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 1993), 25~32쪽에 게재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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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감의 극복과 화해
적대감 극복의 현실적 표현방식으로서의 화해
1
이른바 ‘문민시대’가 도래하였다고들 한다. “우리 역사에서 이만큼 ‘건전한’ 정부가 있었던가”라고 반문하는 어느 ‘여성’(與性) 학자의 말이 상당히 개연성 있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화해’니 ‘적대감의 해소’니 하는 말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는 와중에서 새로 출범한 학생단체의 몇몇 집회에서는 이른바 ‘폭력적’ 시위가 있었고, 급기야는 시위현장에서 경찰 한 사람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언론들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 과격세대’의 시대착오적 자세를 비난하는 분위기다. 시대가 정말로 변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이런 주장은 오래 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것이어서 낯설지 않다. 이런 견해의 배경에는 ‘과격 이데올로기’란 ‘세대의 문제’라는 입장이 깔려 있다. ‘더구나 지금은’이라는 두 마디의 말은 도마 위에 올려진 이(들)의 심장에 소름을 돋게 한다.
한편 다소간 후퇴한 듯 하지만 여전히 민중운동권은 ‘문민시대’의 ‘개혁’(아니 ‘개핵’) 분위기로도 ‘원인 무효’ 선고를 내리는 데에 혹은 전향적으로 그렇게 가리라고 믿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우리시대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요체는 세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과 ‘민족’에 있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물론 이 주장 역시 ‘문민시대’ 이전과 이후를 관류한다.
‘많이 변했다’는 일반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적대’가 무시할 수 없는 실체로 존재한다. 그리고 위에서 보듯이 그로부터 파생된, 혹은 적대와는 별개의 허위의식으로 나타난 적대‘감’이 여기저기에서 옛날처럼 표출된다. 적대의 실체가 있고 적대감이 존재하는 세상, 그러나 적대‘감’의 극복 내지는 해소가 절박하다는 믿음이 시대의 대세인 세상. 이것이 ‘문민시대’의 사실주의적 묘사가 아닐까? 나는 바로 이런 상황을 베드로전서에서 본다.
2
베드로전서는, 신약성서 전체를 통해서, 가장 현실주의적 입장이 두드러진 문서에 속한다. 이 책은 ‘현실로 존재하는 사회적 조직체로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존속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둔 실천’이라는 문제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비슷한 시대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그리스도교 문서인 요한묵시록과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요한묵시록과 베드로전서는 모두 강한 묵시사상적 영향 아래 있다. 그리고 체제로부터의 박해 아래 놓여 있다는 점에서도 서로 동일한 배경을 갖는다. 하지만 요한묵시록이 현실적인 체제인 로마에 대해 전면적이고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데 반해, 베드로전서는 해소할 수 없는 로마에 대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적대감의 공격적인 표현을 억제하고 이를 ‘잠정적 화해’라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잠정적’이라 함은 그(들)이 묵시적 세계관, 즉 조만간에 도래할 종말의 때를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법을 준수하기는 하되(2,13.17), ‘나그네’(1,1; 2,11)의 마음으로써만 현실과 해하고 있다는 것을 지시하고자 함이다.
변두리 국경지역 팔레스티나로부터 전수된 애초의 전승은 혁명 전야의 시대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1 그러나 비교적 안정된 체제의 로마 제국의 한복판에서 과연 이런 시대인식은 그대로 전수될 수 있었을까. 이곳에서는 오히려 ‘로마의 평화’가 현실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어구였다. 전쟁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생면부지의 땅으로 팔려와 짐승처럼 대가없는 살인적인 노동에 동원되고 채찍질당하고 이유도 없이 죽임당하기까지 하는 저 ‘말하는 가축들’(노예)에게 ‘바벨론’(5,13) 2의 존재와 악마는 무엇이 달랐으랴마는, 로마인들의 횡포와 폭력에 시달리고 무자비한 착취에 기름기 나는 것이란 몸 가죽까지 있는 대로 다 빼앗긴 식민 민족에게 어찌 로마 제국이 좋게 보였으랴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평화’로웠고 그 평화의 주체는 분명 로마였다.
