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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강좌

아직도 밤은 계속되고 - 제2, 제3 이사야 다시 읽기

신아인아카데미 강좌 '예언자 다시 읽기'>(2004 04)의 제4강 강의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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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밤은 계속되고

2, 3이사야 다시 읽기

 

 

 

식민지 시대 역사 개관

 

주전 586/7년 유대의 다윗 왕조의 나라는 사라져버린다. 정복자 바빌론은 게달리야를 통치자로 하는 정부에 이 지역의 자치권을 위임했다. 그가 요시아 개혁 세력의 후손이고, 이 세력의 일관된 국제정책이던 친 바벨론 세력의 기수라는 점에서, 그리고 민중적 예언자이자 명망가인 예레미야가 이 정부에 참여했으며, 정권 직후 야훼 신앙의 오래된 전통이 살아있으면서도 군주제 전통이 미약한 지역인 미스바에 도읍을 정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새 정부가 매우 모험적인 민중적인 국가를 실험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이자 구왕실 세력의 잔당에 의해 게달리야가 암살당하는 것으로 이 실험은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좌절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후 우리는 바벨론 시대의 정치사에 대해 거의 알고 있지 못하다. 추정컨대, 행정구역상 한 세기반 전에 멸망했던 북왕국 지역에 형성되었던 통치세력 휘하로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식민지 팔레스티나의 정치사를 특징짓는 용어로 다중권력행위자사회(mult-power-act society)라고 명명한 바 있다. 즉 거중 조정자가 없는 상황에서 다중적 중소 권력집단이 상호간의 무한경쟁을 벌이는 사회가 바로 이 시대의 정치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강자 부재의 팔레스티나 내부 상황에, 국제정세의 혼미함이 결합되어 형성된 정쟁 상태의 사회로, 정치적 혼란이 추동한 대단히 불안정한 사회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동원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대중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권력해체의 차원에서 볼 때, 다중권력행위자들이 대중의 동원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의 사회적 경향이 야기되었음을 말한 바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사마리아에 대한 분리주의의 고착화였다면, 후자의 경향으로는 지배담론 속에 민중 공시가 더욱 현저하게 스며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 두 요소는 동시대에 편찬작업이 활발히 전개된 정전화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이 두 차원은 우리 성서의 편찬의 주된 정신사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배경 위에서 전개된 성서 텍스트들의 편찬의 구체적인 면면을 살펴보고자 했다. 오늘 다루게 될 2 이사야서3 이사야서는 바벨론 말기와 페르시아 중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일련의 야훼적 실천의 흔적을 담고 있는데, 거의 동시대의 다른 야훼주의적 실천들과 대별해 볼 때(공시적 차원), 그리고 시대의 전개를 따라 추적해 볼 때(통시적 차원) 주목할 만한 양상을 보이는 유형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래 도표는 그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제23 이사야 계열의 야훼주의적 실천은 페르시아 시대의 도전연합 성격을 지닌, 우리에게 알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텍스트들이 종말론적이고 묵시적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는 한 이것은 가장 초기의 묵시적 텍스트로, 즈루빠벨-예수아 연합을 지지하며 등장한 또 다른 초기의 묵시적 텍스트와 비교할 때 유용하다. 물론 이 두 초기의 묵시적 텍스트들은 아직 종말론적 묵시적 요소가 현저하지 않지만, 대중공시가 일정하게 반영된, 혹은 대중의 실천 욕망을 견인하려는 지식인들의 의도가 일정하게 반영된 초기 묵시적 소통담론이라는 사실은 충분한 의의를 갖는다.

 

 

페르시아 시대

느헤미야-에즈라 연합

지배 연합

현실주의적 개혁연합

지배층/상류층 중심

즈루빠벨-예수아 연합

종말론적묵시적 연합

23이사야 연합

도전 연합

헬레니즘 시대

하시딤

마스킬림

에쎄네바리사이

 

 

소자산가 계층 중심

하스몬 왕조 이후

예언자 유형

사회적 비적떼

테러리스트

 

 

기층대중 중심


아래에서는 이러한 제23 이사야서를 검토하면서 그 속에 반영된 야훼주의적 실천의 흔적을 가능한 한 재현할 것이다.

 

이사야서의 구성


[물음1] 다음 두 글은 백범의 글입니다. 여기서 미소에 대한 그의 입장이 두 갈에서 어떻게 바뀌는지를 이야기해 보시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국토를 구분 점령하고 있는 미소 양 군대는 우리 민족을 해방해 준 은혜 깊은 우군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잘 협조하여 왜적의 잔재세력을 철저히 숙청하는 동시에 그들이 회국(回國)하는 날까지 모든 편리와 수요를 제공해야 합니다.

19451219일 임정환국 환영대회에서 백범의 말

(백범어록, 49)

인류 오천 년 역사를 통하여 봉건적 악폐에 시달려 온 우리로서야 누가 또 압박자와 착취자와의 집단체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동경하고 구가할 것이냐? 조국의 완전한 독립과 동포의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서는 삼천만이 단결하여 일로 매진할 뿐이다

남한 단정 반대 전선에 뛰어든 백범의 말

(백범어록, 76)

이사야서40~66장은 각기, 왕국시대인 주전 8세기의 예언자 이사야의 담화 모움집 성격을 갖는 이사야서1~39장과 담화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달리하는 또 다른 단위의 문서로 알려져 있다. 또한 후반후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다시 40~55장과 56~66장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사야서의 후반부에 첨부되어 있는 이 두 책을 각기 2이사야서3이사야서라 부르는데, 2이사야서는 바벨론 유배기 말기에 바벨론 중원에 유배되어 있던 유대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생산된 예언 담론집으로, 그리고 제3이사야서는 페르시아 말기의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유대 재건공동체를 배경으로 하여 형성된 예언 담론집으로 인정된다.

