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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은자들의 부활을 꿈꾸며

이 글은 [당대비평] 15(2001 여름)의 머리글입니다. [당대비평]의 머리글은 잡지 해당호에 게재된 글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시평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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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들의 부활을 꿈꾸며

 

 

 

 

지난 321, 현대 그룹의 명예회장 정주영이 죽었다. 평소 120살까지 살겠다고 호언한 것에 비하면 훨씬 적게 살았지만, 향년 86세라니 꽤나 길게 살다 간 셈이다. 한국에선 당대 최고의 자산가 가운데 하나였고,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부자 축에 끼는 재산가이며, 몇 명인지가 세간에 수수께끼가 될 만큼 자식복(?)도 많은 인물이다. 물론 그가 만든 기업체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그뿐이 아니다. 그의 말 또는 그에 관한 은 더욱 엄청나게 많다. “안되면 되게 하라”,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머리는 쓰라고 얹어 놓은 것이다, 숱한 어록들은 세간에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또 기업가로서의 그의 영웅담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세계 유수의 학자들은 정주영을 연구함으로써 한국적 경제의 독특성을 찾곤 한다. 그래서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만이 간다는 대학에선 이른바 정주영학을 가르칠 예정이라고도 한다. 그가 죽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특사와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33만 명이 조문했고, 사이버 조문객까지 합하면 무려 1백만이 넘는단다. 또 중국 정부 및 유엔 사무총장이 애도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그는 가히 한국 현대사 최고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이 인물은 세계의 폭넓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든 한국인으로서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임에 분명하.

그로부터 꼭 보름 전(37), 동대문야구장 공중전화부스 옆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또 다른 주검이 발견되었다. 이름 없는 한 노숙자다. 그 주검이 보름간 방치되기까지, 쥐들에 의해 얼굴과 손 등이 뜯긴 처참한 몰골이 되기까지 그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존재였다. 2월 한 달 동안 그 공중전화 부스를 이용한 사람은 무려 1,400명이나 되었다니, 산술적으로 7백 명은 되었을 전화 이용자 중 누구도 바로 옆 시신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철저히 익명인 상태였다. 시신이 발견되고서야, 신문에 기사가 나오고서야 그에 관한 이야기가 비로소 작게나마 알려졌다(한겨레신문 2001.3.7).

48세의 노숙자 김종식. 43녀의 자식 중 어느 누구도 중학교엘 보낼 수 없었다는, 찢어지게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소작일과 날품팔이를 전전했다고 한다. 희망을 갖고 뭔가를 해보려면 번번이 세상에 속아 넘어 주저앉아버린 그는 끝내 노숙자로 전락하여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른 채 술로 전전하다, 영양실조와 추위로 가련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정주영의 죽음 직후, 방송 프로와 신문 기사들은 그의 일대기를 큰 비중으로 다루었다. 평소 그에 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과연 대단한 사람이었구나는 경탄이 절로 날 지경이다. 그가 평생 이룩했던 현대 제국붕괴의 날이 머지않은 시점에 죽었음에도, 그의 부음에 즈음한 세간의 기억은, 그리고 나의 기억은 그가 살았을 때보다도 한결 호의에 찬 경의로 물들어 있다.

한편, 김종식의 주검 기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보름 가까이나 기억해내지 못했다. 한 시인(김선우, 한겨레신문 2001.3.19)이 그의 이야기를 되새겨주기까지 말이다. ‘잔인한 4’, 한때는 이게 봄의 적절한 이름이던 때가 있었다. 그땐 누군가의 고통이 나를 아프게 했다. 한데, 그 시절에 비해 오늘은 얼마나 다른가. 비참한 군상의 모습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거나 현저히 줄어든 건 전혀 아니다. 한데 봄의 화사함이 눈이 부시도록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땐 보이지 않던 봄의 색조가 문뜩 눈에 뜨인다. 대신, 아직도 봄을 겨울 혹한으로만 체험하는 이들의 모습이 나/우리의 기억에서 가려졌다.

그리스도교도들은 봄을 부활절을 통해 맞는다. 전통적으로 그 시기가 춘분을 지나 만월 다음 일요일이니, 매년 3월이나 4월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서 봄의 시작일 뿐 아니라 봄의 절정이며 나아가 한 해의 핵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수인 탓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최고의 절기 부활절, 흔히 이해되듯이, (주의) 살아남에 관한 축하라기보다는 고통과 죽음을 특별히 상기시키는 종교적 기억의 장치다. 부활, 되살아남은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의 절절함을 담는 언어다. 고통의 현실이 있기에, 그것이 죽음처럼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고, 그로부터 벗어날 희망이 기대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현실 인식 위에서만 의미를 갖는 종교적 반전의 언어인 게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그런 기억의 장치는 더 이상 우리에겐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도, 봄을 상징하는 종교적 언어 속에서 죽음을, 죽음 같은 이의 삶들을 우리는 망각의 강물 속으로 떠내려 보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도 김종식의 고통과 죽음은 무관심이라는 감옥 안에 은폐되어 버렸다.

