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공동선] 2017 05-06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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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스트’를 경계하라
데자뷰, 1947년의 서북청년단과 2017년의 ‘태극기집회’
3.1절 기념식, 대립하는 두 편의 시위대는 각기 기념집회를 열었다. 한 편은 남산공원, 다른 한 편은 서울운동장. 기념식이 먼저 끝난 서울운동장의 군중은 거리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들이 남대문을 지날 때, 남산공원의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일부와 마주쳤다. 누가 먼저였을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양 편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투석전을 벌이고 일부는 육탄전에 돌입했다. 그때 갑자기 경찰이 발포를 한다. 허공을 향해서가 아니라 시위대를 향한 지향사격이다.
이 일은 서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전국의 여러 도시들에서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마치 계획된 것처럼 말이다. 이날 전국에서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22명이었다. 대부분의 사상자는 경찰의 발포로 인한 것이었고, 대부분의 피해자는 남산공원 집회 참가자, 그리고 그이들과 같은 편의 시위대였다. 그리고 이 사건 직후 경찰은 폭력시위대에 대한 일제 검거에 나선다. 이때 체포 구금된 이들도 남산공원 집회 혹은 같은 편의 참가자들이었다. 가장 치명적인 폭력의 가해자는 경찰이었지만 그들이 폭력을 체벌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강요배의 그림(1991). 1947년 3.1절 기념식 직후 남대문 근처에서 벌어진 좌・우익계 대중이 투석전을 벌일 때, 경찰이 발포를 했다. 이 사건 이후 좌익과 우익 간의 증오와 공격이 본격화되었고 전국은 내란 상황에 빠져들었다.
1947년에 일어난, ‘남대문 3.1 사건’으로 알려진 사태의 간략한 스캐치다. 여기서 남대문의 3.1절 집회는 좌익성향의 집회였고, 서울운동장의 집회는 우익세력의 집회다. 이 사건 이후 전국은 그야말로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고, 급기야 내전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는 전 세계 역사에서 국지전 중 가장 치명적인 파괴와 살육으로 점철된 한국전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전개된 1947년의 마지막 달을, 미군정청은 ‘테러의 시기’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그 달만이 아니라 그해 내내 무수한 테러와 암살이 난무했다. 1946년 당시 남한사회는 미군정청 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의 77%가 좌편향을 띠고 있었는데, 폭력으로 점철된 해인 1947년이 지나고 이듬해인 1948년에 극우적인 이승만 정권이 주도한 국가가 창건되었다. 여기서 집권세력이 좌익이냐 우익이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주목할 것은, 국민에 대한 암살과 학살의 배후로 지목된 ‘극우’ 세력이 집권하게 되었고, 대화의 주역이어야 할 중도적인 좌파와 우파가 거세되었으며, 극좌와 극우 간의 무한대립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체제를 혹은 집권세력을 선택할 주역인 국민이 이 무한대립 속에서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1947년은 바로 그런 전환기다.
그 해 미군정청 산하의 정보부원들은 수많은 테러리스트들의 암살모의들을 캐내는 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미군정청 정보부 일일보고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암살모의집단이 있었다. 바로 서북청년단이다.
서북청년단은 1946년 11월30일에 결성된 극우청년단체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서 벌어진, 좌익이라는 ‘죄몫’으로 학살된 사람의 수가 무려 20~4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때 가장 잔인하고 가장 폭력적인 학살자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들은 해방정국 최악의 살인마 집단이었다.
이들 서북청년단은 북한지역에서 남한으로 월남한 35세 이하의 청년들로 구성된 이민자들이다. 월남자들 중 반공성향의 학생들은 서북학생총연맹으로 모였고, 나머지는 서북청년단원이 되었다.
한데 이들 중 주축이 된 이들은 대개 영락교회 교인이었다. 요컨대 서북청년단은 개신교 성향의 월남한 청년들이 중심이 된 극우주의 청년단체였고, 그 핵심은 평안도 계열의 교회인 영락교회 교인들이었던 것이다. 이 교회의 설립자이자 담임목사인 한경직은 바로 그들의 영적인 지주였다. 또한 그는 수없이 많은 자리에서 서북청년단원들을 자랑해 마지않았다.
