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교회 2008년 7월 13일자 하늘뜻나누기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이고, 감청 웹진 [그루터기]에 기고된 글. 두더지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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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길 인간의 길〉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하나의 논평
전화 수화기를 통해 전달되는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처음 들은 목소리지만 톤이 조금 ‘업’된 듯하고, 어색하게 기어들어가는 발성으로 봐서는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끝이 살짝 올라가며 단호하게 맺는 어법은 분노의 표현인 듯하다. 목이 쉰 것이 오래된 느낌은 ‘목사구나!’ 하는 의혹을 자아냈다.
필경 그는 몹시 어려운 전화를 한 것 같다. 내면으로부터 솟구치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있었음에도, 이런 방식의 말 걸기가 너무 낯설었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그는 내게 이런 말을, 나름 매우 혹독하게 구사된 두 문장의 위압적인 말을 날렸다. “너를 지켜보고 있다. 자중해라.”
얼마 전 출간된 나의 책 《예수의 독설》을 보고 좀 만나봐야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오래된 친구의 전언이나, 가족으로부터 전해들은 한 대형교회 교인들이 ‘벼르고 있다’는 말에서는 한국의 열정적 기독교인들의 호전성이 느껴졌는데, 정작 전화까지 건 이는, 더구나 내 추측이 맞는다면, 목사일지도 모르는 그는 다소 소극적인, 어찌 보면 무뢰한일 수 없는 성품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필경 그는 나를 용납할 수 없었고, 그런 불용(不容)의 상황에서 ‘이단’으로 보이는 이를 가만둘 수 없게 하는 행동주의적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목사이기에, 신앙의 지도자라는 자의식으로 부름 받은 이였기에, 자신의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행위임에도 그것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는 이 짤막한 두 문장 외에는 더 이상의 생각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는 내게 ‘협박’이라는 테러를 저질렀음에도, 그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전하지도 못했고, 두려움에 휩싸여야 할 나보다 오히려 더 긴장한 모습을 숨기지 못함으로써 어렵사리 행한 위협의 효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아마도 테러리스트가 되기엔 얼치기 근본주의자이다. 그리고 그 어울리지 않는 옷 속에는 온화하고 진중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최근 서울방송(SBS)에서 방영된 4부작 다큐 〈신의 길 인간의 길〉(1부:6.29/ 2부:7.6/ 3부:7.12/ 4부:7.13)에 대해 일각에선 격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심야의 다큐 프로임에도 SBS 평균 시청률(7.0%)을 휠씬 넘는 9.1%를 기록하였고, 가장 높은 순간 기록이 무려 10.8%나 되었는데 이는 동시간대 다른 프로의 거의 두 배나 되는 기록이다.
그만큼 이 다큐는 시종 대단한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넷 공간에서는 격렬한 찬반토론이 벌어졌다. 그 중엔 몇몇 신학자와 목사들이 이 다큐를 논박하는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일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빠질 리는 없겠다. 1부가 방영된 직후 이들은 방송사에 들이닥쳐서 단식농성까지 했고, 2부가 방영된 직후엔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범교단적인 대책기구를 만들어 논리적, 법적 대응을 하며, 전국교회에 목회서신을 보내고, 신자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렇게 해서 7월 25일 발족한 ‘한국교회 SBS 대책 위원회’는 자료수집, 홍보, 서명운동,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는 대응전략을 내놓기에 이른다. 또한 기독교 케이블 TV인 CTS는 3부작의 반박 토론프로를 방송했고, 거의 모든 기독교계 미디어들이—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신의 길 인간의 길〉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공격을 가했다.
넷 공간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들의 지지와 격려가 있었음에도, 주류 기독교 세력을 포함한 기독교 제도권 내의 각종 기관들의 공격은 꽤나 강력했다. 비록 그 논박이 시민적 공공성의 차원에서도 설득력을 갖지 못했고, 학문적으로는 거의 논쟁적일 것도 없이 빈약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책임PD를 포함한 제작진 전체에게 적지 않은 압박이 되었던 듯하고, 이를 바라보는 언론 종사자들에게 기독교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것인지를 다시금 각인시켜 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런 난리법석을 야기한 프로에 인터뷰한 것이 내게 경고를 전한 사람들, 특히 전화를 건 이의 마음을 그토록 흥분하게 했던 주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한다. 더구나 주목해서 보니 그런 불온한 짓거리가 하나둘이 아닌 것이 보였겠다. (만약 그에 대한 내 상상이 맞는다면) 목사라는 자가 그럴 수는 없다고 판단됐던 것이겠다.