이사야서1~39(8세기 남왕국 유대사회)

 

 

이사야서40~55(바벨론 말기 디아스포라 공동체)

 

 

이사야서56~66(페르시아 말기 유대 재건공동체)



2이사야 다시 읽기

 

[질문2] 2이사야가 말하는 고레스(Cyrus)의 역할을 이야기해 보시오(44,28~45,8 / 참조. 43,14~17; 47,1~15; 48,14).

[질문3] 2이사야가 말하는 구원의 내용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시오(48,20~22 / 참조. 40,1~5; 55,12~13).

 

3.1. 2이사야서유대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죽은 뒤(주전 562), 혼란을 향해 치닫다가 주전 556년 즉위한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왕은 왕권을 위협하는 귀족 세력의 종교적, 경제적 온상인 마르둑 신앙을 격하시켰고, 그 대신 바벨론의 만신전에서 신(Sin)을 최고신으로 부상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제국 각처에서의 도전을 야기시켰다. () 나보니두스 파들이 가시화되는 명분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페르시아의 한 부족의 족장 고레스가 등장해서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2이사야라고 불리는 익명의 예언자는 고레스를 통해 바벨론을 심판하고 야훼의 백성을 해방시켜 줄 것을 선언한다. 요컨대 이 책은 친 페르시아 노선을 취함으로써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을 얻어 보려는 도구주의적 국제주의를 표방한 세력의 신학적 논변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바벨론 지역에서 이러한 신탁은 아직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유대 이산공동체 내부의 분열양상과 관련해서 볼 때, 분명해진다. 바벨론 통치 말기에 이미 상당히 성공을 거둔 유대인들이 제국 내에 다양하게 존재했으며, 심지어 어떤 이들은 제국의 공직에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안정 세력인 이들은, 부상하고 있는 신흥세력 페르시아에 대한 우호적 노선의 반 나보니두스 지하조직이 자칫 민족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동댕이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들이 볼 때, 2이사야 식의 관점은 식민지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축적해왔던 이산공동체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사상이었다. 당연히 이 집단의 지도자는 투옥되었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 같다.

 

주 야훼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

누가 나를 걸어 송사하랴?

겨루어 보자.

.........

―〈이사야서50,4~9: 수난당하는 종의 셋째 노래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 솟아 오르리라.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을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을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었구나.

우리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 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

그렇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폭행을 저지를 일도 없었고

입에 거짓을 담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죄인들과 처형당하고,

불의한 자들과 함께 묻혔다.

.........

―〈이사야서52,13~53,12: 수난당하는 종의 넷째 노래

 

그러나 제2이사야 사상과 운동은 주류권에서 밀려난 여러 박탈계층 중심의 신학 및 운동으로 계승되어졌다. 후계자들과 추종자들은 그의 삶과 뜻을 되새기며 그에 관한 기억을 모았으며, 그를 좇아 삶을 살았다.

이런 현상은 바벨론에 의해 정복당한 국가들, 특히 강제이주됐던 유배민 공동체들에게 반 바벨론 노선의 민족주의적 해방 열망을 고취시켰고, 이러한 열망은 먼 곳에서 풍문으로만 들리는 고레스의 활약상을 마치 메시아적 기다림으로 받아들이는 심정과 결합되었다. 하지만 막바지에 다다른 바벨론 제국은 그럴수록 더욱 사나운 모습으로 저항 세력을 대했고, 제국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3.2. 오늘날 학자들이 2이사야라고 부르는 이는 익명의 예언자로, 그는 바벨론 중원의 한 유대 디아스포라 공동체 내에서 반 바벨론적-친 고레스적 예언담론을 설파한다. 물론 그의 예언 담론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구원/해방의 고지에 있었고, 이것은 유배민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심을 촉구하려 함이었다. 그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음이 분명하고, 필시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런데 유대 디아스포라 가운데는 바벨론 제국 시절에 상당한 성공을 거둔 이들이 적지 아니 있었다. 때로는 제국의 관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업이나 제조업 따위로 많은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바벨론 당국에 의해 특별히 우대를 받았고, 그리하여 그들은 보호자 없이 살아야 하는 유대인 이산 공동체에겐 후견인이 될 수 있었다. 자연 그들은 공동체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필시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겐 유대인이라는 민족의식은 바벨론인이라는 일종의 국제시민 의식과 모순 없이 결합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런 사회생태적 환경은 무수한 정체성 상실자를 낳았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으로 의존적인 위치에 있던 사람들로, 상대적으로 상승욕구는 높으나 기회는 크게 제약되어 있는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많은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의 부유층 인사를 동경한 나머지, 확고한 유대인의 정체성도 상실하였고, 아직 어엿한 바벨론 사람으로서의 지위도 얻지 못한 주변적 존재가 되었다.

2이사야의 구원신탁은 창조신학의 재해석을 통해 수행된다. 2이사야는 말한다.

 

야훼여, 당신의 팔을 벌떡 일으키십시오. 그 팔에 힘을 내십시오. 옛날 옛적에 라합(전절상의 바다 괴물)을 찢던 그 팔을, 용을 찔러 죽이던 그 팔을 일으키십시오. 바다 깊은 물구멍을 말리던 그 팔을, 깊은 바다에 길을 내어 구원받은 백성을 건너게 하던 그 팔을 일으키십시오.

―〈이사야서51,9~10

 

이것은 바벨론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를 염두에 둔 것임이 분명하다. 이 신화에 의하면, 바벨론의 수호신 마르둑이 바다의 신 티아맛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뒤, 티아맛의 시체로 하늘과 땅을 만들고, 그의 파트너인 킹구의 피를 진흙에 섞어 인간을 만들어, 하위신들 대신 제의의 노동을 담당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2이사야는, 우주적 전쟁에서 혼돈의 세력(트홈=티아맛)을 물리친 것은 마르둑이 아니라 야훼라고 한다(51,9). 야훼가 빛과 어두움을 창조했고(45,7), 하늘과 땅과 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40,1226; 44,24).

