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백교회 2014년 8월 10일에 했던 하늘뜻나누기 원고인데 그것을 수정하여 대화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사이너머 - 제2의 종교개혁을 위한 그리스도교 대화공동체>의 설교 프로젝트에서 사용하기 위해 수정보완한 글과 그것을 재수정하여 [공동선] 2014년 09-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공동선 원고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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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에 반대하라
'이것이 국가인가' 담론에 대한 재성찰
세월호 진상조사 특별법의 여야당 합의안이 확정되었다. 그 법안이라면 결과는 이미 예측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힘주어 말했던 이른바 ‘적폐’의 청산은 물건너 갔다. 이제까지 특별검사의 진상조사가 그랬으니 이번에도 단지 법적인 논란의 청산으로 끝나버릴 게 예상된다. 국민의 안전이 경시되는 사회 시스템,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에 대한 디테일을 발본적으로 점검하고 교정할 기회를 정부와 정치권이 스스로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을 경시하는 국가의 문제가 군부대에서 터져 나왔다. 이것도 잠시 시끄러웠다가 진상조사 국면에 가면 세월호 사건처럼 단순 사고로 봉합하려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도 연이어 이곳저곳에서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 걱정된다는 우려가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 ‘그녀’가 힘주어 말했던 ‘적폐의 청산’이 단지 말뿐일 것임이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아니 최근 한국사회에서 좀더 신랄하게 제기되었던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되새겨 보려는 의도로 쓰였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부족동맹 시대에 있었던 그와 비슷한 문제제기인 ‘반국가의 에토스’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오늘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재성찰해 보고자 하였다.
2014년 4월 28일자 《한겨레21》의 표지 그림은 아마도 올해 한국인의 가슴에 가장 뚜렷하게 새겨진 슬픈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완전히 뒤집어진 배는 기형적이게도 선수 바닥만 물 위로 치솟아 있다. 칠흑 같은 밤바다, 어떤 도움으로부터도 철저히 차단된, 아직은 죽지 않은, 아니 거의 죽어가는 생명들의 가녀린 숨결처럼, 외롭게 날아오르다 추락하는 조명탄 하나가 가늘게 빛을 비추다 사라져간다.
그리고 바로 그 그림에 덧씌워진 크고 강렬한 글자들이 그림에 담긴 모든 비극적 이미지들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를 간명하게 지시하고 있다. 아마도 올해 가장 중요한 화두이자 향후 오랫동안 우리를 불안하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며 절망하게도 할 바로 그 말은 “이것이 국가인가”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결코 볼 수 없는 배의 밑바닥이 하늘로 치솟은 것처럼 정상적인 국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철저히 무능하면서도 폭력적인 야만의 맨얼굴을, 여간해서는 보여서는 안 될 흉물스런 악마성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있으나마나 한 빛, 그 무의미한 조명으로는 아무것도 속일 수 없음을 당국자들은 모르는 듯, 그 칠흑 속에 연거푸 조명탄을 쏘아대지만 이미 무수한 이들의 생명의 신호는 짙은 바다 속에서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1
팬티바람으로 서둘러 자기들만 빠져나온, 비정규직 선장과 일부 선원들, 그 철저한 몰염치함과 무책임 덕에 그들은 ‘구조된 자’의 명단에 들어가는 소수가 될 수 있었다. 모순투성이의 항해였지만 그나마 침몰되는 사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숨겨졌던 비열한 얼굴들이 사고의 순간에 가장 원초적인 형식으로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말았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문제제기 앞에 발가벗겨진 국가는 재앙에 노출되는 순간 무수한 이들을 희생시키고, 더 많은 이들을 간접적 희생자 2(가족, 친구, 지역사회, 혹은 더 나아가 이 일로 깊게 상처받은 이들 모두)로 전락시켜 버린다. 이들 간접적 희생자들은 희생자들로 인해 슬픈 기억과 고통을 안고 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한 감정의 상처로 괴로워하며 또 타인을 할퀴고 가족과 이웃의 마음에 염증을 일으키게 하곤 한다. 그리고 비열한 협잡꾼들, 남의 소중한 것을 짓밟고 불의한 권력자들의 악독함을 대리하는 자들은 그런 침몰하고 있는 국가라는 배에서 생존하는 소수에 속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사회가 만약 이렇게 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잡지의 커버스토리 문구는 프리모 레비(Primo Michele Levi, 1919~1987)의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è un uomo)를 연상케 한다. 유태계 이탈리아인 화학도였던 그는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지하운동을 벌이다 1943년 12월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10개월 만에 극적으로 살아남아, 문필가이자 사상가로서 많은 책들을 저술했던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수용소 경험을 증언하는 저작을 1947년에 펴냈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첫 번째 저서인 『이것이 인간인가』다.
