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21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 1995 여름)에 처음 실렸고, 나의 책 [반신학의 미소] (2001)에 재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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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는 세계를 향하여
지구화 시대의 정의(正義)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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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또는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말이 어느덧 유행어가 됐다. 바야흐로 세계상의 어떤 변화가 일고 있다는 공공연한 인식을 시사하는 것이리라. 혹자는 ‘지구촌’이니 ‘세계는 하나’니 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장미빛 내일의 보증서쯤으로 보려 한다. 또 다른 이는 생존경쟁의 세계화, 곧 국가적 경계(boundary)의 해체를 딛고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더욱 치열한 경쟁시대의 도래를 강변한다. “나의 경쟁상대는 (한반도의 국경을 넘어선 존재인) ×××”라는 문민정부 시절 유행하던 캠페인성의 표어는 바로 지구화/세계화에 대한 후자적 입장의 한 결론이다. 이런 입장은 마치, 더욱 치열해진 지구화/세계화적인 경쟁 상황에서 국가경쟁력 강화가 유일한 대안이며, 이것은 곧 국민 하나하나의 경쟁 수준의 향상과 정비례한다는 식의 견해를 설파한다. 아무튼 세계상에 있어서의 중대한 변화가 있다는 공통된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때로는 상반되기까지 한 다양한 관점들이 난립하고 있다. 더욱이 지구화라는 현상 자체와 그것에 대응하는 인간 편에서의 실천이 어떻게 결합했을 때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이 더욱 넓게 혹은 더욱 좁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꺼리다. 도대체 지구화라는 현상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다양한/상반된 예측들이 난무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점에서 새로우며, 또 어떤 점에서 과거와 연속성이 있는 것일까?
지구화를 이해하는 가장 특징적인 개념은 ‘공간’의 문제다. 한마디로 하면 세계의 거리가 단축되었다는 것이다. 수치로 거리를 표시하는 물리적인 공간 개념으로 볼 때 공간의 거리는 고정돼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부산 사람이 과거보러 서울로 걸어 올라가던 시대에 비해 새마을호 기차로, 심지어는 비행기로 올라가는 오늘날의 서울-부산간 거리는 훨씬 단축되었다. 교통의 과학기술적 발전은 세계의 거리를 극도로 좁혀놓은 계기였다. 한편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 장면을 안방에서 TV 모니터로 생생하게 시청하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듯 생생하게 미국의 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는 위성통신 시대의 상황은 교통이 할 수 없는 더 엄청난 공간 축소를 가능케 했다. 이것은 정보의 축적/재생산의 매체인 문자언어를 보완/대체하는 효과를 갖는 극소전자기술의 발전에 의해 매개된다. 1 즉 더욱 많고 더욱 다양한 정보가 기계적인 기호로 변조되어 축적/재현되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ICT)의 혁명에 의해 지구의 거리는 더욱 극적으로 단축된 것이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세계 경제구조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선 금융의 국제화 2가 더욱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경영 통제나 기업 소유 등을 목적으로 했던 과거의 금융대부 형식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단순한 투기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증권 매입 등을 통한 금융 투자가 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하고 있다(포트폴리오 투자; 채무의 증권화). 3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가나 환률의 특성을 빠른 정보통신 능력에 의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또한 생산의 국제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특징지워지는 과거의 생산체계(포디즘)는 지구경제의 자원고갈 및 (대량의 재고품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초래되는) 대량 폐기물의 문제를 항시적으로 내포하고 있는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구 각 지역/지방 4의 자원상황이나 소비상황 및 기호(嗜好) 형태 등을 상당수준 포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리고 생산라인이나 유통체계의 유연하고 신속한 변형이 가능해지게 됨으로써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특징지워지는 유연적 생산체계(포스트포디즘)가 새로이 중요한 비중으로 대두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의 세계화는 동시에 지방화(localization)를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비단 자본의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즉 공간확장으로의 운동은 공간축소로의 운동과 상반된 현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5
