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진보평론] 7 (2001 봄)에 실린 글입니다.
탈교회적 주체의 신앙을 향해 - 역사의 예수 담론의 정치성_진보평론 7 (2001 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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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교회적 주체’의 신앙을 향해
‘역사의 예수’ 담론의 정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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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수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가 부흥하고 있다. 20세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이 방면의 연구가 1980년대 이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1 무엇보다도 무수히 양의 연구서들이 출간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울러 한 세기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문제작들이 이 시기에 속속 발표되었다. 더욱이 최근 논의들은 연구실 안에서의 현상만이 아니라는 점이 특별히 주목된다. 즉 이 연구의 지적인 자극이 대중매체를 통해 폭넓게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2 그런 점에서 최근의 이 현상은, 소란스럽게 문제제기 되다 얼마 안 가서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지난 1950~60년대의 경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연구사적 계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물론 그 파장이 아직은 북미 지역 너머에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사정에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연구 분위기는 곧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에도 최근의 연구를 대표할만한 주요 저작들이 여러 권 번역 출간되었고, 3 그 경향을 소개하는 혹은 그에 상응하는 독자적인 성과를 담은 수권의 저술과 여러 편의 논문들이 제출된 바 있다. 4 그런 점에서 최근 예수 연구의 부흥은 동시에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역사의 예수’ 연구를 ‘담론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점검해보는 작업은 적어도 한국 신학계에선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이 글은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역사의 예수’ 담론의 정치성을 조명하려는 데 초점이 있다. 여기서 민중신학이란, ‘한국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개입으로서의 탈/반신학적 모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요컨대 ‘역사의 예수’ 담론을 통해서 나는 ‘교회적 주체’의 이론적 재생산 장치로서의 신학에 대한 해체적 문제제기를 논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담론의 정치성은 ‘탈교회적 주체로서의 신앙’이라는 문제설정을 오늘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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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세기에 걸친 예수 연구사가 도달한 하나의 귀결점은 교회의 신앙에서 ‘역사의 예수’에 관한 물음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5 그럼에도 예수를 전제하지 않는 교회는 있을 수 없다. 즉 교회의 정당성 구축에 있어서 예수의 존재는 절대적 조건인 것이다. 이때 후자를 예수 학계는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라고 명명함으로써 변별된 두 개의 예수 상은 일체의 예수 연구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전자가 ‘선포자’로서 실재했던 예수에 관한 실증적 역사학과 관련된다면, 후자는 교회의 맥락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선포된’ 신학화된 예수와 관련된다.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예수 연구사는 이 두 예수 이미지 사이에서 그 거리를 해석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왔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실증주의 역사학 이후의 세대로 가다머(H.G. Gadamer)의 영향을 받은 에벨링(Gerhard Ebeling)의 문제의식처럼, 6 해석과 역사는 결코 구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분법적으로 범주화된 두 예수 상은 기실 서로 별개로 실재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담론에서 양자는 끊임없이 경합하고 상호 침투한다. 그리하여 담론 속에서 예수 상은 불균등하게 상호 침투된 하나의 모습으로 실재한다. 단, 일반적으로 교회에서의 예수의 재현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에 의해 과잉 결정되어 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역사성에 관해 묻는다는 것은,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교회의 예수 텍스트 7에 대한 ‘해체적’인 언술 효과를 지닌다.
