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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식인이란 어떻게 사는 자인가?

이 글은 [당대비평] 13(2000 겨울)에 처음 게재되었고, 이듬해 출간된 나의 책 [반신학의 미소]에 재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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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란 어떻게 사는 자인가?

 


 

표구사에 부탁한 그림 액자가 배달됐다. 제법 커서, 그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큰못을 벽 속 깊이 박아야 했고 천장에서 꽤나 여유 있게 위치를 잡아야 했다. 다음 순서는 못을 박는 것. 펜치로 단단히 고정시킨 후 대가리를 망치로 내려친다. 그런데 벽에 약간 흠집을 냈을 뿐 못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조금 강도를 높이면서 수차례를 반복했다. 하지만 정확한 조준이 안 된 탓에 구멍은 깊어지기보단 커지기만 했다.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기어이 못을 박는 데 성공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액자 뒤편에 달린 걸게줄이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 좀더 아래편에 못을 박아야 제격이다. 나름대로 크기를 재면서 했는데, 미쳐 걸게줄을 확인하는 걸 잊었던 게다. 처음부터 다시 하려니 걱정이 앞선다. 또 실패하면 어쩌나, 벽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 갖가지 걱정이 떠오른다.

그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흔히 말하는 블루칼라의 손노동자. 20년 경력으로 빛나는 손 마디마디엔 얼른 보아도 쉽게 알만한 베테랑 숙련공의 훈장이 여러 곳 보인다. 그만큼 그의 풍모는 믿음직스럽다.

역시,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 단 네 번의 망치질로 못은 적당한 위치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게다. 한 눈에 액자와 벽의 상황을 꿰뚫어보는 안목, 정확하게 못의 머리를 치는 기술, 그리고 적절한 힘의 배분, 내 눈엔 신기(神技) 그 자체였다.

그 얼마 전에도 커다란 책장을 비좁은 문 사이로 절묘하게 집어넣는 1센티의 묘기에 나는 경탄을 금치 못했었다. 천장에서 물이 샐 때도, 보일라가 고장났을 때도 그는 언제나처럼 나의 감사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몸에 새겨진 지식의 깊이와 폭은 나로선 좀처럼 헤아려지지 않는다.

간혹 내가 그보다 더 많이 아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거의 예외 없이 책으로 얻는 지식에 관한 것들이다. 비율로 따지자면 일 대 오 정도나 될까?

그런데 그와 나와의 관계는 이 비율과는 반비례적이다. 그는 나보다 1년 연장자이지만 항상 나를 공경하는 태도로 대하고, 반면 나는 뭔가 가르치는 사람처럼 거만하게 대한다. ‘다섯 배나 더 많은 지식을 가진 그는 항상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오분의 일의 지식을 가진 나는 선생이요 목사(목자)인 것이다. 이때 그가 가진 모든 지식 가운데 생업이라고 할 만한 한 부문(노동자)이 그를 대표하고 있고, 또 나도 목사/신학자라는 단지 하나의 영역으로 나의 존재가 표상되고 있다. 지식의 편식이 심한 편인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부문의 지식이 부족해서 종종 그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는 언제나 나보다 하위의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한 듯 생각해왔는데) 문뜩 참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식이란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그리고 다른 이에게도 호혜적인 무엇이어야 할 텐데, 그럴 것 같은데지식이란 놈은 언제나 자신의 속성이 그렇다고 주장해왔지 않은가실제로는 가치증식에 소용되는 직업적 지식만이 우리의 존재를 일방적으로 규정짓는 기준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동의해왔던 지식이라는 관념은 삶 전체에 관계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편,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연이어 생긴다. 직업으로서의 지식에 있어, 그의 것은 나보다 족히 세 배 이상 되는 화폐로 환산되는 가치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그는 항상 자신이 지식이 없는 자임을 자인하고 살고 있지만, 지식을 열심히 팔고 다녀봐야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미달하는 벌이로 만족해야 하는 나는 당당히지식인으로 산다. 그건 아마도, 그의 것을 저평가하고 나의 것은 과도하게 높게 평가하는 다른 이상한기준을 사회가 마련해준 덕택일 게다. 그리고 그와 내가 이 기준에 무의식적으로 공조함으로써 그러한 서열 의식이 자리잡게 되었을 게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식은 권력의 효과에 둘러싸여 있는 꼴이 아닌가?