나아가 제2이사야는 구약성서에 반영된 사상사적 궤적에서 최초로 유일신 신학을 전개한다. 다른 신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우상일 뿐이며, 오직 야훼만이 진정 온 세상사를 주관하시는 존재라는 것이다(40,18~20; 41,6~7; 44,9~20; 45,20~21; 46,1~7). 그리고 제2이사야는 이 창조신학을, 이스라엘 신앙의 토대이자 구원신학의 요체인 출애굽신학과 결합함으로써 완결시킨다(51,10). 요컨대 제2이사야의 창조신학, 구원신학은 정체성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이스라엘을 두고 바빌론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맞서려는 그의 대항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신탁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자 유대 디아스포라 공동체 지도자들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2이사야서에 나오는 유명한 네 편의 종의 노래(I: 42,1~4 / II: 49,1~6 / III: 50,4~9 / IV: 52,13~53,12) 가운데 세 번째와 네 번째 종의 노래는 아마도 제2이사야로 알려진 이 익명의 예언자가 당국에 의해 당하는 억압과 고난을 반영하는 것 같다.


[질문4] ‘세 번째 종의 노래네번째 종의 노래에 나오는 제2이사야에 관한 정보를 열거해 보시오. 그리고 이러한 묘사는 결국 그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인지 이야기해 보시오.

 

3이사야 다시 읽기

 

[질문5] 아래 도표9.4’에서 B-BD-D죄의 내용에서 사회적 위기의 흔적들을 찾아보시오.

 

[질문6] 아래 도표9.4’에서 보는 것처럼, 3이사야서의 구성상의 중심은 60~62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에서 궁극적 구원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4.1. 3이사야서의 편집은 내용상 제3, 4의 종의 노래의 편집과 관련되어 있다. 즉 제3이사야 집단은 세 번째 종의 노래와 네 번째 종의 노래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제2이사야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상 여기서는 종말론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예언적 문서라기보다는 초기 묵시 문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텍스트의 시대 배경은, 이산공동체 내의 상황이라기보다는, 귀환공동체의 재건과정과 결부되어 있다. 특히 여기서 종말론적 비판과 비전의 핵은 성전과 제단의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60,713; 61,6; 62,9).

여기서 3이사야서성전과 제단으로 상징되는 지도층의 부패상을 비난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재건공동체의 지도층은 성전과 결합되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는 성전 제의가 혼합주의에 채색되어 있다고 비난하면서, 그것의 함의가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한 제의를 가리킨다고 본다. 즉 제3이사야는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의 사회 종교적 부패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도표9.4] 3이사야서의 구성

A 외국 민족들에 대한 구원선포(56,1~8)

 

 

 

 

 

 

 

 

 

 

 

 

 

 

B 악한 지도자들에 대한 고발(56,9~57,13)

 

 

 

 

 

 

 

 

 

 

 

 

 

 

C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구원선포(57,14~21)

 

 

 

 

 

 

 

 

 

 

 

 

 

 

D 제의 타락에 대한 고발(58,1~14)

 

 

 

 

 

 

 

 

 

 

 

 

 

 

E 백성의 죄악성에 대한 탄식과 고백(59,1~15a)

 

 

 

 

 

 

 

 

 

 

 

 

 

 

F 심판/구원을 위한 신현현(59,15b~20)

 

 

 

 

 

 

 

 

 

 

 

 

 

 

G 완전히 구원된 백성들에 대한 선포(60~62)

 

 

 

 

 

 

 

 

 

 

 

 

F심판/구원을 위한 신현현(63,1~6)

 

 

 

 

 

 

 

 

 

 

 

 

E백성의 죄악성에 대한 탄식과 고백(63,7~64,12)

 

 

 

 

 

 

 

 

 

 

 

 

D제의 타락에 대한 고발(65,1~16)

 

 

 

+ 지도권이 신실한 자들에게로 이양됨을 예언

 

 

 

 

 

C(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구원선포(65,17~25)

 

 

 

 

 

 

+ 새 하늘과 새 땅

 

 

 

 

 

B악한 지도자들에 대한 고발(66,1~6)

 

 

 

 

 

 

+ 제의로부터 신실한 자의 축출

 

 

 

 

 

A외국 민족들을 포함하는 구원선포(66,7~24)

 

 

 

 

 

 

+ 이방민족들의 이방 선교

 

 

 

 

 

 

 