더욱이 예수의 역사성에 관한 물음은 신학사에 관한 시야를 ‘교회 너머’로 향하도록 한다. 즉 이 물음은, 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느냐에 관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교회사적 논의들과는 달리, 그것의 ‘뿌리’가 어떠했느냐를 논하는 질문 방식이다. 이때 뿌리에 관한 질문은 현재의 체제 또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되묻게 하는 강력한 담론적 효과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예수에 관한 논의는 교회에 대한 매우 효과적인, 근원적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예수 연구사가 시작된 것은 바로 이러한 언술 전략의 유용성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예수 연구사의 제1기를 대표하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두 저술가인 슈트라우쓰(D.F. Strauss)와 르낭(E. Renan)은 이 연구로 인해 자신의 학문적 여정에 치명적인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들의 연구 기조는 명백히 ‘탈교회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슈트라우쓰와 (그가 속한) 튜빙엔 학파를 주목하게 되는데, 이들에게서 이 시기 예수 연구를 특성화하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철학적 토대가 헤겔에 있다는 점 8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헤겔은 플라톤에서 데카르트를 경유하여 근대 철학으로 이어지는 서양 주류 사상의 절정에 위치한다. 이러한 계보를 ‘로고스/진리를 향한 인간(의 이성)의 위대한 탐구의 역사’라고 한다면, 헤겔 철학은 ‘절대 정신’을 제시함으로써 이 목적론적 여행의 최종 지점을 스케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그러한 진리 추구의 여정이 변증법적 자기 지양의 과정을 통해서 수행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주체와 대상의 불일치성으로 인한 인식론적 동요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로고스의 역사에서 단절/비약의 시점이 있다면 의심할 바 없이 데카르트가 바로 그 전환점이다. 그는 ‘합리주의/계몽주의’적인 사유방식이 이 로고스의 역사의 방향타가 되게 한 계기적 사건을 야기한 사상가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근대적 사유의 출발점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헤겔적 사유의 의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함축하는 바, 하나는 ‘로고스/진리를 향한 목적론적 역사’를 서양 사상사의 중심의 위치로 복원시켰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변증법이라는) 합리주의/계몽주의적 사유의 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예수 + 반합리주의의 온상으로서의 교회의 신앙 | 전환 ➜ 계승 | 역사의 예수 + 부르주아적인 합리주의적 신앙 | ː | 로고스의 역사 |
불트만으로 상징되는 20세기 초의 연구의 파산기는 바로 이러한 ‘로고스의 역사’의 위기와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다. 그가 하이데거에 의존하여 예수의 역사성 논의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을 시사한다. 하이데거는 (헤겔 철학에서 절정에 다다른) 서양의 전통적인 로고스의 역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로 규정지으면서, 이 감추어진 ‘존재의 탈은폐’ 양상을 존재자/현존재에게서 발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9 여기서 로고스/진리라는 객관적 실체를 향한 인식론의 역사는 존재를 향한 탐구의 역사, 즉 존재론적 질문으로 대체된다. 이때 전자는 목적론적인 사유 과정을 필요로 했지만, 후자는 존재와 존재자간의 끊임없는 상호침투라는 ‘관계의 과정’을 요청한다. 따라서 그는 헤겔의 목적론적인 과정과는 달리 비예측적인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성 중심적인 합리주의적 사유를 넘어선다.
불트만에게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예수의 성육신 신앙은 존재와 존재자/현존재가 상호 침투하여, 존재가 탈은폐되고 존재자가 자기 초월을 이루는 범례적 장소로 이해된다. 즉 현존재로서의 자아는 성육신 신앙 속에서 존재와 만나게 되며, 여기에 신앙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을 매개로 하는 역사학적 만남이 아니라, 초시간적인 존재론적 만남이다. 그리하여 초기 그리스도 교회는 역사의 예수를 고백한 것이 아니라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를 고백했으며, 이 케리그마 속에는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인들 간의 실존적 만남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이 만남의 텍스트는 그것을 읽는 현대의 우리와 텍스트 속의 케리그마적 예수 간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것이다. 10
이런 방식으로 역사의 예수와 케리그마적 그리스도 사이의 불연속에 대한 역사학적 간극은, 즉 로고스/진리를 향한 합리주의적인 신학적 사유의 파산은, 적어도 불트만에게선, 신학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음이 입증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난 세기 예수 연구자들에게서 불화로 판명되었던 예수와 교회를 다시 화해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불트만의 예수 읽기는 신앙적 물음을 (탈시간/탈역사적인) 존재로 향하도록 조정함으로써 역사 자체에 대한 무관심/몰인식을 초래했다. 이것은 불트만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방식의 문제제기를 낳았는데, 하나는 실존주의 자체를 폐기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주의를 좀더 극단화하여 ‘존재 탈은폐’의 역사성에 주목하는 방식이다.
먼저 첫 번째 길을 보자. 불트만의 실존주의는 주류 교회와 신학에서 그가 의도한 대로 수용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와 교회를 화해시키려 했던 불트만 식의 실존주의에는 만족할 수 없었고, 역사학적으로도 예수의 두 상이 연속적이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제1기 연구의 탈교회론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입장의 ‘포스트불트마니안’을 포함한 많은 우파적 신약학자들은 다시 합리주의적 전통으로 회귀했다. 11 이는 사상사적으로 실존주의적 문제설정 이전으로의 회귀이며, 그런 점에서 서양 주류 인식론에 대한 실존주의의 비판 이전으로의 회귀다. 12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복구의 역사에서 다시 활황기를 맞이한 (자본주의적)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교회와 신학의 욕구와 맞물린다. 