이 안쓰러운 사람에게 반론을 펴는 건 별로 내키지 않지만, 그런 이들까지 맹목적인 십자군으로 내모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또 한 번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수차례 쏟아져 나온 성명서들이 나를 포함해 이 다큐에 인터뷰한 이들을 싸잡아서 비난을 가했고, 한기총에서 일한다는 모 목사가 연락을 해서 나와 내가 속한 교회에 대해 모종의 조사 작업을 한 이상, 그들의 귀엔 별로 들리지 않겠지만, 나의 의견 내지는 고언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 다큐의 1부 서두에서 《예수는 신화다》(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의 논지를 빌어 문제제기를 한 것이 크게 논란이 되고 있으니, 그 얘기부터 해보자. 지난 2002년 7월 어느 즈음 《주간동아》에서 현경 선생과 나를 대담(對談)하게 한 적이 있다(345호. 2002년 8월1일). 바로 《예수는 신화다》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그때 대담은 이 책이 기독교를 포함한 한국사회에서 어떤 점에서 독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논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물론 비평방법상의 한계와 선정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가 대담에 참여한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전제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필경 여기에는 이 책이 기독교를 자극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 의의를 얘기해보려는 잡지 기획진의 고려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대담 자리에서 알았지만, 이 책의 발행사와 대담을 주관한 잡지는 같은 계열의 회사였다. 요컨대 그 당시까지만 해도 발행사는 이 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려는 의지가 분명했다. 한데 얼마 후 갑자기 절판되었다. 분명 이것은 시장의 사정 때문은 아니다. 2002년 6월 28일 초판이 나오고 불과 11일 만인 7월 9일에 재판이 발행되었다는 점은 초기에 이 책이 얼마나 강력하게 독자에게 다가갔는지를 분명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적어도 이 당시까지만 해도 그 전 해에 발행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예수는 없다》(오강남, 2001)의 신드롬을 이어갈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정황상 동아일보사 경영진과 주류 기독교 측의 담합—명시적이든 비평시적이든—의 가능성이 절판에 얽힌 가장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책은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고대 지중해 지역을 광범위하게 결속시킨 헬레니즘의 문화혼합 현상은 이 지역의 대중적 신앙 양식에서도 느슨하나마 혼합화 현상을 낳았는데, 이런 혼합화된 대중적 신앙 현상을 학자들은 ‘미스테리아 신앙’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중적 예수공동체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혼합화된 신앙 담론 속에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설화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예수 신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책의 저자가 ‘영지주의적 기독교’라고 부르는 이들 미스테리아 신앙화된 예수공동체들은, 저자가 ‘문자주의적 기독교’라고 부르는 주류 예수공동체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억압당하고, 기억을 말살당하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거대한 은폐’는, 미스테리아 신앙의 혼합주의적 요소에 의해 구성된 예수 신화가 역사로 둔갑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러한 논리는, 신화는 역사를 배제하고 또 역사는 신화를 배제하는 이분법에 기반한 인식을 깔고 있다. 이것은 신화와 역사 간의 상관성을 두고 치열하게 논전을 펴면서 발전한 성서학적인 이해보다 훨씬 조야하며, 신화 속에서 역사의 해석 가능성을 찾아온 현대 역사학과 사회학의 성과를 거꾸로 돌리는 낡은 해석학에 불과하다. 또한 초기 예수공동체들 사이의 복잡한 문제들을 문자주의적 기독교와 영지주의적 기독교 같은, 개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모호한 용어들로 단순하게 이분화시켜 해석한 것은 그 논지 자체를 오늘날의 기독교를 겨냥한 선정적인 비판의 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그간 성서학에서 정당하게 논의되지 못한 영지주의 운동을 대중적이고 혼합주의적인 종교현상의 시각에서 읽으려 한 것은, 비록 텍스트 비평학적인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성찰의 새로운 준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 가능성은 실현되지 않았다. 교회를 비판하는 이에게는 단순한 비판의 논거가 되었고, 옹호하는 이들에게는 터무니없이 혹세무민하는 주장으로 폄하되었던 것이다.
