있다. 주로 국가의 지원을 통해 학문적 연구가 증진되었던 독일과는 달리, 미국은 시장을 통해 연구가 기획, 생산, 유통되었다. 하여 전문적 연구서들조차 가상의 독자를 전문학자들 만이 아니라 일반대중으로 상정하고 집필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개중에는 천재적인 대중적 감각을 지닌 전문연구자들이 등장하기도 했고, 그런 이들은 종종 출판기획자들과 결합하여 기획된 전문대중서를 펴내는 일도 잦았다. 이것은 고급 정보를 가득담은 대중서를 탐독한 고급독서대중의 등장과 맞물리게 된다.

과거엔 역사의 예수 연구 외곽에서 일종의 기초자료를 제공해왔던 고고학이나 서지학 분야의 연구자들도 예수에 관한 책을 저술하여 대중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이들 저서들은, 기존에 발달되어 온 예수 연구 방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전문적 지식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하였다. 이렇게 다른 분야의 전문연구들이 대중이 읽기에 용이한 글로 저술되면, 예수 연구 전문가들보다 대중은 더 쉽게 이런 글들을 수용할 수 있다. 왜냐면 예수 연구자들은 그 분야에서 축적된 학문체계의 틀을 벗어난 것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0년대 이후 역사적 예수연구와 관련된 고대문헌들이 속속 영문으로 번역됨으로써, 예수 연구자들만이 독점해왔던 자료들을 고급독서대중 또한 쉽게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대중적 교양수준을 크게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 연구 분야에서 등장한 천재적인 대중적 감각을 지닌 전문연구자들이 탄생하였는데, 그 중에 가장 빛을 발한 이가 바로 크로산이며, 그의 대표작이 이 글이 소개하고자 하는 역사적 예수.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전통적인 예수 연구 방법을 고고학적 문학적 인류학적 상상력과 잘 결합시킨 역작이다. 게다가 각 분야의 대중적 전문연구자들이 예수 논의에 끼어들어 저술하는 작업이 아직은 그리 활발하지 않던 시기에, 그는 이런 논의들을 잘 엮어서 책을 펴냈다. 더욱이 그의 책은 방대하지만 결코 난해하지 않고, 전문적이지만 놀라운 상상력으로 대중의 생각의 틈 속으로 침입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의 저서는 굉장히 많은 독서대중에게 성공적으로 다가갔고, 예수 연구가 학자들의 골방을 나와서 독서시장을 통해 대중적 공론의 장에서 논의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해 준 것이다.

2000년에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크로산이 책을 저술한 지 9년이나 지났다. 서양의 유명서적이 거의 1,2년 이내에 한국어로도 번역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하면 좀 많이 늦었다. 그나마 1990년대 후반 이후 서양의 예수 연구 분야의 최신 동향이 속속 소개되면서 발 빠른 독자들에겐 조금은 알려져 있었고, 교회 개혁에 관한 비판적 문제제기에 열정이 넘치는 번역자가 있었기에, 늦었지만 드디어 한국어로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운명이 그리 평탄한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역사적 예수론 강의가 한국의 신학교 어디에서도 개설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그만큼 역사적 예수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교회 지도자가 적지 않다. 한편 최근에는 복음주의적 성향의 저작들이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다. 이들 서구의 복음주의적 저작들도 한국교회에는 부담스러운 내용들이 없지 않은데, 그것들이 한국에 소개될 때는 그 소박한 뇌관조차도 제거된 채 소개된다. 이런 사정에서 다분히 비판적인 크로산의 책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의 학문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신학교와 교회에서는 그에 대해 대체로 무지한 형편이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대중적인 그의 저작의 매력을 소개할 만한 대중매체도 거의 없었던 탓에 한국의 교양독서 대중 또한 그를 그다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역사의 예수 연구 분야에서 이 만큼 비중 있고 내실 있는 책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해 온 것은 아직까지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