이들에게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그리 비관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전쟁은 로고스를 향한 낙관주의적 진리 추구의 역사 자체의 모순의 결과가 아니라, 허위를 진리로 오인한 왜곡된 역사 탓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허위가 제거된 성전(聖戰)을 치룬 ‘지금’은, 다시 역사의 방향타를 로고스를 향해 되돌려놓는 일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은 과거에 탈교회의 화두였던 역사의 예수가 실은 신앙의 그리스도와 연속적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그러한 텍스트 읽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 읽기는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와 타협한 교회의 담론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반자본주의적인 해방담론들과는 비판적 거리를 두게 되었다. 13
반면 두 번째 길은 이와는 정반대의 세계인식을 전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가 일시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결과가 아니라, 서양식의 인류 문명사 자체의 위기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 시대 이래 줄곧 추구되어 온 로고스의 역사가 내장하는 목적론적 진리관과 필연적인 연관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인식론으로부터의 절연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불트만의 실존주의는 이러한 역사 인식론으로부터의 단절을 보여준, 적어도 1970년대 어간까지의 신학계에서는, 성공적인 대표적 실례였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불트만의 실존주의는 몰역사주의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것은 불트만 자신이 지향했던, 존재와 존재자간의 실존적 대화를 그가 철저히 수행하지 못한 탓이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14
서양의 일부 반체제적 신학자들과 제3세계 신학자들은 불트만 신학을 급진주의적으로 재해석하여 세속화 신학 15 및 다양한 해방적 신학들 16의 자양분으로 활용한다. 특히 민중신학은 불트만의 ‘만남 사건’을 역사화하여 ‘사건’을 예수 연구와 신학의 토대로 활용한다. 17 요컨대 이러한 방식으로 불트만을 재전유하려는 시도들은 지배 체제와 공모하여 권력연합을 구축해왔던 교회로부터 엑소더스(Exodus)를 선언하기 위한 신학 이론적 토대로 예수론을 다시 문제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로고스의 역사는 비진리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지배적 체제 아래 재배치하여, 그것의 존재 의의를 박탈함으로써 자신의 제국주의적 욕구를 정당화해간 지식의 역사다. 따라서 그것은 존재 의의를 박탈당한 비진리의 대상들에게 진리를 강요하고 강제로 이식시키는 정복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담론의 역사다. 공간과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던 근대적 과학기술의 지식체계는 동시에 그러한 정복과 교화의 대상을 물색하는 지식이기도 했고, 근대적 지식 특유의 분석적 체계가 만들어낸 무수한 분류학은 동시에 진리와 비진리적 대상들 사이를 가르는 분계선을 구축하는 경계의 건설학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시적 시공간을 가시화시키는 데 성공했던 근대적 과학기술의 개가는 또한 감시체계의 정교화를 이룩하는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결국 인간은 자신을 감시 교화하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 존재에 의해 생성되고 배치되며 양생되는 ‘매트릭스’(matrix) 속에 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근대적 지식 체계는 비진리를 배제하는 권력과 연계되어 있으며, 따라서 근대 사회는 근대적 지식과 근대적 권력의 담합에 의해 구축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근대의 교회는 어떤가? 해방적 신학들은 근대의 교회 또한 근대적 권력체계의 대표적 공모세력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회는 존재를 향한 탐구의 공간이 아니라 ‘존재 망각의 역사’를 실현하는 또 하나의 장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탈식민주의적인 권력비판의 차원에서 제기된 탈교회적 문제제기는 교회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의 장소로 역사의 예수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 유형의 불트만의 비판적 계승은 역사학에 대한 회의주의를 넘어서는 데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이들에 의해 시도된 예수의 역사성 논의는 주류 학계의 승인을 얻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북미 지역에서 일고 있는, 이른바 ‘역사의 예수’ 연구의 붐(예수 르네상스)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 경향이 과연 서양 그리스도 교회의 로고스의 역사론을 극복하는 단초를 갖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에서 최근의 이 경향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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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예수 연구의 제3기라고 불리는 1980년 이후의 예수 르네상스는 직접적으로는 대략 1960년대 말 이후의 연구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회과학적 방법이 신약학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던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팔레스티나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지중해 지역의 고대사 연구가 주로 고고학과 인류학의 발전에 힘입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뿐만 아니라, 문학사회학이나 수사학과 같은 문예학적 연구 성과가 도입되어 텍스트 비평학에 있어서도 커다란 발전이 있었으며, 유대교 등 고대의 종교 현상에 대한 이해도 크게 심화되었다.