한편 이러한 자본의 세계적 이동은, 이제까지 자본의 비호자인 동시에 통제자로서 기능해 왔던 국가의 감시망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여기서 국가 행위를 대표하는 정부와 자본 간의 관계 재설정이 필요해지게 된다. 그런데 국가의 감시망을 넘어선 여러 행위자들의 행위가 경제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것은 국가를 매개로 해서 형성된 국제적 혹은 국내적 관계의 전면적 재설정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자본가 세력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회세력간의 신사협정의 결과물인데, 이제까지 이 제도는 주로 국가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형성 발전되어 왔다. 그러므로 공간확대/공간축소로의 관계 재설정 운동은 기존의 민주주의 제도들의 효용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변화된 공간 환경에서 재구성된 다양한 사회세력들 간의 또 다른 신사협정을 필요로 하며, 그 결과에 따라 지구화 시대 민주주의의 미래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일 수도 있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화 시대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관계 재설정이라는 과제를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관계’라는 개념에 대한 보다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얼핏 중립적인 진공상태의 용어처럼 보이고, 그러므로 끝없는 우유부단함으로 우리를 몰고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관계’는 어떤 특성으로 구현되어 왔으며, 그것에는 어떠한 사회학적 함의가 포함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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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사회 제집단간의 의사소통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다양한 사회적 의사소통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연결망(사회적 연결망; social networks)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포함하여) 국가가 형성된 이래 의사소통은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집단의 의사는 과잉표출되는 반면, 다른 사람/집단의 이해는 과소표출되어 소통관계를 맺는다. 고대국가 시대의 벽화에 종종 나오는, 통치자는 크게 묘사되고 신하나 평민, 노예 등은 작게 묘사된 그림은 바로 이런 의사 표출의 불평등한 크기를 시사한다. 이런 불평등한 의사소통 관계를 권력관계라고 부른다.
근대적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권력관계는 이원적 의사소통의 구조를 이룬다. 즉 ‘전통’에 의한 의사소통과 ‘폭력’에 의한 의사소통이 그것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감시체계’를 형성하는데, 전자가 사람들의 일상의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면, 후자는 정치적(체제적) 삶의 영역과 연관된다. 여기서 이 두 영역은 거의 모든 경우에 분리되어 있다. 전자가 주로 가족이나 촌락공동체 등 ‘정서적 결속감으로 묶여진 협소한 공간’(미시공간/지방)에서 작동하고 있었고, 이때의 불평등한 의사소통은 주로 남녀간, 세대 간의 가부장주의적 관계에서 이루어졌다면, 후자는 주로 도시와 촌락간의 관계의 문제로서, 수탈계급과 피수탈계급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요컨대 수탈계급의 폭력적 권력에 의한 의사소통은 결코 일상의 영역에까지 미치는 의사의 총화(실질적 총화)를 이룰 수는 없었고, 단지 체제의 수호라는 차원에서 거시적인 총화(형식적 총화)만을 가능케 할 수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근대의 도래는 국가라는 경계 내에서 일상의 영역과 정치적 삶의 영역(체제의 영역) 모두에 걸친 권력 자원을 독(과)점한 세력(들)의 등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세력은 끊임없이 거시공간과 미시공간으로의 팽창과 압축을 시도하여 자신의 의사를 과잉표출하려 하는데, 주로 팽창의 전략으로는 폭력이 사용되고(제국주의/식민주의), 압축의 전략으로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도덕, 이데올로기, 규범 등의 재구성이 시도된다. 6 그러므로 근대의 국가는 한편으로는 대외적으로 군사력 팽창주의를 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대내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포섭하는 정교한 감시체계의 구축을 지향한다. 이러한 감시체계로 근대 이전시대의 ‘전통’이 했던 역할이 근대에 이르면 ‘지식’에 의해 대체된다. 7 이때의 지식은 ‘(근대적) 합리성’으로서 자신을 포장하는데, 이것은 ‘비합리’로 낙인찍힌 것/사람을 격리시키는 배제의 원리를 함축하고 있다. 여기서 이른바 ‘합리적’인 지식은 대상을 사체死體 해부학적으로 정교하게 규정하고, 8 단 하나의 진리를 전제하면서 이것에 의거해서 대상이 어느 정도 유사한가에 따라 9 진화론적으로 분류하고 등급화한다. 이러한 해부학적인 정교한 지식은 전문가 집단을 필요로 하는데, 그러므로 이들에 의해 발전하는 이른바 합리적인 지식, 그리고 이 지식의 사회적 의사소통의 결정체인 사회적 제도, 관행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좀처럼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하면서도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그 원리에 스스로를 교정케 하고 내면화시키는, 10 이른바 은폐된 지식인 것이다. 