아무튼, 그 탓인가, 확실히 그보다 내가 오만한 품성을 더 많이 가졌다. 어머니 표현대로는 쥐뿔도 없는 놈이 자존심만 센 꼴이다. 그래서 간혹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민중임네, ‘해방임네 하면서, ‘/우리의 이해를 초월해서 고난받는 타자인 기층대중을 위한다는 이른바 이타적 세계관을 떠벌리지만, 그런 말의 성찬 속엔 다른 지식쟁이들과 벌인 나의 혹은 우리의자존심 싸움의 흔적이 도처에 있기에 말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별로 아는 지식이 없어도 지식인으로, ‘지식을 가진 자로 살게 하는, 그래서 그것을 자랑으로 간직하고 그것에 도취되어 뻐기게 하는사회적 기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필시 그것은 언어와 관련되었을 게다.

인류가 의미를 생산하는 주된 매체는 언어다. 존재하는 모든 것, 경험하는 일체의 것은 언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인식되고, 언어를 통해서 우리에게서 표현된다. 더욱이 사회관계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될수록 존재를 표상하는 언어의 지위는 더욱 절대화되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특히 오늘날, 인간에게 있어 언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히 언어는 존재의 집인 셈이다.

내가 보기에 20년 경력의 숙련기술자의 지식보다 망치질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그보다 우월한 사람처럼 여기게 하는 것은, 나 자신 스스로에게조차 그런 생각/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나의 지식이 언어를 활용하는 데 있어, 즉 의미의 생산 및 유통 메커니즘을 관계하는 데 있어 그의 것보다 깊이 관여되어 있는 탓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식인이란이 허울 좋은 고평가가 인류의 비뚤어진 문명사의 흔적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지만 아무튼담론에 관한 전문가라고 정의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대중은 의미의 세계인 언어를 활용하는 데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의미의 전문가들에게 의지해야 하기에, 지식인을 우대하는 문명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실제로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예쁘고 밉고, 건강하고 부실하고,..., 등등의 숱한 가치 판단들은 이미 우리의 경험 밖에서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은가? 사회학자 폴 스타(Paul Starr)의 개념을 빌어 말하면, 이러한 가치는 강제를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사회제도적 장치인 사회적 권위(social authority)의 결과가 아니라, 의미에 관한 지적 활동의 소산인 문화적 권위(cultural authority)의 결과인 것이다.

사회 속엔 무수한 의미들이 공존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관계의 망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의미들의 연결망은 수평적이라기보다는 수직적인 위계적 구성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무수한 소의미들을 통합하고 서열화하는 대주체로서의 거대의미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점차 소의미들은 거대의미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의 의의를 갖게 된다. 또한 그리하여 사회는 소의미들간의 불일치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거대의미를 통해 통합되고 갈등이 해소되는 서사구조를 미덕으로 여기게 된다.

이것을 사회의 의미 체계라고 한다면, 지식인은 의미 체계 형성의 생산자/기술자쯤 되지 않을까. 이런 방식으로 지식인은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을 구성하는 데 관여하며, 체제의 재생산에 복무한다. 그런 점에서 지식은 권력과 연계되어 있고, 지식인은 권력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매우 유용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유용성으로 말미암아 지식인은 문화적 권위의 담지자로서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러한 전문적 지식인은 역사적으로 17세기 이후의 자본제적 유럽의 배경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그것은 관료제라는 자본주의적 엘리트 시스템 및 그 충원기구로서의 대학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수행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근대적 관료유형인 박학다식한 지식인이 아니라 특정 영역으로 전문화된 지식인에 의해 의미가 구성되는 사회가 바로 근대 자본제 사회라는 얘기다. 이것은 근대 사회의 비약적 발전이 전문적 지식인의 존재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세계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최근의 지구적인 변동 양상은, 드러커(P..F. Druker) 류의 이른바 지식기반사회론에 의하면, 지식이 향후 사회에서 전지전능한 신의 위격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지식은 미래의 유일한 희망이요, 지식인은 그것을 실현할 유일한 메시아라는 것이다.

한국의 현 정부는 최근의 심각한 발전 위기의 원인을 이러한 지식사회로의 이행의 실패에서 찾고 있다. 그리하여 곧 도래할지도 모를 파국적/종말적 심판을 모면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식기반사회론의 열렬한 포교사업에 착수하고 있다. 이에 현재 한국은 지식기반사회론이라는 메시아주의로 달아올라 있다.