이러한 연구 상황의 변화는 (유럽보다는) 주로 북미 지역에서 일어났다. 북미지역은 유럽보다는 신학적 전통이 상대적으로 미약했기 때문에 간학문적 혹은 비교종교학적 연구의 제약 요소가 훨씬 적었다. 게다가 신학자들 가운데 상대적 다수가 교단으로부터 재정적으로 자립적인 대학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은 연구사적 전개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또한 타종교와의 만남이 활발해짐에 따라 종교학부에서 상당수의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이러한 학제적 변화는 새로운 연구 경향을 활성화시키는 주된 동기가 된다. 18
한편 이러한 연구들 가운데 상당한 양이 대학 외부의 연구단체들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생산되었다. 19 특히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등장은 이러한 학외적 연구제도의 발전에서 가장 유의미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20 왜냐면, 여기서는 대중매체를 적극 활용하여 학문적 의제를 대중에게 제기함으로써 (교회나 대학을 경유하지 않은 채) 대중사회를 향해 직접적인 윤리적 개입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넘어서는 학제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최근 예수 연구 붐은, 교회나 대학이라는 기성의 학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1960년대 말 이후의 대안적 패러다임 모색의 맥락 위에 정초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 상황은 시대사적 맥락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임마누엘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전개가 크게 세 단계로 펼쳐졌다고 보면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1968년 혁명을 두 번째에서 세 번째의 국면적 전환의 계기적 사건으로 본다. 21 이것은 이제까지 진리로서 정당화됐던 것들이, 아름다움이라고 가치판단됐던 것들이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점에 천착하는 시대정신의 대두를 의미한다. 진리 속에 추함이, 비진리 속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사유 과정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차이’가 주목되기 시작했다. ‘차이’를 진리-비진리의 차등화의 가치 속에서 인식해왔던 ‘동일성의 사유’가 삶의 경험적 차원을 은폐하고 나아가 경험 자체를 조작해왔다는 것을 문제제기하게 된 것이다. 이 동일성의 사유가, 시공간적 차이 속에 배치되어 있던 모든 것을 인과적 관계 속에 재배치하려 했던 합리주의적 인식틀이 허위의식에 의해 구조화된 세계를 구축해왔다면, 1968년 이후 서양의 시대인식은 그 허위의식을 파헤치고 삶의 경험적 차원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의 패러다임을 요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식사회에서 나타난 뚜렷한 현상은 전통적인 담론적 경계가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 학문 영역간 교류가 활발해졌고, 이를 통해 각 분과별로 상투화되어 있던 공리적 전제와 질문 방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이 실험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사적 맥락은 예수 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관계없이 많은 연구자들이 학제간 연구 과제를 수행했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방법론적 지식이 획득되었고 광범위한 역사적 정보들이 새롭게 축적되었다. 그리하여 예수 시대의 사회를 보다 포괄적으로 그리고 보다 정밀하게 조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바로 이러한 축적된 역사적 지식의 기초 위에서 최근 예수 연구의 두드러진 특징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즉 과거의 연구와 비교할 때 최근의 연구들은 역사적 맥락을 예수 담론 이해와 훨씬 적극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텍스트 외부에 콘텍스트가 존재하는 것 22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 속에 이미 콘텍스트가 함축되어 있다는 점을 연구자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말과 행위는 개념적인 의미와 연관 23되는 게 아니라, 특정 집단의 ‘구체적 실천’과 불가분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은, 예수 담론이 각 공동체의 역사적인 구체적 경험과 결부된 해석의 결과로서, 예수와 후속 예수 공동체들 간의 소통적 만남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고를 전제한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예수에 대한 역사적 물음은 전승자/저자 공동체에 대한 역사적 물음과 단적으로 분절되어 있는 게 아니다. 24 오히려 양자 간의 소통의 흔적인 텍스트 자체의 해석이 바로 ‘역사의 예수’ 논의가 된다. 여기서 이 소통은 시간적으로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이루어지는 데, 예수 학계는 이를 (개체로서의 예수에 대해 소통적이고 과정적인 실체를 시사하는) ‘예수운동’이라는 용어로 다룬다.
요컨대 최근의 예수 운동 연구는 실재 예수 자체(real Jesus)가 아니라 예수의 의미화 과정(historical Jesus)을 다루는 데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수의 역사성은 그 담론 전승자/저자의 예수 전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5 다시 말하면, 역사의 예수 문제는 구체적인 특정한 예수운동체에게 예수는 누구였는가, 왜 그들은 자신의 동시대에 예수를 이야기하는가의 문제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단 이러한 연구가 신약학의 한 영역으로서의 역사의 예수 연구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신약학은 예수는 누구였는가의 물음을, 실재 예수와 시공간적으로 ‘근접’한 예수운동들에 한정해서 학문적으로 탐색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령, 전태일 예수론은 민중신학적 예수운동 연구의 주제일지언정, 신약학의 직접적인 연구 영역을 넘어선다. 하지만 역사와 의미의 연계를 내재화하는 이러한 문제설정이 신약학의 역사의 예수 연구에 개입되어 있는 한, 예수 연구는 연구자와 동시대의 맥락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누구인가, 우리는 왜 예수를 지금 여기서 묻는가’라는 예수의 의미화 물음을 전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세미나’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아래에서 보듯이, 최근 예수 연구의 제 경향 중에서 이 연구 집단만큼 ‘역사의 예수’ 담론의 정치성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 없이도 얼마든지 실재할 수 있는 오늘날의 세속화된 사회에서 근대적 위기에 대한 사회윤리적 개입을 실행하는 데 있어 교회는 철저히 무능했다. 아니 그보다는 위기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증폭시켜온 장본인이 교회가 아니었나 하는 한계의식이 교회의 현실을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세속화된 현대사회의 위기는 동시에 교회의 위기, ‘교회적 신앙의 정체성’의 위기이기도 하다. 26