〈신의 길 인간의 길〉에 대하여 극단의 비판을 가한 한 성서학자가 이 다큐가 《예수는 신화다》를 표절하였다고 주장한 것은 이 책에 관한 후자의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 자체를 인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온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 주장은 터무니없다. ‘표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막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 전문가가 아닌 네티즌들에 의해 조롱받을 만큼이나 말이다. 한데, 내가 알기로, 많은 신학자들이 받고 있는 표절의혹을 그는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혐의가 갖는 미묘함에 대해 그는 자신의 비난 글에서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 다큐는, 책임PD가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의 도전적 물음, 곧 ‘예수는 신화인가’라는 물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 티모시 프리크가 아니라, 천주교 신자이자 세계적인 예수 연구자인 도미니크 크로싼의 논지에 의존해서 예수를 역사적으로 재현해내고자 했다. 알다시피, 크로싼은 그의 문제작 《역사적 예수: 지중해 지역의 한 유대 농부의 생애》(1991) 이후, 십여 권의 책을 저술한, 역사의 예수 분야의 당대 최고 학자의 하나다. 그가 말하고 있는 예수는, 간략히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좀 무리하게 규정하자면, 저 ‘종교적 신의 이미지’ 이면에 1세기 팔레스티나에서 살았던 한 농민적인 묵시적 지혜교사이자 예언자인, 비폭력적 평화운동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도들과 목사들은 여기에서 또 한 번 흥분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냐 인간이냐’라는 의제는 서기 2세기부터 기독교 그룹 내에서 논란이 되어온 문제였다. 물론 많은 기독교도들과 목사, 신부들은 이것은 예수 탄생시기부터 논점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 당대에 그분이 메시아인가 아닌가를 둘러싼 논란과 기독교 교리 형성기의 ‘신성 대 인성’ 논쟁은 전혀 맥락을 달리하는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신성성을 둘러싼 교리논쟁은 4세기 초, 기독교가 제국종교로 부상하면서 폭력적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는 신화다》가 말하고 있는 숙청된 영지주의파 기독교의 고민거리와는 무관한 논쟁이라는 사실이다. 아니 실은 이 책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현재까지 알려진 영지주의파 기독교는 하나의 잘 정의된 집단이라고 할 수 없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 신앙운동이고, 심지어 그 외부라고 할 수 있는 주류기독교 세력과 단호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 비예수파 세력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영지주의’라는 것 자체가 정의내릴 수 없는 애매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구분법이 상식처럼 여겨졌던 것은 아주 일찍부터 일부 교회의 논객들이 이런 식의 구분을 당연시해왔고, 그것이 권력에 의해 사실처럼 조작되었던 결과다. 사실은 기독교가 권력화되는 과정에서 영지주의는 일종의 숙청대상에게 마구잡이로 붙여대는 이념적 혐오의 딱지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전후 한국사회에서 ‘공산주의자/빨갱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수없이 많은 조작사건들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정적의 제거논리로 활용되어오면서 이리저리 확대해석하다보니 그 개념 자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그런 양상이다.
그런데, 크로싼이 말하는 예수 주장의 배경에는, 신성 대 인성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예수 대 역사의 예수’ 논쟁이 전재되어 있다. 예수가 교회에 의해 권력화되고, 그러한 권력의 수호자로서의 신성으로 해석되어 왔던 것에 대해, 역사의 예수 연구는 그러한 교회의 오해를 성찰하자는 근대주의적 논쟁의 맥락에서 수행된 것이다. 그리고 크로싼은 그런 논쟁에서 진보적인 관점의 한 축을 이루는 예수 연구의 거장이다.