4.2. 이러한 주장을 펴는 제3이사야 집단은 스스로를 지칭하여 야훼의 말씀으로 인하여 떠는 자들이라고 한다(66,5). 그밖에 제3이사야의 자기표상어로 야훼의 종들(65,8~913~16), “애통하는 자들(57,18; 61,2; 66,10), 경건한 자들(57,1), “아멘 백성(65,15~16a) 등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용어(“야훼의 말씀으로 떠는 자들”)가 에즈라 개혁 당시 팔레스티나에서의 개혁 참여 세력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에즈라기 9,4; 10,3). 에즈라의 혼합주의적 제의 및 관행에 대한 개혁이 선임자인 느헤미야의 사회적 개혁을 보완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에즈라의 지지세력으로 등장한 떠는 자들과 제3이사야서의 떠는 자들사이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더욱이 두 본문이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그러한 상상의 개연성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에즈라 개혁 이후인지 이전인지는 몰라도, 이들은 당국으로부터 배척당한 요주의 집단이었다. 66,5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이들을 파문했다(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 성서는 모두 따돌리다로 번역했으나, 이 단어의 적절한 의미는 파문하다가 적절하다). 즉 재건공동체에서 소속의 권리를 배제했거나 아예 추방했다는 것이다. 본문에 의하면 파문의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단서가 제공되어 있다. 하나는 나의 이름을 부른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 집단이 자신들의 지도자 및 그의 가르침과 연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집단의 강령이 문제시됐다는 것이다. 문제의 제3이사야 집단의 강령을 시사하는 암시들은 본문 여기저기에 산재한다. 이들은 성전제의를 비판하면서, 그 대신에 야훼 제의에 비유대인들고자들도 야훼 계명, 특히 안식일 계명만 준수한다면 성전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더러(56,1~8; 참조. 66,18~23), 심지어 이스라엘 전 족속에게 만인사제직을 부여하고 있다(61,6). 이때 이스라엘은 혈연 중심적 구성체가 아니다. 물론 협의의 이스라엘대신 광의의 이스라엘을 주장하였다고 해도 결국 이스라엘로 환원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 색체를 띤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유대 재건공동체 주도 세력의 강한 민족주의에 대해 약한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사제권을 중심으로 위계화된 계층구조의 신학적 정당성을 교란시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제3이사야 집단의 강령이 불온시된 요체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에 대해 일정하게 비판적이며, 특히 재건 공동체의 사회적 계층구조의 정당성을 일거에 무너뜨리려는 혁명적 발상이 여기서 엿보인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들이 배척된 이유를 시사하는 두 번째 단서는 어디, 야훼가 영광을 떨쳐 너희의 좋아하는 꼴이나 보자는 표현이다. 즉 제3이사야 집단이 야훼가 오직 자신들의 입장만을 지지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당국이 문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의 분파주의적 색체가 당국에 의해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65,13~14을 보면, 이 집단이 (마치 예수의 주장처럼) 종말론적 반전 형식의 어투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 집단이 자신들의 강령을 표방하는 방식이 종말론적, 즉 급진적인 언술 효과를 추구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이 집단의 급진주의적 실천주의가 이 집단을 배제한 또 다른 이유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3이사야 집단은 권력에 의해 비명에 쓰러진 제2이사야를 상징적 중심으로 하는 종말론적 운동 집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주장의 내용이나 주장을 펼치는 언술 형식에서 대단히 급진주의적이었고, 따라서 체제가 수용할 수 없었던 집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즈라 개혁은 이들의 강력한 제의비판을 개혁의 동력으로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반대로 에즈라 개혁은 이들의 해방주의적 염원과 일정한 공통영역을 갖추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을 수용하기에 에즈라 체제는 충분히 해방적인 권력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필시 이들의 주장은 공권력에 의해 배제되고, 지하로 숨어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이들의 주장이 사회적 제도로 실현되기에는 너무 급진적이었을지라도, ‘밤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는 민중의 문제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개혁을 향한 잠재적 목소리로 남아, 웅비할 때를 염원하며 오늘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거인을 꿈꾸는 난장이

 

 

 

야훼께서 오신다 / 사막에 길을 내어라 /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 벌판에 큰 길을 내어라.” 이 시 구절은 이사야서40,3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사막은 불모의 땅입니다. 사람이 거주할 수도 없고 이동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뚫고 길이 가설됩니다. 그것은 야훼가 오는 길인데,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길인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이것을 대로라고 표현합니다.

실은 대로, 적어도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이들이 경험한 대로는 제국의 황제가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떠나는 정복의 길이며 물리친 적의 포로를 끌고 되돌아오는 승리의 길입니다. 엄청난 인원과 수많은 말, 많은 마차들이 위용을 드러내며 오고 가는 길입니다. 물론 이 길 위의 행렬에는 예외 없이 제국의 신()이 앞을 인도합니다.

유대인들도 그 길을 따라 제국 바벨론으로 왔습니다제국의 군대들과 함께. 그들에게 그 길은 이 개선행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비참한 장식물에 불과한 길, 곧 포로의 길이었습니다.

1930년대 박태원의 저 유명한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오전 2시의 종로네거리가는 비 내리고 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끊임없다. ...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그들의 걸음걸이에 역시 피로가 있었다. 그들은 결코 위안받지 못한 슬픔, 고달픔을 그대로 지닌 채 그들이 잠시 잊었던 혹은 잊으려 노력하였던 그들의 집으로 그들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처럼 일본 제국에 식민화된 조선의 백성들은 이렇게 대로에서 피로에 지친 채, “결코 위안받지 못한 슬픔을 갖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파업 손해배상액이라는 74천만 원의 부채에 포박되어 더 갈 곳이 없던 한 노동자는 무려 4개월 동안이나 고공의 크레인 속에 스스로를 유배시킨 채 투쟁하다 위로받을 수 없는 현실의 절망 속에서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12년간의 입시생활을 마칠 무렵의 한 여학생은 수능시험을 치루다 말고 12층 아파트 옥상에서 지상으로 자기 몸을 내동댕이쳐 버렸습니다. 시험의 실패에 대한 가족과 사회의 폭력을 예감한 그녀는 절망을 헤쳐 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헤매다 결국 이렇게 스스로를 포기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대로는 실패한 자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폭력을 체감하는 공간입니다. 이들에게 대로는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는 공간입니다. 이들에게 대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함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는 죽음의 공간입니다.

대로가 상징하는 번영과 발전은 기실 승리한 자들의 전리품에 불과하고, 아직 절망적 실패를 맛보지 않은 자들이 승리를 선망하면서 꿈꾸는 가상 전리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사야서40장의 해방의 상상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되돌아갈 수 없는 길, 불모의 사막으로 가로막힌 길, 절망 이외에는 어떠한 수단도 척살당한 길, 그 곳에 대로가 가설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제국의 대로와는 다른 대로입니다. 왜냐면 포로로 끌려가 억류되게 하는 길이 아니라 포로된 자가 풀리고 억눌림에서 해방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대인은 얼마 되지 않아서 예언자의 선포처럼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조상들이 정착했던 그 곳으로 다시 갈 수 있다는 것은 조상 대대로 전수받은 정체성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정착한다는 것, 항상 거기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집의 조건은 인간에게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 곧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의식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의 백성은 제국의 통치로부터 해방을 얻습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현실이었기에 일본에 협력하면서 점진적인 희망의 가능성을 그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변했던 그 광막한 사막 같은 상황이 기적처럼 사라진 것입니다.