한데, 지난 세기 초에 이미 막스 베버(Max Weber)가 관료제를 근대 자본제 사회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인류가 선택한 메피스토텔레스와의 암울한 계약이라는 데 절망했던 것처럼, 전문적인 관료적 지식인은 또한 근대의 반인간적사회상의 장본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베버의 표현대로, 이른바 정신이 부재한 전문가들에 의해 도래할 세계의 위기성은 피할 수 없는 신의 저주인 것이다. 특히 최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많은 비판적 견해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제 사회의 지구화가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치달을 때, 그 반인간성의 가장 첨예한 희생자가 지식소외대중이라는 점을 우리는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지식인 가운데는 소의미들의 갈등을 봉합하기보다는 그것을 증폭시키고, 범사회적인 총화를 이룩하기보다는 그것의 균열을 꾀하는 이들도 있어야 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 지배적인 의미 체계가 모든 이에게 호혜적인 것이 아니라 편중된 이해관계의 담론이라는 것을 분석해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대중사회에 폭로/증언하는 기예를 가진 존재로서의 지식인이 그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반체제 담론의 주역들이다. 동시에 그들은 대개 대안적인 의미 체계를 생산하는 주역이기도 하다. 세계의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입증된 바, 의미 체계의 탈구축과 구축의 전문가인 지식인은 대중적 사회운동과 긴밀히 연루되어 있으며, 특히 유력한 역사의 족적을 남긴 경우는 대개 지식인과 대중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지곤 했다.

 

이쯤에서 나도 지식인 그룹에 속한 양, 잘난 체 좀 해야겠다. 물론 성서학자가 뻐길 수 있는 부문이란 성서 얘기일 터. 다음에 이야기할 내용은 위에서 말한바 두 유형의 지식인의 갈등에 관한 얘기다.

구약성서에 아모스서라는 짤막한 예언 텍스트가 있다. 예언자 아모스의 신탁모움집이다. 그런데 이 예언자는 야훼 신앙사에서 그리 두드러진 기억의 대상은 아니다. 신탁집의 분량에서도 그렇거니와, 성서의 다른 데서 인용된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나 신학사에선 상황이 다르다. 다른 것을 압도하는 무수히 많은 주석서와 연구서들의 양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신학자들에겐 매우 유명한 예언자에 속한다. 왜냐면 그의 사회비판이 성서의 다른 예언자에 비해 도드라지도록 날카롭고 격렬하기 때문이다.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이 대개 그러한 경향이 있지만, 누구도 아모스만큼의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연구를 이끌어간 것은 비판적 신학자들이었다. 한편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척박한 한국의 신학 풍토에서, 성서 텍스트들에 관한 변변한 학술적 주석서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저술된 주목할 만한 몇 안 되는 저작 가운데 두 권이 아모스서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들은, 내가 보기엔, 민중신학이 당당히 내놓을만한 한국신학의 지성사적 성과에 속한다. 역시 그것은 신학계의 몇몇 지식인들이 체제에 대한 예언자의 비판에 주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모스 예언자는 다윗-솔로몬 왕국이 분열된 이후의 민족사에서 남쪽 유다 왕국 출신의 일개 소목장주였다(기원전 8세기경). 그런데 그가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예언자가 된다. 그리고 그가 예언활동을 벌인 곳은 당시 시리아-팔레스틴 일대의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북왕국 이스라엘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성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왕의 성지인 베델에서 하느님의 신탁을 선포한다. 고성장 시대를 맞고 있는 여로보암 2세의 정부를 향해, 발전 일로에 있는 이스라엘의 정치권을 향해 아모스는 대중의 꿈을 배신한 정치를 고발한다. 정의를 팔아먹은 대신 얻은 발전을 저주한다. 그런 점에서 유신 체제의 성장주의 정책을 비판하던 몇몇 민중신학자들이 아모스 예언자의 텍스트를 특별히 주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번영을 미화하던 지식인들이 반격을 가한다. 그들은 국가적 발전을 위해서는 범사회적인 총화가 이룩되어야 하고, 그것은 현 체제의 정당화를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 자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국가적 번영이 이룩되면, 사회의 전 구성원이 그 혜택을 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체제의 안전한 구축을 혼란케 하는 그를 기소한다. 그는 모반을 획책하는 자라고 말이다. 그는 체제의 안보를 위협하는 자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거짓 신탁을 증언하는 가증스런 거짓 예언자라고 말이다.