이에 대해,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수를 다시 이야기한다는 것은 교회 이전의 예수운동의 실천적 함의가 교회운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유실된 점을 발본적으로 문제제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예수운동의 다양한 전개 양식 가운데, 지역의 정주성과 연계되어 발전한 하나의 특수한 양상이던 교회운동이 배타적으로 운동의 승계권을 독점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교회는 다른 방식의 예수운동을 예수의 계보에서 박탈했고, 바로 그 때문에 예수운동의 실천적 가능성이 교회만으로, 교회적 실천 가능성만으로 제한된 것이다. 27
여기서 예수운동이 교회운동으로 계승되는 과정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자. 나는 이 과정의 변화를 세 가지 범주에서 스케치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는 운동양식에서의 변화다. 즉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운동의 성격을 지녔던 예수운동의 하느님나라 사상이 교회운동에서는 선교운동으로 국한되었다. 이는 둘째로, 선포 내용에서의 변화와 관련된다. 즉 예수는 권력에 의한 일체의 배제와 박탈 메커니즘이 지양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이’였다면, 교회는 예수의 선포의 내용이 아닌 예수 자신을 선포하였다. 여기서 ‘물신화’된 예수론이 교회적 신학의 주요 구성요소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포의 수혜자와 관련해서 그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데, 전자에선 배제의 대상인 사회적 소수자가 예수의 하느님 나라의 수혜자였다면, 후자는 인간 일반 28을 하느님 나라의 수혜자로 제기한다.
따라서 교회가 예수운동의 배타적 승계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그런 점에서 ‘예수 세미나’는 교회를 매개로 하지 않는 신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예수 역사학이라는 신학이론이 교회를 경유하지 않은 채 대중과의 접촉을 시도하게 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적 문제제기가 명시적으로 표명되었다. 요컨대 새로운 예수론은 ‘탈교회적 신앙의 정체성’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데, 나는 ‘예수 세미나’의 현시대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위기’란 환경문제라든가 생명문제라든가 등등의, 단순히 외화된 위기적 사태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위기 구조’라는 보다 추상화된, 비가시적 문제로까지 사고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점에서 근대성을 위기의 시각에서 묻지 않을 수 없고, 서양의 주류적 사유의 위기성을 문제제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서양의 비판적 지식사회의 자기 반성적 고찰은 서양 사상사 전체를 발본적으로 다시 문제제기하는 니힐리즘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예수 세미나’는 예수라는 담론의 정치성이 지닌 발본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합리주의/계몽주의 전통의 재확인에 그치고 마는 경향이 있다. 29
예컨대, 예수 세미나의 조율사격 되는 몇몇 연구자들은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개략적 합의 사항의 하나가 역사의 예수와 종말 사상을 분리시키고 있다는 점이라고 정리하는데, 30 이는 과도한 해석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종말사상에 대한 연구자들의 개념이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대립개념으로 제기된 지혜사상과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정립된 견해가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31 그런데 이러한 무리한 종합의 배경에는 합리주의적 역사학의 한계지점이던 종말론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손쉬운 해결책을 구하고자 했던 신학사적 단견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는 교회의 반이성주의가 가리고 있는 이성을 재구축함으로써 위기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전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서양 주류 사상을 관류하고 있는 ‘로고스의 역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바, 데카르트적 사유는 서양 사상사의 변곡점인 동시에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로고스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의 중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적 신학의 합리주의적 전통은 반합리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교회적 신앙의 비판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로고스의 역사라는 점에서 교회적 신앙의 계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 예수는 일체의 기성사회적 통념에 저항한 존재다. 바리사이적 질서와의 대결은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예수의 기적은 정상성의 질서체계에 의해 배제되어 비정상성의 영역에 갇혀버린 이들에게 일어난다. 그것은 기적술사의 일반적인 행태처럼 그들을 다시금 정상성의 영역으로 복원시키는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의 기적은 정상-비정상이라는 선악 이분법을 통념화시킨 질서체계 자체를 교란시킨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비유도 동일한 담론적 효과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통념에 저항하는 전복적 예언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합리주의 이전이건 이후건, 예수운동의 주된 에토스가 로고스/진리의 역사에 대한 도전이요 해체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예수 연구는 보다 첨예한 시대인식의 보완을 필요로 한다.