최근 어느 시에 관한 평론을 읽으면서, 그 시인의 책 두 권을 샀다. 평론자가 소개한 시 한 구절이 가슴을 후벼놓았기 때문이다. “어귀에 서 있는 서낭나무에서는 열매가 맺혔다/ 나뭇가지에 목매달린 사람 꽤 오래 익혀내던 열매다/ 흔들거리는 그는 그네를 타고 있는 거다 ...”(윤의섭, 나무처럼 서다중에서). 목매달아 죽은 이가 나무 열매로 묘사되고, 그 시신의 흔들거림을 그네 타는 것으로 말하는 시인의 지독스런 냉소의 화살이, 김종식의 주검 등을 기억하지 않은 채로 봄의 화사함을 맞는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던 것이다. 부활절에서 죽음을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나를 사정없이 패대기쳐버린 이 시구에서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던 것이다.

성서의 마태오복음서는 예수의 탄생을 헤로데 대왕의 죽음과 연결시킨다. 한 왕이 가고 대신 다른 왕이 왔다는 뜻이겠다. 메시아 탄생 이야기는 사후적 기억술의 소산이다. 그를 안 뒤에, 그의 삶과 운명을 마음속에 각인한 뒤에, 그의 탄생에 얽힌 정보가 그네들의 소망의 실과 한데 얽혀서 설화로 직조된 것이다. 곧 거기에는 그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연상작용이 얽혀 있다. 한데, 사람들은 예수를 헤로데와 함께 기억했다는 게다. 그런 기억 외부의 사람들에겐 이런 연상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을까.

예수가 태어날 당시 이미 사망한 헤로데는 그로부터 수십년 이 지나도록 당국에 의해 성대하게 치러지는 추모행사를 통해서 세상 속으로 현현한다. 로마 황제를 비롯해서 제국의 유력한 수많은 인사들로부터 경의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그를 기리는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심지어는 대중 사이에서 헤로데를 열렬히 추종하는 부류가 생겨나기까지 한다. 오늘 우리에게 박정희라는 인물처럼, 죽은 지 이십 년이 지나도록 존경하는 한국 현대사의 인물 1로 기억되고 있는 바로 그처럼, 헤로데에 관한 그때 그네들의 기억도 그랬다. 해서 그는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뒤까지도 가장 화려하게 살아있는동시대 최고의 존재였다. 반면 예수는 어떤가. 그는 모든 이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죽임을 당한다. 아니 모든 이들이 그분을 자신의 기억에서 축출하려는 순간 그는 이미 죽임당한 존재였다. 이름 없이 죽은, 시대의 한 반항아였다(한 신학자는 그를 역설적 반항자라고 묘사했다). 그에 관한 기억은 공식 담론 속에선 철저히 은폐됐다. 어떤 텍스트도 그를, 그의 삶과 그리고 그의 죽음을 상기하지 않았다.

너무나 억울한 현실이다. 그렇다. 아직 그를 이렇게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분통 터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바로 이때 그들 사이에서 부활신앙이 생겨난다. 망각되어야할 존재가, 죽어 사라져버렸어야 할 존재가 지배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호령하고 있을 때, 그리고 기억되어야 할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추방당해 잊어지고 있을 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그가 살아있다고 몸부림치는 외침이 바로 부활신앙이었던 것이다. 바로 대중담론의 산물인 복음서들만이, 시대의 주류에서 벗어난 한 주변인들만이 그에 관한 기억을 이렇게 간직해왔을 뿐이다.

도대체 헤로데와 예수를 대비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한데 어처구니없게도, 1세기 로마제국 지배하의 식민지들에서,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한 인물에 관한 일종의 전기로 만들어진 최초의 텍스트 마르코복음서는 그 이야기를 복음’, 기쁜 소식이라고 명명했다. 이리하여 철저하게 망각된 존재, 누구에게도 잊혀진 존재, 그의 처절한 죽임당함은 부활 이야기로 재구성됐고, 그와 더불어 예수는 부활했다. 김종식의 주검을 부활시킨, 그 망각된 이야기를 상기시킨 신문기사처럼.

 

죽음은 이 세상에서 있어야할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리를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이 미지의 다른 세계를 상상하려 애쓰지만, 실상 그것을 알 수 있는 이는 없다. 요컨대 저승은, 적어도 우리의 표현 속에는, 이 세계의 부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사 의식은 죽은 이가 잠시 이승에 찾아와 산 자들과 함께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것은 실상 산 자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미사나 예배 또한 기본적으로 그렇다. 즉 이것들은 모두 죽은 이에게 이승의 자리를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종교적/신앙적 장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이 세상에 자리를 상실한 것이라는 말은 곧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뜻한다. 즉 망각의 존재가 바로 죽은 자라는 것이다. 김종식, 그는 살아 있을 때조차도 사람들에게 기억될 자리를 잃어버린 채 존재했다.