그런 반격을 퍼붓던 대표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아마지야라는 예언자가 있다. 그는 왕실에 고용되어 왕을 위해 신탁을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그런 자다. 요컨대 여로보암의 의미화를 통해 기존체제의 정당화를 위해 일하는 지식인인 게다. 그가 아모스를 향해 안보논리를 내세우며 말하기를, 너는 네 나라로 가서 거기서나 예언을 하라고 한다. 말인즉, 네 조국 남왕국 유다에서 왕실의 안보를 위해 일하는 지식인이 되라는 권고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모름지기 지식인이란 지배체제의 재생산을 위해, 그리하여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그는 이렇게 충고한다. 다시는 이곳에서 말하지 말라, 이곳은 유다가 아닌 이스라엘 왕의 성소다, 라고.

하지만 아모스의 입장에서 이 말은 어패가 있다. 왜냐면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우찌야 치하의 남왕국을 예속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왕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은 팔레스틴 인근 지역의 성장주의적 안보체제의 핵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남왕국 유다뿐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도 대중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걸 그는 문제시했다.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부자인 권력자들은 경쟁적으로 더욱 많은 부의 축적을 위해 권력형비리를 일삼는 현상을 그는 문제시하고 있다. 하느님 제의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음에도, 민중적인 하느님의 규율이 여전히 주류담론 속에 살아 있음에도 그 의미를 국가의 번영이라는 데로만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제의 현상을 그는 문제시하고 있다. 번영이라는 미사여구 속에 은폐된 대중의 고통을 그는 증거하고 있다.

확실히 이것은 아마지야 같은 체제 지향적/수구적 지식인은 미쳐 보지 못한 부분일 게다. 여기서 국가적 필요에 의해,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으로 인원 감축 얼마 얼마를 발표하는 정부관료의 담담한 얼굴이 겹쳐진다. 뼈 속 깊은 곳이 저려오는 아픔을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라, 효율성이라는 잣대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마른 가슴의 이른바 관료적 엘리트의 모습이 중첩된다. 성서 시대인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도 그랬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특히 근대의 전문직 중심의 분과학문적 체계는 바로 이러한 도구적 기술지배의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와 연동되어 서로를 규정짓고 강화하면서 현대(contemporary) 사회의 특성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모스 같은 반체제 지식인의 증언/고발이 필요하다. 민중신학이 지식인의 과제를 증언이라고 외치는 심정은 주류 ()학계, 주류의 지식사회의 담론 속에 바로 고통의 수사학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신학자들, 나아가 민중론을 주장하는 이 땅의 많은 지식인들은, 아모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하느님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네 아내는 이 고을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 딸들은 칼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남이 측량하여 나누어 가지고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게 되리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도 사로잡혀

조국을 떠나게 되리라.

아모스서 7,17

 

아모스가 보기에 이스라엘 국가는 하느님의 정의를 배신했다. 그것은 여로보암 정부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했고, 따라서 하느님의 결정적인 심판의 칼날을 벗어날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어떠한 자비의 대상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잔인하게, 잔인하게 저주를 받든 일만 남아있을 뿐!’

이것은 선동의 정치 담론이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몇 년 전 읽은 베링톤 무어(Barrington Moore, Jr.)의 책에서, 민중혁명이 급진화되고 범사회적인 규모의 체제비판으로 전개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대개 지식인의 선동의 정치의 소산이라고 한다. 아모스의 이 극언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효과를 기대한 언술전략의 흔적이 아닐까? 아무튼, 그가 의도했건 아니건, 그의 고발/증언의 정치는 선동의 정치와 결합되어 있다. 요컨대, 이것은 한 고고한 지식인의 고독한 외침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대중적 반향을 야기할 충분한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론이 설정하는 지식의 과제를 민중적 사회운동을 지원하고 정당화하는 데 두는 형태의 담론으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하여, 민중신학/론은 이제 운동의 지식또는 변혁의 지식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칼 맑스의 말처럼, 세계를 해석하는 지식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는 지식으로의 전개. 이런 맥락에서 고난의 수사학은 동시에 해방의 수사학이 되며, 지식인은 이러한 두 유형의 수사학을 결합시키는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담론체계를 구성하는 과제를 짊어진 담론의 전문가가 된다.