4
이상에서 나는 최근의 예수 연구가 현대적 의미에서의 ‘역사학’으로서 성공의 징후를 담지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대안적 패러다임을 향한 방법론적 모험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게 했던 1968년 이후의 시대의식과 예수 연구의 ‘행복한 만남’이 있었음을 말하고자 했다. 그것은 불트만의 급진주의적 승계의 전범인 서양의 반체제적 신학과 제3세계의 해방적 신학들의 예수 논의가 역사학으로서 자리잡는 데 실패했다는 점과 결부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논의들에는 연구자의 동시대에 대한 첨예한 문제인식이 돋보인다. 특히 ‘갈등’의 문제가 신학의 핵심적 주제임을 다시금 깨우쳐주는데 있어 이러한 급진주의적 신학운동들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과도한 현재주의적 문제의식과 빈약한 과거 사실에 대한 지식 탓에 역사학이 결여된 신학운동이 되고 말았다. 결국 급진주의적 신학운동들은 끊임없이 신앙적 정체성에 대한 회의적 문제제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데 궁색한 이론들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신학적 실천으로서의 담론의 정치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한계적 요소였음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예수 연구의 역사학적 가능성은 급진주의적 신학의 계보에 있는 민중신학자에게 있어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의 예수 연구 경향이 급진주의적 신학의 대안이 되리라는 단순한 기대에 만족할 수는 없다. 왜냐면 현대의 위기에 대한 시대인식에 있어 이 경향의 논의들 다수는, 타영역의 비판적 지식들에 비해, 너무 안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는 서양의 주류적 인식론인 ‘동일성의 사유’가 근대의 위기적 요소에 어떻게 관여되어 있는지를 묻지 않은 채 외화된 위기적 사태만을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성적인, 인종적인, 문명사적인, 그리고 계급적인 다수자의 식민주의적이고 정복주의적인 자기중심주의를 해체적으로 문제제기할 철저한 탐색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적 신앙의 정체성을 자신의 존재의 옷으로 선택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숨기고 있는 비진리를 향한 편견과 분노의 질서관을 내면화하여, 다수자의 진리 독점 욕구의 공모자로 재탄생한 우리 ‘교회쟁이들’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자기 해체의 투철한 신앙의 동력은 여간해선 가동되지 않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예수 역사학의 보다 견고한 구축을 위해서는 최근의 예수 연구와 급진주의적 신학간의 보다 진지한 대화를 통한 상호보완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대화에의 요청은 역사의 예수 담론의 정치성이 탈교회적 주체의 신앙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관점에 도달하리라고 본다. □
- ‘역사의 예수’(historical Jesus) 연구사에 관하여는 W. Barnes Tatum, In Quest of Jesus. A Guidebook (John Knox Press, 1983); N.T. Wright, 〈역사의 예수 연구사: ‘고전적 질문’, ‘새로운 질문’, ‘제3의 질문’을 중심으로〉, 김진호 엮음, 《예수 르네상스―역사의 예수 연구의 새로운 지평》 (한국신학연구소, 1996) 참조. [본문으로]
- 로버트 펑크(Robert Funk)가 주도하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역할은 가장 두드러진 예라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 M. Borg, 김기석 옮김, 《예수 새로보기》 (한국신학연구소, 1997); ―, 《미팅 지저스》 (홍성사, 1995); J.D. Crossan, 《예수는 누구인가》 (한국기독교연구소, 1998); ―,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J.D.G. Dunn, 《예수님에 관한 새 관점. 역사적 예수 연구 비판》 (CLC, 2010); E.S. Fiolenza, 《크리스찬 기원의 여성신학적 재건》 (도서출판 태초, 1993); R. Funk,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R.A. Horsley, 《예수운동. 사회학적 접근》 (한국신학연구소, 1993); ―, 《크리스마스의 해방》 (다산글방, 2000); B. Mack, 《잃어버린 복음서. Q복음과 기독교의 기원》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E.P. Sanders, 《예수와 하느님나라》 (한국신학연구소, 1997); G. Theißen, 《예수운동의 사회학》 (종로서적; 1981); ―, 《역사적 예수 연구》 (다산글방, 2001); N.T. Wright, 《하나님은 어떻게 왕이 되셨나》 (에클레시아북스 2010); G. Vermes, 《유대인 예수의 종교》 (은성, 1995) 등. [본문으로]
- 김덕기, 《예수 비유의 새로운 지평》 (다산글방, 2001); 김명수, 《원시그리스도교 예수 연구》 (한국신학연구소, 1999); 김진호, 《예수 역사학. 예수로 예수를 넘기 위하여》 (다산글방, 2000); 김창락, 《귀로 보는 비유의 세계》 (한국신학연구소, 1997); 소기천, 《예수 말씀의 전승궤도》 (대한기독교서회, 2000); 조철수, 《예수평전》 (김영사, 2010); 정승우,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3 (책세상, 2005); 조태연, 《예수운동. 그리스도교 기원의 탐구》 (대한기독교서회, 1996); 차정식, 《예수의 신학과 그 파문》 (대한기독교서회, 2007); 엮음집으로는 김진호 엮음, 《예수 르네상스》; 최갑종 엮음, 《최근의 예수 연구》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그밖에 논문들은 무수히 많다. [본문으로]