노동해방이나 인간교육의 희망의 조짐은 아직 없지만, 그러한 희망을 선포하는 이들의 가슴 속엔 이처럼 사막을 뚫고 해방의 대로가 가설될 그 순간에 가슴벅차하면서 그 희망을 위해 목숨을 다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의 예언자가 체험하지 못한 해방 이후의 현실, 예언자가 미쳐 상상할 수 없었던 그 현실은 그가 그토록 꿈꾸어오던 희망의 세상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귀환자 집단은 다시 자기 집을 본거지 삼아 대로를 꿈꾸며 달렸고, 제국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어느 정도 대로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식민화된 이들의 꿈을 절망의 나락 속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거인 신의 이야기인 성서를 편찬해냅니다. 그리고 한 성서 연구자의 비판적 독설처럼, 이러한 유대의 신의 역사, 유대주의적 상앙사 속에서 야훼는 실패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목소리를 침묵의 강 속에 밀어 넣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해방된 조선의 대로를 장악한 두 주역은 각기 국사를 편찬합니다. 또 마찬가지로 이 민족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욕망은 오직 하나의 기준에 의해서 그 존재 가치가 결정되었습니다. 이것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욕망의 배제를 정당화했고, 수많은 이들의 비극을 방조해 왔습니다.

해방은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대로의 법칙에 따라 성공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고, 성공을 선망하는 문화에 순응하는 자에게만 환상으로 남겨진 희망의 선물일 뿐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자기 정당화의 담론이 판을 치던 시대에 태어납니다. 통치자 헤로데의 제국은 유대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통합하고 각 식민지역에 대로를 건설하여 모든 유대의 영토를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또 딱히 헤로데주의자는 아닐지라도, 심지어 그를 반대하는 저항투사조차도, 국제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할 것 없이 모두가 예루살렘 중심주의에 열광하던 시기에 그는 탄생했고, 성장했습니다. 이사야서40장의 예언자의 선포가 또 하나의 대로주의로 귀환해 버린 바로 그 시기에 그는 야훼를 향한 질문자가 되어 삶을 수련하고 성찰하였던 것입니다.

루가복음13,24보다 그 정신이 더 잘 보존된 마태오복음7,13~14의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는 이 의미심장한 말씀은 바로 이러한 성찰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분은 수없이 하느님나라에 관해서 이야기했지만 항상 확실한 것을 말하는 대신 비유로만 이야기합니다. 그 분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의 무지를 들춰내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는 것의 내용을 말하라는 추궁 섞인 질문에 딴 척을 부립니다.

안다는 신념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정체성을 끊임없이 뒤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안다는 확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바리사이들이 율법을 은 인간 문명에서 가장 기본적인 두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집은 정착할 곳이 있다는 것이며, 길은 정착한 이들 간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정착한다는 것, 항상 거기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조건은 인간에게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 곧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의식을 선사합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이렇게 해서 탄생합니다. 또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람들은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고 남아도는 것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정체성이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길은 정체성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한 결과물임을 상징합니다.

대중화하여 의인과 죄인을 나누려할 때, 자기들은 하느님이 판정할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는 신념이 그 속에 깔려 있습니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안다는 믿음과 투쟁합니다. 나아가 그는 그들에 의해 구축된 야훼 종교 제도가 앎의 의지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몰래카메라로 뒤덮인 세상, 심지어는 내면까지, 아니 전생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열망으로 가득찬 몰래카메라의 세상, 그런 세상은 하나의 기준에 의해 모든 것을 묶어보려는 대로주의의 욕구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로로 전 세계가 병합되어 가는 지구화 과정의 오늘날의 세상은 이러한 앎의 의지의 능력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라는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습니다. 집을 향한 욕망, 자식에 대한 욕망,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망, 지식을 획득하고 싶다는 욕망, ..., 이 모든 욕망들이 에 종속된 채 성공과 실패가 갈리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실업 상태의 조선의 한 지식인은 대로를 헤매고있습니다. “요사이 구보는 고독을 두려워한다.”는 표현처럼, 대로를 방황하는 자는 자신이 대로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포심을 갖습니다. 그러한 공포심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예수도 대로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곳에도 안주할 곳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자신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의 헤맴은 자발적 헤맴입니다. 그는 진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한 곳에 자신의 집을 택해서 다른 집을 파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배회자로 진리들 간의 쟁투 자체와 투쟁을 벌입니다.

그가 투쟁하는 그곳에는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민중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아래서 위안 받지 못한 채살고 있는 실패자들인 국민/시민/민중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현실을 은폐하는 대로주의와 예수는 일전을 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대로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의 얼굴로 우리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토피아로 가는 길, 하나

 

 

지난해(1998) 말부터 올 초까지 한국 까르푸라는 유통업체에서 노동쟁의가 일어났다. 노조지도위원으로 있는 한 사람을 인사조치한 데서 갈등이 표면화됐고, 계속된 사측의 이유 없는 전직 및 징계, 노조 탈퇴 강요 등의 부당노동행위로 말미암아 발생한 분쟁이다. 심지어 홍보활동 중인 조합원들에게 구사대를 동원하여 린치를 가하기까지 했다.

노동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는 그리 낯설지 않은 상황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열렬한 숭배자들임에도 자신들이 숭배하는 것을 영예롭게 하기엔 부족한 천박한 자본가들의 상투적인 모습이니 말이다. 경멸과 야유를 보내기에도 이젠 지겹다. 이 땅엔 그런 함량미달의 인간이 횡횡하기 때문이다. 혹 함량미달의 자본주의라는 한국적 근대화의 토대탓도 있겠다. 아무튼 우리는 동의하지 않지만, 자본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가장 열렬하게 선전하고 다녀야 할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가장 치졸한 얼굴을 광고하고 다니는 꼴이다.