 

20년 수련한 손노동자에 비해 20수련한(?) 지식분자인 나는 세상 살아가는 지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 수련 과정에서 만난 여러 아모스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나의 갈 길의 좌표로 삼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인생의 좌표에 따라 그리 충실하게 살지 못했으면서도, 앞서도 고백했거니와, 다른 이와의 자존심 대결을 위해 아모스의 얼굴을 도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부끄러운 경력으로 점철되었을지라도, 세월의 흐름 속에, 시간의 변화무쌍함 속에 나름대로 얻은 반성적 성찰이 조금은 있다.

기왕 나온 김에 아모스와 관련된 성서 이야기를 좀더 논하면서 그 얘기를 해야겠다.

성서에 예후라는 사람이 나온다. 아모스 시대 통치권자인 여로보암 2세의 증조부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오므리 왕조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대략 한 세기 동안 지속된 예후 왕조를 창건한 자다. 정변을 일으킬 당시 군부의 총사령관이던 그는 엘리사 예언자의 사주/조언을 받아 민중적 개혁의 기치를 부르짖으며 분연히 일어섰다. 그리하여 정권을 장악한 직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구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피의 숙청을 감행했고, 한동안 공포정치를 이끌어갔다.

민중신학자 서남동이 김지하의 노트 󰡔장일담󰡕을 보면서 ()과 단()의 변증법을 말하고, 그것으로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넘어설 것을 주장한 것은, 그리하여 신과 혁명의 통일을 주장한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가 국가 권력의 중심에 서느냐를 주목하기보다는, 지배권력의 제도와 행태를 닮지 않는 민중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신화적 꿈의 표현이다. 그것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구축되는 세상이 아닌, 선이라는 것을 대표하는 존재가 악을 상징하는 존재를 배제/청산하는 것으로 점철된 세상이 아닌,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긴 해방의 공간에 대한 묵시적 염원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민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압제해온 권력자들의 제도의 논리 속에 흡인동화되는 비극적 결과를 우려한 것이기도 하다.

아모스는 예후의 전례를 알았을까? 아무튼 예후의 청산주의적 공포정치는 불과 반세기 후의 자손인 여로보암 2세에 와서 그 자신이 청산하고자 했던 오므리 왕조의 발전주의를 그대로 빼닮은 국가를 탄생시켰다. 아니 그렇게까지 길게 보지 않아도, 예후 자신의 정치도 오므리 왕조의 배제주의적 정치와 대동소이했다. 그의 정치 개혁의 결과는 대중에게 분배되지 않았고, 또 하나의 전제적 군주제를 보다 견고하게 구축하는 데 전적으로 쓰였던 것이다. 결국, 하나는 전제군주를 자임한 왕의 이름으로’, 다른 하나는 인민의 대변자를 자처한 왕의 이름으로라는 기치만 달랐을 뿐, 양자는 동일한 얼굴의 쌍둥이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서 전승에서 엘리사와, 그의 전임자로 기억되는 엘리야를 비교하게 된다. 이 두 인물에 관한 전승은 너무나 유사해서 명실상부 짝패로서 기억되었을 법하다. 하지만 평생 반체제 인사로서 도망자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엘리야에 비해, 엘리사는 생전에 왕의 국사로서 최고의 명예와 권위를 얻는다. 그런데, 무덤도 없이 죽어간 인물 엘리야는 야훼 신앙사에서 두고두고 기억되며, 심지어 그로부터 9백년이나 후대 인물인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가 그의 분신이었다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반면 엘리사는 그의 당대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런 기억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것은 아마도 예후의 실패의 대한 역사의 냉정한 평가를 그도 함께 짊어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아모스가 어떤 민중운동을 주도했다는 보도는 없다. 사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 그랬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모스의 말이라고 기억된 어떤 신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더구나 앞서 보았듯이, 그에 관한 기억 가운데 선동의 언술이 도처에 있다는 것은, 그의 신탁이 민중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아모스에 말에 관한 기억 가운데, 예후 시대 민중적 지식인이던 엘리사의 실패에 대한 반성의 흔적은 전무하다. 예후 류의 청산주의적 정치에 제동을 걸만한 담론적 반성의 요소가 아모스에게서, 혹은 아모스에 영향받은 민중운동 진영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엘리사와 같은 정치적 승리를 이룩하지 못했기에, 엘리사처럼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맑스주의 문예이론가의 한 사람인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 예술가가 자신이 추구했던 어떤 정치적 실천에 완전히 자신을 동일화시키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이념과 실천을 비판할 위치를 상실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지식인도 그런 점에선 예외가 아니다. 그가 자신의 지식을 도구 삼아 어떤 이념을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지 않고, 그 실천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의 위상을 부여하려 하는 한, 그는 자기 자신과 그 이념 및 그 이념에 기초한 정치적 실천에 대해서는 성찰적으로 되돌아볼 입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그는 이미 자신이 속한 권력 도전 집단의 이해관계 속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습성을 공유하며, 그런 시선으로 타자를 보고 규정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딜레마다. 자신의 지식과 실천을 동일화시키지 않는 자가 어떻게 그 실천의 이념을 위해 자신의 전부인 지식을 헌납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전적인 헌신을 하는 한, 그는 자신에 대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또 다른 류의 지식인이 그들을 비판하는 소임을 맡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몇 년 전 관람했던 흥미로운 영화 한편이 있다. 홍콩의 오우삼이 헐리웃에 가서 만든 영화인 페이스-오프가 그것이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나는 그것을 보면서 평소 생각하던 것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상상력의 한 극점을 읽을 수 있었다.

