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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의인신학, 그의 예수 따라 하기
갈릴래아의 예수와 그이를 따르던 일단의 유대인들이 시작한 운동이 팔레스틴 경계를 넘어 지중해 서부 지역으로 전파됐다. 바울을 포함한 초기의 해외 선교 주역들은 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 언저리에서 활동했지만, 현저히 다른 사회생태적 맥락 속에서 예수운동을 이어갔다. 이들을 통해 예수운동은 팔레스틴에서 지중해 근방의 시리아와 소아시아 그리고 남유럽 지역으로, 유대 문화권에서 헬레니즘 문화권으로, 그리고 시골에서 대도시로의 공간이동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생태적인 뚜렷한 차이는 후속 예수운동이 원예수운동과는 상당히 다르게 형성되었으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흔한 질문, ‘바울은 예수를 계승한 이인가 변질시킨 장본인인가?’는 적절한 물음이 되지 못한다. 팔레스틴 밖에서 예수운동을 펼친 모든 후속 예수운동의 주역들은 성공적으로 선교사역을 펼치기 위해서는 원래의 요소를 그 지역에 ‘토착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위의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게 타당하다. ‘바울은 예수운동의 무엇을 고수했고 무엇을 변형시켰는가?’ ‘계승’이 아니라 ‘고수’라고 했고, ‘변질’이 아니라 ‘변형’이라고 표현한 것을 유의하라. 아직 ‘계승’과 ‘변질’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그것은 위에서 재질문한 것을 충분히 논한 뒤에야, 논평의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평은 특정한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평가한 것이므로, 다른 이는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이 글은 바울이 펼친 후속 예수운동의 일면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이러한 논평의 정보를 제공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여기서는 ‘의인론’을 다룰 것이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신학사상 가운데 단연 대표적인 것으로 꼽히는데, 이후 교회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기독교 신학의 핵심적 요소로 굳건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교회의 의인론 이해는 애초에 바울이 제기했던 신학의 내용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므로 교회가 해석해온 바울의 의인론을 가지고 바울이 예수를 잘 계승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부당하다. 하여 이 글은 바울에게로 돌아가서 의인론의 역사적 함의를 물음으로써 독자에게 의인론 신학에서 바울이 예수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려 한다.
바울의 의인론 신학은 주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기초하고 있다. 그 언술 형식은 대체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워짐’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바울이 유대교 회당의 주장을 논박하는 주요 논리였다. 아래 도표는 바울이 이해하는 유대교의 논리와 대립되는 바울의 의인론의 언술구조를 보여준다.
바울의 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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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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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을 통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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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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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의 상태 | ➜ | 의의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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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의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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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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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법을 통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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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보듯이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 곧 의인(義認)이 율법을 다 지켜 행함으로써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는 유대교의 논리를 바울은 믿음 덕에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고쳐 말한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율법처럼 믿음을 규정하는 어떤 규율이 있다는 뜻인가? 흔히 얘기하듯이 교회의 일원이 되고, 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게 믿음인가? 그런데 바울 자신의 어법 속에는 그런 것이 없다. 즉 그것은 바울 후대 교회의 해석이다.
이 도표에서 ‘믿음’은 ‘은총’과 한 쌍을 이룬다. 다만 전자가 인간 편에서 의인의 조건으로 제기된 것이라면, 후자는 하느님 편에서 말한 것이다. 율법과 대조되고 은총과 쌍을 이룬다면, 필경 믿음은 율법을 수행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의인이 가능하게 되는 것에 관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한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바울 자신에게서는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그것에 관한 설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을 의도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 바울의 관심은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믿음의 효과’였다는 것이다. 율법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으나,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의로워질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데, 그것을 그는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은총을 믿으면 의로워진다는 뜻이겠다.