그런데 이런 되먹지 못한 무수한 기업들 가운데, ‘한국 까르푸가 우리에게 예사스럽지 않게 기억되는 것은, 그것이 국적을 프랑스에 두고 있는 다국적기업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새삼스레 분노가 치솟는다. ‘자기네 나라에서나 그렇게 하지,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이런 못된 짓을 할 게 뭔가, 그런 국제적인 악덕 기업주는 추방해 버려야 해, 아니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 해. ...’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다국적 기업은 한국 국적의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덜 통제를 받는 실정이다. 더욱이 ‘IMF 관리체제이후 가속회되고 있는 지구화의 광풍은 그러한 실정이 개선될 희망을 점점 앗아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백성에 다름 아니라는 자괴감에 빠져버린다.

지난달(19986), 어느 신학 연구자 모임에서 토론회를 가졌다. 발표 원고의 주제는 탈식민주의 시각에서의 성서 읽기에 관한 것이다.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의 태풍과, 1990년대 전반기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격랑 이후,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저항담론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새로운 사조로 많은 사람들은 탈식민주의를 얘기하고 있다. 한국 신학계에서도, 마르크스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냉랭했던 태도와는 사뭇 달리, 이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날 토론회 때에 발표한 이는 한국의 신학계에서 이 주제를 가장 첨예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탈식민주의는 식민지성(coloniality)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식민지성이란 국가간의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비롯해서, 인간 사회에서 다양하게 존재하는 종속의 현실을 문제시한다. 보다 일반적인 말로 표현하면, ‘열등함을 재생산하는 체제(제도/담론)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탈식민주의적 시각은 제3세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심지어는 유럽적인 백인 남성 중심주의에 예속된 미국인이 (인디언, 흑인, 유색인이나 여성 혹은 동성애자 같은) 소수자의 입장에서 자국의 문학, 가령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자를 다시 읽는다든가 하는 것도 탈식민주의적 독서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날 토론회에서는 아주 격렬한 논쟁이 붙었다. 나도 논쟁의 한 편에 가담해서 침 튀겨가며 열변을 토로했는데, 그 논쟁점은 탈식민주의, 즉 종속 관계의 극복을 향한 실천이 민족주의와 결탁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의 문제였다. 발표자를 포함한 한 편의 입장은 이렇다. ‘한국은 오랜 동안 식민지적 종속 관계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을 지배하기보다는 지배당하는 편이었다는 논조다. 그런 점에서 제국주의자들의 민족주의가 불순한 욕구인 것과는 달리, 우리는 식민성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고양시키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한편 내 자신이 가담해 있는 다른 편은, 해방을 위한 전략으로서의 민족주의는 불가피하게 또 다른 희생자를 낳는다고 한다. 희생자 없이 어떤 변화를 이룩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희생자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는 관점과 희생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은 다르다. 또 우리가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제국주의자의 얼굴과 전혀 무관하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 내면에는 제국주의를 증오하면서도 또한 동경하고 있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를 종속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제로 그런 기회가 닿는다면 망설임 없이 제국주의자적의 선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현실은 그런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 자신과 서양의 백인남성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저들에게 민족주의가 핵무기와 같이 위험한 것이라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아닌가? ...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이 식민 지배를 한창 겪고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성서 구절을 하나 인용하겠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사제로, 더러는 레위인으로 뽑아 세우리라.

이사야서 6621

 

식민지 시기였음에도(페르시아 시대) 당시의 국제 정치적 상황은 예속 상황에 있던 많은 군소 종족들이 독자적인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었다. 주지하듯이 느헤미야나 에즈라는 바로 이 시기에 유대인의 자율적인 정치적 결속체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지도자였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자치 정부는 강력한 민족주의를 추구했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구약성서나 외경의 많은 문서들은 바로 이런 민족주의적 색체를 강하게 띠고 있다.

당시 제국주의 세력의 핵은 페르시아였는데, 오늘날 미국이 마치 한국의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동()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적 차원에 걸친 국가간 문제에 외교상의 이득을 추구했던 것처럼, 페르시아도 유대 족속의 민족주의를 국제외교에 활용하곤 했다. 또 미국이 한국의 민족주의를 적절하게 이용하면서도 민족주의를 제국주의적 통합에 장애로 여기기도 하는 것처럼, 페르시아도 유대의 민족주의에 대해 그런 껄끄러움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유대의 민족주의가 반드시 반제국주의적, 탈식민주의적 노선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고, 나아가 오늘 우리의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아무튼 유대의 당국자들은, 그리고 예언자 등 여러 지도자들은 민족주의만이 유대 종족이 살 길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래야만 이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고, 과거의 번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고난을 한 몸에 짊어진 사람들, 특히 과부나 고아 같은 약자들이 진정 하느님의 보호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스라엘 족속은 뭇 민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위대한 신의 백성임이 증명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당국은 민족주의 정책을 강하게 드라이브하게 된다. 먼저 이방인을 추방하고, 이방인과 결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갈라서게 한다. 이방인의 재산권을 박탈하고, 그리하여 이방인의 국정 개입의 통로를 원천봉쇄한다. 이방인과는 다름을 강조하는 종교적 신념체계를 부각시키고, 이방인과는 다른 종교적 의전들을 발달시킨다. ‘이웃이던 어떤 이들이 이방인으로 규정되면서부터 이런 일은 계속되었다. ‘친근했던 이들이 으로 설정되면서부터 이 일은 계속되었다. 이방인, 그리고 그들의 음모에 의해 위협당하는공동체라는 자의식 아래 이 일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야훼종교가 유대교로 변형되어 탄생하게 된다. 귀환공동체인 유대 공동체의 민족적 정체성은 바로 이런 이방인 개념의 발명과 필연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경향에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가 유대 귀환공동체 내에서 메아리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런 문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위에서 인용한 본문이 포함된 3이사야서(이사야서55~66).