한편 단선적인 진화론적 가치는 단 하나의 진리체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적이다. 즉 근대는 권력과 ‘합리적’ 지식이 연계됨으로써 일국가적 단위에서 일상의 영역과 체제의 영역을 통합하는 의사의 총화(실질적 총화)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말한 것처럼 근대 국가의 거시공간으로의 팽창과 미시공간으로의 압축을 향한 끊임없는 운동은, 한편으로는 근대적인 권력의 활동공간인 국가라는 경계를 필요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경계를 해체한다. 11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지식이나 제도, 관행 등도 이러한 공간운동의 고도화 과정에서 파편화되고 분산화되며, 12 이것은 다시 (일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의 통합 경향과 변증법적으로 연관됨으로써, 지식이나 제도에 있어서도 지구적 차원의 유연성이 더욱 커진다. 이것은 근대적 권력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는 관계의 전면적 재설정을 요청하는 조건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재설정 조건은, 개인의 일상적 삶 속에 개입할 여지를 갖지 못하던 근대 이전적 권력의 한계를 공간운동을 통해 돌파한 근대성(Modernity)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포스트근대성(Post-modernity)의 조건은 탈근대 또는 근대해체적 조건이 아니라 근대성의 철저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구화라는 역사적 관계 재설정 조건에 권력과 연계체계를 이루며 역사의 노른자위를 선점한 지식은 포스트근대적 지식, 즉 근본주의적인 합리성의 지식이 아니라 유연성의 지식인 것이다. 요컨대 지구화라는 역사적 조건은 근대적인 의사소통의 총화/획일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포스트근대적인 유연한 의사소통체계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러한 유연성의 지식으로 포장된 새로운 역사적 조건의 근저에는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의한 의사소통의 굴절/왜곡 현상이 국경을 넘어 밖으로는 지구적 차원에까지 그리고 안으로는 지방적 차원에까지 보다 철저하게 보다 은폐적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지구화 시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정의 문제의 요체는 의사소통의 굴절/왜곡의 원인인 권력관계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구화 시대의 권력해체적 실천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과 동시에, 권력비판적인 성서 읽기를 시도해 보는 것은 하느님나라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지향을 ‘지금 여기’에서 육화하려는 전략적 실천의 한 실례가 될 것이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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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11장의 연속되는 이야기는 권력과 문명에 대한 하나의 신학적 사회비평이다. 이 민담군은 J 문서에 속하는 것으로, 인류 문명과 그 문명의 주역인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때로는 다소 냉소적인, 경우에 따라서는 암시적인 비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J 편자가 다윗 왕국 번영의 최절정기를 구가하던 솔로몬 왕정의, 혹은 (그보다는 더욱 개연성 있는 가설로 보이는) 그 찬연함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왕국 분열로 말미암아 역사에 대한 낙관보다는 추잡한 현실이 보다 두드러지게 느껴지던 분열왕국 초기의 다소 혼돈스럽던 시기에 남왕국 유다에서 활동했던 한 사가였다는 사실은 그의 문명과 권력에 대한 비평의 시사점이 구체적인 역사성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2~3장의 창조-타락 이야기 14는 ‘창조’보다는 ‘타락’에 초점이 있는데, 여기서 중심 소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다. 이것은 곧 ‘분별지의 원천’를 상징한다. 아담(’ādām)은 ‘땅’(아다마; ’adāmāh)을 경작하는 자였고, 시내 같이 소박하게 흐르는 물과 친숙한 관계에 있는 자(〈창세기〉 2,10~14), 곧 (대하의 관개시설의 관리자 15가 아니라) 소박한 농민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창조를 실천한 하느님처럼 노동하는 자인 그는 농민의 지혜, 생활지혜로서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것들의 ‘차이’를 볼 줄 알았고, 그래서 그것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준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그것들을 등급화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인간보다 못한 피조물, 남성보다 못한 여성, 자유인보다 못한 노예 등. 이것은 정결한 것이고, 저것은 덜 정결하고, 어느 것은 지극히 부정하고 ... 등, 대상물 하나하나에 세목화된 정-부정의 가치를 일대일 대응시키는 지혜. 그것은 곧 ‘배제의 논리’였다. 모든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 엄청난 일을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할 수 있으랴. 여기서 아담은 신의 지혜를 모방하려는 고대의 왕 같은 존재와 동일화되고 있다. 이것은 불평등한 의사소통, 권력에 의해 곡해된 억지 총화의 상황을 전제한다.