한데 믿음의 내용에 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인 단서를 얻을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울의 의인담론의 문맥을 살펴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의 의인 담론 속에는 늘 어떤 구체적인 갈등 상황이 연결되어 있다. ‘유대인 대 이방인/헬라인’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가령, 〈갈라디아서〉 2,11~14에서 바울은 안티오키아에서 있었던 한 회식사건을 이야기한다. 게바(베드로)가 이방인이 포함된 공동체 식구들과 식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온 (주의 형제) 야고보 계열의 사람들이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른 자리를 뜨게 되었고, 바울은 이를 두고 그를 논박했다는 내용이다. 공동체 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해소하는 행위의 하나가 공동식사인데, 바울은 베드로가 예루살렘의 분리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 합의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로 이 구절 뒤에 그는 의인신학을 전개하고 있다(15~21절). 요컨대 바울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존재론적으로 구별된다는 유대 분리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의인신학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바울식 의인담론의 일반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대 분리주의에 대한 바울의 대응 언술이 바로 의인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면 위의 〈갈라디아서〉 2장의 의인담론에 이어지는 3장의 진술 속에서 세 범주의 차별의 해체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유대인 대 이방인(헬라인), 자유인 대 노예, 그리고 남자 대 여자(3,26~29). 여기서 ‘유대인-자유인-남자’가 하나의 계열을 이루고, ‘이방인(헬라인)-노예-여자’가 또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는 점을 주지하라. 전자가 사회적 강자라면, 후자는 사회적 약자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이방인을 바울은 ‘헬라인’으로도 묘사한다는 점이다. ‘헬라인’이라는 어휘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어감은 고귀한 자, 품격 있는 자 같은 것이다.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제국 이후 이미 그것은 인종적 개념을 넘어서 문화적인 고품격의 존재를 지칭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헬라인을 비하되는 존재로서 묘사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하나의 역사적 단서가 되는데, 왜냐면 ‘헬라인’이 비하되는 대상으로 사용되는 영역은 유대 분리주의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례를 통해 율법에 귀속된 자임을 선언하면, 그이는 유대교 회당의 회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유대인의 종교문화적 특권이다. 적어도 회당 내에서는 말이다. 물론 이방인도 개종할 수 있다. 그도 할례를 통해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보다는 낮은 자격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헬라인은 회당 내에서는 비하의 대상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한데 조금 더 생각을 진척시켜보자. ‘갈라디아 지방’과 가까운 소아시아 서부 지역에는 많은 유대인 회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회당 유적에선 적지 않은 이방인 회원들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시의회 의원 같은 도시 유력층 인물들이다. 즉 도시의 유력한 헬라인들은 유대 회당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할례 없이도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중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회당 내에는 고귀한 헬라인들이 사실상 유대인과 동등한 위치로 공존했고, 반면 어떤 이방인들은 비하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유대 분리주의 담론에서 비하되는 대상으로 말한 헬라인은 필경 이들 천한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디아스포라 회당 내부에서 비하되는 헬라인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천한 신분의 이방인을 가리켰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26~29에서 노예가 헬라인과 동일한 계열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할례의 대상이 아닌 존재인 여자 역시 열등한 대상이라는 점에서 유대 분리주의 담론에서 배제되고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유대 분리주의 담론의 반인권적 틀을 문제시하면서 그것을 논박하는 신학적 이론으로 의인론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제국 내에서 디아스포라 회당의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해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디아스포라 회당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성공한 디아스포라 회당은 대체로 로마제국 내 도시사회에서 중요한 자치결사체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었다. 거대한 상인 집단을 동반하여 병참보급의 문제를 해결한 로마제국의 전쟁방식은 엄청난 수의 노예를 양산했고, 이는 제국내 대도시와 그 인근 농촌 지역의 경제와 사회 구조를 노예무역에 기초한 체제로 재편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1세기에 제국내 대도시들은 노예무역으로 팔려온 광범위한 다인종의 이주민 집단으로 채워졌다. 게다가 전쟁유민, 은퇴한 용병 등도 이들 도시에 거주하는 이주민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빠른 시기에 확산된 광범위한 인구혼합 현상은 도시사회의 통치를 극도로 혼란스럽게 했고, 이런 상황에서 각 집단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결사체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물론 종족적 요소와 종교적 요소가 결사체를 형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이 두 요소를 동시에 갖춘 유대인 디아스포라 회당은 제국 내 도시사회에서 특히 성공한 결사조직이었다.
우리가 아는 정보에 따르면 어떤 유대인 디아스포라 회당은 소속된 이들을 대표해서 회당 당국이 시당국에 조세를 내는 지위를 부여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회당에 속한 이들은 시의 과세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회당의 기금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물론 이때 기부금을 내는 주요 멤버는 부유한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를 존중하는 부유한 헬라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회당의 율법에도 충실한 사람들이었을 게다. 반면 회당의 변두리 사람들은 기부금을 내지도 못했고 율법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요컨대 ‘율법을 통한 의’라는 회당의 신학적 논리는, 의도했든 아니든, 계급주의적 함의를 수반했다. 그리고 바울이 이에 대해 약자의 편에서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의인신학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믿음을 통한 의’라는 그의 의인신학의 핵심 어구의 숨겨진 비밀이 담겨 있다. 즉 그는 구원을 위한 비용으로 대중에게 너무 값비싼 ‘율법을 통한 의’라는 구원재를 해체하고자 믿음이라는 다른 구원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계급적으로 우월한 이들에게 유리한 재화가 아니다. 또한 성적인 다수자에게 유리한 재화 또한 아니다. 바울이 제기하는 대안적 구원재는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지 않은, 차별 없는 재화인 것이다. 바울은 비록 믿음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이러한 함의를 통해서 구체화되어야 할 무엇인 것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여야겠다. 바울의 의인신학은 고대부터,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논리로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그러한 교회의 의인신학은 바울의 의인신학의 함의를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의인신학이 예수를 잘 계승하고 있는가를 물을 때 통념화된 교회의 의인신학을 주목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우리가 앞에서 본 바울의 의인신학은 유대 분리주의와의 대결의 장에서 제기된 것이다. 보았듯이 그것은 구체적으로 유대 분리주의가 내포하는 반인권적인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에 대한 바울의 문제제기로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의인신학은 예수가 지배체제 속에 함축된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과 대결한 이라는 이해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울의 예수 해석은 과연 예수를 잘 계승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변질시킨 것일까. 그 답은 독자들이 판단해야할 몫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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