바울로는 팔레스티나에서의 애초의 전승을 새로운 지역, 새로운 상황에 새롭게 적용하는 데 있어 탁월했다. 물론 그는 예수님처럼 묵시사상에 고취된 이였으며, 3 예수전승의 핵심을 인간해방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4 그러나 그는 로마와의 전면적 대결을 피하면서(로마 13,1~7), 가능한 실천의 길을 모색코자 했다. 그의 선교는 주효했다. 각 지역에서 그가 세운 교회들은 꽤 성공적이었고, 그의 사후에도 그를 따르는 교회들이 속출했다. 그가 낳은 서신들은 어느새 초기그리스도교회의 권위 있는 문서로서 받아들여졌다.
베드로전서는 바울로에게서 신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바울로 신학의 전용어들인 “그리스도 안에서”(3,16; 5,10‧14), “자유”(2,16), “은혜”(1,10; 4,10~11) 등이 베드로전서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공권에 복종하라’는 대(對) 국가관에 있어서도 바울로를 따른다. 그러나 공권을 부여한 이가 하느님이기 때문이라는 공권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로마 13,1b~2a)가 베드로전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바울로에게서 예수님을 처형했던 공권은 오히려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역설적인 긍정’이라고나 할까. 5 그러나 베드로전서에서의 공권에 대한 태도는 바울로적인 ‘긍정’이 일면 나타나면서도 동시에 ‘냉소’가 깔려 있다. 전자는 ‘선(善)을 행하는 자를 공권이 어찌 억압하랴’는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3,13). 하지만 현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폭력적인 공권 앞에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욕을 당하면 행복합니다. 영광의 영, 곧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무르시기 때문입니다”(4,14)라는 권면이 필요하다. 공권은 선을 행하는 자를 도리어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권에의 복종은 그것이 하느님께서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바벨론’, 곧 하느님이 필요하실 때 그들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필연코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의 칼날을 피할 길이 없는 그런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냉소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에는 다시 한번 ‘긍정’이 나타난다. 바울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말이다. 즉 공권을 부여한 하느님의 ‘자유’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선택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따라 공권에 복종한다는 것이다(3,16).
베드로전서에 의하면 로마는 핍박자다. 공동체는 로마에 적대‘감’을 느낀다. 그런데 로마는 고대 세계의 제국주의의 한 화신이었다. 그들은 친족과 이웃을 착취하거나 종으로 삼음으로써만 이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던 존재였다. 그들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타민족을 정복함으로써만 이 세상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들은 식민 민족의 노동을 전유하고, 식민 민족의 계급분화를 촉진시키고, 식민 민족의 사회적 모순을 증대시킴으로써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그들은 고대지중해 세계의 각 지역에 ‘적대’를 심화시켰고, 새로운 ‘적대’의 씨를 뿌렸다. 여러 식민 민족은 로마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 잡힌다. 팔레스티나는 그 중에 두드러진 하나였다. 적대의 실체가 있고 적대감이 존재하는 세상, 이것이 고대 로마 제국주의 아래 놓여 있던 세계의 모습이었다.
베드로전서는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선언한다. 화해의 상대자가 예수님의 처형자임에도 말이다. 화해의 상대자가 피에 굶주린 사자처럼 68~72년에 팔레스티나의 강토를, 그곳의 민중을 참혹하게 난도질하던 자인데도 말이다. 팔레스티나 민중은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베드로전서는 바로 이런 자들과 ‘화해’한다.
제국의 변두리 팔레스티나는 폭풍의 땅. 그곳 사람들은 늘상 거센 바람에 맞서며 살아왔다. 이 폭풍과의 ‘투쟁’은 이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가운데 누가 폭풍과 타협하려 한다면, 그는 필시 이 난폭한 바람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한복판, 이곳에선 바람도 잔잔하다. 설사 그 바람이 독먼지를 담은 바람일지라도, 그 바람이 있는 곳은 폭풍의 땅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그 바람의 잔잔함을 ‘평화’(Pax Romana)라고 불러야 한다. 이것은 바람이 만든 규칙이다. 이곳 사람들에겐 ‘평화’가 당연한 진리였다. 적대의 실체가 있고 적대감이 존재하는 세상, 하지만 적대‘감’의 극복 내지는 해소가 절박하다는 믿음이 시대의 대세인 세상. 이것이 고대 로마 제국주의의 ‘한복판’이 규정하던 세계의 모습이었다.