- 19세기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약학자의 하나인 마틴 퀠러와 루돌프 불트만은 주된 관심이 서로 달랐음에도 공히 실존 인물 예수의 역사적 재구성에 대한 (랑케의 역사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던) 동시대 예수 학계의 왕성한 논의와는 일정한 거리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수를 강조하려 했다. 그리하여 퀠러는 historisch와 geschichtlich를 구분했고, 같은 맥락에서 불트만은 Der historische Jesus와 Der kerygmatische Christus를 구분하였다. Martin Käller, The So-Called Historical Jesus and Historic, Biblical Christ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64; 독일어 원본은 1982); Rudolf Bultmann, 《신약성서신학》 (성광문화사, 1983; 독일어원본은 1958). [본문으로]
- 에벨링의 논문 모움집 Ward and Faith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63)에 수록된 "The Question of the Historical Jesus and the Problem of Christology" 참조. [본문으로]
- 역사학자 라카프라는 ‘텍스트’를 “상호 관련되어 있으나 때로는 의견을 달리하는 제 경향의 팽팽한 상호작용 내에 위치하여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망상조직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D. LaCapra, 〈지성사에 대한 반성과 원전 해독〉, L. Kaplan & D. LaCapra 엮음, 《현대유럽지성사》 (강원대학교 출판부, 1986), 52. 이러한 견해는, 텍스트는 해석의 무한성 속에 개방되어 있으며, 다양한 읽기의 가능성이 그 내부에서 서로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관점을 포함한다. 여기에는 텍스트의 의미화를 둘러싼 ‘제 읽기’ 간의 투쟁이 들어 있으며, 다른 읽기를 가로막고 단지 하나의 의미만을 진리라고 강요하는 권력의 작용이 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정치적 실천의 무대인 것이다. [본문으로]
- Albert Schweitzer, 《예수의 생애 연구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129~30. [본문으로]
- M. Heidegger, 《형이상학 입문》 (문예출판사, 1994) 참조. [본문으로]
- Bultmann, 《신약성서신학》, 401~11; 같은 저자, 《요한복음서 연구, 상권》 (성광문화사, 1983), 57~75 참조. [본문으로]
- 로빈슨(James M. Robinson)의 책 A New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London: Student Christian Movement Press, 1959)는 이른바 ‘새로운 연구 진영’의 문제제기에 대한 훌륭한 정리다. [본문으로]
- 이러한 평가에 대하여는 나의 책 《예수 역사학》, 29~33 참조. [본문으로]
- 이러한 예수 읽기의 하나의 실례가 예수운동과 젤롯운동을 평화주의자와 폭력주의자의 대결로 환원시키려는 서양의 주요 연구자들의 예수론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이러한 예수가설은 1960년대의 혁명적 운동들과 그리스도교를 분리시키려는 담론적 정치성을 지녔다. 헹엘(Martin Hengel)의 ‘젤롯 가설’에 대한 논쟁에 관하여는 《예수 역사학》 제11장으로 보라. [본문으로]
- 전기 하이데거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불트만은 존재자의 존재를 향한 실존적 만남의 여정에 집착했고, 자연 역사로부터 멀어져 가는 몰역사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본문으로]
- J.A.T. Robinson, 《신에게 솔직히》 (대한기독교서회, 1968), 27 [본문으로]
- S.M. Ogden, Faith and Freedom: Toward a Theology of Liberation (Nashville: Abingdon, 1979). [본문으로]
- 《예수 역사학》, 제4장 참조. [본문으로]
- 이에 대하여는 《예수 역사학》 44~78 참조. [본문으로]
- 미국 ‘가톨릭 성서공회’(CBA)의 과제집단으로 1974년 결성된 ‘사회과학과 신약성서 주석’(The Social Sciences and Second Testament Exegesis)이나, 미국 ‘성서문학협회’(SBL)의 과제집단인 ‘사회과학과 신약성서 해석’ 모임(Social Sciences and New Testament Intrepretation, 1983), 그리고 로버트 펑크(Robert W. Funk)와 ‘웨스타 연구소’(Wester Institute)가 개설한 ‘예수 세미나’(1985)와 그 하위 프로젝트의 하나인 ‘사회상 세미나’(Social Facets Seminar, 1986) 등은 학외적 기구들로, 1970년대 이후 간학문적인 연구의 주된 무대로 부상하였다. [본문으로]
- ‘예수 세미나’에 대하여는 조태연, 〈“학자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신약학 논의의 최신 동향〉, 《신학사상》 95 (1996 겨울); Mark Allan Powell, 〈예수 세미나〉, 《신학사상》 110 (2000 가을) 참조. [본문으로]
- Immanuel Wallerstein, 《자유주의 이후》 (당대, 1996). 여기서 세 단계란, ‘① 15세기~1789년, ② 1789~1968, ③ 1968 이후’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시기구분의 준거로 근대성의 두 차원, 즉 ‘기술의 근대성’(MT)과 ‘해방의 근대성’(ML) 간의 관계방식을 든다. 즉, ①은 MT와 ML의 공조기, ②는 ML이 MT에 의해 하위로 포섭된 시기(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 그리고 ③은 자유주의적인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ML의 탈출기라는 것이다. [본문으로]
- 이것은 텍스트는 콘텍스트와 분리될 수 있다는 작업가설이 전제된 사고다. [본문으로]