그의 아들이자 형제 살해의 주인공 카인은 이런 ‘차이의 등급화’ 논리, 배제의 논리의 충실한 노예였다(〈창세기〉 4,1~16). 역설적이게도 저주받은 그의 후예들은 찬란한 인류문명의 주역들이다(4,17~26). 직업의 분화를 이룩했고, 철기와 청동기를 사용한다. 이것은 도시의 문명이고, 귀족들의 문명이다. 그렇기에 이 찬란한 문명의 주역은 동시에 잔혹한 폭력의 주역이기도 했다.
아다야, 실라야,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아, 내 말에 기를 귀울여라.
나를 다치지 말라. 죽여 버리리라.
젊었다고 하여 나에게 손찌검을 하지 말라. 죽여 버리리라.
카인을 해친 사람이 일곱 갑절로 보복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체는 사람은 일흔 일곱 갑절로 보복받으리라.
―〈창세기〉 4,23~24(라멕의 노래)
J 편자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전환을 꾀한다. 느닷없이 셋과 그의 후손이 언급된다. 그리고 이들의 한 사람에게서 야훼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창세기〉 4.25~26). 그것은 희망의 전조다. 찬란한 문명, 그리고 그 문명의 잔혹성이 이 세계를 내리누르며 격동하고 있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희망의 서광이 빼끔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셋은 기실 폭력으로 인해 숨을 거둔 아벨의 부활체다. 폭력으로 난자당해 땅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있는 그의 시체에서 울려나오는 아우성 소리(4,10)의 결정체인 것이다.
2~11장까지 연속되는 이 민담군이 6,1~4의 이야기에서 소단락으로 나뉜다.
땅 위에 사람이 불어나면서부터 그들의 딸들이 태어났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그 사람의 딸들을 보고 마음에 드는 대로 아리따운 여자를 골라 아내로 삼았다. ... 세상에는 느빌림이라는 거인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옛날부터 이름난 장사들이었다.
―〈창세기〉 6,1~4
천상적 존재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 거인들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바로 고대의 영웅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고대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다시 말하거니와 여기서 사람들의 크기는 지위, 권력, 사회적 의사소통의 과대표출 능력을 시사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계의 존재들과 결합한 결과로 나타난 인간들은, 그들이 영웅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천상적 존재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육’에 불과한 존재임이 분명해졌다(3절). 그런데 여기서는 구체적인 사람이 거명되지 않는다. 사회 전 영역에, 모든 인간들 사이에 깊이 개입되어 버린 권력 일반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모든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죄악에 대한 신의 정죄, 권력의 그물망에 갇힌 인류의 운명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6~9장).