한데 이 책은, 재판(再版)이 출간될 무렵인, 1960년대에 엄청난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포스트 아우슈비츠 담론이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그 희생자들의 죽음의 숭고함을 주장하면서 시오니즘이 전 세계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그것에 대립하는 아랍권 사회를 고립시키던 바로 그 무렵이다. 이때 레비의 책은 아우슈비츠 담론의 위선을 폭로하는 글로 지목되어, 곳곳에서 재출판 혹은 번역출간을 방해받곤 했다.
이러한 논란은 이 책에 수록된 한 장(chapter) 때문이다. 그 장의 제목은 놀랍게도,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다. 레비는 1987년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는데, 그의 마지막 저서(1986년)의 제목도 바로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I sommersi e i salvati, 한글 번역본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였으니,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 장의 내용은 그가 평생에 걸쳐 증언하고자 했던 것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 유럽의 모순이 독일을 히틀러 체제라는 흉물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국가의 맨얼굴로 드러나게 했고, 그 흉물스러움이 가장 극한적인 야만과 폭력으로 응축된 것이 바로 아우슈비츠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수용소의 적나라한 모습을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 수용소(평균 구금 기간은 3개월 정도)에서 학살당한 이들은 무려 110~150만 명에 이르고 살아남은 이들은, 이백 명에 한 명 꼴인, 고작 7천 명 정도다. 여기서 학살당한 자를 레비는 ‘익사한 자’로, 생존자를 ‘구조된 자’로 묘사한 것이다. 한데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는 대개 비열하고 야비한 자인 반면, ‘익사한 자’는 대개 그러한 야비함에 물들지 않은 혹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그런 점에서 아직은 인간성을 간직한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해서 그는 저 구조된 자들, 그런 이들의 증언에 의해 구축된 아우슈비츠 이후의 체제를 향해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한겨레21》의 편집진은 레비를 호출하여 세월호 사건에 직면한 우리사회의 ‘국가의 몰락’을 고발하고 있다. 이른바 히틀러 체제처럼 모순이 응축 폭발하여 맨얼굴의 폭력성을 숨기지 못한, 그 야생의 국가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야 말았다는 주장이겠다.
이러한 모순의 직접적인 시작은 아마도 1993년, 세계화 정책부터일 것이다. 더 이르게 가면 식민지 이후에 형성된 반공주의적인 폭력성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국가로서의 대한민국, 혹은 본격적인 근대적 자주국가로 틀을 갖추기 시작한 군부 독재 정권의 등장부터 얘기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범위를 좁혀서 세계화의 한국적 제도화가 시작된 문민정부 시대를 모순의 기원으로 규정한 것이다. 1980년대 초 레이건과 대처가 세계화에 보수적 자본주의의 세례를 베푼 이후 1993년 한국에서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영접’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길을 닦는 제도화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1997년 외환위기로 이어졌고,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급박하게 신자유주의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자리잡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핵심은 외주화(아웃소싱)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기업이 그렇게 했고, 심지어 공공적 성격을 지니는 기관들, 가령 학교나 병원, 종교기관, 그리고 정부조차 그랬다. 나아가 정부는 공기업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영화하여, 국가의 많은 기능들을 외주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하여 주식회사 천해진은 선박의 운행에 가장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존재인 선장과 항해사까지 외주화 시스템을 통해 고용했고, 해경은 생명구조의 기능을 사기업인 ‘언딘’에게 외주화했다.