- 의미가 개념적으로 구성될수록, 역사와 의미의 관계는 형식화되며, 이는 역사와 의미의 연계의 필연성을 약화시킨다. 왜냐하면 이러한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개념은 역사의 구체성보다는 인간 일반의 보편적 가치에 더 호소하기 때문이다. 한데 ‘역사의 예수’ 연구가 시작된 이래 이런 식의 보편주의가 연구사를 지배해왔다. 이것은 결국 예수 연구의 역사학적 위기를 초래했던 것이다. [본문으로]
- 그리하여 아래의 [표2]에서 보듯이 전통적인 ‘역사의 예수’ 연구에서는, 예수와 텍스트 사이의 차이에만 주목한 나머지, 텍스트를 생산한 공동체의 해석의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순수한’ 역사의 예수상이 도출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해석이라는 것을, 대화과정이라기보다는, 순수성의 변질 과정으로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 물론 이것은 해석자의 동시대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역사적 대화 과정’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예수 연구가 ‘과거의 학’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해석자의 의미화 실천을 부각시킴으로서, 종종 간과된 대화의 다른 상대편의 존재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러한 식의 주장이 자칫 ‘현재주의’로 빠질 위험성이다. 사실 역사적 대화주의를 주장한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 자신도 그러한 오류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사적 대화의 대상인 과거의 것이 현재 우리의 인식틀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수용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는 데, 문화사적인 지식이 결정적인 요소임은 현대 역사학의 하나의 중요한 가설이다.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E.H. 카의 역사관을 넘어서기 위한 하나의 시론〉,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참조. 그런 점에서 로어바우는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 대한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사회과학적 연구들의 현재주의를 문제제기한 바 있다. Richard L. Rohrbaugh, 〈초기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계급위치 논쟁에 관한 방법론 고찰〉, 《신학사상》 84 (1994 봄). 그러나 로어바우 자신을 포함한 최근의 예수 시대에 관한 많은 연구자들은 그러한 한계를 돌파하는 데 상당한 진척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호슬리(R.A. Horsley)나 크로싼(J.D. Crossan) 등에게서 보듯이 최근의 역사의 예수 연구가 현재주의를 넘어서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 ‘세속성’의 문제설정으로 전통적 신학을 해체함으로써 ‘반신학으로서의 신학’을 모색했던 알타이저(Thomas Altizer)의 저서 The Gospel of Christian Atheism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6)는 이러한 관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고전에 속한다. [본문으로]
- 예수운동의 반정주성, 유목민적 특성은 영원이라는 시간 밖의 공간 속으로 유폐되어, 현실에서 그것은 끝없이 유예될 뿐이다. 반면 현실의 공간에선 신앙은 항상 정주성의 기조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운동의 계승 양태는 반정주성과 정주성 사이의 다양한 스팩트럼 사이에서 구체화될 수 있다. 여기서 교회는 정주성의 성격을 최대화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양식의 승계는 기성 사회의 통념 내부에서 가치화한 신앙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선과 악이 개념화되며, 죄성, 죄인 등이 규정된다. 이는 사회의 지배담론에 의한 배제・박탈의 메커니즘을 정당화하는 담론적 경향을 지닌다. 즉 예수운동과 교회 사이에는 중대한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만이 예수운동을 승계하는 적장자로서 배타적 승계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분명 예수운동에 있어서 심각한 비극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김진호, 〈승리주의를 넘어서, 예수의 복원을 향해〉, 《당대비평》 8 (1999 가을) 참조. [본문으로]
- 이때 ‘인간 일반’이라는 류적 대표성을 지닌 존재에 대한 언표는 종종 ‘다수자의 시각에서 과대대표된 인간’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본문으로]
- 반면, 합리주의/계몽주의적인 서양 근대성 자체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을 수행하는 미국의 성서학자들은, 상당부분 역사적 접근을 포기하고 텍스트 수용자의 자유로운 창조적 읽기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Edgar V. McKnight, Post-Modern Use of the Bible: The Emergence of Reader-oriented Criticism (Nashville: Abingdon Press, 1988) 참조. [본문으로]
- M. Borg, 〈예수 연구의 르네상스〉, 김진호 엮음, 《예수 르네상스》 (한국신학연구소, 1996). [본문으로]
- 《예수 역사학》, 55~5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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