사실 나는 안병무 선생을 재해석하면서 민중신학적인 역사적 예수 연구를 수행하였고, 그런 시선에서 크로싼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만, 그가 오늘날 예수학계에서 가장 문제적인 거장의 하나임은 의심의 여지없다. 이 다큐에 대해 비판적 논지를 편 많은 이들이 얘기하는 변두리 학자라는 편견은 그들이 예수 연구사에 대해 얼마나 변두리 해석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어떤 논자가 말한 대로, 크로싼 등의 견해에 기초한 것이 치우친 것이라는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그에 공조하는 이들 누구도, 그 얼마 전에 BBC에서 제작한 예수 다큐가 왜 복음주의자인 톰 라이트에 의해 주도되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런 편협한 복음주의적 견해에서 만들어진 다큐를 한국에서 방영하는지에 대해 그들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식의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다. 모든 프로는 다 일정한 시선을 지니기 마련이고, 그런 시선의 문제는 그 텍스트 내부로 들어와서 논의되지 않고 외부에서 반대편의 논지로 혹은 검증할 수 없는 음모론을 통해서 반박될 때는 거의 설득력 있게 소통될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판을 가한 이들의 대부분이 제기한 예수에 관한 문제제기는, 특정한 시각 내부냐 외부이냐는 고사하고, 그들이 과연 예수 연구사에 대해 상식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빈약한 주장으로 일관하였다.
사실 역사의 예수 연구는 20세기 말 이후 매우 활발한 연구주제이지만, 한국의 신학교에서는 철저히 교과과정에서 배제되어 왔고, 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구자들은 단지 학술지나 출판물을 통해서만 이 논의를 제한적으로 수행할 뿐이었다. 물론 학술지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들 거의 대부분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책이다. 게다가 최근 서구의 예수 연구들 다수는 교회주의적 예수 이해에 대해 메타적으로 재검토하고자 했던 ‘역사의 예수’ 연구 의제의 애초의 문제제기에서 이탈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현학적인 이론적 유희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하여 교회주의나 기독교 중심주의 자체를 기정사실화한 채 비판의 지점을 상실하고 이론의 바다 속에서 현학적인 논지를 펴는, 일종의 ‘신학적 도구주의’(theological instrumentalism)가 만연한 상황이다. 데렉 애트리지(Derek Attridge)가 영문학 내에서 펼쳐지는 유사한 경향을 일컬어 ‘문학적 도구주의’(literary instrumentalism)라고 말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그럴 때일수록 민중신학 같은 우리 사회 특유의 비판적 예수 연구가 서구 중심적 논의에 메타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신의 길 인간의 길〉은 그런 점에서, 세세하게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음에도, 꽤 문제적인 논점을 제기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점을 두고 토론하기에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신학교 학생들, 심지어는 많은 학자들조차도 교양수준의 연구 감각에 대해서 심각한 무지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다면 신학교육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이라는 말인가. 또 신학 전문가들은 무엇을 하는 이들인가.
하나 더 얘기하겠다. 기독교신앙의 도그마들, 교리들은 기독교가 제도화되면서 형성된 인식의 체계들이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은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도그마들은 처음부터 당연히 그랬던 것은 아니며, 또한 도그마들로 이루어진 신앙의 질서 또한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처음에는 다양한 신앙들이 존재했다. 그것이 때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세계의 권력과 맞대응하는 데 효과적이지도 못했겠다. 하지만 동시에 이 다양성은, 통일된 질서, 도그마들의 체계가 나름의 이유를 가진 만큼 나름의 이유를 가진 것들이다. 이단이니 뭐니 하면서 숙청해버리는 것처럼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전통인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다양한 세계와 대면하게 된 기독교는 이런 잊어버린 전통들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고 있다.
그런데 더 넓은 곳을 보지 못한 채 열심히 땅굴만 파는 두더지들, 두더지스러운 보편성 신앙의 주역들은 그 굴이 무너지고서야 무너진 줄을 알려나 보다. 그런데 이런, 그 굴이 이미 무너져버렸는데도 눈이 퇴화된 두더지는 그걸 보질 못하고 있다.