또한 적폐의 청산을 외치고 있는 현 정부는 철도민영화의 길로 이미 들어섰고, 의료민영화를 본격 추진할 것을 최근 발표했다. 그 결과 국가의 공공적 성격은 크게 약화되었고, 또 그럴 추세다. 그러니 군사정권 시대의 유제(遺制)인 인간의 존엄보다는 사회적 효율성이 크게 강조되는 문화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정의’니 ‘공공성’이니 하는 의제가 제기된 것은 바로 이런 국가의 공공성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우려가 세월호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익사한 자들과 구조된 자들의 극적인 양분화는 바로 민주주의적인 공공적 가치를 포기한 결과 국가의 야만적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양상을 띠게 됨으로써 초래된 결과다.
하여 공공적인 것은 누군가의 독점물이 되었고, 사회적 경쟁은 독점을 향한 경쟁이 되었으며, 국가는 그러한 독점의 체계를 보호하는 데 몰입하게 되었다. 만일 사고로 희생자들이 생기면 국가는 그들을 구조하기보다는 그 사고가 발생시키는 이윤과 손실의 법칙에 더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도전적인 슬로건은 바로 이런 현상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인 것이다.
그런데 레비가 문제제기했던 히틀러 체제는 바로 대중의 열렬한 지지와 함께 대두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리사회의 신자유주의화도 바로 물욕의 화신이 되어버린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동반하면서 급물결을 타게 되었다.
이렇게 일러주어도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도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그 왕이 우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에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기상」 8,19~20
이 구절이 포함된 「사무엘기상」 8,1~22은 고대이스라엘 사회에서 제기된 ‘국가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부족동맹 시대 말기다. 평등이상을 지향했던, 그 누구의 권력 독점도 허용하지 않았던 부족동맹의 이상이 어느덧 심각하게 와해되고 있던 때다.
그때 지도자는 사무엘이었다. 그는 부족동맹의 중심세력인 에브라엠 부족의 지도자인 동시에 부족동맹 전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그가 권력을 세습하고 있다. 부족동맹의 상징인 모세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권력의 세습이 사무엘 시대에는 전 사회적으로 횡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무엘 자신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더욱 중대한 문제는 두 아들의 배임과 비리, 불공정이 대중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여 대중은 사무엘에게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대중이 요구한 것은 사무엘을 잇는 지도자가 아니라 군주다.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하는 자요, 대중의 자원을 빼앗는 자다. 사무엘도 이미 그런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아직 군주의 직책으로 대중을 이끌고 있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전통적인 지도자인 ‘사사’(shophet)의 직함이 있었던 것이다. 한데 대중은 사무엘이 아니라 다른 이를, 그것도 군주(melek)로 떠받들겠다고 한다. 인물 교체뿐 아니라 일종의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다른 나라들처럼 군주제를 도입하여 그이가 이웃나라들을 정복하고 그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그 풍요를 누리겠다는 것이겠다. 이제까지 부족동맹은 정복전쟁을 치루지 않았다. 적이 쳐들어오면 일시적 지도자를 세워 방어전쟁만을 수행했다. 한데 군주가 이끄는 나라는 나른 나라를 정복해서 그곳을 수탈하여 자기 백성에게 나누어준다고, 대중은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사무엘은, 군주는 나누어주는 자가 아니라 빼앗는 자라고 주장한다. 사무엘 자신이 평등이상이 무너지고 있는 사회에서 자원의 독점화를 통해 권력을 거머쥔 인물이었지만, 그럼에도 군주제로의 이행에는 반대하는 이였다. 어쩌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력, 그러한 현상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가 속한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부족 가운데 그런 생각을 대표하는 부족이다. 한데 대중의 요구는 그러한 현상이 정상이 되는 사회를 요구하는 것이다.
