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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몰가치와 동거한 욕망의 경제

이 글은 [한겨레신문] 2010년 5월 25일자 칼럼(야!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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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가치와 동거한 욕망의 경제

 

 

기업 부장 김씨는 네 형제 중 막내다. 형들보다 공부를 잘했고 덩치도 컸으며 생김새도 제일 잘났다. 이른바 명문대학 공대에 입학했는데, 그의 근친 가운데서는 제일 좋은 학력이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대기업에 입사하였고, 이십여 년간 세 번 직장을 바꾸며 오늘에 이르렀다. 10년 전, 아직 30대였을 때 부장이 되었는데, 입사 동기중 제일 빠른 승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부장이다.

명문대 공대 입학, 대기업 입사, 30대 부장, 이 하나하나가 그의 집안엔 자랑거리였는데, 이제 곧 그는 대기업에서 퇴출된다. 아쉽지만 부장으로 10년이면 꽤 버텼으니 마음을 비우기로 했단다. 아무튼 그가 요즘 퇴직 이후를 상상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부동산이다.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살고 있는 집보다 족히 한배 반은 더 큰 집이다. 근데 부동산 값이 오르질 않는다. 점점 대출이자에 심적인 압박이 커간다.

천안함 사건에 관한 정부의 조사발표가 있던 날 그를 만났다. 뜻밖에도 그는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 의외였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선거 때가 되면 늘 부동층으로 분류되면서도 투표는 대체로 보수적인 선택을 해왔던 사람이다. 내 편견은, 이런 사람들은 시사 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그는 이런 사건을 대할 때 별로 분석적이지 않았다. 비판적 이성은 시사문제에 대해서는 작동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한데 천안함 사건에 관한 정부의 발표에 대단히 적극적이고 분석적으로 그는 비평을 가했다. 자기의 주장을 위해 동원하는 정보들은 평소 이 사건에 관해 그가 깊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러한 판단의 배후에는 현 정부에 대한 그의 매우 비판적인 생각과 관련이 있어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정부가 부도덕하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거나 개발주의에 몰두한 나머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거나 국가와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 비전보다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것에 치중한다거나, 내가 알고 있는 이런 비판들에 대해서 그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반면 그는 정부가 신뢰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 대해서는 강한 견해를 표했다. 금새 들통나버릴 임시변통적인 말, 사적 이익을 위해 공공적 요소를 동원하는 것 등이다. 그는 정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꽤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듯이 보였지만, 정책들에 관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보인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분석적이고 종합적인 비판은 이 정부가 진실되지 않다는 의혹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한데 놀랍게도 그럼에도 그는 이번 선거에서 이 정부를 지지할 것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의 돌려 말하기는 내게 들켜버렸다.

왜 자신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대상을 지지할까, 나로선 적이 당혹스러웠다. 나름 곰곰이 생각한 결론은, 그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압박하고 있는 경제적인 위기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너무 일찍 퇴출되고 부동산이라는 욕망의 경제에 너무 깊이 연루되어버린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권력과도 동거하게 한다. 여기서 얘기를 과장해서 일반화하면, 개개인의 난관을 해결하는 손쉬운 출구인 욕망의 경제에 스스로를 위탁해버리는 사람들의 사회는 정치의 선택에서도 몰가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의 공조가 우려스러운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