아래에 인용한 〈빌립보서〉 3,2~3에서 바울이 직면하고 있는 갈등의 배후에는 바로 이러한 두더지스러운 보편성의 논리가 있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2~3
그가 ‘개들’, ‘악한 일꾼’ 등과 같이 격한 말로 비난을 가하는 대상이 바로 그런 논리의 주역들인데, 3,3에 의하면 저들은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다. 이때 할례는, 그 흔적은 몸의 청결성을 상징하며, 그리하여 제사종교의 핵심의례인 제의는 몸을 통해서 재현된다. 곧 할례는 ‘제의의 신체성’을 나타낸다. 이렇게 하여 할례라는 육체에 새겨진 그 흔적은 제의종교로서의 유대교적 주체의 근거가 된다.
해서 유대인들은 할례를 구원의 표식으로 이해하며, 할례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이것은 할례의 흔적을 갖지 못한 신체를 조롱하며 배척하는 신앙의 장치이기도 하다. 이방인은 그렇게 배제되었고, 여성은 그렇게 배제되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의 구별짓기 정치를 비판한다. 저들은 신체를 제의화하지만, 자신들은 하느님의 영을 제의화한다. 형체도 없고 경향성도 알 수 없는 그이가 구원의 표식이며 주체의 근거이다. 그것은 몸에 새긴 것, 곧 육체를 신뢰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빌립보서〉 2,6~7) 자기 채움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 비움’의 방식으로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곧 바울에게서 예수로부터 유래한 주체화 방식은 ‘탈주체화하는 주체화’인 것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
—〈빌립보서〉 2,3~5
4,2에서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명의 여인에게 각각 권고를 한다. 어떤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이 여인들이 공동체 내에서 서로 반목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고 하고, 다른 견해는 바울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던 한 쌍의 동성커플이라고 해석한다. 어떻게 보든, 바울은 여기에서 다른 견해의 사람들 사이의 동지애를 강조하며, “나의 진실한 동역자인 그대”라고 하는 이, 필경 빌립보 예수공동체의 지도자인 ‘그 사람’에게 이 두 여인을 어떤 이들 못지않게 소중히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3절).
최근 빌립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바울 당시와 그 이후 상당기간 동안 이 지역에서 매우 다양한 종교성이 혼합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또 동성애 커플들의 묘지가 적지 아니 발굴되었다. 어쩌면, 디앙젤로(Mary Rose D'Angelo)가 매우 설득력 있게 논증한 것처럼,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단지 두 명의 여성 지도자가 아니라, 혹은 선교 커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함께 삶을 나누며 활동했던 인생의 동반자였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빌립보 지역은 종교적이든 성적이든 다양한 요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얽혀서 사회의 활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곳의 예수공동체 또한 그러한 혼합적 요소가 서로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면서도 서로 공존하는 관계의 미학을 통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바울은 이 서신에서 유난히 관계를 강조하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친근한 관계를 강조하는 표현인 ‘코이노니아’, ‘함께’라는 뜻의 접두어 ‘쉰-’(συν-), ‘한 정신’(1,27),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고, 한 마음...”(2,2) 같은 표현 등이 매우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이 공동체가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고, 그것이 상호간의 갈등의 원인기기도 하였음을 시시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다양성, 이러한 혼합주의적 요소는 이 공동체의 내적 활력이었으며, 바울은 그러한 활력을 신학화하고 신앙화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서신에서 읽어낼 수 있다. 유대공동체에서 유래한 혹은 아직 유대공동체 내의 한 집단이었을 법한 예수공동체에게, 단 하나의 신체를 통한 주체화를 강조하는 유대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대단히 다양한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공간 속에서 획일주의적 신체성에만 몰두해 있는 이들, 어쩌면 그러한 폐쇄된 공간 속에 갇혀 있던 나머지 눈먼 두더지처럼 그 다양성을 볼 눈을 상실한 이들에 대해, 바울은 열린 공동체, 대중의 일반적 감성과 대화할 줄 아는 신앙적 인식으로 탈주체화/재주체화된 신앙의 의미를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빌립보서〉는 바로 오늘 우리 교회들의 두더지성에 대한 바울의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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