베드로전서는 로마에 적대‘감’을 느낀다. 그러나 베드로 전서는 로마와의 ‘화해’를 선언한다. 그것은 적대감의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상황에 따른 적대감의 표현방식의 하나였다. 물론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요한묵시록은 로마와의 타협을 거절했다. 요컨대 고대로마 제국주의의 ‘한복판’이 규정하던 세계의 모습에는 하나의 자명한 적대감의 표현방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베드로전서의 표현방식이 이 상황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표현방식이리라. 단 ‘현실적’이라는 말은 결단코 가치판단을 전제한 말이 아니다. 베드로전서냐 요한묵시록이냐의 문제는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일 뿐이다. 어느 것이 더욱 필요한 것인지, 혹은 둘 다 동등한 것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실터.
베드로전서의 ‘화해’ 선언은 ‘잠정적’이다. 곧 하느님이 세상을 변혁하셔서 로마를 심판하고 새 하늘 새 땅을 도래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다만 ‘나그네’로써만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 땅(고대 로마 제국주의의 ‘한복판’)에서 받은 은사를 실천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3
나는 ‘적대’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적대감의 극복’이라는 말에 다소 간의 시비를 걸고자 함이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적대를 단순한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려 한다. 그러나 적대는 허위의식의 소산이 아니라 그 사회적 원인을 갖는다. 적대‘감’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적대’가 극복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민족적 적대와 계급적 적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갈등 6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것은 적대감의 해소나 화해만으로 극복되어질 것이 아니다. 종종 적대감의 해소나 화해를 말하는 것은 적대를 ‘단순한 차이’로 왜곡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 지연, 학연, 세대의 문제 등은 (현상적으로는 갈등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적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본래 단순한 차이에 불과한 것이지만, 허위의식에 의해 조장된, 그래서 차이가 (‘의사’)적대로 전화됨으로써 적대가 아님에도 적대의 역할을 한다. 이런 요소들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갈등의 현상태이다. 7 그리고 때로 이런 현상태들은 드러나야 할 적대의 문제를 희석화하기까지 한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이런 단순한 차이를 적대감으로 드러나게 조장한다.
문민시대는 우리에게 ‘적대감의 극복’을 요구한다. 우리는 적대감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적대감의 극복을 ‘화해’라는 방법으로써 시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적대감 극복의 현실적인 표현 방법의 하나인 ‘화해’를 우리의 행동지침으로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의사)적대에 기반한 적대감은 단순한 의미에서 극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적대의 요체인 계급적, 민족적 적대는, 적대감의 해소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 먼저 적대의 극복이 모색되어야 한다. □
- 예수님의 탄생시기로 시사되는 주전 4년(마태 2,1) 혹은 주후 6년(루가 2,2)에는 유다 민중의 로마에 대한 적대감이 항쟁으로 폭발하던 시기였다. 한편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후인 주후 40년대 말부터 급속히 확산되어 가던 유다 민중의 저항은 드디어 66년 전면적인 대 로마 항쟁으로 폭발한다. [본문으로]
- 바벨론은 유다 묵시사상에서 제국의 수도, 혹은 제국 자체를 상징하는 가명(假名)이다. 즉 현실 체제의 철저한 심판을 대망하는 묵시 사상에서 현실체제의 중심부인 ‘바벨론’은 바로 악마의 본거지 혹은 악마 자신에 다름 아니었다. [본문으로]
- 바울의 묵시사상에 관해서는 나의 글 〈‘현재의 예루살렘’과 ‘천상의 예루살렘’: 묵시운동으로서의 바울운동〉, 《함께 읽는 신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 1992)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 바울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의인론(義認論)은 바로 인간 해방을 향한 투쟁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이론적, 신학적 무기였다. 이에 대하여는 송창정, 〈권리회복을 위한 투쟁: 바울의 의인론〉, 같은 책 참조. [본문으로]
- 전설에 의하면 그 자신도 이 공권에 의해 참수당했음에도 말이다. 요컨대 바울로가 본 로마권력에의 긍정은 결코 ‘장비빛’ 긍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문으로]
- 나는 ‘적대’와 ‘갈등’을 구별한다. ‘적대’는 모순론적 관점에서 사용한 것이며, ‘갈등’은 랄프 다렌도르프 류(類)의 갈등론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 것이다. ‘적대’는 사회적 생산관계간의 불균등한 전유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갈등’은 원인에 관한 논리적 연관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갈등’은 단지 차이가 갈등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본문으로]
- 이갑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의 현상태는 계급이나 민족의 문제라기보다는 주로 지연, 학연, 세대의 문제로 표출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지연, 학연, 세대의 갈등은 계급과 민족의 문제를 희석화한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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