위의 인용문에서, 오늘날 학자들이 3이사야라고 부르는 익명의 예언자는 야훼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인 이방인들 가운데서 사제와 레위인을 선별하겠다는 야훼의 신탁을 외치고 있다. 유대인들이 민족주의를 한참 강조하고 있던 차에, 더구나 사제나 레위인에게 있어 이방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불결의 징표로 해석되던 시절에, 그러한 폐쇄된 종족주의를 당국이 폭력을 남발하면서까지 강력하게 추진하던 바로 그 살벌하던 때에, 그는 이방인이 야훼의 사제와 레위인이 된다는, 경천동지할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본문 바로 앞에는, 반대로 유대인에 대한, 야훼의 백성이라고 자임하고 야훼의 말씀을 기리며 산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저주와 심판의 말을 퍼붓고 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말이냐?

모두 내가 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다 나의 것이 아니냐?

―〈이사야서661~2

 

유대 귀환공동체 당국이 사활을 걸며 구축하려 했던 성전을, 유대인의 민족주의적 정체성의 핵심을 이 예언자는 이와 같이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이 모두 야훼의 것이거늘, 야훼의 것과 그 반대편, 야훼의 백성과 그 적들을 나누는 이분법이란 도대체 뭐냐는 주장이다. 요컨대 그는 민족주의라는 폐쇄적인 전략이 도리어 야훼의 인간 해방을 향한 뜻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적 외세로부터 자주권을 얻고, 그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치 정부를 얻어내려는 전략이, 제국주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반 사람들의 일상에서 늘 만나는 나약한 무지랭이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까지도 낳고 말았다는 것에 대한 예언자의 비판인 것이다. 즉 유대의 민족주의는 반제국주의를 주장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또 다른 제국주의자가 되게 했다는 주장이다.

과연 외세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우리 내부의 제국주의적 성향과 분리될 수 있을까? ‘3이사야가 경고한 이런 문제를 우리는 무시할 수 있을까?

지난 1992년에 한 미국인 학자가, 우리에겐 너무나 부끄러운 책 한 권을 출간했다. 과테말라에 진출한 한국인 기업들의 폭력적인 노동 관행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의 노동관행은 지난 1970년대의 평화시장에서의 폭압성을 무색하게 할 정도라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러한 한국 기업들의 관행은 가장 혐오하는 나라로 한국이 꼽히게 하는 주된 동기가 되었다.

과연 우리는 다국적기업 한국 까르푸의 노동탄압에 대해 흥분한 것과 같은 문제의식을 과테말라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대해서도 가질 수 있을까? 혹 문화적인 차이나 기질상의 차이 때문에 효율성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한국 고용주들의 변명을 귀담아들어줄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담론적 관행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약한 타자들을 향해 무심한 폭력을 가하고 있지는 않을까? 3이사야에 의한 야훼의 저주 신탁, “너희가 하는 일과 너희가 꾸미는 모든 것을 끝장내고 말리라.”(이사야서66,17)는 비판으로부터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까? 이 비판은 21세기 세계의 중심이 되리라고 떠벌리는 우리의 시각도 아니고, 야훼 하느님의 대리인이라고 외쳐대는 교회의 시각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들이 우리 자신을 향해 폭발시키는 분노, 바로 그것이다.

 



(null)

 

~토피아로 가는 길,

 


어떤 사람이 우연히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정화시켜주는 강과 그 옆에 화려하게 건설된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에 관해 듣게 된다. 그의 험난한 여정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혹독한 자연의 저주를 받으며, 부하들의 반란에 부상당한 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헤맨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의 주검이 다 된 상태에서 그는 한 야만족들의 주거지 한 가운데 있는 구덩이 속에 포승에 묶인 채로 깨어났다. 겨우 기운을 차린 그는 이 야만족들이 한눈파는 틈을 타서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기실 저들은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을을 빠져나온 그는 형편없이 더럽고 자그마한 개울을 건너 저편 멀리 보이는 반짝거리는 웅대한 도시를 향해 간다. 드디어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에 도달하였다는 벅찬 설레임으로.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도시 안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그는 경탄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 도시를 세운 이들은 바로 신들일 거야.” 라고.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이렇게 중얼거려야 했다. “이 건물들을 세운 신들은 죽었어.” 그리고는 다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이것을 지은 신들은 미친 신들이야.” 라고.

그 얼마 후 그는 이 수수께끼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그가 도시에 이르기 전 건너온 형편없는 개울이 바로 불사(不死)의 강이었고, 말 못하고 멍한 눈으로 사는 야만인들이 바로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를 지은 신과 같은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이 화려한 도시를 지은 뒤, 그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문명의 극치에서 그들이 깨달았던 것은 모든 물질적인 외재적 노력의 허황함에 대한 인식이랄까... 심지어 그들은 그 모든 문명의 총아인 언어조차도 포기했다. “수세기에 걸친 실험을 통해 하나의 교의를 형성하게 된 죽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은 완벽한 인내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냉소를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호세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죽지 않는 사람들의 전반부 줄거리를 요약한 것이다. 지리하고 난해한, 소설의 환상적 묘사를 헤집고 다니다가 겨우 그 터널을 빠져나온 소감은, 작가의 고약한냉소주의에 농락당한 기분이다. 어떤 친구가 술자리에서 내던진 기분 나쁜 이런 말을 연상케 하는 귀결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한 어떤 이가 도달한 자화상이 카이저수염의 독재자였다.