이렇게 권력에 대해 냉소와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J 편자는 그 마지막에 바벨탑 이야기를 넣는다(11,1~9).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던 시절에 인간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 했다는 우화다. 그런데 이 탑을 쌓는 주체는 ‘도시’ 건설의 주역이다. 그들의 건축술은, 농촌의 그것처럼 천연 그대로의 돌로 쌓고 그 사이사이를 흙으로 채워 넣는 식과는 사뭇 다르다. 가공한 돌을 사용하고, 흙 대신 역청을 사용한다. 이로써 내구성 있는 대형 건축물들이 세워지게 된다. 또한 그 건물들의 외양에서 위엄과 미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위대한 문명’의 역사가 도래한 것이다. 요컨대 인류 문명의 찬란함의 극치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곧 신의 경지였으며, 그만큼 인류 문명의 숭고함을, 낙관적인 인간관 세계관 문명관을 상징한다. 성서는 이 ‘위대한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 부른다. 주전 이천 년대 고대 세계의 심장부였던 바로 그 이름으로 말이다. 그 한 가운데 세워질 탑은 이들의 건축술, 이들의 문명의 결정판이다. 이것은 안보의 상징이고, 사상 신앙 신념의 총화의 표상이며, 그러한 세계의 중심을 추구한다. 이 탑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하나가 되고, 의사소통의 통일이 구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 통일, 이 찬란한 문명, 이 웅대한 건축물이 구현하고 있는 것은 기실 모든 이의 바램의 집약물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바벨의 위대함’을 위해 동원된다. 아니 그보다는 필시 이 건설에 동원되는 것이 자신들의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게다. 때로는 사고로 다치고, 혹은 불구자가 되기도 하며, 심지어는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하면서도 말이다. 그것은 극소수의 사람들의 생각 사상 염원이 다른 모든 이의 그것들을 과대대표함을 의미한다. 성서가 말하고 있는 ‘가공한 돌’, ‘역청’, ‘도시’, ‘바벨’ 등의 용어(3・9절)는 이 총화, 이 소통에 ‘권력’이 개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권력이 한 시대, 한 사회의 의사소통, 바람의 총화를 이루는 매개체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탑은 ‘말이 막힌 세상에서 권력을 통한 의사소통’ 방식, 의견의 총화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소통, 이 형식상의 총화는 한 순간에 해체돼 버린다. 바벨의 탑은 더 이상 아무에게도 총화의 상징일 수 없게 된다. 이 탑의 위대함을 위해 강제 동원된 모든 이들은 각기 자기의 언어로 말한다. 자신만의 이해관계가 담긴 언어, 자신만의 구체적인 삶, 경험을 표상하는 언어로 말하게 된 것이다. 과거 곡해된 총화의 시대에 지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말을 하는 데만 몰두해 있다. 옆 사람을 돌아볼 새가 없다. 다른 이에 대한 배려는 곧 자신의 손해를 의미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쨌든 그리하여 바벨의 탑을 세우려던 주체들의 권력을 통한 총화의 꿈은, 인간 위대함의 열망은 일시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 세상의 역사에서 무수한 제국들의 권력을 통한 꿈처럼 말이다. 남은 것은, (비록 그것이 곡해로 귀결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총화를 향한 가치, 사상, 이념도 모두 다 실추해 버린, 인간의 추악함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런 세상뿐.
바벨은 권력과 탈권력(powerlessness)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시기의 권력에 의한 총화, 불평등하게 곡해된 의사소통의 암울함을 지적한다. 동시에 바벨은 권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애매해져 버린, 권력이라는 그물망에 휩싸여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새도메저키즘(Sado-masochism) 시대의 탈가치, 아니 몰가치적인, 단절된 의사소통의 혼돈을 희화화하는 역사의 패러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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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라는 역사적 조건은 근대적 국가라는 경계 안에서 이룩된 무수한 의사소통의 결과물들을 해체한다. 비록 근대적(합리적/근본주의적) 지식-권력에 의해 왜곡된 것이긴 하더라도, 그 속에는 탈권력 상태의 대중들의 숭고한 피자국이 어린 유토피아적 사상 신념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지구화라는 조건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전부 먹어치워 버린다. 여기에 정의正義의 위기가 있다. 그런데 지구화라는 역사적 조건은, 보다 근원적으로 보면, 근대성의 공간 운동이 더욱 첨예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 지구적 차원으로 근대성이 확장되며, 지방적 차원으로 근대성이 정교화된다. 이런 점에서 지구화는 근대성의 철저화 조건이다.