테러리스트와 그를 쫓는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간의 선악 대결’. 할리웃 식 액션 영화는 대개 이런 상투적인 인물적 전형성을 띠고 스토리가 펼쳐진다. 선과 악으로 단순 분화된 세상에서 양자 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악이 상당한 능력을 발휘해서 선이 어려운 지경에 빠지지만,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러한 갈등은 선에 의해 해소된다는 식의 이분법의 단순 이데올로기적 서사구조가, 잘 알려진 바, 할리웃 식 액션영화의 문법이다. 그것이 이런 류의 영화의 대중적 성공 비법이기도 하다. 반대로 낯설게 하기기법을 통해 드라마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장 뤽 고다르네 멋대로 해라같은 영화는 그렇게 난해하지 않은 구도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영화에 속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런 단순 이분법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영화 페이스-오프는 어느 순간 이런 일반적 스토리의 규칙을 벗어나 버린다.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선악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얼굴이 뒤바뀌는 것이다. 연방수사국 요원이 체포된 테러리스트의 안면 피부를 이식받아 위장함으로써 테러단이 숨겨둔 치명적인 폭탄을 찾아 해체시키려는 계획에서 이러한 기괴한 현상이 비롯된다.

얼굴은 그 사람의 신원을 나타내는 첫 번째 단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알아볼 때 가장 먼저 그의 얼굴을 본다. 요컨대 얼굴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런데 영화의 스토리는 두 주인공을, 선과 악을 각각 대표하는 두 주인공의 얼굴을 뒤바꿔 놓은 것이다. 비슷한 류의 사람이면 모르되, 정반대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얼굴이 서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결코 혼동될 수 없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두 인물이 뒤섞여버린다.

이 영화의 가장 압권은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권총을 겨누게 되는 장면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 순간 쫓기는 자와 쫓는 자라는 정상적 위치는 온데간데없다. 쫓는 자는 쫓기는 자의 얼굴을 하고 있고, 쫓기는 자는 쫓는 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서로를 겨누고 있다. 마치 거울을 쳐다보듯 그들은 서로를 보면서, 아니 저편의 또 다른 자기를 보면서 그 자기를 향해 총을 겨눈다. 이 순간 쫓는 자가 따로 있고 쫓기는 자가 따로 있다는 우리의 상식적 관념은 농락당한다. 이 순간 선을 대표하는 자와 악을 대표하는 자가 각기 따로 존재한다는 우리의 일상적 인식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이 순간 서로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는 것은 상대를 겨누는 것인 동시에 바로 자기 자신을 겨누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지식인의 또 한 부류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영원한 보헤미안이다. 어떠한 사상에도, 어떠한 조직에도, 어떠한 제도에도 영원히 안착할 수 없는 존재다. 오직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파괴일 뿐이다. 부수고 또 부수고, 끝없이 기성의 것을 일탈해야만,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자기 자신을 부순다. 한 다다주의 예술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정한 다다주의자는 다다를 반대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느니, 신은 죽었다느니, 하는 종교계의 한 성찰적 담론들도 바로 그것을 반영한다. 스스로를 유배자처럼 여기면서 항상 제도 밖으로 이탈하는 지식인이다.