파괴성을 정화하면서 이성적인 진화를 거듭한 인류 문명의 끝에는 최고의 문명과 극치의 선()으로 치장된 유토피아가 있으리라는 것, 그것은 모든 계몽주의자들의 꿈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프랜시스 후꾸야마는, 자본주의의 절정에서 자유민주주의가 편만하게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는 21세기는 역사의 끝이다’, 그것은 바야흐로 자본주의라는, 생명의 물을 공급하는 불사의 강에 의해 펼쳐지는 영원한 유토피아, 자유주의적 세계가 도래하는 시대라고 주장한다. 반면, 자본주의의 파괴성을 극복할 것을 주장하는 우리는, 또 다른 진정한 이성적 진화를 추구한다. 물줄기의 흐름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감싸 덮으면서 굴곡을 마모시킨 끝에 매끈하게 둥근 모양으로 형상화된 자갈처럼, 계몽주의적 진보의 행렬이 역사를 마모시켜 이룩될 유토피아의 꿈.’ 바로 이 점에서 유토피아의 형상에 대한 바람은 다를지라도, 끝없는 진화와 자기 갱신으로 인해 도래할 이상향에 대한 갈망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후꾸야마는, 이상하게도, 서로 닮았다.

그런데 그러한 갈망을 보르헤스는 냉소한다. 오히려 그 궁극에 이르면, 만약 그러한 경우가 있다면, 인류가 지금까지의 진보의 결실을 스스로 파괴하고 말 것이라고. 만약 누군가가 정말로 죽지 않는 존재가 된다면, 그는 사소한 고통의 생생함을 향유하며 죽음을 맛보는 행복한 순간을 갈망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류 진보의 궁극을 표시하기 위해 데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쓴 누군가는 어쩌면 이와 유사한 감각을 이 단어 속에 몰래 담아두었는지도 모른다. 이 그리스 단어는 부정을 뜻하는 (ou)라는 접미어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topos)라는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누군가가 그러한 세계에 도달하려고 그토록 노력하여, 거의 완전함에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순간, 어딘가로부터 계시의 소리가 들린다. “()라고.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바로 이러한 함의를 감추고 있늕니도 모른다. 유토피아적 장소를 건설하려 하면, 그 절정에서 스스로를 해체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장소의 건설장소의 해체의 변증법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누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결코 잡을 수 없는 것이라면, 결코 인류가 향유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성서는 바로 이러한 우리에게 반문한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도대체 어떠한 것이냐고.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나이 산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현재의 예루살렘은 그 시민들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예루살렘은 자유인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갈라디아서425~26

 

여기에서 바울은 두 예루살렘을 대비시키고 있다. 하나는 현존하는 예루살렘이요 다른 하나는 천상의 예루살렘이다. 여기서 천상의 예루살렘이란 하늘에 건설된 예루살렘이라는 뜻이 아니다. 유대교 묵시사상에서 천상, 단순히 공중이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지은 것이 아닌, 인간에 의해 장악된 것이 아닌, 그래서 인간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닌 신의 공간을 말한다. 그래서 천상의 예루살렘이란 하느님의 시간에 이 세상에 도래할 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반면 현존하는 예루살렘은 권력의 공간이다. 누군가 지배하는 이가 있고, 지배당하는 이가 있다. 누군가 권력을 차지한 이가 있고, 권력을 박탈당한 이가 있다. 누군가 자원을 독차지한 이가 있고, 그것을 빼앗긴 이가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차지하려는 역사상의 투쟁은 언제나 승자에게 모든 것을 선사하고 패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는 모습을 띠어 왔다.

마카베오 혁명이 일어났던 때였다.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민중연합이 형성된다. 시리아의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앞잡이 노릇하는 성전 사제귀족들에 대항하여 결성된 민중연합은 목숨을 건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수많은 희생을 뒤로한 긴 항쟁은 드디어 5백년이라는 기나긴 식민지 시대를 끝장내고, 참으로 오랜만에 자주적 민족국가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활짝 웃음을 지으며 이웃을 향해 인사를 건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느님의 나라가 선포되었다.

그러나 승리의 월계관이 민중연합 모두에게, 아니 유대 민족 전체에게 씌워진 것이 아님을 아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카베오 가문의 것이었고, 다른 이들은 또 다른 지배자, 또 다른 권력자, 또 다른 착취자의 아래 놓인 피지배자요, 권력 박탈자요, 피착취자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선포된 하느님의 나라는, 대중 모두의 것이 아닌, 통치자 가문의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천상의 예루살렘은 이 땅에 도래하지만,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는 역설적 신학을 낳게 한다. 그것은 유토피아’, 아니 ~토피아였다. 그것은 장소의 도래, 그 꿈의 실현을 전제하지만, 동시에 장소의 해체를 수반한다. 하느님 나라가 역사에 개입하는 순간은 새로 이룩될 역사의 출발점이지만, 그 나라는 인간이 갈망하는 순간엔 언제나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것으로 존재한다. 그 나라는 곧 위대한 역설이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인간의 진보를 향한 노력으로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면, 누가 그것을 위해 일하겠느냐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 나라가 도래하기를 기도하는 무위의 경건자들처럼 지내는 것이 나은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바로 여기서 신앙의 비밀이 드러난다. 유토피아는 끝없이 자기를 해체함으로써, 끝없이 자신을 유예시킴으로써, 언제나 다시금 추구하게 하는 약속의 공간이라는. 바로 그렇기에 카이저 수염의 독재자의 얼굴이 유토피아를 표상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고, 바로 그렇기에 자유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극치의 결실이라고, 인류가 이룩한 모든 역사의 결정판이요, 그래서 역사의 종말이라고 감히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모든 노력이 감히 완성의 그림자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모두에서 추구함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 나라를 향한 끝없는 도전의 여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앞의 글에서 나는 민족주의를 해방의 동력으로 주장하는 어떤 견해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에게 배제당한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제국주의자의 얼굴을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해방의 동력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 성서에서 의 어법은 종종 그러한 동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에서 신앙의 역동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종종 그 열정에는 하느님 나라, 혹은 유토피아를 향하는 신앙이 결핍되어 있다. 꿈꾸던 장소의 건설을 위한 그토록 열정적인 신앙적 실천에는 그 장소의 철거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국주의자의 그것과 신앙적 열정은 종종 너무나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