대중의 강력한 요구에 결국 사무엘은 굴복하였고, 군주제에 보다 적극적이던 부족인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 사울이 왕으로 추대된다. 이스라엘 부족동맹이 와해되고 군주국 이스라엘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사울은 대중이 기대한 정복군주도, 사무엘이 우려한 독재자도 되지 못했다. 성서가 암시하는 대로, 그 역시 사무엘과 비슷한 전통에 견인되고 있는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대중이 그를 군주로 추대했지만, 그도 이 현상이 비정상적인 체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무튼 사울 대에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 후 실제로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다른 군주정이 등장하여 사무엘의 예언대로 되었다.
부족동맹이라는 정치체제와는 달리 군주국은 공공성을 개인에게 이양하는 체제다. 해서 무수한 이들의 자원과 심지어 생명을 경시하고, 독점 권력의 이익에만 민감한 고대적 국가 체제다. 그런데 그런 체제의 등장을 대중이 욕망했다는 것, 그것을 이 성서 본문은 적시하고 있다. 그 결과 대중은 희생자가 된 대다수 백성들과 성공한 소수의 협잡꾼들로 나뉘게 되었다. 하여 이 본문은 ‘이것이 (당신들이 갈망하는) 국가인가’라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
지난 7.30 재보궐 선거에서 한 후보는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를 ‘강남4구’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이는 당선이 되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의 부가가치가 상승하고 지역의 사회적 자산들이 고평가되는 것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이른바 ‘강남’으로 표상되고 있다면, 그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그러한 선거 구호에 과연 자신의 마음을 열었을까?
여러 전문가들은 상당히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새로 경제부총리로 임명된 이를 중심으로 하는 경기부양책은 그러한 다수 대중의 욕망을 전제로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도 여러 정치 전문가들과 동일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겠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에 기여하는 것인가에 있다. 더구나 이러한 변화에서 성공한 이들이 아닌, 실패자들 아니 희생자들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사회로 갈 우려는 없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역시 이제까지 그래왔기 때문이며, 최근 들어 그 심각성이 크게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더더구나 실패자 혹은 잠재적 실패자의 범위는 너무 넓어졌다. 서울에서 이른바 ‘강남’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단지 3개구에 지나지 않듯이, 전체 가운데 소수에게 더 많은 풍요가 주어지고 더 많은 안전이 제공되는 반면, 다수에게 더 많은 위험이 부과된다면 그 사회는 이미 붕괴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 제기된 학문적 논점에 의하면, 실패의 위험은 가장 안전한 계층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전전긍긍하다 소진성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안전한가? 또 누가 행복한가? 모두가 안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그러한 시스템을 대중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무엘에게 군주를 요구한 대중처럼 오늘 우리사회의 대중도 결국 자신을 약탈한/할 체제를 욕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족동맹사회가 군주제 사회로 이행한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따라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변화하고 있기에, 그 나라들처럼, 아니 그 나라들보다 더 두드러지게 공공성을 자본에 양도한 기업적 국가로 이행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중이 열렬히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월호 사건은, 내가 생각하기엔, 그러한 공공성 부재의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욕망의 빗나감을 고발하고 있다. 그 사건의 근저에는 국가의 몰락과 함께 사회의 몰락이 있다. 그 모든 것은 독점을 허용한 사회의 부조리함에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보는 세월호 사건의 요체다. (끝)
[각주]
- 이 그림은 배가 침몰하기 시작한 16일 아침에서부터 이미 하루 정도 경과한 시간의 광경을 담고 있다. 배 안의 사람들이 보내오던 카톡 신호는 16일 오전까지만 확인되었다. 이 그림과 같은 상태에서도 생존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방식의 어떠한 접속도 불가능했다. 국가의 비정상화는 이처럼 희생자들과의 소통의 단절이 확장되면서 진행된다. [본문으로]
- 간접적 희생자 개념은 2012년 부산에서 열린 제2회 국제인문학포럼 때에 아르헨티나의 사회학자 다니엘 파이어스타인(Daniel Feierstein)이 제출한 개념으로, 집단학살 같은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이 사건의 여파가 희생자 문제를 넘어 간접적 희생자의 문제로 드러나게 됨으로써 사건의 극복을 위한 노력은 진상조사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치유의 차원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공동선》 114호(2014. 01-02)에 실린 나의 글 「평화신학적 주제로서의 4.3」을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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