그는 미군정의 통역관을 역임하면서 군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기에, 일본이 남겨두고 간 적산(敵産)을 불하받아 영락교회를 세웠고, 노숙하던 월남자 청년들을 대거 남산 해방촌에 거주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바로 이 영락교회와 해방촌 거류자들이 서북청년단 창립의 주축이었다. 하여 서북청년단은 기식할 곳 하나 없는 굶주린 월남자들의 정착을 위한 자활단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원한을 갖기는 했지만, 학살을 자행하는 살인마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이 서북청년단 활동을 하면서 살인마로 변모했다.
그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원한을 가진 것은 북한지역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피해 월남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월남한 이민자들 대부분은 평안도와 황해도(서북지역) 출신이다. 특히 개신교 신자, 그 중에서도 장로교 신자들이 월등히 많았다. 평안도-황해도 장로교신자 하면 정평이 날 정도로 열렬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당대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자들이었다.
한편 이들 서북 출신의 월남한 장로교도들은 지주나 상공인 집안 출신이 많았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근대적 공부를 하였고 영어도 할 줄 아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이 해방정국의 북한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패권경쟁을 벌이다 패배했고, 심한 정치보복을 당한 끝에 적지 않은 이들이 월남했다. 그러니 그들은 당연히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컸다. 게다가 선악 이분법의 틀을 견고히 갖고 있는 근본주의 신앙은 그 적개심을 더욱 강렬하게 했다. 바로 그런 이들이 월남해서 서북청년단의 주축이 되었던 것이다.
하여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랐다. 게다가 영어를 좀 하는, 근대적 교육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적개심이 그들을 복수의 화신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남한에서 그들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이민자의 막막한 현실이었다. 한경직 목사 등은 그런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단체를 만든 것이다. 서북청년단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단체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남한사회를 극우반공주의 사회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서북청년단을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 신앙이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적합한 신념체계를 갖고 있고 반공주의적이며 미국 선교사의 영향 탓에 친미 성향이 강한 젊은 남자들이 대다수였던 서북청년단은 그런 후원자들에게 가장 안성맞춤의 대상이었다.
1946년 11월 말에 창립한 서북청년단은 그 이듬해인 1947년, 그 폭력과 학살이 난무한 해를 주도한 장본인이 되었다. 그들이 그 일을 할 때 물질적 보상이 주어졌고, 또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다. 또한 그 일은 가슴 속에 사무쳐 있는 깊은 분노를 풀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일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그들은 한반도 최악의 살인마로 변모했다.
나는 다른 글에서 ‘미움의 감정’을 ‘공격적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 존재를 ‘예언자’와 ‘메시아’라고 표현한 바 있다. 여기서 ‘메시아’라는 단어가 뜻하는 것은 분노의 기억을 소환하는 자/사건을 의미하고, ‘예언자’는 그것을 해석하는 자/사건을 말한다. 사람들은 내면에서 입은 깊은 상처를 기억하지 싶어 하지 않는다. 이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망각’의 기재가 작동한다. 그래야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누군가 혹은 어떤 사건이 그 상처를 기억나게 한다. 해서 가슴 저미게 아팠던 기억이, 가슴 속 깊은 곳, 망각의 상자 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기억이 불쑥 도져 나온다. 바로 이렇게 상처를 도져 나오게 하는 존재 혹은 사건이 바로 메시아라고 부른 것이다. 그것이 메시아인 것은, 억눌려 있던 미움의 기억을 소환하여 그것을 자양분 삼아 공격적 행동을 벌이게 하는 이는 자기의 그러한 행동이 자신과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메시아 신앙을 가진 자가 그렇듯이 말이다.
한편 예언자는, 말했듯이, 기억을 해석하는 자다. 깊은 상처를 입은 자가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도 자신과 같은 상처에 고통스러워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해석해 주는 존재/사건이다. 즉 그 존재/사건은 그 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누구/무엇인지를 지목해 준다. 이단이나 악마는 그렇게 역사 속에 태동한다.