최초의 예수전 마르코복음서는 예수의 부활을 이렇게 묘사할 뿐이다. 그가 무덤에 없다고. 누가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느니, 몸을 만졌다느니, 옆구리의 창 자국이 선연하다느니, 생선을 함께 먹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후대의 가필적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예수 부활의 이야기는 빈 무덤을 여자들이 발견한 것이고, 거기에서 한 미지의 청년으로부터 그이는 갈릴래아에 먼저 가서 있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만을 말하고 있다.

죽음이 이승에서의 자리의 상실을 의미한다면, 심지어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추방된 것을 뜻한다면, 무덤을 이승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돌은 기억의 차단막인 셈이다. 그런데 시신이 그곳에 없다. 그를 찾으려면 무덤에 올 것이 아니라 갈릴래아로 가라는 거다. 그곳은 예수가 활동하던 곳이다. 그곳은 예수의 활동이 아직 기억되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공식 담론이 침묵함에도 그를 이야기하는 대중담론이 살아 꿈틀거리는 곳이다.

신문기사를 통해, 그리고 한 시인의 말을 통해 김종식은 작으나마 의미 있는 모습으로 우리 사이에서 되살아났다. 그리하여 김종식 부활사건이 일어났다. 갈릴래아 민초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그것을 대본으로 해서 쓰여진 복음서를 통해 예수 또한 역사 속에 되살아났다. 그리하여 예수 부활사건이 실재하게 됐다.

당대비평이 담아내려 하는 것도 바로 그렇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시대가, 시대의 위기 구조가 야기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또 그 시대를 비판하며 시대의 변혁을 부르짖었던 우리들 속에 내재된 살해 욕망에 관한 고발이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은 저들 속에서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도 살아있었다고.

얼마나 그 과제를 제대로 해 왔는지 나는 모른다. 아니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자들의 과제며,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의 몫이다. 다만, 얼떨결에 편집위원이 된 나는 지난 책들을, 독자들의 따가운 눈길을 연상하면서 반성적으로 지난호들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기획을 위해 다른 편집위원들 곁에서 노심초사할 일이 남아있다.

이번 15호는 고통에 관해 더욱 힘주어 얘기해보자는 말이 있었다. 언제나의 과제지만, 생명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바뀌는 계절을 경유하며 발간되는 이번호에서 특집으로 다루기엔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가학성에 난도질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별히 되새기고자 했다. 자본에 의해 사막화된 삶을, 그 삭막한 위기의 구조를 읽어보려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죽음 같은 삶을 사는, 이름을 잃어버린 채 자본의 호명에 의해 효율성의 기호로서만 기억되는, 그 저주받은 땅의 자식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는 호소를 담으려고 했다. 그리하여 그를, 아니 우리를 기억함으로써 우리 사이에서 죽은 자들처럼 살아있는 작은 예수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는 것이다.

시대가 세습시켜버린 절망의 구조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 몸부림하는 ‘20대의 이야기를 그네들의 목소리로 다룬 기획산문, 조금 다른 형식이지만 동일한 의지를 담고 기획된 것이다. ‘계간지라는 비중있는 공식적 매체에 좀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담을 기회가 적은 이들의 말을 경청할 기회를 소중히 하고자 함이다. 그런 점에서 연속기획도 우리에겐 뜻 깊다. 지난호에서 장애, 이 은폐된 이야기를 담론화함으로써, 장애우들의 죽음 같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나아가 그들에게 가해진 시대의 가학성의 음모 속에 공조하고 있는 우리를 문제제기해보고자 했듯이, 이번호에선 여성장애를 얘기했다. 그네들을, 그네들의 말을 가두어둔 무덤엔 이중의 돌이 가로막고 있다. ‘장애가 그 하나고 이 다른 하나다. 이중의 돌을 부수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노고에 지면을 제공하는 것은 그네들을 향한 우리의 소박한 경의의 표시이다.

동향속에는 주로 외국에서 일어나는 작은자들의 고난의 현장 이야기 및 그들의 항전 얘기가 들어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연대해야 할 지평을 말하기 위함이다.

 

최근 다시금 즐겨 되내는 시가 있다. 김춘수의 이 그것이다. 시인의 삶이나 그의 시 세계에 대해 별로 탐탁해하진 않지만, 내식대로 읽어 의미를 실어 본다. ‘당대의 가학성에 의해 이곳 저곳에 나뒹굴어 있는 이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 그리고 그 가학성의 세계를 향한 비평적 담론을 유포하는 것. 그리하여 그들을 부활시키고, 그들의 부활에 힘입어 우리가 구원을 얻을 기회를 맞는 것. 이 시 전문을 읽으면서, 나는 당대비평의 과제를 떠올려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