근대는 권력이 보다 넓은 영역으로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영역으로 파고들 수 있도록 하는 공간 운동의 장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근대성의 철저화 조건으로서의 포스트근대는 불평등한 의사소통의 결과물인 굴절된 권력관계의 정교한 그물망을 우리가 사는 세상 구석구석에 쳐 놓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포스트)근대적 세계는, 권력에 의한 의사소통의 총화가 지배적이든 아니면 그 모든 총화의 논리가 다 해체돼 버리고 권력의 그물망에 온통 사로잡힌 또 다른 유형의 의사소통이 지배적이든 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 곧 ‘바벨’인 것이다.
이런 정의의 위기의 시대에, 바벨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권력에 의한 일체의 총화에 대해 저항하는 자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가치의 해체를 지향하는 지구화 시대의 문법에, 타인에 대한 무배려/무관심을 바탕으로 하는 지구화 시대의 방향 잃은 해체성에 몸을 내어 맡기지 않는 자, 더 나아가 그것에 저항하는 자이어야 할 것이다. □
- 문자 이전 시대의 정보 축적/재생산의 매체는 ‘기억’이었다. 이것은 종종 운율에 따라 효과적으로 저장되었다. [본문으로]
-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란 경제‧정치‧문화 등 사회 제측면에서의 총체적 차원에서 국가간, 지역간, 지방간, 그리고 국민간, 지역민간, 지방민간의 상호의존 관계가 심화되는 추세를 말한다. 인류 역사상 이런 추세가 맹아적으로나마 구현되던 가장 초기의 실례의 하나는 알렉산더 이후의 헬레니즘 제국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화가 본격화된 것은 근대 이후이다. 이런 국제화의 연속선상에서(대략 1970년대를 기점으로) 또 한번의 도약의 계기가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것을 지구화/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으로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포스트근대라는 관점보다는 ‘근대의 철저화/급진화’라는 관점에서 본다. [본문으로]
- 1985년을 기점으로 포트폴리오 투자가 이전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며 급격히 상승하고 있고(국제통화기금 IMF의 통계) 1980-84년까지 국제자본조달 총액 가운데 국제채의 비중이 40%이던 것이 1992년에는 73%를 차지하게 되었다(경제협력기구 OECD 통계). [본문으로]
- 여기서 ‘지역’region은 국가보다 큰 혹은 그에 준하는 중범위 공간을 의미하며, ‘지방’local은 ‘지방자치제’라는 용어에서 시사되듯이 국가보다 작은, 심지어는 한 마을에까지 협소화할 수 있는 미시공간을 뜻한다. [본문으로]
-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포스트포디즘적 생산체제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점에서 어떤 이는 지구화를 지방화와 합성한 신조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 물론 여기서도 폭력이 활용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중요도는 훨씬 낮다. [본문으로]
- 이때 전통은 미신이라는 이유로 근대적 공간에서 격리되어버린다. [본문으로]
- 그러므로 여기에는 감정/정서가 개입될 여지가 없어진다. 객관을 가장한 무미건조함/냉혈함만이 남는다. [본문으로]
-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멋대로 해석되어 다른 피조물의 착취 근거가 되기도 하며, 또 인간 사이에서도 그 형상에서 멀리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야만’, ‘미개’라고 등급화하여 그들의 경험, 역사, 문화 등의 일체를 폄하하는 논리로도 활용된다. [본문으로]
- 이런 점에서 이때의 감시체계는 그것을 내면화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신뢰체계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 근대 이전 국가들간에는 변경지역frontier zone이 존재했었다. 이것은 행정의 통제가 불분명하고 기복이 심했던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른바 ‘행정의 공백지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근대 국가들 간에는 경계boundary이라는 명백한 공간분할이 존재한다. [본문으로]
- 이것은 지방화와 맞물린다. [본문으로]
- 이렇게 상징의 공간(초공간)에서 해석의 주도권 투쟁을 벌이는 전략적 담론 실천(말하기/글쓰기 전략)를 ‘공간메타포’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 여기서 2장의 창조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타락을 설명하기 위한 예비 진술의 역할을 할 뿐이다. [본문으로]
- 고대이집트나 고대메소포타미아에서 이런 이는 곧 왕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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