그렇다면 서북청년단에 참여한 이들을 분도의 화신으로 만들어낸 존재, 그들의 메시아와 예언자는 누구/무엇일까?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이 그 역할을 했겠다. 이승만, 군정 당시 경찰책임자들인 조병욱과 장택상, 그리고 미국 군부에서 가장 호전적인 극우인사였던 맥아더 휘하의 장교들로, 주한 미군정청에 관여했던 일부 극우주의자 등등이 떠오른다. 그들/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역사를 돌이키는 일에서 중요한 일이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인사들과 기관들, 그리고 그들의 사주로 혹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로 서북청년단원들이 빠르게 살인마로 변화해 갔다는 사실이다.
한데 ‘메시아’나 ‘예언자’라는 말에서 연상되듯이, 이런 매개 장치는 한반도에서 종교, 특히 개신교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종교성, 특히 근본주의적 개신교신앙은 무언가를 위해 자신의 존재 전체를 바칠 만큼 강한 열정의 힘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때로는 무시무시한 폭력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헤쳐나기기 쉽지 않은 고통의 흔적을 갖고 있다. 그것을 각자는 망각을 통해 견뎌내곤 한다. 그런 점에서 망각은 삶을 견뎌내게 하는 자기 조절능력이다. 한데 문제는 그런 망각의 흔적들이 기억으로 도져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야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종종 그것, 그 분노의 기억을 소환하고 해석해내는 자는 바로 자신의 신앙을 통해 그 일을 한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견딜 수 없어 하는 자, 그이에게 메시아와 예언자가 속삭인다. 악마를 보라고, 악마가 지금 바로 네 앞에 있다고. 그것을 말살하지 않으면 너와 네 가족과 네 이웃과 네 동족을 재앙에 빠뜨릴 것이라고.
서북청년단은 그런 기억의 소환과 해석이 되풀이되면서 첫 번째, 두 번째, ...... 수십, 수백 번째 폭력의 가해자가 되었다. 그것은 그런 폭력의 역사가 청산될 때까지 무한반복 된다.
폭력의 역사가 청산되지 않은 사회, 그런 이들, 그런 기관들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지 않고, 자신이 가한 폭력으로 괴로워하지 않은 이들이 이어온 사회, 오늘 한국사회도 바로 그런 사회에 속한다. 2017년 3.1절의 이른바 ‘태극기집회’에는 역사의 나쁜 피가 슬금슬금 밖으로 삐쳐 나와 구역질나는 비린내를 풍겨댔다. 누군가, 무엇인가가 메시아가 되어 혹은 예언자가 되어 그 역겨운 피를 분출시키는 사건을 고대하는 악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개신교가 그것을 부르는 주술가처럼 행동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가장 좋아하는 성서구절을 〈레위기〉 24장 21절, ‘눈에는 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누군가를 응징하겠다고 벼르는 대중을 대변하고 있고, 성서는 그런 그를 대중의 메시아이자 예언자로 만들어주는 신의 신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 라고 되뇌면서 말이다. 한국에선 호전적인 극우적 개신교와 기타 극우세력들이, 절망과 상실감에 빠진 이들에게 분노로 그것을 되갚으라는 신탁을 내밀고 있다. 적들을 향해서 말이다. 트럼프의 ‘눈에는 눈’과 같은 그것을 말이다.
최근의 태극기집회에는 폭력의 그림자가 깊게 스며 있다.
개신교 신앙은, 다른 무수한 종교들과 신념들 가운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체험의 전통을 갖고 있는 종교성에 속한다. 한국의 개신교는 더욱 그러한 역사의 집단기억들을 갖고 있다. 개신교는 한국근대 역사를 추동하는 가장 강렬한 체험의 장치, 그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 신자가 된다는 것, 특히 한국에서 개신교 신자로 산다는 것은 신앙적 행동들이 섣부른 과잉 행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 안의 메시아가, 우리 안의 예언자가 파시스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 타인과 타자에게 무례하고 폭력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신앙을 되돌아보고, 그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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