바로 이런 유배자적 지식은 선과 악의 이데올로기가 담고 있는 역사의 닮은꼴을 찾아낸다. 가장 증오하는 이의 얼굴이 바로 자기의 얼굴일 수 있다는 가능성, 그 끔찍한 악몽에서 우리 자신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관대했던, 마치 존재론적 특권을 지닌 양 떠벌렸던 스스로를 배제시키기 위해 자학한다. 그리스도교의 출발점이자 핵심 사상인 신의 육화가 의미하는 바도 바로 그렇다. 신의 자기모멸, 그 참을 수 없는 신의 마조히즘(피학성). 신조차도 그런 자기 살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백을 다시금 부각시킨 요한복음서 저자는 바로 그런 문제의식, 세계에 대한 그러한 절망적 인식에서 신학을 출발한다. 그래서 그는 유배자다. 그의 출발점은 니힐리즘인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종착지는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파괴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 목적지 아니 임시적인 정박지라도 찾아 헤맨다. 물론 그는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곳이 하나뿐인지 여럿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는다.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단지 끊임없이 갈 뿐이다. 그래서 그는 유배자인 동시에 순례자. 정처 없이 진리()을 발견하기 위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예측조차 못하면서 그는 하염없이 길을 간다.

 

지식인은 누구인가? 내가 잠정적으로 정의했던 담론 해석의 기술자라는 규정 속에는, 지식인들이 역사적으로 누려온 특혜를 염두에 두고 있다. 언어를 통해 모든 것의 의미를 표현하는 인류 문명이 담론 해석의 기술자를 지식인으로 규정하면서, 모종의 특권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서두에 말한 20년짜리 불루칼라에 비해 20년짜리 지식쟁이는 사실 세상에 대해 터득한 것이 별로 없다. 단지 그보다 화려한 언술을 펼 줄 알며, 자기 행위를 미화할 수 있는 능력을 좀더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그의 신세를 지며, 그의 지혜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 없이는 문화 향유의 표현인 멋진 그림 액자를 집에 걸 줄도 모르며, 언어의 화려한 수사의 상징인 책장을 배치할 줄도 모른다. 더더구나 고장난 보일러를 조작할 수 없어, 품위 없이 이불 뒤집어쓴 채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 불루칼라 노동자의 선생이자 목사로서 행세한다. 이러한 이상한 관계를 느끼면서 그는 지식쟁이로서의 자신의 지위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민중신학의 개척자인 안병무나 서남동의 고백에 의하면, 그들이 민중적 증언자로서의 지식인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게 된 것은 비지식인, 아니 지식소외계층인 전태일의 호명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박사이자 교수라는 최고 품격의 지식인이라는 그 오만한 자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한 노동자가 대신 목숨을 바쳐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태일이 자기들을 구원했다고 고백한다. 1세기 팔레스틴의 기층대중의 한 사람인 예수가 자기 목숨을 바침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고, 또 그것이 많은 지식인의 거듭남의 계기가 된 것처럼, 전태일로 인해, 이들 신학자들은 지식인이라는 금관을 벗음으로써, 그것을 민중예수 전태일에게 돌려줌으로써, 아니 고난당하는 대중에게 메시아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민중메시아론) 지식으로 인해 대학의 강단 속에 박제화된 자신의 몸둥아리를 비로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구원체험을 한 것이다.

지식인은 지식소외대중이 부당하게 주변화되는 체제의 재생산에 공모함을 통해 권위적 보상을 수혜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변화된 대중의 희생을 깨달아야만 자신들의 중심적 지위가 악마적 굴레임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희생이 지식인에게 있어서 메시아적 희생임을 그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내가 분류한 유형의 지식인들은이것이 제대로 분류한 것인지는 차치하고세계의 해석을 두고 때로 갈등하고, 심하게는 생사를 건 쟁투를 벌이기도 한다. 그 뒤에는 누구나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이한, 대중의 세상에 대한 비전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비전이 지식인의 진실한 마음의 표현인 한, 그들이 어느 편에 있든, 이 싸움은 숭고하다.

한데, 후배인 민중교회의 목사 한 사람이 어느 포럼에서 민중 해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 글에 대해서 이런 논평을 가한 적이 있다. 대중을 이용하지 말라, 당신의 주장을 위해 대중을 사지로 몰아가려 하지 말라,. 물론 이 말은 너 홀로 그렇게 말하라, 선동하지 말라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숭고한주장을 위해 너부터 희생할 각오를 하라는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